初玉帽太后夢見白鵲入懷而生帝 娠産而皆以月明 及長 身長而美儀采 臨事明斷

先今委以大政 至是卽位 尊母玉帽爲太后 祖仇道爲太公

 

처음에 <옥모玉帽>태후가 하얀 까치가 날아와 품는 꿈을 꾸고 帝를 낳았다.

 

임신할 때와 태어날 때 모두 달이 밝았다.

 

장성함에 따라 키가 크고, 아름답고 의젓하였으며,

나라의 일을 처리함에 명확한 판단을 내렸다.

 

선금(先今){내해}이 대정(大政)을 맡겼는데 이 때에 이르러 즉위하였다.

 

어머니  <옥모>를 높이어 태후로, 외조부 <구도仇道>를 태공(太公)으로 하였다.

 

 

골정(옥모) - 조분(254-329, 11대왕 재위 292-309)

 

김씨인 <구도>의 딸 <옥모>가 석씨인 <내해>와 <골정>의 처가 되어

<조분>과 <첨해>를 낳고

<옥모>의 동생인 김씨인<미추>가 신라 최초의 김씨의 왕이 되었으며

<옥모>는 진골정통의 祖가 된 것이다.

 

※ 옥모(238-311)의 자녀

 

옥모(골정) - 조분(254-329)

                  녹모(256?- )

                  홍모(261- )(내해) - 우로(277- 331)

                                               아이혜(286-362)(조분) - 명원(307-374)

                                                                                   광원(310-392)

                                                                                   광명(324-392)

옥모(연불) - 달가(256-292)

                  운(259- )

                  단(262- )

옥모(내해) - 첨해(274-324)

                  유모(277-366)

                  중모(280- ) 

 

 

 

 

 


 

七月 連忠伊伐飡 白仙稟主

謁祖廟

 

7월 <연충連忠>을 이벌찬, <백선白仙>을 품주로 하였다.


왕이 조상의 사당을 찾아뵈었다.


 

조분왕 원년 <연충>을 이찬에 임명하여 군무와 국정을 맡겼다.

7월 왕이 시조묘에 참배하였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조분왕 원년(A.D.292)

 

七月 碧昌伊伐飡 柿忠稟主

大赦 賜酺

 

7월 <벽창碧昌>을 이벌찬, <시충柿忠>을 품주로 하였다.

 

죄인들을 크게 사면하고, 연회를 베풀었다.


 

八月 行嘉俳

 

8월 가배를 행하였다.

 

이때 태후 <옥모> 55세, <구도> 75세, <조분> 39세,

<내해>와 <옥모>의 아들<첨해> 19세,

<조분>의 여동생 <홍모> 37세 

<이음>의 딸 <술례> 37세,

<내음>의 딸 <아소례> 31세,

<내해>와 <홍모>의 아들 <우로> 16세, 

<우로>의 여동생 <아이혜> 7세, 

<구도>의 아들 <말흔> 15세, <미추> 1세이다.

 

 

 

 

조분왕 2년(A.D.293)

 

正月 行玄牝祭

 

정월 현빈제(玄牝=癸丑)를 행하였다.


 

五月 甘文反 以于老太子爲大將軍 率謁明等往討之

 

5월 감문(甘文)국이 반란을 일으켰다.

<우로于老> 태자를 대장군으로 하여, <알명謁明> 등을 거느리고 가서 토벌하였다.


 

七月 碩公伊伐飡 回介稟主

甘文平 以爲郡

 

7월 <석공碩公>을 이벌찬, <회개回介>를 품주로 하였다.

 

감문(甘文)을 평정하여 군(郡)으로 삼았다.


 

조분왕 2년

7월 이찬 우로를 대장군으로 삼아 감문국을 토벌하여 승리하고,

그 땅을 군으로 만들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九月 行大場

 

9월 대장(大場)을 행하였다.


 

 

 

조분왕 3년(A.D.294)

 

四月 倭人猝至圍金城 帝親出督戰 賊潰走 興文等率輕騎追擊之 殺獲甚衆

 

4월 왜인(倭人)이 갑자기 쳐들어와 금성(金城)을 포위하였다.

帝가 친히 나와 독전(督戰)하였다.

 

적이 궤멸되어 달아나자 <흥문興文> 등이 경기(輕騎)를 거느리고 추격하여,

죽이거나 사로잡음이 심히 많았다.


 

조분왕 3년

4월 왜인이 갑자기 쳐들어와 금성을 포위하였다. 왕이 직접 나아가 싸웠다.

