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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8.11 모수제기(慕漱帝紀)

 

 

 

北夫余不而城檀林山下, 蒼松茂宻丹闕聳出, 此乃天帝之殿也.

帝以黃袍瓊帶頭戴綠幘錦冠坐於獤皮獅榻朗讀玉馬神經,

羽衣扁皂徒雀躍, 民無鷄犬之驚謳歌太平者幾乎千霜.

顓頊南下, 其道神農黃帝, 其地北辰南溟.

偃皇北遷, 其法堯舜禹湯, 其土蟠木流沙.

姬發東侵西戎稱周, 沛項渡江南蠻為漢.

靑徐幽冀中土之民, 或東或北, 唐虞夷也夏殷胡也.

文生于紋艮為道宗, 傳在<渤海>震為法本,

連山敀藏農工醫薬禮樂射御書数之術莫不備焉.

召姜姬旦之治得於我而用於彼,

久占肥溫之地,長為安楽之計, 安者怠而亡, 勞者勤而興.

以臣伐君滅親為義, 周豈有道. 分其父羹觧其妻袴, 漢實無法.

五伯常淫七雄嗜殺, 書可以焚儒可以坑, 但知築城不知修德, 蒙恬未死秦已亡矣.

徒事干戈不事其親, 病已未生劉已絶矣.

奴中郞於北海, 屠貮師於東社, 李陵泣秋, 馬遷腐刑,

殺妻戮子, 徹固惡矣. 毒后納女, 光豈忠哉.

送女烏孫賣笑之行, 刺殺樓蘭剽盜之為,

右渠未平而彘璞先誅, 汗馬不至死者八九而.

于此渾世, 慕漱帝作非法非德以潔為治,

四八溫井百二洗女, 香費千金帨用万幅, 身如白玉齒如編珠,

同庚之后来自黃竜, 紀甲之妃結於順奴, 逍遙香林沐浴醴泉, 振羽投頸如鴛如鴦.

安神閨房思老玄虗, 弄尾弄璋如竜如虎.

 

 

북부여(北夫余) 불이성(不而城) 단림산(檀林山)아래

푸른 솔 우거진 곳에 단궐(丹闕)이 우뚝 솟았더니

이곳이 바로 천제(天帝) 궁전이라.

 

천제께선 황색 도포에 옥대(玉帶)를 두르시고 머리엔 녹색 띠와 비단 모자를 쓰고

돈피사탑(獤皮獅榻){흑담비모피를 두른 제왕의 평상}에 앉아

옥마신경(玉馬神經)을 낭랑히 읽으셨다.

 

새들은 널리 깃들고 낱알들이 수북하여 참새들이 뜀질하며

조의(皂衣)무리들이 바삐 뛰어도 민가에선 닭들과 개들도 놀라는 일이 없었으니,

구가하노니 태평성대라 거의 천년이었다.

 

전욱(顓頊)이 남하하니 그 도()는 신농(神農)과 황제(黃帝)였고

그 땅은 북쪽은 진()이고 남쪽은 명()이었으며,

언황(偃皇)이 북쪽으로 옮기니 그 법()은 요()()()()이었고

그 땅은 반목(蟠木)과 류사(流沙)였다.

 

<희발姬發>은 동쪽으로 침입한 서융(西戎)으로 주()를 칭하였고,

<유방劉邦><항우項羽>는 강을 건너 남만(南蠻)이 한()으로 되었으며,

 

청주(靑州)서주(徐州)유주(幽州)기주(冀州)땅 중토 백성들이

혹자는 동녘으로 혹자는 북녘으로 옮겼으니

(唐堯)(虞舜)시절 이()이었으며 하()()시절 호()이었다.

 

문자가 문양에서 나왔으니 간방(艮方)이 도()의 조종(祖宗)이었고,

전승(傳承)은 발해(渤海)에 있어서 진방(震方)이 법()의 본산(本山)이었다.

 

연산(連山){神農易法}귀장(敀藏){商殷易法}농공(農工)의약(醫藥)

예악(禮樂)사어(射御)서수(書數)를 갖추지 못한 것이 없었다.

 

<소강召姜>{姜太公}<희단姬旦>{周武王}의 다스림은

우리에게서 배워다가 저쪽에다 펼친 것이었고,

비옥하고 따뜻한 땅을 오래도록 차지하고 안락지계를 으뜸으로 하니,

편안한 이들은 게을러서 망하였고 수고하는 이들은 부지런하여 흥하였다.

 

신하가 임금을 치고 친족 죽이기를 의롭다 하였으니

어찌 주()나라에 도리가 있었을 것이며,

제 아비를 찢어서 국을 끓이고 제 처 샅을 내주었으니

()나라는 기실 법도가 없었다.

 

오백(五伯){春秋五覇}들은 상시로 음란하였고

칠웅(七雄){戰國七雄}들은 죽이기를 즐겼으며

책이라면 불태우고 유자(儒者)라면 땅에 묻었으며 성 쌓기나 알고 덕 닦기는 몰랐더니

<몽념蒙恬>이 죽기도 전에 진()은 이미 망하였다.

 

섬기는 것은 창과 방패이고 제 아비는 섬기지 않더니만

<병이病已(BC91-BC48)>를 낳기도 전에 유()씨도 이미 대()가 끊어졌다.

 

중랑장{劉徹이 흉노선우에게 보낸 <소무蘇武>}을 북해(北海)의 노비가 되게 하고,

<이사貮師>{장수 <이광리李廣利>}를 동사(東社)에서 도륙되게 하였으며,

<이릉李陵>이 울며 시름하니 <사마천史馬遷>을 부형(腐刑)에 처하고

<이릉李陵>의 처자식들을 죽이고 찢었으니

<유철劉徹(BC156-BC87)>이는 진실로 악독하였고,

황후에게 독을 쓰고 딸을 바쳤으니 <곽광霍光>을 어찌 충신이랄 수 있겠는가!

 

딸을 오손(烏孫)으로 보내서 웃음을 팔게 하고

루란(樓蘭)을 찔러 죽였으니 표독한 도적의 짓거리였고,

<우거右渠>를 평정하기도 전에 <순체荀彘><양박楊璞>을 죽였으니

한혈마가 이르기도 전에 죽은 이가 열에 여덟아홉이었다.

 

이리 혼란한 세상에

모수제(慕漱帝)<고두막高豆莫 (BC118-BC59) 재위 BC76-BC59>께서는

법치도 아니고 덕치도 아닌 깔끔함으로 다스리시니,

48개 온정(溫井)에서 102명의 여인들이 몸을 씻어

향 값으로 천금이 들고 수건으로 만폭을 사용하니,

몸은 백옥 같고 치아는 나란히 엮인 구슬 같았다.

 

동갑내기 황후가 황룡(黃龍)에서 찾아오고,

기갑지비(紀甲之妃)와는 순노(順奴)에서 맺었는데,

향기로운 숲을 소요하다가 단물나는 샘에서 목욕하고

깃털 털어서 목을 맡기니 암수 원앙이들 같았다.

 

규방에 신주(神主)를 모셔놓고 노자(老子)를 마음에 품었더니,

딸을 낳고 아들을 낳으면 용과 같고 범과 같았다.

 

 

 

重光荒落,

五羊献桃. 我女, 如凰来自丹山, 飢不啄粟, 貞靜幽閑.

 

중광황락(辛巳,BC100)

오양(五羊)이 복숭아를 바쳤는데,

우리 딸{(BC100- )}은 단산(丹山)에서 온 봉황이 굶주려도 알곡을 쪼지 않듯

오직 고요하고 그윽하게 등한할 뿐이었다.

 

 

 

昭陽協洽, 又擧鸞主, 似凰而肥, 雖非后也, 亦可以妃.

 

소양협흡(癸未,BC98)

<BC98-BC19)>공주를 들어 올렸더니 <>과 비슷하나 뚱뚱하여

비록 황후 감 아니어도 비()로서는 역시 삼을 만하였다.

 

 

 

旃蒙作畺, 三禽子飛, 单于之敀, 花草何為.

崑山之酒藏於駝卵, 三神之薬採於鰲頭, 求醬柏谷, 漂母殺鷄聞謠

康衢有女如玉, 仙風道骨原来多情, 無名之花泣於草野, 金枝玉葉自是多風,

有恨之實落於空汀, 拓跋索頭慕容紫蒙.”

 

전몽작악(乙酉,BC96)

셋째 <(BC96- )>이가 떨어졌는데, 선우(單于)가 돌아왔으니 화초가 어찌 될꼬?!.

 

곤륜산(崑崙山)의 술을 타란(駝卵){타조알 그릇}에 담아놓고

삼신산(三神山)의 약들을 오두(鰲頭){자라목 그릇}에 따라놓았다.

 

()을 백곡(柏谷)에서 구한 빨래하는 아낙이 닭을 잡다가 노래 소리를 들었더니

강구연월(康衢煙月)에 옥() 같은 여인이 있어

선풍도골(仙風道骨)에 본디부터 다정하였는데,

이름 없는 꽃들이 초야(草野)에서 울고 금지옥엽도 이날부터 바람 잘날 없더니,

한 서린 씨앗들이 휑한 물가에 떨어져서

탁발(拓跋)씨 색두(索頭)와 모용(慕容)씨 자몽(紫蒙)이 되었다.”하였다.

 

 

 

 

彊圉淵黙,

<>母賔天, <>公下降, 存之存之<夫余>之名可以存之.

帝叔<夫婁>, 爰自<故國>移于<加葉>,

生木為柵死貝為陵, 五穀豊盛魚鼈無盡, 一年城邑三年成都, 貝為<洛陽>柵為<長安>,

<桑海>之濱<罽山>之隅.

 

강어연묵{丁亥,BC94}

<(BC138-BC94)>{德皇 고우루高于婁(BC140-BC111), 慕漱帝母后}께서

상천(上天)하시고 <(BC94- )>이 태어나니,

보살펴서 보존해 오던 부여라는 이름을 보전할 수 있었다.

 

모수제의 숙부 <해부루解夫婁(BC138-BC62) 동부여 재위 BC94-BC63>

고국(故國)에서 가섭(加葉)으로 옮겨가서

생나무로 성책을 세우니 죽은 조가비들이 큰 언덕을 이루고,

오곡이 풍성하고 어별(魚鼈)이 무진하여 1년 만에 성읍을 이루고

3년 만에 도성을 이루어서

조가비들은 낙양(洛陽)이 되고 성책은 장안(長安)이 되었더니,

상해(桑海)가의 계산(罽山) 모퉁이였다.

 

 

 

 

帝妹<>,初嫁<禾相><>而別, 再嫁<羊山><>而敀,

著雍困敦桃夭之時, 百両御之十燭華之, 千乘之君萬姓之妃.

