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천대제19년{AD318}무인,
춘3월, 요서공(遙西公) <단질육권段疾陸眷>이 죽었는데,
아들이 어려서, 숙부인 <섭복진涉復辰>이 스스로 섰다.
<단필제段匹磾>가 계(薊)로부터 바삐 시신을 가지고 우북평(右北平)에 이르니,
<섭복진涉復辰>이 병사를 일으켜 막아섰다.
<단말배段末柸>가 허술한 틈을 타서 <섭복진涉復辰>을 기습하고 나서
스스로를 「선우」라 칭하고 <단필제段匹磾>를 맞아 깨뜨리니,
<단필제段匹磾>는 계(薊)의 땅으로 달아나 돌아갔다.
선비족 段部의 치소는 요서(조백하 서쪽)지방이며 우북평은 계(薊)와 인접한 곳이다.
<계와 우북평 및 극성과 창려, 요동, 평곽의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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