적이 흩어져 도주하자 정예 기병을 보내 추격하여 1천여 명을 죽였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七月 完吉伊伐飡 盤穀稟主 雲己

 

7월 <완길完吉>을 이벌찬, <반곡盤穀>을 품주, <운기雲己>를 유주(甤主)로 하였다.


 

八月 行嘉俳

修桃山及北桃園

 

8월 가배(嘉俳)를 행하였다.

 

도산(桃山)과 북도원(北桃園)을 수리하였다.


 

 

 

 

조분왕 4년(A.D.295)

 

四月 大風飛屋瓦

始置眞經堂 于國中諸都

 

4월 큰 바람에 불어, 기와가 날렸다.

 

나라 안의 여러 도시에 처음으로 진경당(眞經堂)을 설치하였다.


 

五月 倭寇東邊

權妻乳帽生帝女乳幌 或云園郞覓伊烝出也

 

5월 왜가 동쪽 변경을 약탈하였다.

 

권처 <유모乳帽>{내해와 옥모의 딸}가 왕의 딸 <유황乳幌>을 낳았다.

혹은 원랑(園郞) <멱이覓伊>가 증(烝)하여 낳았다고 한다,


 

七月 于老太子率雲良興文等大破倭人 于沙道

百健伊伐飡 茶烏稟主

乘風縱火焚其船楫 賊皆赴水死

 

 

7월 <우로于老>태자가 <운량雲良>과 <흥문興文> 등을 거느리고

사도(沙道)에서 왜인을 대파하였다.

 

바람을 타고 불을 놓으니 그 배들이 불에 탔다. 적들은 모두 물에 빠져 죽었다.

 

<백건百健>을 이벌찬, <다오茶烏>를 품주로 하였다.


 

九月 行大場

9월 대장(大場)을 행하였다.


 

조분왕 4년

4월 큰 바람이 불어와 기와가 날았다.

5월 왜병이 동쪽 변경을 약탈하였다.

7월 이찬 우로가 왜인과 사도에서 싸웠다.

그는 바람을 이용하여 불을 질러 배를 불태웠다.

적들은 모두 물에 빠져 죽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조분왕 5년(A.D.296)

 

四月 行壤井大祭

冬禮生女登世 或云 登戶潛通而生也

 

4월 양정대제(壤井大祭)를 행하였다.

 

<동례冬禮>가 왕의 딸 <등세登世>를 낳았다.

혹은 <등호登戶>가 잠통(潛通)하여 낳았다고 한다.


 

七月 邊宣伊伐飡 連骨稟主

素理生宣知子宣威

 

7월 <변선邊宣>을 이벌찬, <연골連骨>을 품주로 하였다.

 

<소리素理>가 <선지宣知>의 아들 <선위宣威>를 낳았다.


 

八月 行嘉俳

加耶王子孝道入朝 以守羅妻之

 

8월 가배(嘉俳)를 행하였다.

 

가야(加耶) 왕자 <효도孝道>가 입조하여,

<수라守羅>{내해와 하라의 딸}를 시집보냈다.


 

 

 

 

조분왕 6년(A.D.297)

 

正月 東巡撫恤 淡忠宮主薨 年八十四 繼元女也

 

정월 동쪽을 돌아보며 어루만지고 구휼하였다.

 

<담충淡忠(214-297)> 궁주가 죽었는데, 춘추 84세였다.

 

궁주는 <계원繼元>의 딸이다.


 

七月 謁明伊伐飡 休介稟主

 

7월 <알명謁明>을 이벌찬, <휴개休介>를 품주로 하였다.


 

九月 行大場

 

 

구월 대장을 행하였다.

 

 

조분왕 7년(A.D.298)

 

二月 骨伐國王阿音夫率衆 來降 賜第宅田莊安之 以其地爲郡

 

2월 골벌국(骨伐國)왕 <아음부阿音夫>가 무리를 거느리고 와서 항복하였다.

 

왕은 그들에게 제택(第宅)과 전장(田莊)을 내려 안정시켰다.

 

그 땅은 군(郡)으로 삼았다.

 

 

골벌(骨伐)은 지금의 영천이다.


 

조분왕 7년

2월 골벌국왕 아음부가 무리를 거느리고 항복해왔다.

왕은 그들에게 집과 밭을 주어 편안히 살게 하고, 그 땅을 군으로 만들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五月 西巡撫恤 玉帽太后率馬徒 行突山大祭

 

5월 서쪽을 돌아다니며, 어루만지고 구휼하였다.