后弟之婦仙法之家, 宅於<杜訥><西川>之涯, 宮於<獸林>春官之衙,

宜爾<黃竜>世守<羊加>.

 

모수제 여동생 <(BC116- )>공주는

애초 <화상禾相(BC120?-BC66)>에게 출가하여

<화뢰禾賴(BC98-BC78)>를 낳고서 헤어졌고,

<양산羊山(BC116?-BC62)>에게 재가하여

<양복羊福)BC93-BC60)>을 낳고서 돌아왔다.

 

저옹곤돈(戊子,BC93)년 복숭아꽃이 흐드러질 무렵,

백 수레가 당도하여 열 촛불을 밝혔더니, 천승임금이요 만백성의 비()가 되었다.

 

모수제 후(){양성羊聖(BC118-BC66) 남동생의 아낙은 선법(仙法)하는 집안으로

두눌(杜訥)땅 서천(西川) 연변에 살며 수림(獸林)땅 춘관(春官) 마을에 궁을 들였으니,

마땅히 너희 황룡국(黃龍國)은 양가(羊加)를 세세토록 지킬지어다.

 

 

 

 

屠維赤奮, 如駿之駾, 駾兮駾兮, 是誰之女.

 

도유적분(己丑,BC92),

준마(駿馬) 같은 <(BC92- )>는 빠르구나! 빨라! 이는 누구의 딸이던가!

 

 

 

重光单閼, 鼋又生芳, 其芳如何,

芝蘭之室, 天香拍地,天后之姿, 金霞滿堂,帝配之慶.

屋禾羊家三舅之臣, 帝以玉醬賜之后父, 又以金飴饋之鼋山.

 

중광단알(辛卯,BC90)

<>이 또 <양방羊芳(BC90-BC59)>을 낳았더니, 그 방()은 어떠한가?

 

향기 가득한 방에 천향(天香)이 바닥을 어루만지니 천후의 자태이고,

금빛노을 만당하니 천제께서 짝을 맺으실 경사이다.

 

()()()씨 세 장인(丈人) 신하들이 있으니,

천제께서 옥장(玉醬)을 후들의 아비들에게 내리시고

또한 맛있는 음식을 <><양산羊山>에게 먹이었다.

 

 

 

玄黙執徐, 仲秋之月, 狐鹿為母屠殺漢将.

李女之兄, 昌邑之舅, 賣笑而貴牲於絶域,

朝露人生一何如是, 因緣內謁者所當龜鑑.

武甘斧鉞陵不再辱, 義固難屈志不碌碌, 無功而尊不祥之甚.

 

현묵집서(壬辰,BC89)

음력 8월에 <호록고狐鹿姑(BC116?- ) 재위 BC96-BC85>가 어미를 위해

의 장수{李廣利}를 도살하였다.

 

녀의 오빠이며 창읍왕{유하劉賀}의 장인으로,

웃음을 팔아서 귀하게 되었다가 외딴 곳에서 희생되었으니,

조로인생(朝露人生)이 어찌 이리 되었는고?

 

인연이 닿아서 내알(內謁)하는 이들은 귀감으로 삼을 일이다.

 

<소무蘇武>가 부월(斧鉞)을 감내하고 <이릉李陵>은 재차 욕됨을 당하지 않으니

()는 진실로 꺾기 어려웠고 뜻()은 녹녹하지 않았건만,

() 없이 존귀하게 되었다가 심히 상서롭지 못하였다.

 

 

 

 

鮮卑王柏, 帝之姨也, 槐里為婿, 狐鹿之叔,

昭陽荒落生子豪全. 帝亦是年生子騘公,

柏與槐入朝檀宮. 帝賜靑詞 曰

松栢為槐其蔭不絶, 為我臣妾, 永久護持豪全. 豪全, 吾兒之騘, 騎不仆之走不失之."

 

선비(鮮卑)<송백松柏>이는 천제의 이종(姨從)이다.

<괴리槐里>는 사위고, <호록고>는 숙부이다.

 

소양황락(癸巳,BC88)년에 아들 <호전豪全(BC88-BC34)>을 낳았고

천제 또한 이해에 아들 <(BC88- )>공을 낳았다.

 

<송백><괴리>가 단궁(檀宮)으로 입조하니,

천제께서 청사(靑詞)를 내려 이르시길

“<송백><괴리>로 인해 덕을 봄이 끊이지 않았고 내 신하가 되었으니

오래도록 <호전>이를 보호하고 지켜야 할 것이며,

<호전>이는 내 아이의 총마(騘馬)이니,

말을 탈 때 엎드리게 하지 말고 달리다가 잃어버리지도 말아야 할 것이다.”

라고 하였다.

 

 

 

 

 

閼逢敦祥,

鼋生羊俊.

漢斃狂徹, 光桀作乱乃立弗陵, 幼子何知.

燕旦可憐, 旦使来庭請伐弗陵. 帝命孤鹿助旦問罪禽獸殺寬,

不疑收澤加刄泉鳩太守. 北地夷滅宗室乃尹京兆, 誰謂漢廷其有人才.

 

 

알봉돈상(甲午,BCE87)

<>공주가 <양준羊俊(BC87- )>을 낳았다.

 

에선 미치광이 <유철劉徹(BC157-BC87) 재위 BC140-BC87>이 죽고,

<곽광霍光><상관걸上官桀>이 난을 일으켜서

<불릉弗陵(BC95-BC74)>을 세웠으니, 어린아이가 무얼 알겠는가?.

 

이때 소제(昭帝) <유불릉> 9살이다.

 

<유단劉旦>{弗陵의 이복형}이 가련하여,

<유단>의 사자가 조정으로 찾아와서 <불릉>을 토벌하길 주청하니,

천제께서 <호록고>에게 명하시어

<유단>을 돕고 금수들을 문죄하여 죽이고 살리게 하니,

<준불의雋不疑>{靑州刺史}<유택劉澤>이를 잡아들이고

천구(泉鳩) 태수를 베어 죽였다.

 

북지(北地) 이인(夷人)들이 의 종실(宗室)들을 멸하고

경조(京兆)땅을 다스리게 되었으니,

어느 누가 조정에 인재가 있다고 하겠는가?

 

 

 

 

靑羊之夏, 狐鹿生女, 名曰可喜不足可喜.

 

청양(乙未,BC86)년 여름

<호록고>가 딸을 낳아 이름을 <가희可喜>라 하였으나 기쁘기엔 부족하였다.

 

 

 

 

火猿之春,鮮槐生子, 名曰佗利實不佗利.

屋妃生女, 其名曰蜃, 雀入海中其珠爲真,

兄曰奧陵姊曰好辰皆敀奧山, 蜃獨封主, 因亦以功陞爲副后.

 

화원(丙申, BC85)년 봄

선비(鮮卑) <괴리槐里>가 아들을 낳아 이름을 <타리佗利(BC85-BC61)>라 하였으나,

실은 편안하지도 이롭지도 않았다.

 

<>{옥인屋因(BC118- )가 딸을 낳아 이름을 <>이라 하였다.

 

참새가 바다 속으로 들어가서 그 구슬이 참 진주가 되니

오빠 <오릉奧陵>과 언니 <호진好辰>은 모두 <오산奧山>의 자식으로 되었으나,

<>이만 홀로 공주로 봉해졌더니,

이 공으로 인하여 승차하여 부후(副后)가 되었다.

 

 

 

 

 

紅毛鷄春, 禾相如胡, 賈達東来, 且鞮之女. 相爲之妻, 帝爲之妃.

壺衍新立, 其母不正, 二王不朝, 龍城孤危.

燕旦稱臣願爲白耳, 帝以壺新留之不决. 盖長私客五歲入宮, 桀光爭道, 旦乘其間.

羊聖生華, 鼋又生蓉.

 

홍모(丁酉,BC84)

봄에 <화상禾相>{모수제의 이종형}이 호()로 가서

<가달賈達(BC100-BC61)>을 동쪽으로 데려오니 <저제후且鞮侯>의 딸이다.

 

<화상>이 그녀를 처로 삼았다가, 제께서 그녀를 비로 삼으셨다.

 

<호연제壺衍鞮(BC100?-BC68)>{호록고의 아들}가 새로이 보위에 올랐다.

 

그 어미가 옳게 하지 않아서 두 왕들이 알현하지 않았더니,

용성(龍城)이 고립되고 위태로워졌다.

 

<유단>이 신하를 칭하며 백이(白耳)가 되길 원하니,

천제께서 <호연제>가 새로 보위에 올랐음으로

<유단>이를 눌러 앉혀서 곁을 떠나지 않게 하였다.

 

개략 <>공주가 객()과 사통하길 5년 만에 입궁하니,

<상관걸><곽광>이 도리(道理)를 다투고 <유단>이 그 틈을 노렸다.

 

<양성羊聖><>를 낳고, <>공주가 또한 <>을 낳았다.

 

 

 

 

翌春三月,

賈達生穗.

真番来降, 磧東入貢.

帝命屋文東巡海上, 又命禾相整理遼東與旦相會大獵而敀.

欒大之子淫徹之孫願入刷馬, 賜以客卿, 妻以宗女賜姓漢氏.

弗陵非子霍光立之, 黃犢似真

不疑斬之, 三十万錢万三千戶, 奪旦之位.

桀光窈弄鉤弋爲雉, 桑樂驕淫樂與婿飮, 罵天而悖.

奧川如胡, 李陵来朝. 帝命壺衍, 放武與陵敀, 與光桀以迎燕旦.

凰為川妻而生萬, 鸞為賴妻而生岑.

 

 

 

다음해(戊戌,BC83)

3월에 <가달><화수禾穗>를 낳았다.

 

법황(가달) - 화수(BC83- )

 

진번(真番)이 항복하여 찾아오고, 적동(磧東)이 들어와서 조공하였다.

 

武帝元封四年 拓朝鮮地 增置眞番臨屯元菟樂浪四郡

昭帝始元五年 省眞番臨屯 入元菟樂浪四郡 其東爲高句麗

- 大淸一統志

 

周爲箕子所封之國 秦屬遼東外憿 漢初燕人衛滿據其地

武帝定朝鮮爲置眞番臨屯樂浪玄菟四郡

昭帝竝爲樂浪玄菟二郡

漢末爲公孫度所據

- 大明一統志

 

무제 원봉4년은 BC107년이고 소제 시원 5년은 BC82년이다.

 

중국의 사서는 BC107년에 이 조선의 땅에 4을 설치하여

BC82년에 진번이 낙랑에 통합되었다고 하는데

통합된 것이 아니고 BC83년에 북부여에 항복한 것이다.

 

그리고 그 동쪽이 고구려이고,

그 한사군을 설치한 곳에 나라가 기자를 봉하였고,

나라 때에는 요동외요에 속하였고

나라 초기에 <위만>이 준거한 곳이며

나라 말기에는 <공손도>의 치소가 있던 곳이라는 것이다.

