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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8.14 추모대제기(4)

 

 

東明八年 辛卯,

春正月,丁亥,宴群臣於朝陽殿,

上謂<烏伊>

北沃沮 靺鞨 越河入寇,河上之民歲受其侵矣.宜将兵掃窟,使民無苦.”

<烏伊>

黑水之鞨連亘数千里,以漁獵寇盜為生,本無定居,掃窟甚難.

一時散之終復来寇如蝇如蚊.”

上曰屠其王庭,而移民屯戌沿界,立亭以報其霣.”

上如<高娄>太子宮,以東宮大夫<桂媛>為夫人,賜翟服年穀.

 

 

 

 

동명8년 신묘{BC30},

춘정월 정해일에 군신들에게 조양전(朝陽殿)에서 연회를 열었다.

 

조양전(朝陽殿)은 동도(東都)인 동명신궁에 있는 궁전이다.

 

상께서 <오이>에게 말씀하시어 이르시길

북옥저 땅의 말갈들이 하()를 건너 들어와서 노략질하여,

()상의 백성들이 해마다 그들의 침략을 받고 있소이다.

마땅히 병력을 이끌고 가서 소굴들을 쓸어내서

백성들이 고통스럽지 않도록 하여야하겠소.”라 하셨다.

 

<오이>가 아뢰길

흑수(黑水) 땅 말갈들은 수 천리에 널려있으며,

물고기를 잡거나 사냥하고 약탈하거나 훔치기를 생업으로 하고 있습니다.

본시 눌러앉아 살지를 않아서 잠시 흩어졌다가 종당엔 돌아와서

노략하는 것이 파리 떼와 같고 모기떼와도 같습니다.”라 하였다.

 

이에 상께서 이르시길

그들의 왕정(王庭)을 도륙하고,

백성들을 옮겨놓고서 경계를 연하여서 둔을 쳐서 지키게 하고,

초소를 세워서 그들이 몰려오면 알리게 하시오.”라 하였다.

 

상께서 <고루高婁>태자의 궁으로 가서

동궁대부(東宮大夫)<계원桂媛>을 부인(夫人)으로 삼고

적복(翟服)과 년곡(年穀)을 하사하였다.

 

 

 

二月,<>天妃生<>公主.

<漢素><漢鳳><河濱>太守 <鄭共><鄭誾>為荇南太守,

<桂長>為馬山太守,<桓克>為平山太守,<于蜆>為黃山太守,<尙弼>為泥河太守,

<再思><克禮>為豊城太守,<武骨><仲室玩>為毛屯太守,

<黙居><穆淸>為淹淲太守,<乙昌>為牛壤太守,秩六品.

 

 

 

2, <>천비가 <>공주를 낳았다.

<한소漢素>의 아들 <한봉漢鳳>을 하빈(河濱)태수로,

<정공鄭共>의 아들 <정은鄭誾>을 행남(荇南)태수로,

<계장桂長>을 마산(馬山)태수로,

<환극桓克>을 평산(平山)태수로,

<우현于蜆>을 황산(黃山)태수로,

<상필尙弼>을 니하(泥河)태수로,

<재사再思>의 아들 <극례克禮>를 풍성(豊城)태수로,

<무골武骨>의 아들 <중실완仲室玩>을 모둔(毛屯)태수로,

<묵거黙居>의 아들 <목청穆淸>을 엄표(淹淲)태수로,

<을창乙昌>을 우양(牛壤)태수로 삼았다.

질품(秩品)6품이었다.

 

 

 

三月,<>太后生皇子<乙豆容>.

<>皇后以養蚕絲織帛以為帝衣,國蚕自此始,賜蚕人織人等羊豕有差.

<>太子加元服于鳳鳴殿,<烏伊><大禾>氏為東宮大夫.

 

3, <>태후가 황자 <을두용乙豆容>을 낳았다.

 

<>황후가 누에를 치고 견사(絹絲)로 비단을 직조하여 제의 옷을 만들었더니.

나라의 잠업이 이로써 비롯되었다.

 

잠인(蠶人)과 직인(織人) 등에게 양과 돼지를 차등을 두어서 하사하였다.

 

<>태자에게 봉명전(鳳鳴殿)에서 원복(元服)을 입히고

<오이>의 처 <대화大禾>씨를 동궁대부로 삼았다.

 

봉명전(鳳鳴殿)은 졸본의 비류곡 서성산에 있는 궁전이다.

 

이때 <>태자 13세이다.

 

 

 

四月,上與<桂孟子>如獸林溫宮.

肅愼王<乾朕>,遣使来献金人以謝前過,請與相婚.辞以無女.

<祖駿><祖雲>相爭,<駿>殺其<>而取其財,

<>氏請誅<祖駿>,命下質陽獄.不待評而誅,以其財沒為<霓姬>宮所屬.

 

4, 상께서 <계맹자>와 더불어 수림(獸林) 온궁(溫宮)으로 갔다.

 

숙신 왕 <건짐乾朕>이 사신을 보내서 금인상(金人像)과 보촉을 바치면서

이전의 과오를 사죄하고 서로 간에 혼인하길 청하였더니,

딸이 없다고 하며 물리쳤다.

 

<조준祖駿><조운祖雲>과 서로 다투더니

<조준><조운>을 죽이고 그의 재물을 취하였다.

 

이에 <>씨가 <조준>을 주살하여 주길 청하기에,

명을 내려 질양(質陽)의 옥에 가두고 평자(評者)의 심리를 거치지 않고 주살하엿으며,

그의 재물을 몰수하여 <예희霓姬>에 속하게 하였다.

 

 

 

五月,鍊兵三万於河上,

荇人黃龍勾茶卒本桓那沸流順奴沃沮樂浪人皆来犒軍.以壯其観,卑离梁貊聞之膽寒.

上不見<>后騎馬之狀而痛哭,諸臣慰之不得.

皀衣<庚七>奏曰天子不哭于夫人,臣恐隣國笑之.”上怒欲斬之,

<桓柏>諫曰恐傷后靈,請止之.”上乃觧賜<>金百両.

梁貊囯沙頭部酋長<許信>五里部<陌克>加南部酋長<烏陳>月伊部酋長<金忍>等入朝,

皆賜妻一人馬二匹練絹十匹厚待而送之.

黃龍囯<宝得>以病呻吟年餘不食而死.其子皆幼.上命<于仁>代之妻以<桓英>.

 

 

 

5, ()상에서 3만병을 훈련하니,

행인구다졸본환나비류순노옥저말갈낙랑 사람들 모두가 찾아와서

군사들을 먹였다.

 

그 모습이 장관(壯觀)이었고, 비리(卑离)와 양맥(梁貊)은 이를 듣고 간담이 서늘하였다.

 

상께서 <>후가 말을 타는 모습을 볼 수 없어 통곡하니

모든 신하들이 위로할 뿐 어쩌지 못하였다.

 

조의(皁衣)<경칠庚七>이 상주하기를

천자(天子)는 부인(夫人)의 일로 울지 않습니다.

신은 인접한 나라들이 비웃을까 두렵습니다.”라고 하였더니

상께서 진노하여 그를 베려 하였다.

 

<환백桓柏(BC59- )>이 간하길

()의 영령을 해할까 두렵습니다. 청하오니, 그만하십시오.”라고 하였다.

 

상께서 노여움을 푸시고 <경칠>에게 금 백 냥을 하사하였다.

 

양맥국(梁貊國) 사두부(沙頭部)추장 <허신許信>이 오리부(五里部)추장 <맥극陌克>

남부(南部) 추장 <오진烏陳> 및 월이부(月伊部)<금인金忍> 등과 가세하여

입조하였다.

 

모두에게 처() 한 사람과 말 두 필 및 명주 열 필씩을 하사하고 후대하여 돌려보냈다.

 

황룡국의 <보득宝得(BC58-BC30)>이 병으로 신음하길 1년여에 먹질 못하고 죽었다.

 

그의 아들이 어린지라,

상께서 <우인于仁(BC61-BC19)>에게 명하여 황룡왕을 대신하게 하고

<환영桓英(BC45- )>을 처로 삼아주었다.

 

 

양길(양화) - 보득宝得(BC58-BC30)

양문(숙릉) - 우인于仁(BC61-BC19)

(계맹자) - 환영桓英(BC45- )

 

 

 

 

七月,,<桂孟子>如汗南,泛舟於湖上

而宴<><><><><><>之族,

上醉落湖中,<孟子>抱拯之以其处為抱拯,

岩居人歌之曰

瓠江月落玉竜飛, 桂子初香両頰緋, 抱落春風死不敀.

母牛赴急疾如翬, 滿湖風靜下船幃, 無限春風玉女肥.”

,上愛<于仁><桓英>,相戱落水故,其歌如是.

道是有可還無可,誰知天子固非非.盖其絯花詞也.

 

 

7, 상께서 <계맹자桂孟子(BC66-BC23)>와 함께 한남(汗南)으로 가서

호수에 배를 띄우고

<><><><><><>씨족들에게 연회를 베풀었다.

 

상께서 취하여 호수 물에 빠졌더니, <계맹자>가 품에 안아서 건져 올리니

그 곳을 포증(抱拯)이라 하였다.

 

암자에 거처하던 이가 노래하길

 

호강(瓠江)에 달이 떨어지니

옥룡(玉龍)이 날아드네.

 

계수나무 첫 향기에 양 볼이 붉어지더니,

품에 안고 춘풍으로 떨어져서 잠잠하여 돌아오지 않네.

 

어미 소가 달려와 살피기 나르듯 빨랐더니,

호수에 가득했던 바람은 조용해지고 배의 휘장 내려앉네.

 

가없는 춘풍에 옥녀(玉女)가 넉넉하구나.

 

 

이때 상께서 <우인>의 처 <환영>을 어여삐 여기시어 서로를 희락하다가 물에 빠졌고,

그랬던 까닭에 그를 노래함이 이러하였다.

 

도리로는 분명 되돌릴 수 있었음에도 그리하지 않았던 것은,

누구도 천자임을 알고서 마음 편히 시시비비를 할 수 없었고

개략 그저 해화사(絯花詞)를 불렀을 뿐이었다.

 

 

 

八月,<孟子>生皇子<>,<仇都><乙斾>氏為乳母.

卑离王<>,遣其子<素奴>来献美女五人明珠十顆,請會於東池.

紫蒙王<>公亦遣子<西川>来献象牙白璧宝帳五事.

<>公請<>公及胡王<莫車>,<莫車>亦遣使来献不老酒請會東池,許之.

,長安大雨四十日,大水将至,百姓奔走自乱,

<王鳳>亦至,水至而請以船避之.<王商>,以為水不至,鎭其妄動.

水果不至,<>以是賢<>,<>疾之為隙.

丙辰,上與<胡括><素括>如卑离東池,<><><莫車>于東池.

<>公妃<><>公妃<慕容><莫車><王昭君><素括>妃相見池上,

<昭君>雖美不如<><><><>,

上謂<胡括>誰謂<>家女美於天下乎.天下之美盡於東矣.”

<昭君>敀而生女<須卜>居次皃類,<昭君>之慕帝深矣.

<漱帝><東池>而灌民田,後天人無別帝與<莫車>,相會後,<>单益近云.

<昭君>之生女也,求人蔘熊蹯松子胡桃紫貝于上,

上命<吉士>求而送之.

<涉臣>遣使来献土物.

<桂孟子>為苐三皇后,<>后舊宮稱曰孟后宮.

<>妃陞為小后,稱禾后宮.

上春秋方盛,女謁日增,<><><><><><><><>之外

又有<桓英><桂媛><大房暖>,

勧稼閱武之餘或微行民家漢館徃徃有私幸,貴賤交流山泽通氣,<>皇輒諫之,而不聽.

馬山人<牛篤>来献黃金四百斤.

問其何以得之曰

家東有大岩多金,父子七人,破其岩碎得之,藏于山中,

而人多欲奪之,末子<小得>大金,非小民之財也.持則取禍,不如献于聖上,

以補治民征伐之用.’

諸子皆曰’.於是,臣来献者也.”

上曰

汝父子合力而和者孝也.為國献金者忠也.知大財不可有者智也.有此三德,可不賞乎.”

<>為馬山小守,<尾金>為﨎江小守,<楝桶>為淌水小守.

,<牛篤>為乳嫗<鄒加>之子,賜姓<>,

<小得>為採金使者,命採拣國中之金銀銅鐵.<尾金>為採鹽使者主鹽山鹽湖

 

 

 

8, <계맹자>가 황자 <>공을 낳았다.

 

<구도仇都>의 처 <을패乙旆>씨로 유모를 삼았다.

 

비리(卑离)<>공이 자신의 아들 <소노素奴>를 보내와서

미녀 다섯과 맑은 구슬 10개를 바치면서 동지(東池)에서 만나길 청하였다.

 

자몽(紫蒙)<>공 또한 아들 <서천西川(BC63- )>을 보내와서

상아와 흰 옥판 및 보배로운 장막 다섯을 바쳤다.

 

<>공이 <>공과 호() <막거莫車>까지 청하였고,

<막거> 또한 사신을 보내와서 불로주를 바치며

동지에서 만나길 청하여 이를 허락하였다.

 

이때 장안(長安)에서는 큰 비가 40일을 내렸더니,

큰물이 곧 닿을 참이어서 백성들도 분주하여 저절로 어지러웠고,

<왕봉王鳳> 또한 이르러서 물이 닿을 것이니 배를 타고 피하자고 청하였으나,

<왕상王商>이 물이 닿지 않을 것이라면서 그의 망동을 막았다.

