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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8.23 차대제기

 

제의 휘는 <수성遂成>으로 <태조>의 동복아우이다.

 

용감하고 위엄 있어, 군권을 장악하고 세운 공도 많았지만,

성품이 음란하고 포악하였으며, 술을 좋아하였다.

 

<태조>를 위협하여 양위를 받아내어 제위에 올랐다.

 


 

 

차대제 원년 {AD146}, 병술

 

12월, <태조>의 명에 따라 정사를 도맡았다.  

 


이때  태조 <궁宮> 79세, <수성遂成> 76세, 尙后 <상천화> 43세,

태자 <백고> 26세, <목수례> 14세이다.
 

 

 

차대제 2년{AD147},정해

 

정월,< 송松>씨・<목穆>씨,<흘紇>씨・<우于>씨・<양陽>씨를 5방선후로 삼고,

그들이 있는 궁은 진기한 새와 기이한 꽃 그리고 옥과 채단으로 치장하여,

함께 즐기는 무리들의 자정(恣情){내키는 대로 놀아나는 장소}장소로 삼았고,

철따라 옮겨 다니며 머물렀다.  

 

<목도루>를 좌보로 삼았다.  

 

<상尙>후가 아들 <록騄>을 낳았다.  

 

 

차대제 3년 {AD148}, 무자

 

7월, 왜산(倭山)에서 사냥하였다.

 

<미유彌儒>・<어질箊疾>・<양신陽神>이 옥새{神璽}를 받아내라고 권고했다.  

 

<백고>가 <목도루>의 딸 <수례守禮>와 혼인하였다.  

 

평유원(平儒原)에서 사냥하다가 흰 여우를 쏘았는데 맞추질 못하여,

소리를 따라 갔더니만 찾을 수 없었다.

 

점치는 관리에게 물었더니

 

“요망하고 괴이한 일이며, 흉조입니다.

그러나 덕을 쌓으면 복으로 변합니다.”라고 답하였다.

 

이에 주(主)가 화를 버럭 내며

 

“흉사는 흉사고, 복은 복이다.

너는 어찌 어지러운 말을 해대는가!”라 말하고는,

 

그 점치는 관리를 죽여 버렸다.

 

주(主)는 스스로 지은 죄가 무거워 덕을 쌓을 수 없음을 알았기에,

뉘우치라 한 말에 해코지 한 것이었다.  

 

<두건梪健>의 아들 <산山>이 찾아와 흰 낙타를 바치니, <비裶>공주를 처로 주었다.


 

차대제 4년{AD149},기축

 

정월, <미유彌儒>를 좌보로, <어질箊疾>을 우보로 삼았다.  

 

 

4월 정묘일 그믐에 일식이 있었다.  

 

 

5월, 오성(五星)이 동방에 하늘에서 한데 모였다.

 

태사(太史)가 거짓으로 길조라 아뢰었더니, 주가 기뻐하였다.  

 

 

12월, 물이 얼지 않았다.

 

차대제 4년 기사는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의 차대왕 4년 기사와 일치한다.

오성취루 현상이 일어난 해이다.

 

 


 

차대제 5년{AD150},경인

 

<송기松奇>를 좌보로, <미유彌儒>를 우보로 삼았다.


 

 

차대제 6년{AD151},신묘

 

9월, 지진이 있었다.  

 

이전에, 상황(上皇)은 골천궁에 기거할 때

꿈에서 표범이 호랑이 꼬리를 물어뜯는 것을 보았었고,

 

<고복장>에게 물었더니,

 

아뢰길

 

“인군(人君)의 복과 화는 덕을 행하느냐에 있지 꿈에서 오지 않습니다.”

라고 하였었는데,

 

무당이 동류상잔(同類相殘)의 징조라 하여, 마음이 불안하고 즐겁지 않았었다.

 

주가 <상尙>후더러 상황(上皇)을 찾아가서 옥새를 달란다고 말하라고 시켰더니,

상황(上皇)이 꿈 이야기와 <고복장>과 점치는 이의 해몽을 이야기하였다.

 

이에 <상尙>후가 아뢰길

 

“<고복장>이 이미 깔끔하게 해몽하였습니다.

어찌 이간질하는 무당의 말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라 하였다.  

 

12월, 골천궁에서 어보를 받았다.