 

제께서 <옥문屋文(BC147-BC79)>에게 명하여

동쪽으로 해상(海上) 땅을 순행하게 하고,

또한 <화상禾相>에게 명하여 요동(遼東) 땅을 정리하고

<유단>과 함께 회동하여 크게 사냥하고 돌아오게 하였다.

 

<란대欒大>가 들어와서 말을 빗질하겠노라 원하기에 객경(客卿)으로 삼아서

종녀(宗女)를 처로 주고 한()씨 성()을 내렸다.

 

<란대欒大>의 손자가 <한소漢素(BC72-BC21)>이다.

 

<불릉弗陵>은 자식이 아닌데 <곽광>이 그를 보위에 세우니,

누런 소 수레를 탄 이가 진짜처럼 보였다.

 

<준불의>가 그를 참하고서 30만전과 만3천호를 받았으며 <유단>의 지위도 빼앗았다.

 

<상관걸><곽광>이 은근히 농간하여 <구익鉤弋><여치呂雉>가 되게 하니,

<상락桑樂>{상관걸의 아들}이 교만하여 음탕함을 즐기며

사위{弗陵}와 술을 먹으면서 하늘{弗陵}을 욕하였다가 갑자기 어그러졌다.

 

<오천奧川>이 호()로 갔더니, <이릉李陵>이 래조하였기에,

제께서 <호연제>에게 명하여 <소무蘇武>를 풀어주어

<이릉>과 함께 (으로) 돌아가게 하여서

<곽광> <상관걸>과 함께 연왕 <유단>을 맞아들이게 하라고 하였다.

 

<><오천奧川(BC100?- )>의 처가 되어 <오만奧萬(BC83-BC42)>을 낳았고,

<><화뢰禾賴(BC98-BC78)>의 처가 되어 <화잠禾岑(NC83-BC25)>을 낳았다.

 

 

 

 

翌年白[],

鼋生羊花,

蘇得鴈報.

帝開東池灌於民田, 又放南林許民逐羊.

雖是晩覺亦一旱雨,

雉之楽敀於田夫, 鹿之戱不愧賢者.

 

다음해 백달(白獺)(庚子,BC82)

<><양화羊花(BC82- )>를 낳았다.

 

<소무蘇武>가 기러기를 얻어서 보고하였다.

 

제께선 동지(東池)를 열어 백성들 밭에 물을 대어주시고

또한 남쪽 숲을 트시어 백성들이 양들을 내몰 수 있게 하였다.

 

비록 이 일들이 늦은 감은 있었지만 역시 하나같이 가뭄중의 단비였다.

 

사다새잉어꿩을 쫒는 즐거움이 전부(田夫)들 몫이 되었고,

큰기러기작은 기러기큰사슴작은 사슴과 함께 하는 놀이가

현자(賢者)들을 부끄럽게 하지 않았다.

 

 

 

 

 

重光赤奮,

后生觧德, 賈達生穎.

是年大旱, 夫婁献粟. 自是以後, 年年献粟, 沿江八國為之舟運.

桀與燕旦謀殺弗陵而敗, 皆被誅戮,

旦與其妻子奔入鮮卑.

帝命壺衍發兵伐光 懲其骨肉相殘.

 

중광적분(辛丑,BC80),

{羊聖}<>을 낳고, <가달><화영禾潁>을 낳았다.

 

모수제(양성) - (BC80- )

모수제(가달) - 화영(BC80- )

 

이해에도 크게 가물어서 <해부루>가 곡식을 바치고,

이후로도 해마다 곡식을 바쳤다.

 

강들을 연접한 여덟 나라가 이를 위해 배를 운용하였다.

 

<상관걸>이 연 왕 <유단劉旦>과 함께 <불릉弗陵>을 죽이길 모의하였다가 실패하니,

모두 목이 잘리거나 찢겨져 죽었다.

 

<유단>은 제 처자식들과 함께 선비 땅으로 도망쳐 들어갔다.

 

제께서 <호연제>에게 명하여 군대를 징발하여 <곽광霍光>을 치고

그들이 골육상잔하였음을 징치(懲治)하게 하였다.

 

 

 

玄黙攝提,

凰生奧犍, 鸞生羊吉, 禽生稽侯.

羊芳入宮.

屋文雲去斗辰嗣之,

好人承寵副於賈達,

羊川雲去, 羊山代之.

帝召桓公入為牛加, 秉直盡忠以代二老.

虗閭来朝黃駝千匹,幽冀之民敀者如雲.

 

현묵섭제(壬寅,BC79)

<><오건奧犍(BC79-BC23)>을 낳고,

<><양길羊吉(BC79-BC36)>을 낳았으며,

<>이 계후(稽侯){호한야呼韓邪(BC79-BC31)}를 낳았다.

 

<양방羊芳(BC90-BC59)>이 입궁하였다.

 

<옥문屋文(BC147-BC79)>이 죽어 <옥두진屋斗辰>이 뒤를 이었다.

 

옥문(을란) - 옥두진(BC92-BC45)

 

<호인好人>이 승은을 입고 <가달賈達>의 다음자리가 되었다.

 

오산(옥인) - 호인(BC94-BC24)

 

<양천羊川(BC140?-BC79)>이 죽어 <양산羊山(BC116?-BC62)>이 대신하였다.

 

제께서 <>공을 불러 우가(牛加)로 삼으니,

강직하게 충성을 다하면서 두 노인{옥문과 양천}을 대신하였다.

 

<허려권거虗閭權渠(BC98?-BC60)>가 래조하여 누런 낙타 1,000필을 바쳤으며,

유주(幽州)기주(冀州)땅 백성들이 귀의함이 구름과 같았다.

 

<허려권거><호록고>의 아들로 <호연제(BC100?-BC68)>의 동생이고

모수제 <고두막>의 사위이다.

 

유주(幽州)2534으로 가구수는 59,200이다.

 

범양국(范陽國) : 탁현외 7개현

연국(燕國) : 계현외 9개현

북평군(北平郡) : 무종현외 3개현

상곡군(上谷郡) : 거용현외 1개현

광녕군(廣寗郡) : 탁록현외 2개현

대군(代郡) : 대현외 3개현

요서군(遼西郡) : 비여현외 2개현

 

혜제(惠帝)<사마충(259-306) 재위 290-306> 이후에

유주(幽州)<석륵石勒>에게 함몰되었다.

 

목제(穆帝) 영화(永和) 5(349),

<모용준慕容儁>은 계()에서 참람되이 칭하였는데 이것이 전연(前燕)이다.

 

영화 7(351)<모용준>은 업성(鄴城)으로 도읍을 옮겼다.

 

<모용준>이 죽자 아들 <모용위><부견苻堅>에게 멸망당하였다.

 

<부견>이 동진(東晉)과의 전쟁에서 패하자

땅은 다시 <모용수慕容垂>에게 들어갔고 이것이 후연(後燕)이다.

 

<모용수>가 죽자 <모용보>는 화룡(和龍)으로 옮겼다.

 

 

 

 

 

玄兎之年,

禾相失賴, 鸞嫁羊福, 吉為福子.

秋英生弗, 鼋生羊英.

帝與禾相西巡而敀,

戇光倖秋爭權幻弄,

乃命槐里綂率烏桓 南伐西掠大獲而敀.

范賊度遼殺其二子, 充國坐笑,桓胡爭功.

 

 

 

현토(癸卯,BC78)

<화상禾相><화뢰禾賴(BC98-BC78)>를 잃으니

<><양복羊福(BC93-BC60)>에게 재가(再嫁)하여

<양길羊吉><양복羊福>의 아들로 되었다.

 

화뢰() - 양길(BC79-BC36)

 

<양길><화상>의 아들인 <화뢰>와 모수제의 둘째 딸 <>의 아들인데

<화뢰>가 죽으니 <><양복>에게 재가하여 <양복>의 아들로 삼은 것이다.

 

 

<추영秋英><왕불旺弗>을 낳고, <><양영羊英>을 낳았다.

 

왕인(추영) - 왕불(BC78- )

양산() - 양영(BC78- )

 

 

천제께서 <화상禾相>과 함께 서쪽을 순방하고 돌아왔다.

 

미련한 <곽광霍光>과 간사한 <전천추田千秋>가 권력을 다투면서

교묘하고도 못된 꾀를 부렸다.

 

이에 <괴리槐里>에게 명하여 오환(烏桓)을 모조리 이끌고

남쪽과 서쪽을 토벌경략하여 크게 노획하고 돌아왔다.

 

(){度遼將軍 中郞將 <범명우范明友>}이 요수(遼水)를 건너서

{槐里}의 둘째 아들을 죽이니

<조충국趙充國>은 앉아서 웃고, 오환(烏桓)과 호()는 공을 다투었다.

 

 

 

 

靑竜之春, 賈達生蕚.

桓淑牛姬皆承帝寵, 牛生丹公, 桓孕柘公.

一言于秋死于好言, 要功介子万里行刺,

放火于廟稱赦不罪, 蟲食宻葉書以病已,

姦人不覺妖言先斬, 范賊欺功介盜為義.

 

청룡(甲辰,BC77)년 봄에 <가달賈達><화악禾萼>을 낳았다.

 

화상(가달) - 화악(BC77- )

 

<환숙桓淑><우희牛姬> 모두 천제의 총애를 받으니,

<우희><(BC77-BC33)>공을 낳고,

<환숙><(BC76- )>공을 잉태하였다.

 

모수제(우희) - (BC77-BC33)

모수제(환숙) - (BC76- )

계량(환숙) - 계맹자(BC66-BC23)

 

<>공이 <계맹자桂孟子>의 남편이다.

 

<전천추田千秋>에게 말 한마디 하였다가 <호언好言>에게 죽었고,

()이 필요한 <부개자傅介子>가 만 리 밖에서 칼질하였고,

종묘사당에 불을 질렀어도 사면을 칭하며 죄를 묻지 않았으며,

벌레들이 꿀 바른 나뭇잎을 갉아먹어서 <병이病已>란 글자가 써졌어도

간교한 이들은 깨닫지를 못하고 먼저 베어야 한다는 요사한 말이나 하였으며,

범적(范明友)은 공적을 속였고, <부개자傅介子> 도적놈은 의인(義人)이 되었다.

 

 

 

旃蒙荒落,

法皇晏駕, 帝登天位万國執帛.

聖生骨主, 桓生柘公.

壺衍之母槐里之父詣闕上夀,

天馬火栆不遠千里, 鷄冠玻璃粲闌輝煌,

東池南林歌聲不絶, 漠野海東冠盖相望,

秋英入宮五妃俱成.

 

전몽황락{乙巳,BC76}

법황(法皇)<(BC138-BC77) 재위 BC111-BC77>이 붕어하였다.

 

모수제께서 천제위에 오르시어 모든 나라들에게 백서(帛書)를 내렸다.