 

과연 물이 닿지 않았더니,

<유오流驁><왕상>을 현명하다 여겼고, <왕봉>은 이것이 흠이 될까 괴로워하였다.

 

병진일, 상께서 <호괄胡括><소괄小括>과 더불어 비리(卑离) 땅 동지(東池)로 가서

<>공과 <>공 및 <막거莫車>를 동지(東池)에서 만났다.

 

모수제(가달) - (BC67- ) : 비리왕

? (가달) - : 자몽왕, 저제후의 손자

 

 

<>공비 <>씨와 <>공비 <모용慕容>씨 및

<막거莫車><왕소군王昭君><소괄>비가 <동지>의 물가에서 서로 만나게 되었다.

 

<왕소군>이 비록 예쁘긴 하나 <><><><>와 같지는 못하였더니,

상께서 <호괄胡括(BC81- )>에게 이르시길

누가 한()가의 여인들을 천하의 미색이라 한 것이오?

천하의 미색들은 모두 동쪽 땅에 있었소이다.”라 하였다.

 

<왕소군>이 혼인하여 딸 <수복須卜>을 낳고서도

둘째 용모부류에 있었던 것은 대략 <소군>이 제()를 사모함이 깊었기 때문이었다.

 

<모수제慕漱帝>께서 동지(東池)를 열어 백성들의 밭에 물을 대어주었는데도,

후세 사람들은 <모수제><막거>를 구별하지 못하였었으나,

서로를 만난 이후에는 <추모>선우가 더욱 닮았다고 하였다.

 

<왕소군>이 딸을 낳더니

인삼 및 곰발바닥과 잣 및 호두와 자패(紫貝)를 상께 구해주길 부탁하였고,

상께서는 <길사吉士>에게 명하여 구해서 보내주게 하였다.

 

<섭신涉臣(BC50?- ){鮮卑王}>이 사신을 보내와서 토산물을 바쳤다.

 

<계맹자>를 제3황후로 삼고 <>후의 옛 궁전을 하사하여 맹후궁(孟后宮)이라 불렀다.

 

<>비를 승차시켜 소후(小后)로 삼고 화후궁(禾后宮)이라 불렀다.

 

상께서 춘추(春秋(가 방성(方盛)하여서 배알하는 여인이 나날이 늘어나더니,

<><><><><><><><> 이외에

<환영桓英><계원桂媛><대방난大房暖>이 있었다.

 

농사를 권장하거나 무예를 검열하는 틈새에도

혹간 민가와 한관(漢館)으로 미행하고 왕왕 사사로이 행차하여

귀한 이와 천한 이들이 뒤섞이고 산골 및 물가 사람들과도 기운을 통하더니,

<>후가 번번이 말려도 듣지 않았다.

 

마산(馬山) 사람 <우독牛篤>이 찾아와 황금 400근을 바쳤다.

 

어찌하여 생긴 것이냐를 물으시니 아뢰길

집 동쪽 큰 바위에 금이 많아서 아비와 아들 일곱이 그 바위를 부수고 캐내서

산속에 숨겼더니 다른 사람들이 탈취하려 함이 잦았습니다.

이에, 막내아들 <소득小得>

큰 금은 하찮은 백성의 재물이 아니어서 가지고 있으면 화를 당할 것이니,

성상께 바쳐서 백성을 다스리고 정벌하는 일에 쓰시게 하는 것만 못하겠소.'

라 하였습니다.

이에 모든 아들들이 그리 하는 것이 낫겠다고 하였고,

그래서 신이 찾아와서 바치게 된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상께서 이르시길

그대 아비와 아들들이 힘을 모아 화합한 것이야말로 효이며,

나라를 위해 금을 바친 것은 충이고,

큰 재물을 가져서는 아니 됨을 안 것은 지혜인 것이오.

이런 세 가지의 덕이 있는데, 상을 아니 줄 수 있겠소!”라 하고는,

명을 내리셔서 <우독牛篤>을 마산소수(馬山小守),

<미금尾金>을 쌍강소수(雙江小守),

<연통楝桶>을 탕수소수(淌水小守)로 삼았다.

 

후에 <우독牛篤>이 젖 할미 <추가鄒加>의 아들이었더니

<>씨란 성을 하사하였으며,

<소득小得>을 채금사자(採金使者)로 삼고

명을 내려 나라 안의 금철을 캐내서 가리게 하였으며,

<미금尾金>을 채염사자(採鹽使者)로 삼아서

염산(鹽山)과 염호(鹽湖)를 주관하게 하였다.

 

 

 

 

九月,上與三天后如神隧,行年豊祭,宴父老於東郊,

仍幸真珠陵鳴咽不能起.<>皇后曰

“<>后固賢於妾,身遠矣,不圖.陛下如是其思念,妾若死則陛下不應如是.”

上曰.”

<>后怒曰何以薄妾乎.”

上曰汝之此言足以自薄也.豈我薄汝哉.汝為万民之母,當以大量包容,

何以區區之事,露其狹量邪.”

<>后知其失言而謝曰妾果誤矣.夫皇恕之.”

上命主農大加<乙耕>薦國中力農有藝者三十七人為司農秩九品,

主民大加<再思>薦孝子順孫十二人為其村長亦秩九品,

大畜大加<馬黎>薦善牧者為司畜秩八品.

上夜夢<>,后曰春冝夏冝丹花,秋冝蓮花,冬冝黃花.”

上覺而不知黃花,草人問之,

是草生於岩谷之上,霜雪不能侵故,高士愛之.”

上曰然則可速取来裁于宮中.”

<陜父>諫曰陛下以儉德自守,茅茨土階三等,何以草藝為事.”

上曰,以此花,<>后之靈.汝勿多言.”

於是,黃山人<石縮>採進黃花于孟后宮,

上愛其香曰真吾妻之香也.”

<漢素>為主文大加,選聰俊子弟為郞徒,

使<馬黎><吉士><都喜><元理><秦章><王忠>

敎以六禮之學,以備選用之道.是庠序之始.

上謂<摩离>

民者囯之本也,無民無囯.囯者王之本,無囯無王.,王者之治囯也,

以善養其民為本.,為天子,未嘗不慮于是,而征伐不息,

壯丁多立於矢石之下,老弱疾苦於畎畒之間.

,甚不安兵士須要精銳,而不在於多.

自今以後,減軍之額而敀其鄕里,以安百姓之心.”

,上微幸東郊,有一老人罵曰

“<朱蒙>,,稱為天帝之子而為天子,古之汲水者為大夫,

古之屠豕者為士,古之仙人之子為兵卒.,豈天帝之子哉.天帝何嘗如是為政哉.”

上曰雖古之汲水者有功則可為大夫,屠豕者有技可為士.

仙人之子壯丁則可以為卒而扶國,卒者兵之本而兵者國之力也.

仙人自稱國之桂石,其子為國力不亦可乎.

,老人之子,其赴戦,而使老人無依,則我之過也.”

乃命還老人子從軍者,命勿選老人子為軍,而仍有是命.

 

 

 

9, 상께서 세 천후(天后)와 더불어 신수(神隧)로 가셔서 풍년이 들었음을 제사하고,

동쪽 교외에서 부로들에게 연회를 베풀었다.

 

이어서 진주릉(眞珠陵)으로 거둥하여 울부짖다가 목이 메어 일어서지 못하였다.

 

<>황후가

“<>후가 분명코 첩보다 현명하였지만 몸이 멀어졌으니, 그만하세요.

폐하께서는 그이를 이처럼 그리워하시지만,

첩이 죽으면 폐하께서는 이처럼 하시지는 않으실 것입니다.”라 하였다.

 

상께서 그럴 것이오.”라 하니,

 

<>후가 발끈하여 어찌 첩을 박대하십니까?”라 하자,

 

상께서 이르시길

그대의 이 언행은 박대를 자초하기에 족하오이다.

어찌 내가 그대를 박대한단 말이오!

그대는 만백성의 어미이시니, 마땅히 큰 도량으로 포용해야 하시거늘,

어찌 매사에 자잘하고 용렬하게 속 좁음을 드러내시오!”라 하였다.

 

<>후는 실언하였음을 깨닫고서 사과하여 아뢰길

첩이 정말 잘못하였습니다. 부황(夫皇), 용서해주세요.”라고 하였다.

 

상께서 명을 내리시어 주농대가 <을경>으로 하여금

부지런히 농사를 하며 재주 있는 이들을 천거케 하여

37인을 질9품 사농(司農)으로 삼고,

주민대가 <재사>로 하여금 효자순손(孝子順孫)들을 천거케 하여

12인을 촌장(村長)으로 삼으니 역시 질9품이었고,

대축대가 <마려>로 하여 목축을 잘하는 이들을 천거케 하여

8품 사축(司畜)으로 삼았다.

 

상께서 밤에 <>후 꿈을 꾸셨는데,

후가 아뢰길 봄과 여름엔 丹花, 가을엔 蓮花, 겨울엔 黃花라 하였다.

 

상께서는 깨어나셔서도 황화(黃花)를 알 수 없어 초인(草人)을 불러 황화를 물었더니,

답하기를 그 풀은 바위계곡 꼭대기에서 자라는 것으로

서리와 눈도 그 꽃을 범하지 못하기에 고매한 선비들이 좋아합니다.”라 하였다.

 

상께서는 그렇다면, 속히 가져와서 궁중에 심어야겠소.”라고 하였다.

 

이에 <협보>가 간하여 아뢰길

폐하께선 검소하신 덕으로 스스로를 지키시며

흙으로 3단을 쌓고 띠로 지붕을 얹으셨는데,

어찌 풀을 다루는 재주를 일로 삼으시렵니까?”라고 하였다.

 

상께서는 나는 이 꽃을 <>후의 영령으로 여길 것이네.

그대는 여러 말 하지 말게나.”라고 하였다.

 

이에, 황산(黃山)사람 <석축石縮>이 황화(黃花)를 가져다가 맹후궁(孟后宮)에 바쳤고,

상께서는 그 향내를 아끼시며 정말 내 처의 냄새이다라고 하였다.

 

<한소>를 주문대가로 삼아서 총명하고 뛰어난 자제들을 뽑아 낭도(郞徒)로 삼고,

<마려><길사><도희><조원리><진장><왕충> 등으로 하여금

6례지학(六禮之學)을 가르쳐

그들 중에서 가려 뽑아서 등용하는 방도로 준비하게 하였다.

 

이것이 바로 상서(庠序)의 시초였다.

 

상께서 <마리>에게 이르시길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니 백성 없는 나라 없고,

나라는 왕의 근본이니 나라 없는 왕도 없소.

그런 까닭에, 왕을 하는 이들이 나라를 다스림엔 백성들을 잘 양육함이 근본일 진대,

짐은 천자가 되어서도 아직 이를 걱정하지 않은 채로 정벌하길 쉬지 아니하여서,

많은 장정들이 쏟아지는 화살과 돌멩이 아래에 서 있었고

노약한 이들이 도랑과 밭 사이에서 병들고 고생하였소.

짐은 심히 병사들을 불안하게 하였으며,

모름지기 정예가 되어지기를 닦달하면서 살피지 않은 것이 많았었소.

지금 이후로는 군병들의 수를 줄이고 그들을 향리로 돌려보내서

백성들의 마음을 편안케 할 것이오.”라 하였다.

 

이때 상께서 동쪽 교외로 미행을 나갔더니,

어떤 한 노인이 욕하기를

“<주몽>! 그대는 천제의 아들을 칭하고서 천자가 되더니만,

옛적에 물을 대주던 이를 대부로 삼고,

옛적에 돼지를 잡던 이를 군사로 만들고 옛 선인(仙人)의 아들들을 병졸로 만들었으니,

그대가 어찌 천제의 아들이란 말이오!

천제께서 어찌 일찍이 이런 것들을 정사(政事)로 삼으셨단 말이오!”라 하였다.

 

상께서는

비록 물을 대주던 이라도 공이 있으면 대부가 될 수 있는 것이고,

돼지를 잡던 이도 기예가 있으면 군사가 될 수 있는 것이며,

선인(仙人)의 아들도 장정이 되면 병졸이 되어서 나라를 도울 수 있는 것이오.

병졸은 군사력의 근본이며, 군사력은 나라의 힘인 것이오.

선인들은 스스로 나라의 주춧돌을 칭하면서,

그들의 아들들이 나라의 힘이 되어 주는 것은 아니 되는 것이오?

허나, 노인들의 아들들이 싸움에 달려 나가서 노인들이 의탁할 곳이 없게 하였었으니,

그것은 내 잘못이었소.”라고 하였다.

 

명을 내려 노인의 아들로 종군하는 이들을 돌려보냈으며,

노인의 아들들을 뽑아다가 군병을 삼지 말라고 명하였다.

 

거듭하여 이런 명을 내린 것이다.

 

 

 

十月,巡行北界而敀,不豫.三天后沐浴齋戒而禱以身代,

三后逓夜不眠者七日七夜,薬不奏效.

上曰吾夢見天帝責我侮辱仙人而答我二章.”吉凶何如,命卜之.

<陜父>奏曰夢者,心之所存也.陛下,素惡仙人之亡囯而停其優待.

,古俗不可猝變,且其緣姻皆非下流不可賤之向.

以老人之子傷心而必夢此也.夢何嘗有吉凶哉.不必卜之.如有不吉改則吉矣.”