 

차대제 7년AD152}임진,

 

4월, 왜산(倭山)에서 사냥하며, 민간에서 차출된 많은 여인들을 희롱하여 욕보이니,

놀이를 돕던 일을 맡았던 <마정麻正>이 아뢰길

 

“<동명>께서는 세 가지의 사냥을 하셨는데,

그 하나는 천제를 지내기 위함이었고,

둘째는 군사훈련을 위함이었고,

셋째는 인격수양을 위함이었습니다.

 

농사철에 민간의 처와 딸들을 빼앗아 이와 같이 망령되게 희롱하심은

대경(代鏡)에 어긋나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더니,

 

주(主)가 노하여 주인에게 짖는 개라면서 쏘아 죽였다.  

 

<백면 白面>이 좌보, <상곡尙曲>은 우보가 되었다.

 

애초에 <백면白面>은 상황께 3대경(三代鏡) 그림 다섯 권을 바치고 나서

우보에 이르렀고,

인새옥편지도(釼璽玉鞭之圖)와 대무신(大武神) 이물회(利勿繪)를 바치고

좌보로 승차하였었다.

 

<백면이 골천궁에서 옥새를 새기던 때,

상황께 권고하여 아뢰길

 

“권력은 주고 옥새는 주지 않으면, 단지 화평하지 못하게 될 뿐이니,

옥새를 주어서 그들이 안심하게 함 만 같지 않을 것입니다.”라 하였더니,

 

상황은 그러겠다고 하였다 한다.

<수례守禮>가 금림원(錦林院)에서 딸을 낳았다.  

 

7월, <상>후의 아비 <상온>이 72살에 죽고,

다음날엔 <상곡>이 갑자기 겨우 46살에 죽었다.

 

두 사람 모두가 <상>후로 인하여 높은 자리를 빨리 얻고 재상에 오르게 된 까닭에,

다른 사람들의 우러름은 끊기고, 반대로 그들 집안이 부서짐을 반기었다.  

 

주는 인심을 수습하고자, <목도루>를 태보로 삼았으나,

<목도루>가 병을 이유로 출사하지 않았더니,< 고복장>을 우보로 삼았다.  

 

12월 그믐날에 <목도루>가 나이 79살에 죽자,

주는 <목도루>가 죽었다는 소리에 안심하였다.


 

차대제 8년{AD153}계사,

 

정월, <미유>를 태보로, <어질>을 좌보로,< 상잠>을 우보로,

<상번>을 중외대부로 삼았다.  

 

6월, 서리가 내렸다.  

 

<어질>이 <고복장>의 처를 빼앗으려고,

<고복장>이 상황에게 옥새를 <수성>에게 주지 말라고 청한 것을 참소하여

주살하였더니, 재산과 처첩 및 자식들이 흩어져 버렸다.

나라사람들이 이를 슬퍼하였다.

 

 

 

차대제 9년{AD154}갑오,

 

2월, <고복장>의 가노였던 의로운 사람이 <어질>을 길에서 칼질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죽음을 당했다.  

 

<색두>에서는 <두건>이 죽고, 아들 <산>이 섰다.


 

차대제 10년{AD155}을미,

 

정월, <상잠尙岑>이 죽었다.

 

동생 <상번岑蕃>이 우보 자리를 대신하고,<상잠>의 처 <미米>씨에게 장가들었다.  

 

4월, 주가 <태조>의 맏아들 <만륵萬勒>을 반란한 것으로 꾸며서 죽였더니,

<만륵>의 동생 <막덕莫德>은 화가 미칠까 두려워 피해 다니다가

힘이 겨워 들판에서 목매어 죽었다.

 

나라사람들이 통곡하였으나, 상황{태조}은 이를 몰랐다.  

 

5월, <수례>가 <남무男武>를 낳았다.

 

꿈에 황룡과 몸을 섞었다고 하였는데, 이는 <만륵萬勒>이었다 한다.





차대제 16년{AD161}신축,

 

칠월, <상尙>후가 아들 <맥>을 낳았다.  

 

 

차대제 17년{AD162}임인,

 

4월, 북부 대사자 <상번>이 들어와 좌보가 되고,

<백고>가 북부 대사자가 되어 나갔다.

 

그 시절 <어질>이 <미유>와 권력을 다투다가 <상번>을 맞아들였다.