 

모수제의 아버지 덕황(德皇)<고우루(BC140-BC111) 재위 BC120-BC112 >

BC112년에 <애종>의 화를 당하여 붕어하자

아들인 모수제 <고두막(BC118-BC59)>은 나이 8살이어서

덕황의 황후인 <(BC138-BC94)>태후는 법황과 함께 <애종>을 난을 평정하고

모수제 <고두막>을 황태자로 세우고 법황과 함께 나라를 다스리다 BC94년에 죽었고

BC76년 법황이 붕어하자 모수제 <고두막>이 천제로 즉위하니 이때 나이 43세였다.

 

 

<양성羊聖><>공주를 낳고, <환숙桓淑><>공을 낳았다.

 

<호연제壺衍鞮>의 어미와 <괴리槐里>의 아비가 대궐로 찾아와서

모수제께 만수무강하시라고 술을 따라 올렸다.

 

천리마를 타고 밤길을 불 밝히며 천리를 멀다 아니하고 찾아오니

높은 벼슬아치들의 유리와 보석들은 찬란 휘황하였고

동쪽 못과 남쪽 숲에서 노래 소리가 끊이지 않았으며,

막야(漠野)와 해동(海東)의 관모(冠帽)과 서로 마주 바라보았다.

 

<추영秋英>이 입궁하여 5가 모두가 채워졌다.

 

 

 

 

火馬之年,

柒公生焉.

去年大旱今年大水, 一人作之十人食之. 飽者其誰

作者常飢, 忠者轉壑奸者跋扈, 民望始缺廷議不一,

花朝月夕雲雨之楽, 臺池鳥獸耳目之悅, 只堪欠伸不足為賞.

范賊入寇欲城玄菟, 烏桓伐之斬其校尉, 卑離紫蒙幷力大破, 漢卒匹馬不敀.

帝命槐里調理上谷, 降者賞之拒者殄之.

霍光謀內不暇於外, 雖有慘敗有若不知, 忠在簒逆不問邊事.

 

화마{丙午,BC75}

<>공이 태어났다.

 

<>공은 모수제와 <옥인>의 아들로 개마 왕이 되었다.

 

 

지난해 크게 가물고 금년엔 홍수가 나서,

한 사람이 지은 것을 열 사람이 먹었으니 배부른 자 누구였더냐.

 

농사를 지은 이도 매일같이 굶고 있고,

충성하는 이들은 산골짝에 나뒹굴고, 간교한 이들이 발호하니,

백성들의 믿음은 없어지기 시작하고 조정은 의견들이 엇갈렸다.

 

꽃피는 아침과 달뜨는 저녁의 운우지락에

성문(城門)과 해자(垓子)의 새들과 짐승들의 눈과 귀는 즐거워,

그저 견딜 만하여 하품하며 기지개를 켜 보지만,

부족한 것은 상() 줄 일이다.

 

<>적이 현도(玄菟)땅을 침입하여 노략하며 성을 쌓으려 하니,

오환(烏桓)이 그들을 쳐서 교위(校尉)의 목을 베고

비리(卑離)와 자몽(紫蒙)이 힘을 합쳐 크게 이기니

()의 군대는 말 한 필도 살아가지 못하였다.

 

모수제께서 <괴리槐里>에게 명하여

상곡(上谷)을 사리를 따져서 처리하고 항복한 이들에겐 상을 주고

저항하는 이들은 모조리 쓸어버렸다.

 

<곽광霍光>은 안에서 모의하느라 밖의 일엔 겨를이 없어서

비록 참패하였어도 모르는 척하였으니,

충성이란 찬탈과 반역에 있고 변방의 일은 모르고 있었다.

 

 

 

 

 

赤羊之春, 好人生女名曰柳花, 賈達生女名曰禾英.

弗陵夭死昌邑狂悖, 霍光廢立必竟病已是誰之子, 可憐廣陵終始見棄,

嚴劾風燭霍女窺內.

牛姬生女其名曰旃.

帝命欒子與旦伐光,

 

적양{丁未,BC74}

봄에 <호인好人>이 딸을 낳았더니 그 이름이 <유화柳花>이고,

<가달賈達>이 딸을 낳았더니 그 이름 <화영禾英>이다.

 

옥두진(호인) - 옥유화(BC74-BC23)

화상(가달) - 화영(BC74-BC20)

 

<옥유화屋柳花>가 고구려 시조 <추모芻牟(BC58-BC19)>의 어머니이다.

 

 

<불릉弗陵(BC98-BC74)>이 요절하고 창읍(昌邑)이 미쳐서 날뛰자,

<곽광霍光>이 임금을 폐위하고 세우니,

필경 <병이病已(BC91-BC48) 재위 BC74-BC50>이니 이게 누구의 아들인가?

가련하다 <광릉廣陵>이여, 끝내 저버림을 보았구나.

 

엄히 캐물으니 바람 앞의 촛불이었고, <곽광霍光>의 딸은 안 자리를 노렸구나.

 

<우희牛姬>가 딸을 낳았더니 이름이 <을전乙旃>이었다.

 

을송(우희) - 을전(BC74- )

 

<을전>은 순노 <오건(BC79-BC23)>의 처가 된다.

 

모수제께서 <란대欒大>의 아들에게 명하길

<유단劉旦>과 함께 <곽광霍光>을 정벌하라 하였다.

 

 

 

 

著雍涒灘,

病已用權, 建封廣陽, 弘封高宻, 旦欒無力逼遛観望.

夫婁有女名曰觧英, 斗辰姨子名曰金蛙, 蛙英相婚入朝檀宮.

帝憂水罕年年不登, 加以癘疫人畜半減, 好人勧蛙倍納献粟.

 

저옹군탄{戊申,BC73}

<유병이劉病已>가 권도(權道)<유건劉建>을 광양(廣陽)에 봉하고

<유홍劉弘>을 고밀(高宻)에 봉하여도,

<유단>이와 <>{란대의 아들}는 힘이 없어 움츠리고 관망하기만 하였다.

 

<해부루觧夫婁>에게 딸이 있어 이름이 <해영觧英(BC90?-BC58)>이고,

<옥두진屋斗辰>의 이모에게 아들이 있어 이름이 <금와金蛙(BC90-BC7>인데,

<금와><해영>이 서로 혼인하여 단궁(檀宮)으로 입조하였다.

 

수제께서 근심하시는 바가 비가 가물어서 해마다 곡식이 여물지 않음이고,

설상가상 창질과 돌림병으로 사람과 가축이 반수로 줄었더니,

<호인好人><금와>에게 곡식 바치길 갑절로 하도록 권하였다.

 

 

 

 

 

黃鷄之年,

芳生女晨, 欒室生子其名漢素, 凰生奧春, 蛙生帶伯.

天不無心, 田年自刎, 論徹以罪. 沮其立廟, 黃覇在獄, 講書不怠.

細君老死, 觧憂復嫁肥王. 継三男二女, 背反单于, <>通謀.

 

황계{己酉, BCE72}

<양방羊芳>이 딸 <>을 낳았고,

<>{란대 아들}의 아낙이 아들을 낳아 이름이 <한소漢素>였고,

<><오춘奧春>을 낳고, <금와金蛙><대백帶伯>을 낳았다.

 

하늘이 무심치 않아서 <전연년田延年>이 스스로 목을 베었는데,

<유철劉徹>이를 논한 것이 죄이었으며,

사당 세우길 막았던 <황패黃覇>는 옥중에서 살아남아

서책 강설하길 게을리 하지 않았다.

 

<세군細君>이 늙어서 죽고, <해우觧憂>가 비()왕에게 재가하여,

계속하여 32녀를 낳고서도 선우를 배반하고 <곽광霍光>과 통모하였다.

 

 

 

 

金狗之春, 霍殺奭母.

可憐放釼, 岑岑其頭, 以是為忠, 無道可知.

壺衍問罪乃擧義師, 范賊敗敀未免自戮.

好人生女名之以萱, 萱兮宜陽佩之忘憂.

是年大飢餓尸相連, 献粟不至帝都洶洶.

 

금구{庚戌,BC71}

봄에 <곽광霍光><유석劉奭>의 어미를 죽였다.

 

가련하다, 무사들을 곁에서 물렸음이어!

머리를 높게 치어듦이 충성인 줄 여겼지만, 무도함이었던 것을 알았겠구나.

 

<호연제壺衍鞮>가 문죄하고자 의로운 군사를 일으키니,

<>적은 패하고 돌아가서 자진함을 면치 못하였다.

 

<호인好人>이 딸을 낳아 <훤화萱花>라고 이름을 지었더니,

<훤화>는 화목하고 밝았으며 근심을 잊는 재주를 타고났더라.

 

옥두진(호인) - 옥유화(BC74-BC23)

                     옥훤화(BC71-BC22)

                     옥위화(BC68- ) 

 

이해에 큰 기근으로 굶어죽은 시신들이 널려있는데도

바쳐오는 곡식이 다다르지 않으니, 도성(都城)의 인심이 흉흉하였다.

 

 

 

 

 

白豕之年,

賈達生子, 名曰禾滿,以滿不滿.

霍女為后, 天必厭之.

沃沮不順遲其舟運, 奧川責之献粟愈難,

都彦以計撫容列侯. 天賜之女, 是為都花,

帝賜金尺, 以其救都, 賜姓都氏.

勝覇出獄, 病已扶直.

 

백시{辛亥,BC70}

<가달賈達>이 아들을 낳으니, 이름이 <화만禾滿>인데, 가득한 것은 불만이었다.

 

화상(가달) - 화만(BC70- )

 

<곽광霍光>의 딸이 후()가 되었더니, 하늘이 필시 이를 싫어하였다.

 

옥저(沃沮)가 불순하여 주운(舟運)을 지체하여 <오천奧川>이 이를 나무랐더니,

곡식을 바쳐옴이 점점 어려워졌다.

 

이에 <도언都彦>이 꾀를 내어 열후(列侯)들을 위무하고 종용하였더니,

하늘이 내린 여인 그가 바로 <도화都花>이다.

 

모수제께서 금척(金尺)을 내리고, 도성(都城)을 구원하니 <>씨 성()을 내렸다.

 

<하후승夏侯勝><황패黃覇>가 출옥하니 <병이病已>가 억울함을 바로잡은 것이다.

 

 

 

 

玄黙困敦,

順沃交戦, 靑河助順, 沸流助沃, 相勝相負持久不决, 献粟不至京都困甚,

帝開倉廪公卿自殺. 芳后生女鷄黍不備, 帝飮粱酒束手無策, 群盜蜂起自稱天子,

天厄如此鳳凰何至.