三后與<烏伊>等皆云有神兆,而使<王忠>占之

得否卦以為匈,命派仙人于名山大川而禱之.

<陜父>又諫曰

否者,陰盛陽衰之兆也.陛下多女謁漸多房勞加,

而北界風傷以染疾,安得無損哉.當遠色而減後宮,然後庻保聖躬矣.”

上謝曰汝言是矣.吾亦知之.”

<黙居>陛下親冒矢石,櫛沐而勞捫足而忍,食不兼味,衣不重裘,自養甚薄,

故勞傷在此耳.二三後宮何必减乎.廣嗣之計不冝如是,臣當以薬治之.”

上曰卿言亦好,吾望諸臣皆如陜父耳.”

 

 

10, 북쪽 국경을 순행하고 돌아와서 위중해지니,

세 천후(天后)들이 목욕재계하고 자신의 몸으로 대신하겠다고 빌었다.

 

세 후들이 밤을 번갈아 자지 않은 것이 77가 되어도, 약들이 효험이 없었다.

 

상께서 이르시길

내가 꿈에 천제를 뵈었더니,

내가 선인(仙人)을 모욕하였다고 책망하시고 두 글귀를 답하였소.”라 하고,

길흉이 어떠한지 점을 쳐보라고 명하였다.

 

<협보>가 주청하길

꿈이란 것은 마음속에 있던 것입니다.

폐하께선 평소에 선인들이 나라를 망친다고 싫어하여

그들을 우대하던 것을 멈추게 하였습니다.

허나, 오래된 습속은 갑자기 변하지는 않는 것이며,

게다가 그에 얽힌 이들은 지체 낮은 부류들이 아니어서 천하게 되는 것을 싫어합니다.

노인들의 아들들 일로 상심하셨으니 필시 꿈이 그러하였을 것입니다.

꿈에 어찌 길흉이 있겠습니까?

점을 보실 필요는 없으며, 불길하게 보이는 것도 고치면 길하여 질 것입니니다.”

라고 하였다.

 

세 후들이 <오이> 등과 함께 모두가 신이한 조짐이라 말하고

<왕충>으로 하여금 점을 보게 하였다.

 

부괘(否卦)가 나오니 흉한 것으로 여기고

명을 내려 선인들을 명산대천(名山大川)으로 나누어 보내서 빌게 하였다.

 

<협보>가 또 간하여 아뢰길

부괘(否卦)는 음기(陰氣)가 성()하여 양기(陽氣)가 쇠()하는 조짐입니다.

폐하께서는 배알하는 여인들이 많아서

점점 합환함이 많아지셨기에 피로가 쌓인 것이며,

북쪽 경계의 바람에 상하여서 병이 드신 것입니다.

어찌 손상됨이 없었겠습니까?

마땅히 색사(色事)를 멀리하고 후궁들을 줄이신 연후에

옥체에서 독기를 빼고 보양하시면 되실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상께서 감사하며 이르시길

그대 말이 옳소. 나도 그것을 알고는 있음이오.”라 하였다.

 

<묵거>가 아뢰길

폐하께선 몸소 시석(矢石)을 무릅쓰고,

바람으로 머리를 빗고 빗물로 머리를 감으며

수고하시느라 발을 주무르며 참아내었으며,

맛있는 것도 드시지 않고 두터운 갓옷도 입지 않으시어 스스로를 돌보시길

심히 야박하게 하엿으니 피로에 이지러지서 이런 일을 당한 것입니다.

하필이면 후궁 두 셋을 감하시다니요?

광사지계(廣嗣之計)에 온당치 않은 것입니다.

신이 약을 써서 낫게 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상께서는

경의 말 역시 마땅하오.

내가 바라건대 모든 신하들이 <협보>같았으면 하오이다.”라고 하였다.

 

 

 

十二月,上疾快癒.

,與三后,如神隧謝病癒,仍訪<仲室>.

氏有病而不謁,只撫子女而還.

<匡衡>多取封邑四百頃而免為庻人,

上曰“<>,穿人之壁而讀書,其貪已久矣.安能淡於色而廉於財乎.國家之用人,

須盡其財耳,不可以一卵之故棄其将材<>之為庻人,

亦因猜忌之相殘也.苟有淡於色廉於財而不爭權者,豈肯為帝王用乎.”

 

 

12, 상의 병이 깔끔하게 치유되었다.

 

상께서 세 후들과 더불어 신수(神隧)로 가서 병이 쾌유되었음에 감사하고,

이어서 <중실>씨를 방문하였다.

 

<중실>씨가 병이 들어 배알하지 않아서, 다만 자녀들을 위무하고 돌아왔다.

 

()<광형匡衡>이 봉읍(封邑)을 많이 취하여 400이나 되자

면직시켜서 서인(庶人)으로 만들었더니,

상께서 이르시길

“<광형匡衡>은 남의 집 벽을 뚫어서 책을 읽었으니

그가 탐욕을 부림은 오래된 것이었소.

어찌 능히 여색(女色) 앞에서 담담하였을 것이며 재물 앞에서 청렴할 수 있었겠소?

나라가 인재를 등용함에는 마땅히 나라의 재물 모두를 들여야 하는 것이거늘,

계란 하나로 불가하다 하여서

장차 재목이 될 <광형>을 버려 서인(庶人)이 되게 한 것은,

역시 그를 시기하여 서로를 해친 것이었소.

진정 색에 담담하고 재물에 검소하며 권력을 다투지 않을 자였었다면,

어찌 제왕이 등용함을 따랐었겠는가?”라 하였다.

 

 

 

 

 

 

東明九年 壬辰,

春正月,檀山公<觧聰>,年六十,<漱帝>苐二子也.

,淸高好潔,不肯推,世與其妻<羊春>居于杜訥之檀山泽,養鵞以送餘年.

,累迎之,不肯来.至是,尊為檀山公,賜其妃<羊春>年穀如公例.

<>,<于仁>之姑也.<>自幼通之,至是為<>妻故,<陜父>請停年穀,不聽.

,减饍親吊,以其有女而無子.<觧晉>太子為其嗣,因其遺命葬于泽畔服閱.

宴群臣及外臣於朝陽殿.宮殿狹窄,外臣之来朝者皆以為太儉,無接待之室.’

<烏伊>乃請創建西都以振皇威,

上曰創業之初,未暇體皃,今才数年,宮室如是狹小.凡事不可苟且為之者,此也.”

其令有司議之.

,都城人口稠密已,無更容敀人之道.

西都,其地祥瑞累見,而居人傳云天帝之子来都之地,群臣乃請創之.

<桂媛>夫人生皇子<高离>,命為<桂婁>之子.

鍊兵十万於汗濱.

 

 

 

 

 

동명9년 임진{BC29},

춘정월, 단산공(檀山公) <해총觧聰(BC88-BC29)>이 나이 예순에 죽었다.

 

<모수제>의 둘째 아들이다.

 

성품이 사념이 없고 고매하며 깔끔하길 좋아하여 천거됨을 따르지 않았고,

평생토록 자신의 처 <양춘羊春>{양복의 딸}과 함께

두눌(杜訥) 땅 단산택에서 거주하면서 거위 기르기로 여생을 보냈다.

 

상께서, 누차 그를 맞아들이려 하셨으나 들어오질 않았더니,

지금에서야 단산공(檀山公)으로 추존하고

그의 비 <양춘羊春>에게는 공()의 예를 따라 년곡(年穀)을 하사하였다.

 

<양춘羊春><우인于仁>의 고모인데, <우인于仁>이 어릴 적부터 그녀와 상통하였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우인于仁>의 처가 되었다.

 

양복() - 양문羊門(BC77?- )

               양춘羊春(BC75?- )

양문(숙릉) - 우인于仁(BC61-BC19)

 

이런 까닭에 <협보>가 년곡의 하사를 멈추시라고 청하였으나 듣지 않은 것이었다.

 

상께서는 반찬을 줄이고 친히 조상하였으며,

그가 딸은 두었으되 아들이 없었기에,

<해진觧晉>태자에게 명하여 그의 뒤를 잇게 하니

그의 유명을 좇아서 단산택(檀山澤) 곁에 장사(葬事)하고 상복(喪服)을 입고 지냈다.

 

추모(양화) - 해진觧晉(BC36- )

 

군신들과 외국의 사신들에게 조양전(朝陽殿)에서 연회를 베풀었다.

 

궁전자리가 비좁았더니, 외국에서 찾아와서 입조한 사신들 모두가

하도 검소하셔서 접대할 궁실도 없다고 하였다.

 

이에 <오이>가 서도(西都)를 새로이 세워 황위(皇威)를 떨치길 주청하였더니,

상께서는 창업 초기인지라 체모를 차릴 겨를이 없었고,

지금 겨우 수년이 되었는데 궁실의 협소함이 이와 같소이다.

모든 일에 구차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 이것인가 보오이다.”라고 하며

해당관리에게 명하여 의논하게 하였다.

 

서도(西都) 그 땅에는 상서로움이 누차 나타났으며,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전해오는 말에도

천제의 아들이 와서 도읍할 곳이라 하였더니,

군신들도 창건하길 주청하였다.

 

<계원桂媛(BC58?- )>부인이 황자 <고리高离>를 낳아 <계루桂婁>의 아들로 삼았다.

 

한빈(汗濱)에서 3만 군병을 훈련하였다.

 

 

 

二月,<再思><柴吉>定界.以竹岺以東為樂浪.

奄利水東岸南岸盡入順奴,南沃沮故地也.

 

 

2, <재사>에게 명하여 <시길{樂浪}>과 더불어 국경을 정하였더니,

죽령(竹岺) 동쪽이 낙랑 땅으로 되고

엄리수(奄利水)의 동안(東岸)과 남안(南岸) 모두가 순노 땅이 되었다.

 

남옥저(南沃沮)의 옛 땅이었다.

 

 

 

 

三月,如平山,観垦田,勧農,巡視城戌.

 

3, 평산(平山)으로 가서 밭 만드는 것을 둘러보며 농사를 권장하엿고,

성들과 수자리들을 순시하였다.

 

 

 

 

四月,<>后生<>太子,<>后亦有娠故,<>后親蚕,<>小后親麻.

 

4, <훤화>황후가 <>태자를 낳았으며, <>황후 또한 임신하였던지라,

<>후가 친히 잠사(蚕事)하고 <>소후가 친히 마사(麻事)를 하였다.

 

 

 

 

五月,聖母遣上弟<觧朱>来献神巫二人,令主宮中祈禱.

<>正月,<觧弗>.聖母,<>氏為<觧百>,<>氏為<觧朱>.”

上問“<類利>何如.”

<>彈雀而誤中汲婦之盆,婦罵以無父之子無敎如此.

<類利>敀問父事,<>氏具言南行之事,<類利>卽欲奔来.

<>氏曰汝父之於汝年,射無不中,釼無不擊,

農無不盡焉.才不如之,徃見,何為.’

<類利>乃學弓釼而潛心.”.

上欲留<>,<>以聖母故請敀,乃送之.

漢罷中書宦官,始置尙書五人.

常侍尙書主丞相御史事,

二千石尙書主刺使二千石事,

主客尙書主外國事,

三公曹尙書主断獄事,

戶曹尙書主庻人上書事.

上曰庻人上書,則可知下情矣.”

其令主民,特設申鼓以聞民言.

漢主<>,好色不倦,多置後宮女謁,太盛嫉妬相殘而未有生産,.

上命神巫為<>后禱,

巫曰上不拜於我故,囯人将不信我矣.我當去,可将人馬來.”

<陜父>怒曰不殺此妖巫,則国将乱矣.”

乃揮釼詣巫曰,主宮中之禱而無效,反欲受帝之拜.其無嚴甚矣.罪當斬矣.”

巫大惧乞命,

上笑曰,亦畏死邪,當拜<陜父>.”

巫乃拜于<陜父>而乞生曰,靈已盡,請送敀.”

上曰,有足,自去,敢請送乎.”

巫曰我在加葉,則足不踐土,空為聖母㪽欺而来此.”

上曰此女殆不知言,可逐之.”乃使卒曳出之.

,至淹淲為田夫所畜.其老巫母而少巫女也.以草幔草离粧之為神,

而終夜誦呪,盡則寢如長夜.其所言皆荒大膽,加葉之民崇之如神.

,加葉人多敀於東都.<金蛙>,憂之,使聖母送巫而示加葉之靈.

而上逐,為田夫之婢妾,使役於田畒,奔走於舂炊.

加葉人曰“<芻牟>何待巫如是乎.”

上曰我囯之田婦,皆賢於此巫遠矣.比他田婦,則此巫可謂上待也.”

加葉人驚曰真天子之囯也,何其多巫如是乎.”

以此,加葉人聞而益来,巫風大振.

巫之観望者,或南或西,涉羅韓之巫風終此始熾.

 

 

 

5, 성모께서 상의 동생 <해주觧朱>를 보내와서 신무(神巫) 두 사람을 바치고

궁중의 기도(祈禱)를 주관하게 하였다.

 

금와(유화) - 해주觧朱(BC49- )

 

<해주觧朱>의 말이

정월에 <해불觧弗(BC55-BC29)>이 죽어서,

성모께서 명하시어 <(BC57- )>씨는 <해백觧百(BC46- )>의 처로

<(BC71- )>씨는 <해주觧朱(BC49- )>의 처로 되었다.‘고 하였다.