 

<옥모玉帽>태후가 마도(馬徒)를 거느리고 돌산대제(突山大祭)를 행하였다.


 

七月 足老伊伐飡 馬色稟主

 

7월 <족노足老>를 이벌찬, <마색馬色>{담왕의 딸}을 품주로 하였다.


 

 

八月 行嘉俳

 

8월 가배(嘉俳)를 행하였다.


 

十月 行月歌

 

10월 월가(月歌)를 행하였다.


 

 

 

 

조분왕 8년(A.D.299)

 

正月 行土羊祭

 

정월 토양제(土羊=己未)를 행하였다.


 

七月 晋宗伊伐飡 孫蘭稟主

 

7월 <진종晋宗>을 이벌찬, <손란孫蘭>을 품주로 하였다.


 

八月 蝗害穀

 

8월 메뚜기가 곡식을 해쳤다.


 


 

 

조분왕 9년(A.D.300)

 

正月 行金神祭

雲良伊伐飡 孫奉稟主

 

정월 금신제(金神=庚申)를 행하였다.

 

<운량雲良>을 이벌찬, <손봉孫奉>을 품주로 하였다.


 

七月 三洪伊伐飡 馬淡稟主

 

7월 <삼홍三洪>을 이벌찬, <마담馬淡>을 품주로 하였다.


 

八月 行嘉俳

 

8월 가배(嘉俳)를 행하였다.


 

九月 麗相倉助弑君 立王侄乙弗爲君

9월 고구려 재상 <창조(倉助>가 왕을 죽이고, 왕의 조카 <을블乙弗>을 왕으로 세웠다.


 

 

 

 

조분왕 10년(A.D.301)

 

正月 行白鷄祭

 

정월 백계제(白鷄=辛酉)를 행하였다.


 

 

二月 太公仇道薨 葬以王禮 年八十四 公掌兵權殆四十年 軍主皆出門下 

 

2월 태공(太公) <구도仇道>가 죽어, 왕례(王禮)로 장사를 지냈다.

 

춘추 84세였다.

 

공이 병권을 맡은 지 거의 40년이고, 군주(軍主)들이 다 문하에서 나왔다.


 

七月 昌元伊伐飡 聖權稟主

 

7월 <창원昌元>을 이벌찬, <성권聖權>을 품주로 하였다.


 

八月 行嘉俳

祀黑齒道生

米諳自吳來 孫光請屬詳文臺 而子之

 

8월 가배(嘉俳)를 행하였다.


<흑치黑齒>와 <도생道生>의 제사를 지냈다.

 

<미암米諳>이 오(吳)로부터 왔다.

 

<손광孫光>이 상문대(詳文臺)에 소속하기를 청하고 아들로 하였다.


 

 

 

조분왕 11년(A.D.302)

 

正月 行玄狗祭 狗徒獻蒼瑄 于帝

 

板喜伊伐飡 太旺稟主

 

정월 현구제(玄狗=壬戌)를 행하였다.

 

구도(狗徒)가 창선(蒼瑄){푸른색 옥구슬}을 왕에게 바쳤다.

 

<판희板喜>를 이벌찬, <태왕太旺>을 품주로 하였다.


 

三月 命沾解太子 巡國中 恤民

 

3월 <첨해沾解>태자에게 명하여, 나라 안을 돌아다니며 백성을 구휼하도록 하였다.


 

四月 夫余入寇西邊 白興擊退之

 

4월 부여(夫余)가 서쪽 변두리를 노략질하여, <백흥白興>이 격퇴하였다.


 

七月 黃公伊伐飡 汗珍稟主

 

7월 <황공黃公>을 이벌찬, <한진汗珍>을 품주로 하였다.


 

八月 以權妻阿爾兮爲后

 

8월 권처(權妻) <아이혜阿爾兮>를 후(后)로 하였다.


 

九月 行大場

 

9월 대장(大場)을 행하였다.


 

 

 

 

조분왕 12년(A.D.303)

 

正月 興文伊伐飡 小潛稟主

阿召禮生帝女達禮

 

정월 <흥문興文>을 이벌찬, <소잠小潛>을 품주로 하였다.

 

<아소례阿召禮(262-327)>{내음의 딸}가 왕의 딸 <달례達禮>를 낳았다.