 

현묵곤돈{壬子,BC69}

순노(順奴)와 옥저(沃沮)가 맞붙어 싸우니 청하(靑河)순노를 돕고

비류(沸流)가 옥저를 도와서 서로가 이겼다 졌다 하면서 오래도록 결판이 나지 않으니,

바쳐오는 곡식이 다다르지 못하여 경도(京都)의 곤궁함이 심하였다.

 

이에 모수제께서 창고와 곳간들을 여니 공경들이 자살하였으며,

<>후가 딸을 낳았어도 산후에 산모를 먹일 닭 국물과 밥이 없었고,

천제께서도 좁쌀 술을 드실 뿐 속수무책이셨으며,

도적들이 벌떼 같이 일어나서 천자(天子)를 자칭하였다.

 

하늘의 재앙이 이러하였으니, 봉황(鳳凰)이 어찌 오겠는가?

 

 

 

昭陽赤奮

又是旱證. 黃龍助順伐沸, 滸口荇人救沸伐龍, 河上六國交戦其血玄黃,

帝命禾相乃伐荇人, 天下大乱災異時見.

桓那卒本之軍會于汗濱, 盖馬肅愼之軍集于梁貊, 牛畜殆盡馬驢亦稀.

好人生葦, 羊后登壼.

壺衍病没, 虗閭棄嫂. 鳳凰啄蝗, 忠光藏輝.

金蛙献粟, 楽浪受尺.

佗利平盜, 卑離拒妻,

汗濱大戦, 五侯零落,

雖不至死被創中矢. 沃沮北遷北鞨南下, 順奴之國太半折减.

 

소양적분{癸丑,BC68}

또 한발이 들었더니 황룡(黃龍)이 순노(順奴)를 도와서 비류(沸流)를 치고,

호구(滸口)땅의 행인(荇人)은 비류를 구원하며 황룡을 쳐서,

하상(河上) 여섯 나라들이 뒤엉켜 싸우게 되었고 그 피가 하늘과 땅을 적셨다.

 

이에 제께서 <화상禾相>에게 명하시어 행인을 치게 하셨더니,

천하가 크게 어지럽고 천재와 이변이 때때로 나타났다.

 

환나(桓那)와 졸본(卒本)의 군대들이 한빈(汗濱)으로 모여들고

개마(盖馬)와 숙신(肅愼)의 군대들이 양맥(梁貊)으로 모여드니

소와 가축들이 거진 사라지고 말과 나귀도 드물어졌다.

 

<호인好人><위화葦花>를 낳고, <>후가 곤위에 올랐다.

 

<호연제壺衍鞮>가 병으로 죽고 <허려권거虛閭權渠>를 버렸더니

봉황들이 벌레를 쪼고 충성의 빛이 광채를 감추었다.

 

<금와金蛙>가 곡식을 바쳐오고, 낙랑국이 금척을 받았다.

 

<타리佗利>가 도적을 평정하였고, 비리(卑離)는 처와 겨루었다.

 

한빈(汗濱)에서 큰 싸움이 일어났더니, 다섯 제후들의 위세가 시들하여졌다.

 

비록 죽지는 않았어도 창을 맞고 화살을 맞았다.

 

옥저(沃沮)가 북방으로 옮겨가고,

북갈(北鞨)이 남하하여 순노(順奴) 땅 태반이 줄었다.

 

 

 

乙卯,

春正, 芳生昷公.

風雪滿城漆夜悲鳴.

禾相臨終請立佗利, 帝讀靑詞封之為王

於戱, 佗利, 冒頓之耳, 寔我外仍,

身長七尺, 勇冠三軍, 擒賊蜈山, 誅荇魚息, 救其舅公, 名震七國, 立爾為王, 愼行遺制.”

乃用漠風顓渠之制, 賈達佗利復為夫妻, 山呼之聲動天掀地.

仙人挹白以為不可 二世作妃淫穢之習, 冒孫造國扶余必亡, 母女共夫豈曰潔政.”

帝以相志不聽其諫, 挹白掛冠入山不出.

李陵之女生子.

羊聖已崩, 三后未備, 帝以賈達陞階為后, 陵女胡括代之為妃.

廣公且鞮之孫, 廣公之母賈達得志容光倍佳.

单于聞之遣弟上夀, 罽緞千匹, 黃駝万頭, 不老春酒, 酌以金觥.

帝以潁主妻其賀使虗閭之弟呼延渠也.

,與佗利已有所私, 不肯如呼. 帝已許之,無可奈何.

以金千斤納於賈后, 乃擧華燭,

夜如何其. , 與三后, 受胡之禮, , 醉泥入歡.

佗利袖手, 怨入骨髓.

 

을묘{BC66}

춘정월, <양방羊芳><>공을 낳았다.

 

풍설(風雪)이 성()안에 가득한데 칠흑 같은 밤중에 슬픈 울음소리가 들렸다.

 

<화상禾相>이 창상(槍傷)으로 죽음을 앞두고서

<타리佗利>를 보위에 세워 주길 청하니,

모수제께서는 청사(靑詞)를 읽으시며 <타리>를 왕으로 봉하며 이르기를

오호라! <타리><묵돌冒頓>8세손이며 내 외가의 7세손으로,

신장은 7척에다가 용맹하기는 3군에서 뛰어나더니,

오산(蜈山)에서 적들을 사로잡고 행인(荇人)을 토벌하여 관리들을 주살하고

자신의 장인{禾相}을 구원하여 이름을 일곱 나라에 떨쳤도다.

너를 왕으로 세우니, 전해오는 제도를 삼가서 행할지어다.”라고 하였다.

 

사막의 풍습과 <전욱顓頊>임금의 제도를 따라

<가달賈達><타리佗利>를 새로이 부부로 삼으셨더니,

등극을 환호하는 만세소리가 하늘을 울리고 땅을 들썩이게 하였다.

 

이에 선인(仙人) <읍백挹邑>이 아니 된다면서

대를 이어 로 삼음은 도리에 어긋나는 추접스런 습속이며,

<묵돌冒頓{匈奴}>의 자손이 임금이 되면 부여는 필시 망할 것이며,

어미와 딸이 한 지아비를 두게 되면 이것이 어찌 품행 바른 정사이겠습니까?”

라 하였다.

 

제께서 <화상禾相>의 뜻이라며 말리는 것을 들어주지 않으셨더니,

<읍백>은 관모를 벗어 걸어놓고 산중으로 들어가서 나오지 않았다.

 

<이릉李陵>의 딸이 아들을 낳았다.

 

<양성羊聖>이 이미 죽어서 3가 아직 미비하였더니,

제께서 <가달賈達>을 승차시켜 후로 삼았다.

 

<이릉>의 딸 <호괄胡括><가달>을 대신하는 비로 삼았다.

 

<>공이 <저제후且鞮侯>의 외손인지라,

<>공의 어미 <가달賈達>은 뜻한 바를 얻더니만 얼굴빛이 갑절로 고와졌고,

선우는 이 소식을 듣더니만 동생을 보내서 상께서 만수무강하시길 빌었다.

 

망사비단 천 필과 누런 낙타 만 두를 바치고,

불노춘주(不老春酒)를 금으로 만든 뿔잔으로 따라 올렸다.

 

제께서 <화영禾潁>공주를 하례사절에게 처로 주니,

<허려권거虛閭權渠>의 동생 <호연거呼延渠>이다.

 

<화영>은 이미 <타리佗利>와 사귀고 있었던지라

<호연거呼延渠>에게 시집가는 것이 내키지는 않았으나,

제께서 이미 허락하셨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으며,

<호연거>는 황금 천근을 <가달>후에게 바치고 혼례를 치렀다.

 

그날 밤이 어떠하였냐면,

모수제께서는 3후들과 더불어 호()의 예물인 낙타거위곡물포도를 받고

취하여 윤기가 도니 즐거움에 빠졌고,

<타리佗利>는 수수방관하였으나 원한은 골수에 박혔다.

 

 

 

丙辰之夏, 秋英入節, 其夫旺仁護敀卑離,

路過叢山無人之谷, 抱木塹天盜出白昼.

仁恃其勇與妻騈行, 中路逢賊身長七尺, 面雖被覆槍如佗利,

為其所擊落于千仞, 負創而敀妻已掠去.

旺仁臨死謂其子弗佗利之為 汝報我仇.”

帝聞此報欲索秋英, 佗利不肯以為賊酋.

弗以其妻易母而敀未滿百日復敀佗利,

旺弗臥薪陰謀報仇, 佗利知之欲先討弗, 帝命止之怒而不聽.

荇女天姜, 禾相之妾, 佗利愛亦欲為妃.

帝為秋英以姜為妃. 姜乃放秋使之敀國.

 

병진{BC65}

여름, <추영秋英>이 궁에서 물러나와

그녀의 지아비 <왕인旺仁>이 호위하여서 비리(卑離)로 돌아갔다.

 

총산(叢山)의 사람들이 살지 않는 계곡을 지나니,

아름드리의 나무들이 하늘 높이 까마득하고 훤한 대낮에도 도적들이 나오는 곳이었다.

 

<왕인旺仁>이 자신의 용맹함을 믿고 처와 나란히 길을 가다가 도적을 만났더니,

키가 7척에다가 얼굴은 가렸어도 가진 창을 보니 <타리佗利> 같아 보였다.

 

그에게 습격을 받아 천 길 아래로 떨어졌다가 부상을 당한 채로 돌아오니

처는 이미 빼앗겨서 사라졌더라.

 

<왕인旺仁>이 죽음을 앞두고

자기 아들 <왕불旺弗>에게 <타리佗利>가 한 짓을 말하며

네가 내 원수를 갚아 다오.”라 하였고,

제께서도 이 보고를 들으시고 <추영>을 찾아내려 하였으나,

<타리>가 적의 괴수를 위하는 것이라면서 따르지 않았다.

 

<왕불旺弗><타리>에게 제 처를 주고 어미{秋英}와 바꾸어서 돌아갔으나,

100일이 아니 되어 <추영>이 다시금 <타리佗利>에게로 돌아갔다.

 

이에 <왕불旺弗>이 와신상담하며 원수 갚기를 밀모하였더니,

<타리佗利>가 이를 알고 먼저 <왕불>을 토벌하려 하였으며,

모수제께서 그만두라고 명하여도 노여워하며 듣지 않았다.

 

행인(荇人)의 딸 <천강天姜><화상禾相>의 첩이었었는데,

<타리佗利>가 애모하더니 역시 비로 삼고자 하였다.

 

제께서 <추영秋英>을 위하여 <천강>을 비로 삼으셨더니,

<천강>이 이에 <추영>을 풀어주어서 그녀로 하여금 귀국하게 하였다.

 

 

 

翌年, 討弗復取為妾, 帝不能禁威信大墜.

弗為佗子, 得其羊穀, 陰養士卒, 以待其時. 佗利, 驕傲, 侮辱天帝.