 

상께서 “<유리類利>는 어떠한가?”를 물었고,

이에 <해주>가 아뢰길

참새를 쏘았다가 빗나가서 물 긷는 여인의 물동이를 맞추었더니,

그 여인이 애비 없는 자식이라 배운 것이 없어서 이렇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유리>가 돌아와서 아버지의 일을 물었고,

<>씨는 남쪽으로 떠나신 일을 자세히 얘기하여 주었습니다,

이에 <유리>가 곧바로 도망쳐오려고 하기에,

<>씨가 네 아버지께서는 너 만한 나이에, 쏘아서 맞히지 못함이 없었고,

칼로는 베지 못한 것이 없었으며,

사냥과 목축 및 의약과 농사에 통달하지 못한 것이 없었다.

재주가 아직 그 같지 않은데, 찾아가서 만나 뵌들 무엇 하겠느냐?'라고 하시니

<유리>가 활쏘기와 칼 쓰기를 배우면서 마음을 가라앉혔습니다.”라고 하였다.

 

상께서 <해주>를 눌러 앉히려 하였으나,

<해주>가 성모 때문에 돌아가겠다고 청하여서 보내주었다.

 

()이 중서(中書)와 환관(宦官)을 없애고 상서(上書) 다섯을 처음으로 두었다.

 

상시상서(常侍上書)는 승상(丞相)과 어사(御史)의 일을 주관하고,

2천석상서(二千石上書)는 자사(刺使)들과 2천석 들의 일을 주관하며,

주객상서(主客上書)는 외국의 일을 주관하고,

3공조상서(三公曹上書)는 단죄(斷罪)와 옥사(獄事)를 주관하며,

호조상서(戶曹上書)는 서인상서(庶人上書)의 일을 주관하게 하였다.

 

상께서 이르시길

서인상서(庶人上書)는 곧 지체 낮은 백성들의 정서를 알아보기 위함이오.”라 하고

주민대가에게 령을 내려 신문고(申聞鼓)를 설치하여 백성들의 말을 듣게 하였다.

 

() 임금 <유오劉驁>가 호색하길 게을리 하지 않아서

후궁들과 배알하는 여인들을 많이 두었더니,

투기하며 서로를 헐뜯기만 크게 성하여 아직 자식을 두지 못했다고 하였다.

 

상께서 신무(神巫)에게 명하여 <훤화>후를 위해 빌라고 하였다.

 

무녀가 말하길

상께서 제게 절하지 않으셨으니, 나라사람들이 곧 저를 믿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마땅히 돌아가야 하겠습니다. 말과 사람들을 불러주시오.”라고 하였다.

 

이에 <협보>가 노하여

이 요망한 무녀를 죽이지 않으면, 나라가 장차 어지러워지겠습니다!”라 아뢰고는

칼을 뽑아 무녀를 겨누고서 이르길

네가 궁중에서 비는 일을 맡아보았으나 효험이 없었는데도,

도리어 제께서 절하시길 바랐다. 그 죄는 응당 참수 감이다.”라고 하였다.

 

무녀는 몹시 두려워하며 목숨을 구걸하였다.

 

이에 상께서 웃으시면서

그대도 역시 죽는 것은 두려운가 보구먼? 당장 <협보>에게 절하시오!”라고 하였다.

 

무녀가 이에 <협보>에게 절하면서 살려주길 애걸하여 말하길

내 신령이 이미 쇠하였음이니, 호송하여 보내주시길 부탁합니다.”라고 하였다.

 

상께서

그대도 발이 있으니 스스로 걸어갈 일이지,

감히 호송하여 돌려보내주길 청하는 것인가?”라 하엿다.

 

무녀는 저는 가섭(加葉) 땅에 살면서 발로 맨땅을 밟은 적이 없었습니다.

공연히 성모께 속아서 여기에 온 것입니다.”라 하였다.

 

이에 상께서 이르시길

이 계집들이 전혀 말귀를 못 알아듣는구먼. 내쫓아라!”라 하고는

군졸들로 하여금 끌어내게 하였다.

 

무녀들은 엄표(淹淲) 땅에 다다라서 밭을 일구는 사내에게 잡히게 되었다.

 

그 늙은 무녀는 어미이고 젊은 무녀는 딸이었는데,

초막(草幕)을 초리(草离)로 꾸며서 신령스럽게 하여놓고

밤새도록 주문을 외우다가 지쳐서 긴 잠이 들었다.

 

그들의 말이 황당하게 거칠고 대담하여서,

가섭 땅 사람들은 그들을 여신(女神)같이 받들었다.

 

이때, 가섭 땅 사람들이 동도(東都)로 귀부함이 많으니,

<금와金蛙>가 그것이 걱정되어서 성모로 하여금 무녀를 보내서

가섭 땅의 신령(神靈)을 과시하고자 하였는데,

상께 쫓김을 당하고 밭이나 일구는 사내의 비첩이 되어서

밭고랑에서 일하고 절구질하며 불 때기에 바빴다.

 

가섭 땅에서 귀부한 사람들이

“<추모芻牟>께선 어찌 그 무녀들을 이리 대하신단 말인가?”라 하였다.

 

이에 상께서는

내 나라에서는 밭을 일구는 여인네들 모두가

다른 나라들의 무녀들보다 훨씬 더 현명하여서,

그 무녀들을 밭을 일구는 여인네들과 견주어보면 그래도 좋게 대하여 준 것이오.”

라 하였다.

 

가섭 땅에서 귀부한 사람들이 놀라면서

참말로 천자의 나라로세. 어찌 무당 많기가 이럴 수 있단 말인가!”라 하였다.

 

이로 인하여 가섭 땅 사람들이 듣고서 찾아오는 일이 더욱 많아졌으며,

무속풍습이 크게 일어났다.

 

무속풍습을 관망하고 있던, 혹은 남쪽에 혹은 서쪽에 있는

섭라(涉羅)()() 땅에서도 무속풍습이 이를 붙좇아 불붙기 시작하였다.

 

 

 

 

六月,,北巡至梁山,賜戍卒衣酒,

溯上大河北望大河之勢以審九河之曷域而謂<烏伊>

曷衆尙依芦叢而居之,因風火攻之計不可棄也.”

命沿路備魚油松脂蓬炬等物.

九河之賊三十餘落,其中大河玉河蘭河中河牛河濱土石齒

月窟馬丘狄屯巴婁阿勿史弗等最强,餘皆服屬于是.

史弗,最近於梁山,漸被皇化而頗有服從之意,

且有外部落七酋長有內附之意,

乃命<都喜>厚遺是輩約以有事相應.

<五鹿充宗>,好匈極惡,<石顯>輩弄絡<劉奭>,以致貨累鉅万,

<王鳳>所逐而出幽州,自稱玄菟太守,以金銀彩絹等每誘<涉臣>會獵,而欲襲鮮卑.

<涉臣>,将其計而反誘<鹿>出渝關至石原,

使其将<互獨>射殺之,馳入其居而取其財宝美女.

<涉臣>之母<可喜>,<莫車>之大姑也,<>為從,

而且以妹妻<莫車>而交密,相與専橫於上谷.

<王鳳><鹿>而不問其死.

 

 

 

6, 상께서 북녘을 순시하여 양산(梁山)에 이르러

수자리 군졸들에게 옷과 술을 하사하였다.

 

대하(大河) 북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대하(大河)의 기세를 멀리서 바라보고

구하(九河) 땅의 말갈 영역을 살피더니, <오이>에게 이르시길

말갈 무리들은 항상 부들무더기를 의지하여 살고 있으니

바람을 힘입는 화공 계책을 그만둘 수 없음이야.”라고 하고는

연로(沿路)들에게 명하여 어유(魚油) 및 송진과 횃불자루 등을 준비하게 하엿다.

 

구하(九河) 땅의 적도 30여 부락들 중에

대하(大河)옥하(玉河)란하(蘭河)중하(中河)우하(牛河)빈토(濱土)석치(石齒)

월굴(月窟)마구(馬丘)적둔(狄屯)파루(巴婁)아물(阿勿)사불(史弗) 등이

아주 강성하였고, 나머지들은 이들에게 복속하고 있었다.

 

사불(史弗)은 양산(梁山)에 가장 가까이 있었더니

점차로 황은(皇恩)에 교화되어 복종할 뜻이 꽤나 있었고,

뿐만 아니라 바깥쪽 일곱 부락의 추장들도 내부할 뜻이 있었다.

 

이에 <도희都喜>에게 명하여 이 무리들에게 후하게 재물 등을 주어서

일이 있게 되면 함께 내응하기로 약속을 받았다.

 

<오록충종五鹿忠宗>이 흉사(匈事)를 즐기기가 극악하여

<석현石顯>무리들과 함께 <유석劉奭>을 농락하면서

누거만금의 재화를 긁어 들이다가 <왕봉王鳳>에게 유주(幽州)로 쫓겨나가더니,

현도태수를 자칭하고서 금과 은 및 아름다운 비단 등으로

매번 <섭신涉臣>을 회유하여 함께 사냥하며 선비(鮮卑)를 습격하려 하였다.

 

이에 <섭신>도 그 계략을 써서 도리어 <오록>을 꾀어서

유관(渝關) 밖으로 나와 석원(石原) 땅에 이르게 하더니,

그의 장수 <호독互獨>으로 하여 그를 쏘아죽이게 하고서,

그의 거처로 내달려 들어가서 그의 재보와 미녀들을 취하였다.

 

<섭신>은 어미 <가희可喜><막거莫車{雕陶莫皋=復株絫선우}>의 왕고모이고,

<>과는 4촌간이며, 게다가 여동생을 <막거>에게 주고 몰래 교통하면서

서로가 함께 상곡(上谷) 땅을 전횡하였고,

<왕봉王鳳><오록>을 미워하였기에 그의 죽음을 불문에 붙였다.

 

 

 

七月,,<><>,巡行荇南 閱戌観魚品荇,

而至滸原慰勞将士八百人,畋于質陽而還.

以滸原処士<>公為大仙人,使執御史之事.

<>公淸直,群臣畏之.

,上之巡滸原也,<>公乞行憔悴骨立.,憐之,

而與語,其知如神.

上曰玉在荊山,不識于世者久矣.”乃擧之.

盖知<祖天>之将亡而不立於其朝者也.

 

 

 

7, 상께서 <>후 및 <>비와 더불어 행남(荇南)을 순행하여

수자리들을 살피면서 물고기 잡이도 둘러보고 행채(荇菜)도 품평하였다.

 

이어서 호원(滸原)으로 가서 장수와 병사들 800인을 위로하고,

질양(質陽) 땅에서 사냥하고 돌아왔다.

 

호원(滸原) 처사(處士) <>공을 대선인(大仙人)으로 삼아서

어사(御史)의 일을 맡아보게 하였다.

 

<>공은 사념이 없고 행실이 곧았던지라, 군신들이 그를 경외하였다.

 

애초에 상께서 호원(滸原)을 순시하실 적에

<>공은 구걸하면서 살았던지라 행색이 초췌하고 뼈가 툭 불거져 나왔었는데,

상께서 가엽게 여기어 말씀을 나눠보다가 그의 지식이 신과 같았더니,

 

상께서 이르시길

()이 형산(荊山)에 있었는데도, 세상은 오래도록 모르고 지냈소.”

라 하고 그를 벼슬자리에 오르게 하였다.

 

그는 개략 <조천祖天>이 장차 망할 것임을 알아서

그 조정의 사람들 사이에 섞여있지 않았던 것이다.

 

 

 

八月,汁水之上相西都之基,

黃竜國東都之旧基也,山川風景具有可観.

<烏伊><摩离>,鍊兵八万,以為討>.

黃竜囯文士五人為<>公之臣,<禾英>后之所薦引者也.

上學琴於<禾英>,<禾英>又引黃竜囯樂士<箕山>以為琵琶師.

<陜父>諫曰“<黃竜>修文而亡,不可取也.”

上謂<>公曰“<陜父>諫我以不樂,何如.”

<>公曰聲色,人之所好也,不可飾以止之.能知其節,則可矣.

極者亡之始,中者安之本也.”

上曰人言朕可避<>,何如.”

<>公曰敎之以飾則飾,敎之以天則天.飾者欺之始,天者純之源也.

民爭飾之,法不可算矣.”

 

 

 

8, 즙수(汁水)의 위쪽으로 왕림하여 서도(西都) 터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개략 황룡국 동도(東都)의 옛 터였던지라 산천과 풍경 모두가 볼만하였다.

 

<오이><마리>에게 명하여 8만병을 훈련하여서

옥저 땅을 토벌할 계책으로 대비케 하였다.

 

황룡국 문사(文士) 다섯을 <>공의 신하로 삼아주었다.

 

<화영禾英>후가 천거하여 데려온 이들이었다.

 

상께서 <화영>에게서 거문고를 배웠더니,

<화영>이 또 황룡국 악사(樂士) <기산箕山>을 데려와서,

그를 비파(琵琶) 선생으로 삼았다.

 

<협보>가 간언하여 아뢰길

황룡국은 문()을 수련하다 망가졌었으니, 그들의 것을 취함은 옳지 않습니다.”

라 하였다.

 

이에 상께서 <>공에게 이르길

“<협보>가 내게 간언하기를 음악(音樂)을 하지 말라 하는데, 어찌 생각하시오?”

라 하였다.

 

<>공은

성색(聲色)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어서, 꾸며서 그만 둔 척 함은 옳지 않습니다.

능히 그 멎을 곳을 알면 괜찮을 것입니다.