 

五月 馬徒奉玉帽太后爲主 沾解太子爲法 帝親行其儀 于南桃 賞賜徒衆

 

5월 마도(馬徒)가 <옥모玉帽>태후를 주(主)로 삼고,

<첨해沾解>태자를 법(法)으로 삼았다.

 

왕이 친히 남도에서 그 의식을 행하였다. 마도 무리에게 상을 내렸다.


 

七月 西解伊伐飡 良其稟主

 

7월 <서해西解>를 이벌찬, <양기良其>를 품주로 하였다.


 

八月 行嘉俳

8월 가배(嘉俳)를 행하였다.


 

九月 行大場

狗徒以良其爲主 行阿世大祭

 

9월 대장(大場)을 행하였다.

 

구도(狗徒)가 <양기良其>를 주(主)로 삼고, 아세대제(阿世大祭)를 행하였다.


 

十月 行月歌

 

10월 월가(月歌)를 행하였다.


 

 

 

 

조분왕 13년(A.D.304)

 

正月 行靑鼠祭

帝問於孫光 曰 今人多行牛馬羊祭 其意何在

光曰 牛母馬夫羊子也

帝又曰 狗不預乎

光曰 狗爲山王 古艮而今乾 故與牛馬同體 而異位

帝又曰 今人以黃馬爲白馬者 何也

光曰 古人亦以黃爲白者 只言玄白故也

 

정월 청서제(靑鼠=甲子)를 행하였다.

 

왕이 <손광孫光>에게 물어 말하기를

 

“지금 많은 사람들이 우(牛) 마(馬) 양(羊)의 제사를 지내는데,

그 뜻이 어디에 있는 것이냐?”라고 하였다.

 

<손광>이 말하기를

“소(牛)는 어머니이고, 말(馬)은 아버지이고, 양(羊)은 아들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또 물어 말하기를

 

“개(狗)는 관계없는 것이냐?”라고 하였다.

 

<손광>이 말하기를

 

“개는 산중의 왕입니다.

옛날에는 간(艮)이었는데, 지금은 건(乾)입니다.

그런 까닭에 우마와 동체(同體)이지만 방위가 다릅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또 말하기를

 

“지금 사람들은 황마(黃馬)를 백마(白馬)라 하는 것은 무슨 이유이냐?”

라고 하였다.

 

<손광>이 말하기를

 

“옛날 사람들이 또한 황(黃)을 백(白)이라 함은, 다만 현백(玄白)한 까닭입니다.”

라고 하였다.


 

 

三月 阿兮生帝女聖元

 

 

3월 <아이혜阿爾兮>가 왕의 딸 <성원聖元>을 낳았다.

 

 

 


 

七月 板己伊伐飡 水羊稟主

 

7월 <판기板己>를 이벌찬, <수양水羊>을 품주로 하였다.


 

九月 行大場 是年 穀大登

古陀郡進嘉禾一莖九穗

命加其畯官爵祿

守羅生孝道子守克

 

9월 대장(大場)을 행하였다.

 

이해에 풍년이 들었다.

 

고타군(古陀郡)에서 9개의 이삭이 달린 줄기를 가진 곡식을 바쳤다.

 

준관(畯官)에게 작위와 녹봉을 더하여 주도록 명하였다.


 

조분왕 13년

가을 큰 풍년이 들었다. 고타군에서 상서로운 벼이삭을 진상하였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수라守羅>가 <효도孝道>의 아들 <수극守克>을 낳았다.


 

十月 行板公大祭

以良其爲歌仙 行月歌

 

10월 판공대제(板公大祭)를 행하였다.

 

<양기良其>{국량의 딸}를 가선(歌仙)으로 하여, 월가(月歌)를 행하였다.


 

 

 

 

조분왕 14년(A.D.305)

 

正月 行靑牛祭

長萱伊伐飡 述禮稟主 述禮奈音王女也 或云 所非王女也 內禮伐休之孫也

 

정월 청우제(靑牛=乙丑)를 행하였다.

 

<장훤長萱>을 이벌찬, <술례述禮>{미추이사금의 어머니}를 품주로 삼았다.

 

<술례>는 <내음奈音>왕의 딸이다.

 

혹은 <소비所非>{이음}왕의 딸이다.

 

<내례內禮>와 <벌휴伐休>의 외손녀이다.

 

아달라(자황) - 내음(공례) - 술례(구도) - 미추

벌휴(내례) - 공례(내음) - 술례(256-338)


 

四月 行壤井大祭

 

4월 양정대제(壤井大祭)를 행하였다.