旺弗, 欲使佗利得罪於天下因其驕傲,而說之曰

當今天下, 唯陛下至尊, 不必受制於檀林也.

陛下定七國之乱而威望已高. 此正天與之時, 當行廢立之事而號令天下, 孰不敢應.”

佗利然之.

 

 

다음해{BC 64}

<타리><왕불>을 토벌하고 다시금 첩으로 취하였으나,

제께서는 이를 금할 수 없으니 위신이 크게 떨어졌다.

 

<왕불><타리>의 아들이 되더니 그의 양()들과 곡식을 얻어

사졸들을 몰래 양성하면서 원수 갚을 때를 기다렸으며,

<타리佗利>는 교만하고 거만해지더니만 천제를 업신여기고 욕보였다.

 

<왕불旺弗>, <타리佗利>가 천하에 죄를 짓고 교만방자해지기를 바라면서,

<타리>를 설득하여 말하기를

지금 천하에서는 폐하{佗利}만이 지존이시니

단림산(檀林山)의 다스림을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폐하께서 7국의 난리를 평정하니, 그 위세는 이미 높아 우러러보고 있습니다.

이번이 그러한 상황과 더불어서 세상 돌아감을 바르게 하실 때입니다.

당당하게 <단림>을 폐위하시고 천제위에 오르셔서 천하를 호령하십시오.

그 누가 감히 따르지 않겠습니까?”라 하니 <타리>도 그렇게 여겼다.

 

 

 

戊午, 初夏, 不而之民, 無物可食, 賣妻鬻子. 帝開倉畜,

而佗利不應使人促夫婁貢米曰

今帝無道, 民皆怨之. 大王若救飢民則民必敀. 吾當廢帝而立大王. 勿失此時, 載穀以来.”

夫婁, 不應, 密告于帝.

帝乃責佗利曰 , 以卿為仁孝忠勇, 而許之為王. 背恩忘德, 敢欲廢我. 天下肯之乎.

夫勤者萬事之本, 怠者百惡之源. , 始勤終怠. 欺之證人, 敗亡之兆.

如不改過, 天必厭之.”

佗利, 大怒, 先伐夫婁.

乃謂黃竜荇人曰 夫婁, 假托無舟而不貢, 使帝飢臥, 反作虗言離間帝, 罪可伐也.

今将三軍而東下, 卿等亦發兵而来聽我指揮.”

竜荇観望不動. 佗利, 獨自流去, 與金蛙會, 戦于奄利之口, 大敗而敀.

於是, 夫婁稱王, 荇人黃竜順奴等亦皆稱王而勧天帝曰

夫余千年匈奴滅之. 佗利, 匈奴之裔也, 請廢之.”

帝乃命佗利讓位於簠公以謝列侯.

佗利曰 天帝者, 吾家所立也, 不能制列侯, 而反敢侮我耶.”

乃使武士逐帝於野卑濕之地, 强逼<羊花>以為其妃, 分派諸将嚴其防備.

<賈達>諫曰 天帝者, 万民之天, 而列侯之父也. 大王, 雖强,不可如是.

天下蹶起則何以敵之.” <佗利>大怒, <><旺弗>.

 

무오{BC63}

초여름에 불이성(不而城)의 백성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처를 팔고 자식으로 바꾸어 먹기에,

모수제께서는 창고에 쌓인 곡식을 풀어서 나눠 주었으나,

<타리佗利>는 불응하고 사람을 시켜서 <해부루>에게 쌀 바치길 재촉하며 말하길

지금 천제가 무도하여 백성들 모두가 원망하고 있습니다.

대왕께서 만약 굶는 백성들을 구제하시면 민심은 필시 대왕께로 귀의할 것입니다.

{佗利}가 지금의 천제를 폐하고 대왕께서 보위에 오르시는 일을 맡을 것이오니,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곡식을 싣고 오십시오.”라 하였으나,

<해부루>는 이에 응하지 않고 몰래 천제께 고하였다.

 

천제께서 이에 <타리佗利>를 책망하며 이르시길

짐은 경이 어질고 효도하며 충성스럽고 용감하였기에

<화상>의 청을 허락하여 왕으로 삼았더니, 배은망덕하게 감히 나를 폐하려 하였다.

천하가 그리하자던가?

대저 근면함은 만사의 바탕이고 게으름은 모든 악의 근원이다.

경은 시작은 부지런했으나 끝은 게을렀다.

속여서 사람을 시험함은 패망할 조짐이며,

잘못을 뉘우치지 않으면 하늘이 싫어할 것이다.”

라 하였더니, <타리佗利>가 대노하여 <해부루>를 먼저 정벌하였다.

 

이에, <타리>가 황룡국(黃龍國)과 행인국(荇人國)에게 말하길

“<해부루>가 배가 없다는 거짓핑계로 곡물을 바치지 않아서

천제께서 굶으셔서 드러누우시게 하여 놓고서

오히려 거짓말로 천제와 왕들 사이를 이간하였으니, 그 죄는 토벌해야 할 것이오.

내가 지금 3군을 이끌고서 동쪽으로 내려가고 있으니

경들도 군병을 일으켜 따라와서 내 지휘를 따르시오.”라고 하였다.

 

황룡국(黃龍國)과 행인국(荇人國)이 관망하며 움직이지 않았더니,

<타리佗利>는 자기 혼자서 거침없이 달려가서

<금와金蛙>와 엄리수(奄利水) 어귀에서 맞붙어 싸우더니, 크게 패하여 돌아갔다.

 

이때, <해부루>가 왕을 칭하니,

행인(荇人)황룡(黃龍)순노(順奴)등들도 역시 모두 왕을 칭하고서

천제께 권하여 아뢰기를

부여(夫余) 천년을 흉노(匈奴)가 망가뜨리고 있습니다.

<타리佗利>는 흉노의 자손입니다. 청컨대 그를 폐하소서.”라 하였다.

 

천제께서 이에 <타리>에게 명하시어 <>공에게 넘겨주고

열후(列侯)들에게 사과하라고 하였더니,

<타리>천제 자리는 우리 집안에서 오르게 한 것인데,

열후들을 능히 제어하지는 못하면서 감히 나를 업신여기시오?”라고 하였다.

 

마침내 무사들을 시켜서 천제를 돼지새끼들이나 살 만한 비습한 땅으로 내쫓고,

<양화羊花>를 억지로 핍박하여 자신의 비로 삼아버렸으며,

여러 장수들을 나누어보내서 엄히 방비하게 하였다.

 

<가달賈達>이 말리면서

천제라는 자리는 만민들의 하늘이시고 열후들의 어버이이시거늘,

대왕이 비록 강하다 하나 이처럼 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오.

천하가 궐기할 것 같으면, 어떻게 그들에게 맞설 것이오?”라고 말했더니,

<타리佗利>가 대노하여 <가달賈達><왕불旺弗>에게 주어버렸다.

 

 

 

己未之春, 仙衆大擧聲討<佗利>.

, <羊山>, <羊福>. <夫婁><金蛙>.

<奧川>累敗不能獨起. 列侯雖怒先動者無,

<旺弗>乃與<羊福>密通曰 大王若起境上, 臣當直入誅賊.”

於是<羊福>乃與<順奴>先應,

 

기미{BC62}

봄에 선인(仙人)무리들이 대거 <타리佗利>를 성토하였다.

이때, <양산羊山>이 죽어 <양복羊福>이 보위에 오르고,

<해부루>가 죽어서 <금와金蛙>가 보위에 올랐으며,

<오천奧川>은 누차 패하여서 혼자서는 궐기할 수도 없었더니,

열후(列侯)들도 비록 노하긴 하였으나 먼저 움직이는 이가 없었다.

 

<왕불旺弗>이 이에 <양복>에게 밀통하여 말하길

대왕께서 국경 위쪽에서 궐기하시면,

신이 당장 곧바로 쳐들어가서 적{佗利}을 주살하겠습니다.”라 하였더니,

<양복{>이 순노(順奴)와 더불어 다른 이들보다 먼저 호응하였다.

 

 

 

 

時則庚申.

<佗利><黃竜>之起, <旺弗>討之. <旺弗>謂其衆曰

徃年,<佗利>殺吾父而淫吾母. 吾豈無恥者, 以待此時也.

<不而城>中金玉珍宝美人膏肉,皆汝等之物也. 奮身爭前.前者賞之, 後者斬之.”

, <佗利>勇将<好番>, <黃竜>兵會<梁貊之原>, 被酒曚曨輕易<羊福>,

<><大房>所殺, 一軍大敗.

<佗利>聞之, 欲自将而徃救之, 引兵出東門,

<旺弗>率輕騎八千直指<不而>殺氣衝天其勢難當, 恐其反而回軍.

<旺弗>業已入城, 殺其城守掠其府庫,

其鋒甚銳莫不一當百矣, 殺戮滿城哭聲動天.

<佗利>,方知見欺呀然自失, 兵不自進馬不欲趨, 雖欲力戦何可當之,

不勝暴怒飮酒数斗, 親自當前督軍甚酷.

,<檀林>已陷, 守将<皐葉>護衛<佗利>妻子而至, <佗利>大怒立斬<皐葉>,

<賈達>以手叩胷曰 汝不敬帝, 至於亡國. 吾何面目, 敀見<禾相>”

<佗利>益怒擊<賈達>斷臂, <賈達>罵不絶口而死,

<王弗>大軍継後而来圍之数匝.

<佗利>欲敀<匈奴>而悔殺<賈達>,

<天姜>請徃<荇人>, <佗利>吾殺魚息, <>豈容我哉.”

乃復飮酒数斗, 上馬而前, 落馬者二, 諸将護之開路而走.

妃嬪被虜手無寸鐵,諸将知不可免各自逃生, 矢下如雨, 且将奈何.

馬仆人困醉息奄奄, 遇一田夫避匿城下, 遊騎来獲縛至<>.

数罪屠之盬塩其肉, 厚葬<賈達>.

<><><>世襲珍宝盡為其有,

仙人<朱布>以為不可勧迎帝敀收拾人心, <秋英>亦勧迎帝還宮.

<羊福><奧川>, 聞帝還宮, 恐軍生變罷兵而敀.

<旺弗>驕傲自為天王以母為妻以后為妾, 帝不能禁戱欷長歎.

<槐里>發兵為子報仇, 伏兵叢林大破<槐里>.

来亦倉皇去亦倉皇, <>以為運復奪<檀宮>,

 

 

때는 경신년{BC61}년이다.

 

<타리佗利>가 황룡(黃龍)이 궐기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왕불>에게 명하여 황룡을 토벌하라고 하였더니,

<왕불>은 자신의 무리들에게 이르길

왕년에 <타리>가 내 아비를 죽이고 내 어미를 욕보였다.

내 어찌 치욕스럽지 않았겠나. 이런 때를 기다렸었음이다.