극심함은 망함의 단초이고 치우치지 않음이 안전의 근본일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상께서 이르시길

사람들은 짐이 <화영>을 피해야 한다고들 말하는데, 어찌 생각하시오?”라 하였다.

 

<>공은

그녀를 속여서 하교하면 속일 것이고, 믿음으로 하교하면 믿을 것입니다.

꾸밈은 기만의 단초이며, 믿음은 순수함의 근원입니다.

백성들이 속이기를 다투면 그를 막기 위한 법의 수효는 셀 수도 없어질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九月,<烏伊>,引兵至梁山,分八路覘之.

,巴婁阿勿軍與史弗交戦.

<菸狗>直指阿勿部掃其窟,大軍連續渡河因風放火,

賊首尾不能相救,或走山依之,或走水匿之,老弱落溷,而死者亦不知其数.

<摩离>從大河而上,<漢素>引水師掩襲赴河之賊.賊累戦失利,

北鞨王<舂臣>遣使請和,割大河以東為界.

 

 

9, <오이> 등이 군병을 이끌고 양산(梁山)으로 가서 여덟 길로 나누어 기다렸다.

 

때마침 파루(巴婁)아물(阿勿)의 군대가 사불(史弗)과 교전하였다.

 

이에 <어구菸狗>가 아물(阿勿) 부락으로 곧바로 내달려들어가서

그들의 소굴을 쓸어냈고,

대군이 연속하여 하()를 건너고 바람을 힘입어서 불을 질렀더니,

적들은 앞뒤가 상응하여 돕지를 못하게 되어서

혹자는 산으로 도망가서 의신(依身)하고

혹자는 물로 도망하여 숨었으며 늙고 약한 이들은 뒤쳐져서 어지럽더니

죽은 이들의 수효를 헤아릴 수 없었다.

 

<마리>가 대하(大河)를 따라서 올라가고,

<한소>가 수군을 이끌고 물속으로 도망한 이들을 엄습하였다.

 

적들은 여러 번 싸움에서 패하였더니,

북갈(北鞨)<용신舂臣>이 사신을 보내와서 화친을 청하기에,

대하(大河) 이동(以東) 땅을 갈라서 경계로 삼았다.

 

 

 

 

十月,<烏伊>等分末曷十二落為三州,曰大河州中河州蘭河州,置戌而還.

送中河所得白熊王女<加得>於白熊囯,其王大喜遣使来貢魚皮鹿鹽.

<>皇后生<>公主,上徃慰之.

后曰妾聞加葉有太子皇后,何不率来乎.,不妬矣,請速率来,使吾女<阿爾>配之,何如.”

上曰聖母思我故,不忍皆率而来也.卿其安心.徐當好處矣.天下事,皆有自觧之時耳.”

,<><>后皆有寵,

<>后寵少衰且生女故,自有不安而欲引<類利>為其用也.

 

 

10, <오이> 등이 말갈 12부락을 나누어서

대하주(大河州)중하주(中河州)란하주(蘭河州)세 개의 주로 삼았으며,

수자리들을 만들어놓고 돌아왔다.

 

중하(中河)에서 붙잡힌 백웅(白熊)왕의 딸 <가득加得>

백웅국(白熊國)으로 돌려보냈더니,

그 왕이 크게 기뻐하며 사신을 보내와서 어피(魚皮)와 사슴 및 소금을 바쳤다.

 

<>황후가 <>공주를 낳았다.

 

상께서 찾아가 위로하였다.

 

후가 아뢰길

첩이 가섭원 땅에 태자와 황후가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어찌 데려오지 않으십니까?

첩은 시샘하지 않을 것이오니,

청컨대 속히 데려오셔서 제 딸 <아이阿爾>로 하여금 짝이 되게 하시면 어떻겠는지요?”

라고 하였다.

 

이에 상께서는 웃으며 이르시길

성모께서 나를 생각하고 계신 까닭에 차마 모두를 데려오지 못하고 있소.

경은 안심하시오. 서서히 하여도 응당 좋은 혼처는 있을 것이오.

천하의 일들은 모두 저절로 풀리는 때가 있는 것이오.”라 하였다.

 

이때, <>후와 <>후가 모두 총애를 받고 있었고,

<>후는 총애가 다소 쇠하였었고 게다가 딸을 낳았더니

스스로가 불안하여 <유리>를 끌어들여 자신이 이용하고자 함이었다.

 

 

 

十一月,曷思囯相加<大業>来献船材土物,

<>為都尉,秩五品中大夫,賜衫及花魚.

<禾英>后生<>公主.五雲繞空,上奇其蹟以公主宮為彩雲宮.

<禾斗>為宮大夫,六品,賜花.

<>,<>之侄子也,<狐鹿>之外孫也.

<羊花>,生皇子<觧蒙>,時年五十二,

上恐有虞命<羊真>為大夫而極盡其養.

,以先帝寵后,累經災厄,而晩得上寵,

如再熱之扇不知其倦,氣力尙熾顔色如華,能歓上心.

 

 

 

11, 갈사국(曷思國) 상가(相加) <대업大業>이 찾아와서

배를 지을 재료와 토산물을 바쳤다.

 

<대업>을 질5품 중대부(中大夫)인 도위(都尉)로 삼고

비삼과 치화 및 동어를 하사하였다.

 

<화영>후가 <>공주를 낳았다.

 

5색 구름이 그 방을 에워쌌더니,

상께서 그 일을 기이하게 여기시고 공주의 궁을 채운궁(彩雲宮)이라 하였다.

 

<화두禾斗>를 궁대부(宮大夫)로 삼아서 6품 작위와 치화 및 철어를 하사하였다.

 

<화두禾斗><화상禾相>의 조카로 <호록狐鹿>의 외손이다.

 

<양화羊花>이 황자 <해몽觧蒙>을 낳았다.

 

양산() - 양화羊花(BC80- )

추모(양화) - 해몽觧蒙(BC29- )

 

이때 나이 쉰둘이어서,

상께서는 우려할 일이 생길까를 염려하여

명을 내려 <양진羊眞>을 대부로 삼아서 극진하게 보양하였다.

 

후는 선제(先帝)의 총애를 받던 후였으며,

여러 번 재액(災厄)을 겪고 나서 뒤늦어서야 상의 승은을 입더니,

열기가 다시금 달아오른 듯이 권태로움을 몰랐으며,

오히려 기력이 불타오르고 얼굴빛이 꽃과 같아져서 능히 상의 마음을 기쁘게 하였다.

 

 

 

 

 

東明十年 癸巳,

春正月,<涉臣>使,<莫車>使,入朝献土物.

<><>,以老衰,請退從其子<乙音>而如<牛壤>,許之.

 

 

동명10년 계사{BC28},

춘정월, <섭신涉臣>의 사신이 <막거莫車>의 사신과 더불어 입조하여 토산물을 바쳤다.

 

<><>씨가 노쇠하였으니 물러나서

자기의 아들 <을음乙音>을 따라서 <우양牛壤>으로 가겠다고 청하여 허락하였다.

 

이때 <소서노>의 어머니 <을류> 60세이다.

을족(을류) - 을음乙音(BC68?- )

연타발(을류) - 소서노(BC66-BC6)

 

 

 

二月,徵黃竜荇南桂林民丁万人營西都,

汁水上鵞卵原.

,<>,如獸林溫宮.

紫蒙王<>,以其子<西川>為紫蒙王,自稱太上天王.西川遣使来献土物.

北鞨王<舂臣>為其下<蘇辰>所殺.大河酋長<角民>,<蘇辰>殺之而自立,

盡取<舂臣>財宝妻女以為其有.

 

 

2, 황룡행남계림의 민간 장정 1만을 징발하여 서도(西都)를 지었다.

 

즙수(汁水) 위 아란원(鵞卵原) 땅이었다.

 

상께서 <>후와 함께 수림(獸林) 온궁(溫宮)으로 갔다.

 

자몽 왕 <>공이 그 아들 <서천西川>을 자몽 왕으로 삼고

자신은 태상천왕(太上天王)을 칭하였으며

<서천西川>이 사신을 보내와서 토산물을 바쳤다.

 

북갈 왕 <용신舂臣>이 그의 수하 <소진蘇辰>에게 죽임을 당하니,

대하(大河) 추장 <각민角民><소진蘇辰>을 토벌하여 죽이고 자신이 보위에 올라서

<용신舂臣>의 재물과 보물 및 처와 딸을 모조리 취하여 자기 것으로 삼았다.

 

 

 

 

三月,鍊民十万於河上,還西川而親耕籍田.

 

3, ()상에 백성 10만을 훈련하여 놓아두고,

서천(西川)으로 돌아와서 친히 적전(籍田)을 일구었다.

 

 

 

 

四月,<>皇后親蚕,<>后親麻,<>后親毛.

 

4, <>황후가 친히 잠사(蠶事)를 하고, <>황후가 친히 마사(麻事)를 하고,

<>후가 친히 모사(毛事)를 하였다.

 

 

 

 

五月,以農時,减營都民丁半数敀家,以屯田兵充其数而督其役.

上聞<舂臣>死後北鞨無人大河以北諸部互相爭鬪,

<扶尉厭><馬黎>等鍊兵於大河,以為討鞨之備.

上謂<黙居>

我囯地廣人稀,土沃農少兵不能多而囯不能冨,方今之計莫如多産善育.

其令一産五男者一産四女者十二人爵依中大夫賜衣花魚,

年年生子者間年生子者皆給年穀肉饌繒絮薬物.卿其主之.”名曰生産大加.

五江(・■・西)之民,能作舟車者,使之賑鹽通貨,置其鹽所器所衣所等於各地.

命穹廬世居者男女無別,而生産不振者使之作家分居嫁娶而生産之.

又好自婚而生産不振之五豪(封豪土豪神豪財豪漢豪),命相婚姻而結親.

漢人鞨人胡人之從軍者,亦皆如囯人例序其秩 而賜其妻妾奴婢,

有功者爵之亦如囯人例,使之永為囯民而安心.其令主民主兵調㝎其制.

凡女之為人妻者,丧其夫而無夫之子女,兄弟叔侄然後嫁之,

母從子嫂從弟[숙모]從姪,不使兄弟叔侄爭其母嫂及財.命主民定制.

婢生主之子女亦依主之妻妾所生子女例,

使之從軍襲財,以才授秩,不使永作奴婢.

宗戚公卿之婢生宗戚公卿之子女,皆陞為其妾,賜姓氏.

 

 

5, 농사철이어, 도성(都城)을 짓는 민간장정들을 반으로 줄여서 귀가시키고,

둔전병(屯田兵)으로 그 수를 채워 도성{西都} 짓기를 독려하였다.

 

상께서 <용신>이 죽은 연후에 북갈 땅엔 사람이 없어서

대하(大河)이북의 여러 부락들이 서로 간에 다투고 있음을 들으시고

<부위염><마려> 등에게 명하여 대하(大河)에서 군병을 훈련하게 하여

북갈을 토벌할 계책으로 삼았다.

 

상께서 <묵거>에게 이르길

우리나라는 땅은 넓으나 사람들이 적고 땅은 기름지나 농경하는 곳이 적어서,

군병을 능히 많게 할 수 없고 나라가 능히 부강하지 못하니,

지금 계책으로 할 만한 것으론 많이 낳아 잘 키우는 것 만한 것이 없소이다.

그대가 령을 내려 한 번에 아들 다섯을 낳았거나

한 번에 딸 넷을 낳은 12인에게 중대부(中大夫)에 준한 작위를 내리고

공복(公服)과 화식(花飾)어패(魚佩)를 하사하고,

해마다 아들을 낳았거나 해를 걸러서 아들을 낳은 이들 모두에게

년곡(年穀)과 고기반찬 및 비단과 솜 그리고 약물을 주시오.

경이 이 일을 주관하시오.”라 하였다. 이름 하여 생산대가(生産大加)였다.

 

다섯 강()(・■・西)의 백성들로

배와 수레 만들기에 능한 이들에게 소금과 재화를 나눠주고

염소(鹽所)기소(器所) 등을 각지에 두었다.

 

궁려(窮廬){하늘이 보이게 만든 몽골식의 천막}에서 대를 이어 사는 이들에게 명하여

아들과 딸을 가리지 말고 낳게 하고,

부진한 이들에게는 집을 지어 나뉘어살면서 혼인하여 자식들을 낳게 하고,

또한 자기네들끼리만 혼인하여 자식 낳기가 부진한 다섯 호족들에게는

상호간에 혼인하여 친척이 되도록 하였다.

 

()()()인으로 종군하는 이들 역시 모두에게

나라사람들에 준하여 직위 및 처첩과 노비를 하사하였고,

공이 있는 이들에겐 나라사람들에 준하여 작위를 내리고

영원토록 나라 백성으로 삼아서 안심하게 하였다.

 

주민대가와 주병대가에게 령을 내려서 이를 제도로 정하게 하였다.

 

무릇 다른 사람의 처가 되었던 모든 여인들이 지아비가 죽어서

지아비 없이 자녀가 있게 되면, 형제 및 숙질들과 우선으로 혼인한 연후에 출가하되,

어미는 아들을 따르고 형수는 죽은 이의 동생을 따르며 당숙모는 당질을 따르게 하고,

형제 및 숙질간에 어미와 형수 및 재물을 다투지 못하게 하였다.

 

주민대가에게 명을 내려서 이를 제도로 정하게 하였다.