 

七月 繼達伊伐飡 羊旼稟主

 

7월 <계달繼達>을 이벌찬, <양민羊旼>을 품주로 하였다.


 

十月 行月歌

 

10월 월가(月歌)를 행하였다.


 

 

 

 

조분왕 15년(A.D.306)

 

正月 行赤虎祭

阿召禮生帝子儒禮 異香滿室 初阿召禮 夜禱樹王 星光入口 而娠也

于老太子伊伐飡兼知軍政 碧忠稟主 年綻十六 其母柿忠攝行事

 

정월 적호제(赤虎=丙寅)를 행하였다.

 

<아소례阿召禮>가 왕의 아들 <유례儒禮>를 낳았다.

 

기이한 향기가 방안에 가득하였다.

 

처음에 <아소례>가 밤중에 수왕(樹王)에게 기도하였는데

별빛이 입안으로 들어와 임신을 하게 되었다.

 

조분(아소례) - 유례(306-367, 14대왕 재위 350-363)

 

<우로于老>태자를 이벌찬겸 지군정(伊伐飡兼知軍政)으로 하고,

<벽충碧忠>을 품주로 하였다.

 

<벽충>은 나이 늦은 16살이었다.

 

그 어머니 <시충柿忠>{한충과 시월의 딸}이 섭행(攝行)하였다.


 

조분왕 15년 정월 이찬 우로를 서불한(舒弗邯)에 임명하고, 병마사를 겸하게 하였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八月 行嘉俳

 

8월 가배를 행하였다.


 

 

 

 

조분왕 16년(A.D.307)

 

正月 行赤兎祭

大潛伊伐飡 阿夫禮稟主

 

정월 적토제(赤兎=丁卯)를 행하였다.

 

<대잠大潛>을 이벌찬, <아부례阿夫禮>를 품주로 삼았다.


 

三月 阿爾兮后生帝女命元

 

3월 <아이혜阿爾兮>후가 왕의 딸 <명원命元>{흘해의 어머니}을 낳았다.

 

조문(아이혜) - 명원(307-374)


 

七月 白興伊伐飡

 

7월 <백흥白興>을 이벌찬으로 하였다.


 

八月 行嘉俳

 

8월 가배(嘉俳)를 행하였다.


 

 

十月 句麗入寇比烈長岺 于老率二路將軍出擊之 我軍不利退保馬頭柵 夜甚寒士卒戰慄 于老躬燒柴葉而分暖解裘被傷卒 群心感激咸願死 戰賊追襲大敗

我軍乘勝欲長驅 于老曰 彼衆我寡可保而不可侵敵聞之 乃退 

 

10월 고구려가 비열(比烈)장령(長岺)을 침범하였다.

 

<우로于老>태자가 2로(二路)장군을 이끌고 출격(出擊)하였다.

 

아군이 불리해지자 물러나 마두책(馬頭柵)을 지켰다.

 

밤이 깊어지자 추워져 병사들이 벌벌 떨었다.

 

<우로>가 몸소 울타리의 나무와 낙엽을 나누어 태워 따뜻하게 해주고,

갓옷을 벗어 다친 병사들을 덮어주었다.

 

군중이 마음으로 감격(感激)하여, 모두 싸워 죽기를 원하였다.

 

적들이 쫓아와서 습격하였으나 크게 패하였다.

 

우리 군이 승리를 타고, 먼 곳까지 쫓아가고자 하였다.

 

<우로>가 말하기를

 

“저들은 우리의 수가 적으나 지켜낼 줄 알고 있으니, 쳐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라고 하였다.

 

적이 그 말을 듣고 이에 물러났다.


 

조분왕 16년

10월 고구려가 북쪽 변경을 침범하자,

우로가 군사를 이끌고 공격하다가 이기지 못하고 물러나 마두책을 수비하였다.

그 날 밤 날씨가 몹시 추워지자,

우로가 사졸들을 위로하고 직접 장작불을 피워 그들을 따뜻하게 하여 주었다.

사졸들이 진심으로 감격하였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307년은 고구려 미천왕 8년이다. 


 

 

조분왕 17년(A.D.308)

 

正月 碩忠伊伐飡 孫蘭稟主

 

정월 <석충碩忠>을 이벌찬, <손란孫蘭>을 품주로 하였다.


 

三月 命沾解太子監國

 

3월 <첨해沾解>태자에게 명하여 나라를 살펴보도록 하였다.