 

<상번>은 기해년{AD159} 5월에 우보 자리를 <양신陽神>에게 내어주고

북부로 나가서 힘써서 인심을 수습하길 3년에, 칭송하는 소리가 자자했었다.

 

<어질>이 <상번>을 태보로 삼아서 인심에 부응하라고 권유했었는데,

 <미유>가 자리를 내놓지 않았으니, <어질>이 자리를 내놓게 되었었다.

 

사람들은 <어질>이 <미유>를 함정에 빠뜨리려 했다가

자신이 도리어 함정에 빠지게 되었다고 여겼었다.

 

당초에 주는 <백고>를 자신의 아들로 삼았었는데,

이제 와서는 <백고>를 상황의 아들이라고 하면서,

< 백고>를 해치고자 남몰래 사람을 보내 도모하게 하였다.  

 

주가 <수례守禮>{<伯固>비妃, <南武>母}를 강제로 욕보이고 궁인으로 만들었다.


 

차대제 18년{AD163}계묘,

 

 2월, <마정>이 맥부(貊部)의 사자가 되었다.

 

<상>후는, <마정>에게 밀명으로 <백고>를 보호하라 하였으며,

또한 <명림답부>를 연나궁(椽那宮)의 조의로 삼았다.  

 

3월, <상번>이 나이 61살로 죽었다.

 

<상번>은, 하인들을 매우 중히 여겼으며, <상>씨 집안에서는 기둥이 되었었으나,

역시 중도에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은 것이다.  

 

주는 <어질>이 싫어서 <양신>을 좌보로, <상경>을 우보로 삼았다.


 

 

차대제 19년{AD164}갑진,

 

2월, <수례>가 딸을 낳자, 주는 매우 기뻐하여 <존양尊陽>공주로 봉하였다.

 

<수례>에게는 장과 원 및 노비를 더하여 주더니,

<수례>를 찾는 일이 점차 빈번하여졌었다.

 

이때, <상>후는 찾아주는 횟수가 줄어들어 흰 구름만 바라볼 뿐이었다.

 

守禮專房遂成大事

 

<수례>는 <수성>을 독차지 하고 대단히도 섬겼다.

 

 



 

차대제 20년{AD165}을사,

 

정월, 그믐날에 일식이 있었다.

 

상황이 병이 들어서 <상>후가 찾아가 위로하였더니,

 

상황이 이르길

 

“나는 모후가 남기신 명에 따라 형제간에 옥좌를 전위하고, 당신도 그에게 양보하였소.

 

그런데 당신은 <수성>에게 빠져서 내 아들을 죽이고, <백고>도 내쫓았소.”라 하였다.

 

후는 울면서 아뢰길

 

“그것은 제 뜻이 아니었었습니다.”라 하였고,

 

상황은

 

“나는 죽어서도 당신을 지켜 볼 것이오.”라 하였더니,

 

후가 아뢰길

 

“제가 곧 <수성>을 죽여서 당신의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라 하였다.

 

이에 상황은 크게 기뻐하며, 다시금 후와 정을 나누고 생을 마쳤다.

 

때는 3월 초였고, 춘추 98세였다.

 

골천궁에 빈소를 차렸다.

 

10월, 유언에 따라 골천궁을 릉으로 만들었다.

 

<상>후는, 상황을 죽인 공신이 된 이후,

주의 총애를 회복하고는 간실표란(茛實膘卵)

{소의 갈비 살에 독초인 미나리아재비의 씨앗을 넣어 만든 경단}을 내었다.

 

주는, 독이 부족하여 죽지 않았으며, 갈래창{미륵창}을 집고 후를 해치려고 다가왔다.

 

<명림답부>가 이윽고 장막으로 들어와서 <수성>을 칼질하고 졸라서 죽이고는,

이를 숨기고 발상(發喪)하지 않은 채로 <어질>을 불러들여서,

<미유> 및 <양신>과 그 무리들 및 주의 심복 장사들 수십 명을 모조리 주살하였다.

 

열흘이나 걸려서 끝을 냈으며, 그런 연후에 <백고>를 맞아들여 즉위하게 하였다.

 

<상>후는, <어질>과 함께 주의 죄악을 열거하고,

상황{신명선황}이 남긴 조서에 따라 <수성>을 폐위시키며,

 

“신명선황께서는 악행을 뒷바라지 하지 말라 하셨소.

그런 까닭에 <수성>을 폐위시킨다.”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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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띨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