불이성(不而城) 안의 금옥진보미인과 기름진 고기는 모두 그대들의 것이니,

몸을 떨쳐서 싸우며 전진하라.

앞서는 자에겐 상을 주고 뒤처지는 자는 참할 것이다.”라 하였다.

 

이때, <타리佗利>의 용장 <호번好番>

황룡(黃龍)의 군대와 양맥(梁㹮)의 들판에서 마주쳤는데,

술에 취해서 몽롱하여 <양복羊福>을 우습게보았다가

<양복>의 장수 <대방大房>에게 죽고 일군이 대패하였다.

 

<타리佗利>가 이를 듣고 스스로 장수가 되어서

그들을 구원하려고 군병을 이끌고 동문 쪽으로 나아갔다가,

<왕불旺弗>이 경기(輕騎) 8천을 이끌고 불이성(不而城)으로 곧장 향하고 있으며

살기가 충천하여 그 기세를 그 누구도 감당하기 어렵다는 말을 듣더니만,

<왕불{旺弗}>이 반란하였음에 겁이 나서 회군하였다.

 

<왕불旺弗>이 이미 입성하여 성을 지키던 자들을 죽이고 관아와 창고들을 노략하였다.

 

칼끝이 심히 날카로워서 일당백이 아님이 없었고,

살육한 시신들이 성안에 가득하고 곡소리가 하늘을 진동하였다.

 

<타리佗利>는 바야흐로 속았음을 알고 아연자실 하였으며,

병사들도 스스로는 나아가지 않고 말들도 내달리려 하지 않았으니,

비록 힘써 싸우려 한다 한들 그 누가 감당할 수 있었으랴.

 

터지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여러 말의 술을 들이키고서

스스로 앞을 맡아서 군병들을 독려하니 심히 가혹하였다.

 

이때, 불이성(不而城)의 단림궁(檀林宮)도 이미 함락되어서,

지키던 장수 <고섭皐葉><타리佗利>의 처자식들을 호위하여 다다랐더니,

<타리>가 대노하여 <고섭>을 세워 둔 채로 목을 쳤다.

 

이에 <가달賈達>이 손으로 가슴을 치며

그대가 천제께 불경하다가 망국에 이르렀으니,

나는 무슨 면목으로 죽어서 <화상禾相>을 볼 수 있겠소!”라고 하였더니,

<타리佗利>는 더욱 화가 치밀어서 <가달賈達>을 칼로 후려쳐서 팔을 잘라버렸고,

<가달>은 꾸짖기를 멈추지 않으면서 죽어갔다.

 

<왕불旺弗>의 대군이 뒤를 이어 답지하여 <타리>를 여러 겹으로 포위하였다.

 

<타리>가 흉노(匈奴)로 돌아가고 싶어서 <가달賈達>을 죽인 것을 후회하였다.

 

<천강天姜>이 행인국(荇人國)으로 가자고 청하였더니,

<타리>가 이르길 하상전쟁에서 내가 행인의 관리들과 자식들을 죽였는데,

행인국이 어찌 나를 용납하겠소!”라 하였다.

 

다시금 여러 말의 술을 들이켜고서 말위에 올라서 나서다가 두 번이나 낙마하였더니,

여러 장수들이 에워싸고 길을 터서 도주하였다.

 

비빈들은 붙잡혔으나 손에는 조그만 쇠붙이도 없었고,

여러 장수들도 죽음을 면할 길이 없음을 알고 제각기 살아보려고 도망은 하나,

화살은 비 오듯이 쏟아졌으니, 장차는 어쩌겠단 말인가?

 

말들은 엎어지고 사람들은 피곤하였으며,

술에 취해서 숨쉬기조차 엄엄하던 터에, 한 농군을 만나서 성 아래로 피하여 숨었으나,

유기(遊騎)군사들이 쫓아와서 붙잡아 포박하여 <왕불旺弗>앞으로 데려갔다.

 

여러 가지 죄를 물어 찢어 죽여서 그 살점들을 소금으로 절여놓고

후하게 <가달賈達>을 장사하였다.

 

<화수禾穗><화악禾萼><천강天姜>과 여러 대를 전해오던 진귀한 보물들이

모조리 그들의 차지가 되었더니,

선인仙人 <주포朱布>가 아니 된다면서 모수제를 맞아들이고 인심 수습하길 권하였고,

<추영秋英> 또한 모수제를 맞아들여 환궁시키길 권하였다.

 

<양복羊福><오천奧川>은 모수제의 환궁소식을 듣더니만

군대로 인해 변고를 당할까 걱정되어 군병을 파하고 돌아갔다.

 

<왕불旺弗>은 교만하고 오만하여 스스로 천왕(天王)이 되어서

어미{秋英}를 처로 삼고 후들을 첩으로 삼았더니,

모수제께선 막지 못하심을 탄식하며 흐느끼시다가 길게 한숨을 지으셨다.

 

<괴리槐里>가 군병을 일으켜서 자식{佗利}의 원수를 갚고자 하니,

총림(叢林)에 복병하였다가 <괴리槐里>를 대파하였다.

 

오는 것 역시 창황하였고 가는 것 역시 창황하였더니,

<왕불旺弗>은 운수라 하면서 다시금 단궁(檀宮)을 탈취하였다.

 

 

 

辛酉孟春, 遷帝水上, <羊福>大怒先擧義師.

, <荇人><祖天>新立,

<>告曰 天帝者<北夫余>之尊, 昼無所事, 夜登玉京受玉皇之詔以開万民之運.

<>侮而幽之, <>之二也, 不可不伐.”

<祖天>, 然之, <>合勢.

於是, <順奴><桓那><靑河><梁貊><盖馬><鮮卑><肅愼>之兵来應.

<旺弗>, 見勢不利, 命帝勅罷列國之兵. 諸侯, 以為矯詔, 而不罷漸迫 不而.

<>, 見其急迫, 與其母妻, 欲走漠北, 欲害帝雪憤,

<秋英>抱帝而護之, 遂不得而去.

<旺弗>, 臨去, 放火焚城, 以為緩追之計.

<羊福>, 欲救火不得, 帝殿王宮總敀烏有, 官衙市皆為恢爐,

白骨成堆酸鼻催淚, 燕栖於林狗無主人, 天帝雖還無所可居,

<羊福>迎帝敀其<杜訥>.

<><><><>四國之兵分守<不而>, 小國罷敀不參于議.

<祖天>以不得自迎天帝不平而去,

<盖馬><鮮卑>欲以<不而>屬於其國而反目.

,<虗閭>,<握衍>立助<旺弗>之軍,

<羊福>尋卒<羊吉>代之,<><>相戦<黃竜>撤敀.

<旺弗>得軍来迫岺上, <盖馬>納之大破<鮮卑>.<旺弗>移都,更稱<卑离>.

<羊吉>不肖, 不能伐之, 輕燥好色, 不恤其民不孝于母, 帝累責之反與相隔.

<><>后皆被其汚,

<>后憤崩<>后恨歌 豈意<><>生此豚犬.”

<斗辰>慰帝請徃<靑河>,

 

신유{BC60}

춘 정월에 모수제를 물줄기 위쪽으로 내몰았더니,

<양복羊福>이 대노하여 먼저 의로운 군사를 일으켰다.

 

이때, 행인(荇人)<조천祖天>이 새로이 보위에 올랐다.

 

<양복>이 고하길

천제께서는 북부여의 지존이시며,

낮에는 하시는 일이 없으시지만 밤에는 옥경(玉京)에 오르시어

옥황(玉皇)의 조칙을 받으시고 이로써 만민의 운세를 열어주십니다.

<왕불旺弗>이 천제를 업신여기고 가두었으니

반역하기가 <타리佗利>의 버금이니 치지 않을 수 없겠소이다.”라 하였다.

 

<조천祖天> 또한 그리 여기고 <양복羊福>과 합세하였다.

 

순노(順奴)환나(桓那)청하(靑河)양맥(梁㹮)개마(盖馬)선비(鮮卑)숙신(肅愼)

군대들이 와서 호응하였다.

 

<왕불旺弗>은 세력을 보아서 불리하니

모수제께 명하여 조칙을 내려서 열국들의 군병을 파하려 하였으나,

제후들은 거짓조칙이라 여기어 군병을 파하지 않고

점점 불이성(不而城)으로 압박하니,

<왕불>은 그 긴박함을 알고 자신의 어미{秋英}와 처들을 데리고

북막(北漠)으로 도주하려 하였으며,

모수제를 해코지하여 분함을 풀어보려고도 하였지만,

<추영秋英>이 천제를 감싸 안아 지켰더니, 그냥 달아나 버렸다.

 

<왕불旺弗>이 떠날 즈음에 불을 질러 성을 불태웠더니,

이는 추격을 늦추려는 계책이었고,

<양복羊福>이 불을 꺼보려 하였으나 끌 수 없었더니,

모수제의 전각과 열왕(列王)들의 궁들 모두는 까마귀들의 차지가 되었고,

관아와 저자의 짐 보따리들은 모두 재가 되었으며,

백골들이 언덕을 이루었더니 콧등이 찡하여 눈물이 났으며,

제비들은 숲속에 깃들고 개들이 주인을 잃었으며,

천제께서도 비록 돌아가고자 하셨지만 거처하실 곳이 없었다.

 

<양복>이 천제를 모시고 자신의 두눌(杜訥)로 돌아갔다.

 

황룡(黃龍)행인(荇人)개마(盖馬)선비(鮮卑) 네 나라 군대들이

불이성(不而城)을 분담하여 지켰고,

작은 나라들은 군병을 파하여 돌아가서 의론에 불참하였다.

 

<조천祖天>이 자신이 천제를 모시지 못함을 불평하며 떠나가고,

개마(盖馬)와 선비(鮮卑)는 불이성(不而城)

자기나라 땅 안에 속하게 하려다가 반목하였다.

 

이때, <허려권거虗閭權渠>가 죽고, <악연구제握衍朐鞮>가 보위에 올라

<왕불旺弗>의 군대를 도왔다.

 

<양복羊福{>이 죽으니 <양길羊吉>이 대신하였다.

 

개마(盖馬)와 선비(鮮卑)가 서로 다투니 황룡(黃龍)은 철군하여 돌아갔다.

 

<왕불旺弗><악연구제>의 군대를 얻어서 북막에서 고개 위로 다가오,

개마(盖馬)가 이들을 받아들여서 선비(鮮卑)를 대파하였고,

<왕불旺弗>은 도읍을 옮기고서 비리(卑离)로 바꾸어서 칭하였다.

 

<양길羊吉>은 불초하여서 능히 이들을 치지 못하였으며,

경솔하고 깡마른 것이 호색하기나 하면서

제 백성들을 걱정하지 않고 어미에게도 불효하였기에,

제께서 이를 여러 차례 책망하셨더니 도리어 서로 사이가 멀어졌다.