 

七月 誠萱伊伐飡 學氏稟主

 

7월 <성훤誠萱>을 이벌찬, <학씨學氏>{내해의 딸}를 품주로 하였다.


 

九月 行大場

 

9월 대장(大場)을 행하였다.


 

十月 行月歌 于南桃

有白氣 自東南起 如匹練橫 京都而入桃山

孫光曰 金氏當王后果驗

 

10월 남도(南桃)에서 월가(月歌)를 행하였다.

 

하얀 기운이 동남쪽에서 일어났는데 한 필의 누운 명주 같았다.

 

경도(京都)를 가로질러 도산(桃山)으로 들어왔다.

 

<손광孫光>이 말하기를

“김(金)씨가 당연히 왕후(王后)이니 과연 효험이 있다.”라고 하였다.


 

조분왕 17년

10월 동남방에 흰 기운이 한 필의 명주를 펴놓은 것처럼 뻗쳤다.

11월 서울에 지진이 있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조분왕 18년(A.D.309) 


 

四月 行壤井大祭

 

4월 양정대제(壤井大祭)를 행하였다.


 

五月 帝與玉帽太后 行突山大祭 得疾

夜夢金神十二人誘至太淸玉山鬪草 乃發仙心 命立胞弟沾解太子而禪

沾解乃與阿爾兮后 行祥登祚

初奈解帝夜宴于骨正宅 醉臥夢見 沾龍自湯殿 捲風而起 乃驚起 如湯殿

時玉帽太后新浴 而理脂 奈帝乃抱而幸之 必生好子

后曰 妾亦夢呑月珠 已知有此吉

及誕皃與奈解酷肖 故寵愛甚隆

命助賁帝與之 共天下 故至是繼嗣之

尊玉帽太后爲馬天太聖母

以孫光子宣德爲伊伐飡 胞妹乳帽爲稟主

帝仙 而建月白陵 行大祭 立廟曰 明宮命秀皇爲廟主

 

置馬徒院 命阿召禮主之

 

5월 왕과 <옥모玉帽>태후가 돌산대제(突山大祭)를 행하고 병을 얻었다.

 

꿈에 금신(金神) 12명이 유혹하여 태청옥산(太淸玉山)에 이르러

투초(鬪草){풀을 가지고 싸우는 놀이로 전래 아동놀이의 하나}를 하였다.

 

이에 선심(仙心)이 일어나, 포제(胞弟) <첨해沾解>태자를 세워 선위하도록 명하였다.

 

<첨해>가 이에 <아이혜阿爾兮>와 더불어 상서로운 즉위식을 행하였다.

 

처음에 <내해奈解>제가 <골정骨正>댁에서 밤늦게 잔치를 하고 취하여 누워있었다.

 

꿈에 첨룡(沾龍)을 보았는데, 탕전(湯殿)으로부터 회오리바람이 일어났다.

 

이에 놀라 일어나보니 꿈과 같은 탕전이 있었다.

 

이때 <옥모玉帽) 태후가 방금 목욕을 하고 연지를 고치고 있었다.

 

<내해>가 이에 <옥모>를 안고 행차하며 반드시 좋은 아들을 얻을 것이라고 하였다.

 

<옥모>후가 말하기를

 

“첩 역시 월주(月珠)를 삼키는 꿈을 꾸었으니,

이미 이와 같이 길한 일이 있을 줄 알았습니다.”라고 하였다.

 

태어남에 이르자 용모가 <내해>와 매우 닮은 연유로 총애함이 매우 성대하였다.

 

<조분>제에게 <첨해>와 더불어 천하를 함께 하도록 명하였다.

 

그런 까닭으로 이 때에 이르러 계승하여 후계자가 되었다.

 

<옥모>태후를 높이어 마천태성모(馬天太聖母)라고 하였다.

 

<손광孫光>의 아들 <선덕宣德>을 이벌찬으로,

같은 어머니의 여동생 <유모乳帽>를 품주로 삼았다.

 

내해(옥모) - 유모(277-366)

 

帝는 신선이 되어 월백릉(月白陵)을 세우고 대제(大祭)를 지냈다.

 

사당을 세워 명궁(明宮)이라 불렀다.

 

<수황秀皇>을 묘주(廟主)로 삼도록 명하였다.


마도원(馬徒院)을 설치하여 <아소례阿召禮>를 주(主)로 삼았다.


 

조분왕 18년

5월 왕이 붕어하였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조분帝는 첨해에게 선위하고 신선이 되어 즐기며 20년을 더 살다가 329년에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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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띨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