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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8.16 을전(乙旃)

 

동명 <전旃(BC74- )>황후는 곤연후 <송乙松>의 딸이며,

그 어미 <우희牛姬>는 <수제>의 천비이다.

 

성모와는 나이가 같았으며, 성모가 천후가 되던 해에

<오건奧犍(BC79-BC23)>의 처가 되었었으며,

<수제>의 승은을 입으니 <수제>께서 이르기를

 

“그대는 필시 매우 귀하게 될 것이야. <오건奧犍>의 처가 되려고 헛되이 하지 말게나."

라고 하였다.

 

<동명>께서 처음으로 구여에 당도하던 밤에 <건奧犍>이 잠자리에 천거하여

이후로 서로 얽히더니 버리지 않았다.

 

<건奧犍>이 이윽고 후로 삼아서 <동명>께 바쳐서

<훤>후와 성총받기 상하를 겨루더니, <소>후가 입궁함에 셋째 지위를 차지하였다.

 

갑신년{BC37} 5월에

상께서 <소>후의 어미 <류>태후를 높여서 천후를 삼는 바람에

천비(天妃)로 낮아져서 넷째 지위에 있게 되었으나,

성총을 잃지 않았으며 합방하기는 최고로 많았다.

 

상께서는 군병의 일로 피로하여도

후와 더불어서 합환하면 신기하게 상쾌하였던 까닭에,

항상 휘장막사를 따라다니면서

젊은 여인 같이 합환하여서 상을 위로함이 심히 많았다.

 

상께서 매번 칭찬하여 이르길

 

“그대는 콩과 좁쌀이니, 잠시라도 없어서는 아니 되겠소.

 

<소>와 <장>은 비록 예쁘다하나 약돌과 같으니 상용할 수는 없음이고,

여러 후들 중에서 연거푸 여러 번을 합방할 이는 오로지 그대와 <훤> 뿐이오.

 

<훤>은 단아하며 말끔한 벗이고,

그대는 야윈 몸을 보하여 주는 동무요."라고 하였다.

 

항상 같이 있으면 편안하고 연거푸 합환하여도 몸이 축나지 않더니,

피곤하고 좀 괴로울 때마다 잠시 후를 불러서 합환하면 그 증세가 말끔히 사라졌다.

 

상은 항상 후를 놀리기를

 

“그대는 내 온천이오."라고 한 것이 빈말이 아니었다.

 

을유년{BC36} 이래로 후궁들이 점차 늘어나서 매일 과로하심이 많았으나,

후와 합환하면 즉시 평온하여지는지라

오로지 후와 더불어서 매일 저녁 만나시길 거르지 않았다.

 

여러 후들 모두는 부러워하며

 

“<전乙旃>은 성모와 동갑이고

<을란乙蘭>의 친척인 까닭에 이와 같이 총애를 누린다."

라고 하면서도 그 방법은 알지를 못하고

“합환하되 따듯하고 달콤하게 화합하며 평온하게 하여서

상의 노고를 능히 치유한다."고 하였다.

 

이런 이유로 상께서 황금 수천 냥을 몰래 후에게 보내어

좋아하는 것을 마음대로 해보라고 하여도,

후는 오로지 상을 섬기는 것을 제일의 즐거움으로 하면서

선무(巫)와 도축(祝)하기를 즐기지 아니하며

자녀들을 위한 복을 구하지도 아니하였다.,

 

<오천奧天>이 오래도록 낮게 굴종하고

<오원奧媛>이 오래도록 승은을 입지 못하여도 아무런 말이 없었다.

 

후의 성품이 그럭저럭 후하여서 원만하였고 다른 사람들을 대함에

항상 화기로 가득하여 말이 빨라지고 당황해 하는 적이 없었다.

 

의복과 음식들은 담담하여 선인과 같았고,

옷은 그 안의 것을 따듯하게 하는 것들로 생각하여

성인을 기쁘게 하는 도리를 잃지 않았으니,

역시 목욕물 속의 수ㅅ원앙과 꼬리를 쪼는 거위라 할 만하였다.

 

후는 건강하고 후덕하며 자식들을 잘 낳아서,

<건奧犍>의 자식으로 <오원奧媛(BC58?- )>・<오천奧天(BC56?- )>・

<오곤奧坤(BC54?- )>・<오윤奧潤>・<오건奧乾>・<오진奧真>이 있으며,

제의 자식은 <오화奧花(BC38- )>공주・<전화旃花(BC35- )>공주・

<전旃(BC32- )>태자・<건화犍花(BC30?- )>공주・<을화乙花(BC28?- )>공주・

<송宋(BC26?- )>태자・<송화松花(BC24?- )>공주로 일곱이 있었다.

 

제께서 죽으니, 후의 춘추는 이미 쉰셋이었으나

용모는 아직 쇠하지 않고 어린아이처럼 유연하였다.

 

<소>후가 2세후가 되어서 방사를 독차지하고 상이 났음을 숨기고 알리지 않는 까닭에,

후가 빈궁에서 순사하려 하였더니,

새 임금{類利}이 껴안아 말리면서 <소>후의 침소로 끌어들여서

처음으로 승은을 입었고, <대방>후 역시 이날 밤에 승은을 입었더니.

모두가 이 시절의 세 천후이었다.

 

새 임금이 <전>후에게 말하여 이르길

 

“그대는 비록 나이는 많으나 부황(父皇)께서 내게 맡기셨으니,

설사 죽어서도 내 곁을 떠날 없음이오."라고 하였다.

 

후가

 

“첩은 대행을 섬기기 스물 두 해에 받은 은덕과 성총이 온통 스며 있어서

털끝 하나 살점 하나 대행의 것 아님이 없습니다.

비록 그 유명을 따라 다시금 폐하께 갚고자 하여도

몸이 늙었으니 어찌 해야 하는지요?"라고 하였다.

 

상이

 

“걱정하지 마세요. 그대는 나이가 들고 나는 젊었으니 서로 잘 맞을 것입니다.

 하물며 그대의 기혈이 아직 흘러넘쳐서 나로 하여금 능히 즐겁게 하였소이다.

 무슨, 늙었다는 말이시오?"라고 하였다.

 

이어서 곁에 머물러서 수차 합환하였더니,

짝이 잘 맞고 정이 깊어져서 점차 아름답고 묘한 지경에 이르렀다.

 

후는 아름다운 거문고 소리와 옅은 치장으로 교태를 부리면서

온통 헐떡여서 이윽고 상의 자식을 잉태하였다.

 

나이가 환갑을 넘어서도 도리어 상의 자식을 낳으면서 총애함이 식지 않았더니,

늙어서도 왕성함을 부러워하지 않는 후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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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띨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