 

비첩(婢妾)이 낳은 자녀들 또한 주인의 처와 첩이 낳은 자녀들의 예에 따라 종군하며

재산도 물려받게 하고 재능에 따라 직위를 받게 하여서

영원한 노비가 되지 않게 하였다.

 

종척 및 공경들의 비첩이 종척과 공경들의 자녀를 낳으면

모두를 첩으로 승차시키고 성씨(姓氏)를 하사하였다.

 

 

 

 

六月,上如湯外巡視鐵山,<鄭共>採而鑄冶,其金銀銅玉皆納于<>皇后宮為宮中之用.

 

6, 상께서 탕외군(湯外郡)으로 가셔서 철산(鐵山)들을 순시하고

<정공>에게 명하여 채광하고 녹여서 야금(冶金)하게 하였으며,

그곳에서 나온 금옥은 모두 <>황후궁으로 들여보내서 궁중에서 쓰게 하였다.

 

 

 

 

七月,至大河閱兵,<角民>聞之率其妻子遁入雪羅山中,

諸酋續續来降自願為先鋒,

上曰,豈好用兵哉,但問<角民>之罪而已.<角民>如自来則兵不血刃而定矣.”

<角民>大惧送<舂臣>財宝妻女而請和,

上叱其使曰“<角民>不自来則不得免死矣.”

<曹元理>,測定北鞨之勢,審其風俗.

東自白熊西至肅愼之界,<元理>

測此廣漠之地,審其人情風俗,當用十万人費,二十年之力,然後方可.”

上曰如彼其浩繁乎,其止之.”,以此,<元理>.

肅愼王<乾朕>,遣使来献北海之火魚月山之角雁,而諫曰

臣聞陛下鍊兵十万於大河而将屠北鞨之衆云.

,末曷隨水而移,其源遠自上谷之北,

從河而上逶迤太伯蚕食黑水,東至于海上,西至于北海.

此北海者单于之秘園也.

漢帝不能侵,<蘇武>老於此者也.

臣與末曷或和或戦者百有余年,不能根治而抛之者.盖如惡草而難除,不可盡芸也.

,以為陛下,英勇雖出百王,與此惡草爭利則得不補失,恐非聖人之治也.請罷是役.”

上謂其使曰爾王之忠言,朕甚嘉之.”厚遺而送之.

<乾朕>恐禍及己而如是言之,聞上之嘉其言而半信半疑,憂惧老病而死.

<胡白>,秘其丧而不告之.

徵末曷人三万人為鄕導編于三路六十軍之中.

一軍二千人作五隊,隊用曷人百名為之前導,

負担皆渡河而待期.北鞨聞之避去者甚衆.

諸将曰若皆逃去,只得空庭而已,不如速討之.”

上曰空庭而易,動必非根據之地也,留而死守者乃其根據也.逃者逃之,留者攻之,可也.

浮動者逃則根地必孤矣.或擭或誅,而不與較殺,萬全之計也.”

 

 

 

7, 대하(大河) 땅으로 가셔서 군병을 사열하였더니,

<각민角民>이 이를 듣고 처자를 데리고 설라산(雪羅山) 속으로 도망해 들어갔다.

 

이에 여러 추장들이 속속 찾아와서 항복하며 스스로 선봉이 되길 원하였다.

 

상께서 이르시길

짐이 어찌 병장기 쓰기를 즐기겠소.

다만 <각민>이 죄를 지었음을 이미 들었음이니,

<각민>이 스스로 찾아올 것 같으면 군병들의 칼날에 피를 묻히지 않고 그칠 것이오.”

라 하였다.

 

<각민>은 크게 두려웠던지라 <용신>의 재보와 처첩들을 실어 보내고 화친을 청하였다.

 

상께서는 그 사신을 질책하여 이르시길

“<각민>이 스스로 찾아오지 않으면 죽음을 면할 수 없을 것이오.”라 하엿다.

 

<조원리曹元理>에게 명하여 북갈의 판도를 측정하고 그들의 풍속을 살피라고 하였다.

 

동쪽으로는 백웅(白熊)에서부터 서쪽으로는 숙신(肅愼)의 경계까지였더니,

<조원리曹元理>가 아뢰길

그렇게 넓은 땅을 측량하고 그들의 풍속을 조사하는 데는

응당 10만인의 비용이 들 것이며 20년의 노력을 들여서야 가능할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상께서 그대는 그들이 그리 넓고 번성한 듯 말하는구려. 그만두시오!”라 하며,

상께서는 이 일로 <조원리曹元理>를 멀리하였다.

 

숙신 왕 <건짐乾朕>이 사신을 보내 찾아와서

북해(北海)의 화어(火魚)와 월산(月山)의 각안(角雁)을 바치며 간하여 아뢰길

신이 듣기엔 폐하께서는 군병 10만을 대하(大河)에서 훈련하고 계시며,

곧 북갈 무리들을 도륙하실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허나, 말갈들은 물줄기를 좇아 움직이며,

그들의 근원은 멀리 상곡(上谷)의 북방 땅인데,

큰물줄기들을 좇아서 구불구불 삐딱하게 태백(太白)에 이르러서

흑수(黑水)땅을 잠식하더니만,

동쪽으론 바다 북쪽에 이르고, 서쪽으론 북해(北海)에 다다랐습니다.

이 북해(北海)란 곳은 선우(單于)의 옛 터전으로,

()의 임금이 능히 칠 수 없었더니,

<소무蘇武>가 그곳에서 늙었다고 합니다.

()은 말갈들과는 혹간은 화친하다가 혹간은 싸우기를 100년여를 하였어도,

능히 뿌리를 뽑을 수 없어서 포기하였습니다.

개략 지독한 잡초들은 없애기가 어렵듯이 모조리 속아낼 수 없었습니다.

신이 폐하를 위해 말씀을 드리자면,

뛰어나게 용맹하시기가 비록 모든 왕들 중에서 특출하셔도,

이 지독한 잡초들과는 이로움을 다퉈보아야

얻는 것이 잃는 것을 메우지 못하실 것이어서,

성인(聖人)의 다스림이 되지 못하실까 두렵습니다.

청컨대 이 전쟁을 파하소서.”라 하였다.

 

상께서 그 사신에게 말하여 이르시길

그대 왕의 충성스런 말에 짐은 심히 기쁘오이다.”

라 하고 후하게 대접하여 돌려보냈다.

 

<건짐>은 화가 자신에게 미칠까 두려워서 이런 말을 하였던 것이었으며,

상께서 기뻐하셨다는 말을 듣고서도

반신반의하며 근심하고 걱정하다가 쇠하여서 죽었더니,

아들 <호백胡白>도 뒤를 잇고서 <건짐>이 죽었음을 감추고 알리지 않았다.

 

자진하여 투항한 말갈인 3만을 징발하여 향도(嚮導)를 삼아서 360중에서

12천인을 다섯 부대로 하고, 각 부대는 말갈인 100명을 써서 길을 앞세웠다.

 

이때 <추모>가 북갈을 치고자 동원한 군사는

1은 말갈인 500명을 포함 2500명이고 360이니 15만이었다.

 

 

지고 메고 하여서 모두가 하()를 건너고 때를 기다렸더니,

북갈들은 이를 듣고서 피하여 물러가는 이들이 심히 많았다.

 

이에 여러 장수들이 아뢰길

모두가 도망쳐 달아나면 얻는 것은 빈 땅뿐이니, 속히 치는 것만 못하겠습니다.”

라 하였다.

상께서는 이르시길

빈 땅이면 쉬워질 것이고, 도망쳐 버린 곳이라면 필시 근거지가 아니었을 것이고,

남아서 죽기로 지키면 그들의 근거지일 것이니,

도망하는 이들은 도망하게 하고, 남아있는 이들을 공격하면 될 것이오.

떠돌아 움직이던 이들이 도망한 것이라면 그 근거지는 필시 외딴 곳일 것이오.

간혹 생포하고 간혹 주살하면,

맞붙어서 죽이기로 겨루지 않을 것이니 아주 안전한 계책일 것이오.”라 하였다.

 

 

 

 

八月,北地飛雪寒威早至.上與士卒露宿于野,

以兵卒冬衣未至不御重丧.沿江積薪爇火,火光連天,

賊以為開闢後初有之事.

<><>后聞上有微祟而馳至,上以冬衣未至責而還之.

未幾,皮衷至,軍得御寒,上還都.

上夢見‘<類利>太子及<>氏于舊床.’

未幾,<>氏果遣使来献衣酒獐肉.傳語女使一如<>氏語,

上嘉之厚遺而送之.

 

 

8, 북쪽 땅이어서 눈이 날리는 추위의 위세가 일찍 찾아왔다.

 

상께서 병졸들과 더불어 벌판에서 노숙하고 있었는데,

병졸들의 겨울옷이 다다르지 않아서 많은 이들이 상하는 것을 막을 수 없어

강 언저리에 땔나무를 쌓아놓고 불을 피우니 그 불빛이 하늘에 닿았다.

적들은 개벽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라 여겼다.

 

<>후와 <>후가 상께서 좀 편찮으신 낌새가 있음을 듣고서 내달려왔기에,

상께서는 겨울옷이 오지 않았다며 질책하여 돌려보냈다.

 

오래지않아 겉옷과 속옷이 도착하였고 군대들이 추위를 견딜 수 있게 되었고,

상께선 도성으로 돌아왔다.

 

상께서 꿈에 <유리>태자와 <>씨가 오래 된 침상 위에 있는 것을 보았다.

 

오래지않아 <>씨가 과연 사신을 보내서 옷과 술 및 노루고기를 바쳐왔다.

 

말을 전하는 여자사신이 <>씨가 말하는 것과 똑같았더니,

상께서는 기뻐하시면서 후하게 먹이고 주어서 돌려보냈다.

 

 

 

 

九月,白鸞来集西都王臺.

其毛如玉莖而頷黃眼赤觜綠脛朱.

西都姑未盡成而有此嘉瑞故,上與<><>后移居于臺,名之曰鸞臺.

<>后留東都朝陽堂,<禾英>夫人居鳳鳴殿華离堂.

<扶尉厭><宝燕>将苐一軍伐大河之東南五加沙部,

<馬黎><鄭福>将苐二軍伐大河之西北,

<菸狗><羊臣>将苐三軍伐五河.

去年,有神雀之慶而荇泉拔,今有白鸞之慶北鞨亡矣.

鞨衆自以為南北懸絶,從古未聞鷄犬之驚,

穹廬巨創內藏千年宝貨,皆是中國古物也,

守貨而死者相連如抱卵之雉矣.

 

 

9, 흰 란새가 서도(西都)의 왕대(王臺)에 모여들었다.

 

털은 가느다란 옥기둥 같고, 턱은 황색에 눈은 적색이며,

머리의 털뿔은 녹색이고, 정강이는 붉었다.

 

서도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는데도 이런 멎진 경사가 있었더니,

상께서는 <>후 및 <>후와 더불어 누대로 옮겨 거처하시면서

그 누대를 일러서 란대(鸞臺)라 하였다.

 

<>후는 동도(東都)의 조양당(朝陽堂)에 머무르고

<화영>부인은 서성(西城)의 봉명전(鳳鳴殿) 화리당(華离堂)에 거처하였다.

 

<부위염><보연>이 제1군을 몰고 가서 대하(大河) 동남쪽 오가사부(五加沙部)를 치고,

<마려><정복>이 제2군을 거느리고 대하(大河)의 서북쪽을 쳤으며,

<어구><양신>이 제3군을 이끌고 오하(五河)를 쳤다.

 

지난해엔 신작(神雀)의 경사가 있었더니 행천(荇泉)을 빼앗았고,

년엔 백란(白鸞)의 경사가 있었더니 북갈이 망하였다.

 

말갈 무리들은, 스스로 남과 북이 멀리 늘어져있어서 사이가 멀었으며,

고래로부터 닭과 개가 놀라는 소리를 들어본 적도 없었다.

 

궁려(窮廬)는 거창하고 그 안엔 천년보화를 가지고 있었는데

모두가 중원 나라들의 옛 물건이었더니,

재화(財貨)들을 지키다가 죽은 이들이 서로 뒤엉켜있는 것이 알을 품는 꿩과 같았다.

 

 

 

十月,三軍皆出五河之北拔枝河虜<角民>兄弟三人,北沃沮三十余落来降.

掃窟者八十三,斬将者百二,拓地千余里,牛羊獹鹿十七万,

生口八万,女子居二,駿馬五千匹,兵仗珍宝無数.

 

10, 3군들 모두가 오하(五河) 북쪽으로 나아가서 지하(枝河)를 빼앗고

<각민>형제 셋을 사로잡았더니, 북옥저 땅 30여 부락들이 찾아와서 항복하였다.

 

쓸어낸 소굴들이 여든 셋, 목을 벤 장수들이 백 둘,

넓힌 땅이 1,000여 리, 소와 양 및 개와 사슴이 17만 두,

생구(生口)8만 명, 여자들의 거소(居所)가 둘, 준마가 5천 필이었고,

병장기와 진보(珍寶)는 셀 수도 없었다.

 

 

 

十一月,置沃沮将軍十人,分治降衆.

以曷女六万三千分賜将士,移其大姓男丁于杜訥之西及梁貊之谷使垦荒地.

上遣<桓福>於五河,分賜粱酒粱飴於将士.

<>敀献鼠皮于上及三后曰

皇軍之皮衷不如<>衆之鼠衷故,皆奪彼衣而衣之乃免落指傷鼻之患.