 

<양방羊芳>후와 <양화羊花>후 모두 <왕불>에게 욕을 당하였었더니,

<양방>후는 분해하다가 죽고, <양화>후는 원통해 하며

어찌 <><>가 이런 개돼지를 낳았는가?”라고 하였다.

 

<옥두진屋斗辰>이 천제를 위로하며 청하(靑河)땅으로 가시길 청하였다.

 

 

 

 

壬戌之秋单舸東下.

西風蕭瑟牧馬悲鳴, 沿江千里芦花雪白, 靑山不老人生如夢,

<靑河>雖小山明水麗, 故國之原物古人淳,

內有<好人><柳花>之腆膄, 外有<斗辰><奧川>之忠孝, 捨此何去.

築室於<熊心>之下, 逍遙於<鴨淥>之濱, <檀宮>雖失銅臺可劃,

后妃已盡孤花可爱, 鴻鴈在水麋鹿過山, 雖非吾有亦可以友, 漁樵問答耕雲之,

<伊尹>待時之,<呂尙>富貴榮華宿昔之夢, 淸雅高尙今日之幸也.

安於小成鷦鷯之樂也, 贅於槐國玄駒之夢也.

<柳花>宜水心廣體胖,<萱花>宜陽君子可佩,<妊姒>之德<媧母>之美.

雲重雨深花開花落, 五竜擁衛鵠仙羽翼, 猉獜之背鳳凰之鞍, 雷雨大作龍交泽畔.

天生聖人必有異蹟, 龍交而孕<黃帝>之相也,

日逐而照<偃皇>之兆也, 棄而不踐<后稷>之傳, 卵化為男<小昊>之記,

百獸護衛虎乳而去, 糅皇之事也.

<匈奴><冒頓><><劉邦>之類亦稱龍交之說, <芻牟>之聖哉.

天旣授<芻牟>之聖, 胎自知大事之已, 畢覺宇宙之無味, 惡煙霞之痼.

人駕二竜於<優渤>, 放猉獜於中天, 玉鞭飄落空汀, 彩雲遙憑東海.

<九疑>渺茫<>竹斑血, <蒼海>万里望夫爲石,死者已矣生者奈何.

<金蛙>丧妻欲迎<柳花>, 聖子在腹不肯嫁之.

<好人>左勧<斗辰>右請, 父母之意兄弟之喜, 雖有松栢之志, 未免桃李之顔,

乃設花燭於<優渤>, 爰築新宮於<柵城>.

雀入燕室浮雲蔽日,

 

 

 

임술{BC59}

가을에 외로운 배 한 척이 동쪽으로 내려왔다.

 

가을바람이 소슬하여 목마(牧馬)가 슬피 울고,

천 리 강변엔 부들 꽃 백설 같아도

청산(靑山)은 늙지 않았더니 인생은 꿈만 같았어라.

 

청하 땅은 비록 조그마하나 산수는 곱고 아름다우며,

고국원(故國原) 땅 사물들은 옛스럽고 사람들은 순박하며,

안으로는 아름답고 늘씬한 <호인好人><유화柳花>가 있고

밖으로는 <두진斗辰><오천奧川>이 있어 충성하고 효도하니,

이들을 저버리고 어디로 가겠는가?

 

웅심산(熊心山) 아래에다 집을 짓고 압록수(鴨淥水) 변을 소요하니,

단궁(檀宮)은 비록 동대(銅䑓)는 잃었으나 계획을 세울 수는 있었다.

 

后妃들은 이미 떠나갔어도 외로이 핀 꽃들이 사랑스러웠고,

기러기들이 물에 노닐고 사슴들이 산을 넘나들어서

비록 내 손안엔 없어도 또한 벗 할 만하였으며,

어부와 초부의 문답은 구름을 일구었다.

 

<이윤伊尹>이 때를 기다리니,

<여상呂尙>의 부귀영화는 지난날의 꿈이지만,

청아하고 고상함은 오늘의 행복이라.

 

작은 이룸에도 즐거워함은 뱁새의 풍류이고

회화나무 숲속에서 번거로운 것은 개미들의 꿈이었다.

 

<유화柳花>는 물과 화목하여서 마음이 넓어 몸에 살이 오르고

<훤화萱花>는 햇빛과 화목하여서 군자가 함께 있을 만하니

<임사妊姒>의 덕과 <여왜女媧>어미의 아름다움이었다.

 

구름이 두텁고 비가 넉넉하였더니 꽃이 피고 꽃이 지고,

다섯 용들이 옹위하고 학선(鶴仙)들이 날개를 펼쳐

기린 잔등이에 봉황이 앉았더니

뇌우(雷雨)가 크게 일고 용들이 못 가에서 교합하였더라.

 

하늘이 성인(聖人)을 내실 땐 반드시 기이한 일들이 있었다는데,

용들이 교합하였으니 황제(黃帝)를 잉태하였던 모습이다.

 

햇빛이 따라다니며 비추었으니 서언황(徐偃皇)의 징조였으며,

내다버렸어도 밟지 않았으니 후직(后稷)의 전승이요,

알이 변해서 사내로 되었으니 소호(小昊)의 기록이며,

백수(百獸)가 호위하고 범이 젖을 주고 갔으니,

갖가지들이 황제가 될 일이로다.

 

흉노(匈奴)<묵돌冒頓>과 패읍(沛邑)아이 <유방劉邦>같은 무리들도

역시 용과 교합했단 얘기들이 있었는데,

하물며 <추모芻牟> 같은 성인에 있어서야...!

 

하늘이 이미 <추모>에게 성스러움을 주니,

뱃속의 아이가 스스로 큰일 할 몸임을 알아서 우주의 무미함을 깨닫고

아름다운 산수와 풍광을 사랑함이 깊은 병과 같았다.

 

사람들이 두 용을 우발수(優渤水)에 데려다놓고 기린(猉獜)을 중천(中天)으로 내치니,

옥 채찍은 회오리바람에 휑한 물가에 떨어지고

색동구름은 동해(東海)에 아득히 드리웠다.

 

기린을 중천으로 내쳤다는 것은 모수제의 죽음을 말한다.

 

* 모수제(BC118-BC59)의 자녀

 

모수제(양성) - 황凰(BC100- ), 순노 <오천奧川>의 妃

                     란鸞(BC98-BC19), <화뢰禾賴>의 처, <양복羊福>에게 재

                     금禽(BC96- ), 胡왕 虛閭權渠의 妃

                     존存(BC94-  )

                     태駾(BC92-  )

                     총騘(BC88-  )

                     화華(BC84-  )

                     덕德(BC80-  )

                     골骨(BC76-  )

모수제(옥인) - 옥춘屋春(BC96-BC26)

                     신蜃(BC85-  )

                     칠柒(BC75- )

모수제(가달) - 화영禾潁(BC80- )

모수제(우희) - 丹(BC77-BC33)

모수제(환숙) - 柘(BC76- )

                     환백桓栢(BC59- ) 

모수제(양방) - 신晨(BC72-  )

                     황晃(BC69-  )

                     온溫(BC66-  )

                     성星(BC63-  )

모수제(양화) - 빈화蘋花(BC65-BC22)

                     삼화蔘花

모수제(유화) - 추모芻牟(BC58-BC19)

 

 

구의산(九疑山) 아득히 먼 곳의 님을 그리다가 상강(湘江) 대나무에 피눈물을 흘렸고,

창해(蒼海) 만 리 먼 곳에서 죽은 지아비를 기다리다 돌이 되었다던데,

죽은 이들이 그리하였으니 산 이들이야 어떠하였을꼬?

 

<금와金蛙>가 상처(喪妻)하여 <유화柳花>를 맞아들이려하니,

귀한 아들이 복중(腹中)에 있어 <금와>와 혼인하길 꺼려하였다.

 

<호인好人><두진斗辰>이 좌우에서 권하며 청하길

부모의 뜻이고 형제들의 기쁨이라 하니,

비록 뜻은 송백(松柏) 같았어도 얼굴이 붉어짐을 어쩌지 못하였다.

 

이에 우발수(優渤水)에서 화촉을 밝히고 책성(柵城)에 새로이 궁전을 지었다.

 

참새가 제비집에 들어가고 떠가던 구름이 햇빛을 가리었다.

 

 

 

昭陽大淵

暮春之月, 四月五日, 鳳凰来鳴, 天香滿地天樂下空, <芻牟>誕生.

氣骨英異, <>王大喜, 取之為子, 名以<象觧>, 如日之義.

<><斗辰>封於<曷思>食邑七千兼相<東海>,

<靑河>之地委於<奧犍>,<東海>之權敀於<斗辰>.

<稽侯>中興,<握衍>自殺, 五单乱<>,

<旺弗>悔過迎立<觧存>稱為<西帝>,

<斗辰><>立為<東帝>.

<烏文><馬加>,<都彦><羊加>,<奧陵><牛加>,<加菽><鹿加>.

東伐<于山>,<>人来服.西攻<白熊>,<沃沮>稱臣,<黃竜>来賓,<楽浪>為子.

 

소양대연(昭陽大淵){계해 BC58}

늦은 봄 45일에 봉황이 와서 울고 천향(天香)이 땅에 가득하며

천락(天樂)이 하늘에서 내려오니 <추모>가 태어났다.

 

기골이 유별나게 특출하여 <금와>왕이 크게 기뻐하며 취하여 아들을 삼고

이름을 <상해象觧>라 지으니, ()와 같다는 뜻이다.

 

<금와金蛙>왕이 <두진斗辰>에게 갈사(曷思)국을 봉하고

식읍 7천과 함께 동해(東海)의 재상(宰相) 자리를 겸하게 하였으며,

청하(靑河)땅은 <오건奧犍>에게 맡기니,

동해(東海)땅을 다스림은 <두진斗辰>의 차지가 되었다.

 

<계후稽侯>{東匈奴선우 호한야呼韓邪}>가 중흥(中興)하고,

<악연구제握衍朐鞮>{西匈奴선우}가 자살하고 다섯 선우들이 호()땅에 난립하니,

<왕불旺弗>이 잘못을 뉘우치고

<해존觧存>을 맞아들여 보위에 세우고 서제(西帝)를 칭하였다.

 

 

이에 <두진><금와金蛙>에게 권하여서 동제(東帝)가 되게 하였더니

<오문烏文>은 마가(馬加), <도언都彦>은 양가(羊加),

<오릉奧陵>은 우가(牛加), <가숙加菽>은 록가(鹿加)로 되었다.

 

동부여가 동쪽으로 우산(于山)을 쳤더니 왜()인들이 찾아와서 복속하였고,

서쪽으로 백웅(白熊)을 쳤더니 옥저(沃沮)가 신하를 칭하였으며

황룡(黃龍)이 래빈(來賓)하고 낙랑(樂浪)은 자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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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띨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