曷女為皇軍盡死力者亦多得,以奏功.”.

上曰曷女以獸性木腸,亦知王師之重.其令有司選其佳者賞之.”

命軍為妻以囯人待之無差.

<>后曰曷乃賤婢也.妻軍可乎.”

上曰曷亦人也.有何不可.夫物賤則貴又安知後日彼亦貴乎.

漢以胡曷為賤,而反為胡曷所困,貢其絮繒公主.貴賤何常固乎.

能自樹者必勝,不可以一時之困賤之也.

况其迎王師而出死力者乎.盖有拔賤為貴之志也.不酌其情,何以御之.”

 

 

11, 옥저 땅에 장군 12명을 두어 항복한 무리들을 나눠서 다스렸다.

 

말갈 여인 63천을 장수와 병사들에게 나눠주고,

말갈들의 큰 성씨 집안 장정들은 두눌(杜訥) 서쪽 및 양맥곡(梁貊谷)으로 옮겨서

황무지를 개간하게 하였다.

 

상께서 <환복>을 오하(五河)땅으로 보내어

장수들과 병사들에게 기장 술과 기장 엿을 나누어 하사하였다.

 

<환복>이 돌아와서 상과 세 후들에게까지 족제비 가죽을 바치면서 아뢰길

황군(皇軍)의 겉옷과 속옷이 말갈 무리들의 족제비 가죽 속옷보다 못하여,

모두들 저네들의 옷을 빼앗아 입고서

손가락이 떨어져나가고 코가 상하는 고통을 덜었으며,

말갈 여인으로 황군을 위해 죽을힘을 다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이들의 공을 상주합니다.”라고 하였다.

 

상께서 이르시길

말갈 여인들은 성깔은 짐승 같아도 마음은 질박하더니,

역시 왕사(王師)의 중함은 알고 있구먼.

그대가 해당관리에게 령을 내려서 그 어여쁜 이들을 가려내어 상을 주도록 하시오.”

라고 하였다.

 

군대에 명을 내려 그들을 처로 삼고 나라사람들로 대우하며 차별하지 말라고 하였다.

 

<>후가 아뢰길

말갈 여인들은 천비(賤婢)들인데, 군사들에게 처로 삼아주시는 것이 옳은 일인지요?”

라고 하였다.

 

이에 상께서

말갈 역시 사람이거늘 아니 될 까닭이 무엇이오?

대저 만물은 천하게 여기면 곧 귀해지는 것이오.

후일에 저들 역시 귀해질 수 있음을 알기는 하는 것이오?

()이 호()와 갈()을 천시하다가, 도리어 <><>에게 곤욕을 치렀고,

자신들의 솜옷 및 비단옷과 공주를 공물로 하였소이다.

귀하고 천한 것이 어찌 오래도록 변치 않겠소!

능히 스스로 일어서는 이들은 필시 귀하게 될 것이니,

한때 곤경에 빠졌다 하여 천시하는 것은 옳지 않소이다.

하물며 그들은 왕사(王師)를 맞아들이며 나와서

죽기로 힘쓴 이들이거늘 어찌해야 하겠소?

아마도 천함을 이기고 귀해지려는 뜻이었을 것인데,

그 정성을 헤아려주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그들을 다스린단 말이오?”라 하였다.

 

 

 

十二月,,暖如春,無氷雪.

行月歌之會於西都,以慰凱旋軍卒犯夜三日.

縱軍恣慾飾以花臺鳳車,使美男女戴行.上與三后登臺而賞其衆.

巾帶衣領中外會者数十万,女居其三而男其一.

 

12, 겨울인데도 따듯하기가 봄과 같아서 물도 얼지 않고 눈도 내리지 않았다.

 

서도(西都)에서 월가회(月歌會)를 거행하여

개선한 군졸들을 위로하며 3일 밤을 지새웠다.

 

종군한 군졸들이 마음껏 화대(花臺)를 얹은 봉거(鳳車)를 치장하여서

미남 미녀들로 하여금 줄을 매어 행진하게 하였고,

상께서는 세 후들과 더불어 그 화대에 오르시어 그 무리들에게 상을 주었다.

 

두건을 쓰고 갖춰 입은 옷에 허리띠를 하고서 모여든 이들의 수효가 10만이었으며,

그들 중 계집이 셋이면 사내는 하나였다.

 

 

 

 

 

 

東明十一年 甲午,

春正月,上與<>后如罽所躬親蹂毛以作北軍征袍.

上自北巡以来聖躬欠和閑養宮中,

至是平復以黍酒宴,重臣宗戚而吉之.

上謂<乙音><桓福><羊桂>等曰

親者遠之始也.汝等無以外戚自驕而取禍,可也.

夫婦而子,子而兄弟,兄弟而從,一身之裔,

不過百年而如此.况外戚假子乎.

且人之性,親昵則易恣,縱而見惡,不可不戒也.”

且謂諸臣曰

君臣一體也,方其冒矢石而接釼刃也.

或眼落而臂創,豈其疎眼而遠臂哉.當時之勢有所不得已也.

及其膏[미숫가루]通口咽而入胃腸也,手足徒勞而無預.

豈口為獨專其利哉.特一倉庫鼎臼而已其澤均霑,

主穀非獨專其穀者,而主薬非獨用自樂者也.

卿等宜自寬無相妬則國家興矣.”

於是,重臣宗戚,皆勤其職而不敢爭其好否.

<>后生<>太子,<桓福><>氏乳之.

<>,<>之妹也,時有上寵.

 

 

동명11년 갑오{BC27},

춘정월, 상께서 <>후와 더불어 계소(罽所)로 가서

친히 양털을 밟아서 북쪽 군사들의 군복을 만들었다.

 

상께서는 북쪽을 순시하신 이래로 화기(和氣)가 모자라서 궁중에서 휴양하여 왔는데,

지금에 와서 평상을 되찾고 기장 술로 연회를 열었니, 중신들과 종척들이 좋아하였다.

 

상께서 <을음乙音><환복桓福><양계羊桂> 등에게

가까움은 멀어짐의 단초이다.

너희들은 외척이라 하여 스스로 교만하여져서 화를 입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부부가 되어서 자식을 낳으면 자식은 형제들이 되고, 형제들은 사촌들을 낳게 된다.

한 사람의 후예들이 불과 100년에 이와 같아지는 것이니,

하물며 외척과 양자(養子)들도 그렇지 않겠느냐?

게다가 사람의 습성이 아비와 가까이 지내면 쉽게 방자해져서 추한 꼴을 보게 되니,

엄히 하지 않으면 아니 될 것이네.”라고 하였다.

 

뿐만 아니라, 여러 신하들에게도

임금과 신하는 한 몸인 것이오.

언제 어디에서나 함께 화살과 돌멩이를 무릅쓰며 칼날에 맞서다가,

혹자는 눈이 빠지고 팔을 다치기도 하는데,

어찌 그 눈알을 소홀히 하고 그 팔을 멀다 하였겠소!

당시의 상황으로는 어쩔 수 없었던 것이오.

맛있는 고기와 미숫가루가 입과 목을 지나서 위와 장에 들어가면,

손과 발은 하는 일이 없어 관여하지는 않지만,

어찌 입 혼자만이 그 이로움을 보겠소!

하나하나 한 결 같이 창고나 곳간 및 솥과 절구 등도

그 혜택을 골고루 펼쳐야 할 것이며,

곡물을 주관하는 이는 그 곡식을 혼자서 마음대로 해서는 아니 될 것이고,

약재를 주관하는 이는 그 약재를 혼자서 마음대로 하여서는 아니 될 것이오.

경들이 스스로가 관대해지고 서로 시샘하지 않아야 나라가 흥할 것이요.”라고 하엿다.

 

중신들과 종척들 모두 자신의 직분에 부지런하고

감히 좋아하고 싫어함을 다투지 않았다.

 

<>후가 <>태자를 낳았고, <환복>의 처 <>씨가 젖을 먹였다.

 

<>씨는 <우인于仁>의 여동생으로, 이 시절 상의 총애가 있었다.

 

 

 

三月,上如西川河濫<疏勅>之園,観梅.

<>,以蠶絲致貨,為黃竜囯西川侯,其居擬於王宮,有金玉之殿,妻妾百余人,使令遍滿四方.

蠶織之餘栽梅於溫處,有早者晩者白者靑白者綠白者紅白者斑白者黃者紅者複袷者等七十餘,

其香淡而遠,盖其所尙者也.

<禾英>后薦<>于上而主国之蚕織.

至是,上至其園賞梅曰

此花,雖無嬋娟之美,其雅韻可愛如吾<>妻之德.”

遂思<>后東望悽愴久之.

 

 

3, 상께서 서천(西川)의 하람(河濫) 땅에 있는 <소칙疏勅>의 농원으로 가서

매화를 둘러보았다.

 

<소칙(漢人)>은 잠사(蠶事)로 재물을 모은 이로 황룡국 서천후(西川侯)가 되었더니,

그의 거처는 왕궁(王宮)을 본떠서 금과 옥으로 꾸민 전각이었고,

처첩들이 100여 인이나 되었으며, 사령(使令)들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잠사(蠶事)를 하는 것 이외로도 따듯한 곳에 매화를 심었더니,

일찍 피는 것, 늦게 피는 것, 백화청백화록백화홍백화반백화황화홍화와

복겹꽃 등이 피는 70여 종이 있었는데, 그 향기는 담담하고 멀리까지 퍼졌으며,

개략 그런 까닭에 높이 팔리는 것들이었다.

 

<화영>후가 <소칙>을 상께 천거하여 나라의 잠직(蠶織)을 주관하게 하니,

상께서 그의 농원(農園)을 들르시어 매화를 감상하며 이르시길

이 꽃은 비록 미모가 곱고 예쁘지는 않지만,

그 그윽한 운치가 사랑스러운 것이 내 처 <>씨의 덕과 같소이다.”라고 하며

<>후를 그리워하면서 동쪽을 바라보고 오래도록 슬픔에 젖었다.

 

 

 

四月,上又夢‘<類利>太子抱<>后臥於旧床’,覺而與語<>.

<>后曰“<類利>,陛下之長子也.棄而不顧則恐為後日之患,不如早召而来.”

上曰非不欲召,恐為聖母之思我,而姑留之也.”

,上之諸子皆因其母寵而欲,

<>后之子雖非嫡出年最長而仁弱,<>后之子<沸流>雖長而仁弱,

<>有上之風<>后每欲以<>為嗣覘上之意,

<高娄><乙豆智>皆賢而有勇無母可依.

上每念<>后之德而聞<類利>之賢,

未嘗不馳念一為聖母,而忍重一為諸子之爭立而未决,儲嗣之計實為關心.

<><扶蘇>而亡國,<劉徹><江充>而殺子,<禾相>不立子而絶祀,皆可鑑者也.

上以是憂慮,<類利>欲索藏物而腐心南望故,致此夢兆也.

上又夢<漱帝>蒙塵之狀,<禾英>,

吾欲存卑离者為<禾穗><禾萼>.

累夢,父帝似有復旧之意.北創雖未合,不可不西移也.”

乃大閱于<>.

 

 

 

4, 상께서 다시금 <유리>태자가 <>후를 품에 안고 옛 침상에 누워있는 꿈을 꾸고,

깨어나서 <>후에게 말해주었더니,

<>후가 “<유리>는 폐하의 맏아들입니다.

내버려두고 돌보지 않으시면, 뒷날 우환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일찍 불러오시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상께서 이르시길

불러오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성모께서 나를 그리워하실 것이어서 잠시 놓아두는 것이오.”라 하였다.

 

연이나, 상의 여러 아들들은 모두가

자기 어미의 고임을 받고 있어서 욕심을 내고 있었는데,

<훤화>후의 아들{}은 비록 적출(嫡出)은 아니어도

나이가 제일 많았고 무던하였으나 나약하였으며,

<>후의 아들 <비류沸流>는 나이는 많으나 나약하고

<두절斗切>이 상의 품세였더니 <>후는 매번 <두절>을 후사로 삼고 싶어서

상의 의중을 살피고 있었으며,

<고루高娄><을두지乙豆智>는 모두 현명하고 용맹하나 의지할 만한 어미가 없었고,

상께서는 늘 <>후의 덕스러움을 유념하고 있다가 <유리>의 현명함을 들었더니,

미상불 생각이 치닫기로 그 첫째는 성모를 위하는 것이었으나,

거듭 중히 하시는 것은

첫째로 여러 자식들을 경쟁시켜서 보위에 오르게 하시는 것이어서

아직 결정하지 않으신 것이었지,

저사지계(儲嗣之計){後嗣則東宮세우기}에 실상은 마음을 두고 있었다.

 

()<{始皇}>이는 <부소扶蘇>를 멀리하다가 망하였고,

<유철劉徹>이는 <강충江充>을 믿다가 아들을 죽였으며,

<화상禾相>은 아들을 보위에 세우지 않았다가 제사가 끊겼더니,

모두가 거울로 삼아야 할 것들이어서, 상께서는 이것들을 우려하고 있었고,

<유리>가 숨겨진 물건을 찾으려고 부심하며 남쪽을 바라보고 있었던 까닭에

이런 꿈자리가 있었던 것이었다.

 

상께서 또다시 <수제漱帝>께서 몽진(蒙塵)하는 모습을 꿈에서 보고

<화영禾英>에게 이르시길

내가 비리(卑离)를 그대로 놓아두는 것은 <화수禾穗><화악禾萼>을 위함이었는데,

누차 꿈에 뵙는 것은 부제(父帝)께서 옛 것을 되찾고자 하시는 뜻이 있으신 것 같소.

북쪽을 혼내 준 것이 비록 미흡하지만,

서쪽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아니 되겠소.”라 하였다.

 

()상에서 친히 군대를 사열하였다.

 

 

 

五月,上與<禾英>巡視梁貊之垦田種粟,召卑離王<素奴>相見於獺海,

<素奴><禾萼>烹鯉而享之.

上以<>年雖五十,尙有顔色而頗有媚意,遂幸之.<素奴>怒出不敬之語,

左右拿下而欲殺之.{<>}

,以不幸被<>之辱而生此子.汚則汚矣,亦是血倫也,不無愛情.”

上曰汝言是也.”乃命勿殺,携敀東都,賜宅居之,而監其動靜.

上為<禾穗><禾萼>別立宮室於西都.

於是,<><><>氏之敀付者相望而不絶.

,<烏伊>引軍伐卑离,令勿傷穀殺民.降者封之,走者勿追,敵者攻之,

守者棄之,取其穀羊以食之,緩緩前進曰天帝子来矣.

<旺弗>賊退去.父老,見皇軍之威儀,

不圖,今日復見天帝之軍.”爭以牛羊来犒.

上與<禾英><>公撫慰百姓旬月之間,民心敀矣.

 

 

 

5, 상께서 <화영>과 더불어 양맥 땅에 밭을 일궈 기장을 파종한 것을 순시하시면서

비리(卑離) <소노素奴>를 불러 달해(獺海)에서 함께 만났다.

 

<소노素奴>의 어미 <화악禾萼(BC77- )>이 잉어를 삶아서 대접하였다.

상께서는 <화악禾萼>이 비록 나이는 50줄이었으나

아직 안색(顔色)이 있고 자못 아양 떨 의향도 있었던지라 승은을 내리셨더니,

<소노素奴>가 화를 내며 불경스런 말을 내뱉었다.

 

이에 좌우들이 잡아다가 꿀려서 죽이려 하였더니,

<화악禾萼>이 아뢰길

첩이 불행하여 <왕불旺弗>에게 욕을 당하고 이것을 낳았습니다.

욕을 당한 것은 추한 일이었어도, 역시 혈륜인지라 애정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라고 하였다.

 

이에 상께서는 그대 말이 옳소.”라 하고 명을 내려 죽이지 말고

동도(東都)로 데려가서 집을 주어 거처하게 하고 그의 동정을 살피게 하였다.

 

상께서 <화수禾穗><화악禾萼>을 위하여 서도(西都)에 별도의 궁실을 지었다.

 

이때 <><><>씨들로 귀부하는 이들이

서로를 잇달아서 끊이지 않았다.

 

상께서는 <오이>에게 명하여 군대를 이끌고 가서 비리(卑离)를 토벌하게 하였다.

 

령을 내리시길 곡식을 상하게 하지 말고 사람들을 죽이지도 말 것이며,

항복하는 이는 그 자리에다 봉하고 도망하는 이들은 추격하지 말 것이며,

대적하는 이는 공격하고 지키는 이는 내버려둘 것이며,

그곳의 곡식과 양들을 거둬서 먹을 것이며,

천천히 전진하면서 천제의 아들이 왔음을 알리라고 하였다.

{이에, 앞서서 선비 왕 <>공을 쫓아내고 비리(卑离)自稱했던}

<왕불旺弗(BC78- )>적도가 퇴각하자,

부로(父老)들은 황군의 위엄 있는 거동을 보더니만

해치지 마십시오! 오늘에야 천제의 군대를 다시금 뵙습니다.”라 아뢰었으며,

다투어서 소와 양을 가지고 와서 군사들을 먹였다.

 

상께서 <화영禾英> <(BC67- )>공과 더불어 백성들을 한 달여를 위무하였더니

민심이 돌아섰다.

 

 

 

七月,大軍進駐竜原.上與<禾英><><>,次于龍淵鯉宅食瓜.

<禾穗>受幸,羞愧作歌曰

荇花初發藕花落,黃鯉来交赤鯉恥.

不是野鳩来親鶴,奈此衰顔難得子,

空使聖皇勞竜躬,無心雲雨濕髖卑.”

上慰之曰

本是一家,人不是.燕雀楚越,何可乃爾.”

<>

不幸老大而得覩今日,不覺喜淚交下,回思前非不得無愧耳.”

 

 

7, 대군(大軍)이 용원(龍原)에 진주하였다.

 

상께서는 <화영禾英><화악禾萼><화수禾穗>와 함께

용연(龍淵)의 리택(鯉宅)으로 가서 참외를 드셨는데,

<화수>가 승은을 입더니만 부끄러움에 볼 낯이 없어서 읊조렸다.

 

행화(荇花)가 피기 시작하고 우화(藕花)가 졌는데,

누런 잉어가 찾아와서 교접하니 붉은 잉어가 부끄럽구나.

 

산비둘기가 찾아와서 학과 가까이함은 옳은 일이 아니건만,

쇠한 이 얼굴이 아들을 얻지 못하니

헛되게 높으신 황상을 몸소 힘드시게 하였으니, 어찌할꼬?

 

무심한 운우만 허리아래를 적시는구나!”

 

상께서는 그녀를 위로하며 이르시길

본시는 한 집안이었는데 남들은 아니라 하네.

하찮은 이들이라면 등지고도 살겠지만 어찌 그대를 그럴 수 있으리오!”

라고 하였다.

 

<화수>

불행히도 한참이나 늙은 금일에야 뵈었더니,

기쁜 눈물이 뒤엉켜서 흐름도 모르겠고,

지난날의 잘못들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부끄러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라고 하였다.

 

법황(가달) - 화수禾穗(BC83- )

화상(가달) - 화악禾萼(BC77- )

화영禾英(BC74-BC20)

이때 <화수> 57, <화악> 51, <화영> 48, <추모> 32세이다.

 

 

 

八月,<烏伊>進拔不而城,彼此不傷一卒.

都民以鸞旗鳳車迎聖上及三<>宮入,次于天帝舊宮.上親祭于廟,

以仙室大兄<屋春>為不而城主,<><><><><><>等大姓大酺三日,

徙卑離大姓<><><><>氏等于湯東,

<烏伊>為卑离假王,秩大等上品.

以卑离後宮賜之,以其公卿妻女賜諸将為妻妾,

其珍宝則移于西都,牛羊散財盡給于軍士以差.

<烏伊>歷王黃,侍妾数百人食前方丈,心廣體胖巨如河馬.非復加原之烏瘦子也.

上與<禾英>如彬枳溫泉,訪夫余太史<羊殷>,

<夫余><夫余字>神經緯書.

<>“<旺弗>之乱,夫余典籍燒盡無餘.年前,臣偶得天帝雲冠於陘東田民家藏之.

今見陛下,可知其物待故主也久矣.”跪献之,

上披閱再三,不覺戱欷曰

物存而人去,人生固浮雲也.”盖托,冠名而言也.

是日<>后生女,名亦以為<>公主.

 

 

 

8, <오이>가 전진하여 불이성(不而城)을 차지하였는데,

피차 한 명의 군졸도 상하지 않았다

 

도성 백성들이 란새 깃발이 달린 봉거(鳳車)

성상과 세 <>후들을 맞이하여 궁으로 들였다가

이어서 천제(天帝)의 옛 궁으로 들였고, 상께서는 친히 사당에 제사하였다.

 

선실대형(仙室大兄) <옥춘屋春>을 불이성(不而城) 성주로 삼고

<><><><><><> 등의 큰 성씨들에게

큰 주연을 사흘을 베풀었으며, 비리(卑離)땅의 큰 성씨들인

<><><><>씨 등을 탕동(湯東) 땅으로 옮기었다.

 

<오이>를 비리의 임시왕으로 삼고 품계는 상의 품계에 대략 비등하게 하고

비리 후궁들을 <오이>에게 하사하고,

비리 공경들의 처와 딸들은 여러 장수들에게 처첩으로 내렸으며,

그곳의 진귀한 보물들은 서도(西都)로 옮기고

소와 양 및 흩어졌던 재물들은 모조리 군사들에게 차등을 두어서 나눠주었다.

 

<오이>가 황룡 및 비리의 왕을 역임하게 되어 시첩들이 수백 인이고

밥상이 호화롭고 앞가슴이 불거지고 몸에 살이 붙어 거대한 하마와 같았더니,

다시금 더하여 줄 것 있는 수척한 까마귀 새끼가 아니었다.

 

상께서 <화영>과 함께 빈지(彬枳) 온천으로 가서

부여 태사였던 <양은羊殷>을 찾아보고

부여와 부여문자 및 신경(神經)과 위서(緯書)에 대하여 물었다.

 

<양은羊殷>이 아뢰기를

“<왕불旺弗>의 난리 중에 부여의 전적(典籍)들이 불타 없어져서 남은 것이 없으며,

지난해에 신이 우연히 형동(陘東) 땅에서

천제의 운관(雲冠)을 가지고 있는 밭을 일구는 백성을 만났습니다.

지금 폐하를 뵈오니, 그 물건이 옛 주인을 기다린 지 오래였음을 알겠습니다.”

라고 하면서 무릎을 꿇고 그 운관(雲冠)을 바쳤다.

 

상께서는 열어서 재삼 살피시더니만,

기쁜 일인지 슬픈 일인지 알 수 없는 탄식을 하며

물건은 남았는데 사람은 가버렸으니, 인생은 분명 뜬구름 같은 것이구나

라고 하였다.

 

뚜껑을 손으로 밀어서 열었더니 운관(雲冠)이란 이름 그대로였다.

 

이날, <>후가 딸을 낳았더니, 그 이름 또한 <>공주로 하였다.

 

 

 

 

九月,<><>后馳至,上以両都無人責之,

<>后曰雄鷄行処雌鷄隨.妾等曠月未得侍枕,安能忍其慕夫之情邪.”

上乃還西都.

 

9, <>후와 <>후가 치달려 왔기에,

상께서 두 도성에 사람이 없음을 책망하였더니,

<>후가 아뢰길

수탉이 간 곳으로 암탉들이 따라가는 것입니다.

첩 등은 달포가 되도록 홀로 지내면서 시침을 들지 못하였는데,

어찌 능히 지아비를 그리워하는 정을 참아낼 수 있겠는지요?”라 하여,

상께서 서도(西都)로 돌아왔다.

 

 

 

 

十月,卑离諸城皆下,而唯長岺高顯不下,乃命<摩離><扶尉厭>伐之.

<羊殷><羊世><吉士><大更>

搜集夫余古史古典,以余漢字編之以便[]覽及公卿子弟之敎.

<扶尉厭>北創未合故,<烏干>代之.

<摩离>亦陞太輔而觧其兵任故,<馬黎>代之以西進.

<漢素>左輔主民大加,<扶芬奴>主兵大加,<桓福>主穀大加.

 

10, 비리의 모든 성들이 떨어졌는데,

오직 장령(長岺)과 고현(高顯)만이 떨어지지 않았기에,

<마리><부위염>에게 명하여 그곳을 치게 하였다.

 

<양은羊殷><양세羊世><길사吉士><대경大更> 등에게 명하여

부여의 옛 역사와 옛 전적(典籍)들을 수집하고 부여와 한()의 문자로 편찬하여

열람하기 뿐 만아니라 공경들의 자제들을 가르치기에 편하게 하였다.

 

<부위염>이 북방을 징계하는 것에 아직 답을 내지 못하는 까닭에 <오간>이 대신하게 하였고, <마리摩离> 역시 태보(太輔)로 승차되어 병마의 임무에서 풀려났음에

<마려馬黎>가 그를 대신하여 서진(西進)하도록 하였다.

 

<한소>를 좌보 겸 주민대가로, <부분노>를 주병대가로, <환복>을 주곡대가로 삼았다.

 

 

 

 

十二月,大雪,<烏干><馬黎>等困於積雪之中,

此地多毒泉,軍士徃徃中毒而死,上遣<黃竜>医二十人救之,退保

<西河><梁河>.<西河><羊直>反付<長岺>,

上命<羊臣>徃說<羊直>.<>外順內嶮不可信,群臣請伐之.

<><禾萼>之婿,<羊花>之出也.上問其年,三十而日,年尙幼矣,姑捨之.

 

 

12, 큰 눈이 내려서 <오간><마려> 등이 쌓이는 눈 속에서 곤욕을 치렀다.

 

이 땅에는 유독한 샘들이 많아서 군사들이 종종 중독되어 죽어서

상께서 황룡의 의원 20인을 보내시어 그들을 도왔고,

서하(西河) 땅 양하(梁河)로 물러나 지켰더니,

서하(西河>를 지키고 있던 <양직羊直(BC56- )>이 배반하여 장령(長岺)으로 붙었다.

 

이에 상께서 <양신羊臣>에게 명하여 <양직羊直>에게로 찾아가서 설득하게 하였다.

 

<양직羊直>은 겉은 순하나 속은 험하여 믿을 수 없다면서

군신들이 그를 토벌하길 청하였다.

 

<양직羊直><화악禾萼>의 사위로 <양화羊花>가 낳았더니,

상께서 그의 나이를 물으셨고 서른 살에 며칠을 넘었다 하니,

나이가 아직 어리니 잠시 그를 그냥 놔둬보자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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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띨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