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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11.01 위화진경(魏華眞經)(1)

 

 

金華朴達玉耶 淨修開祀
금화(金華)선인(仙人) <박달朴達>옥야(玉耶)는

몸을 깨끗히하여 가다듬고 사당 문을 연다.

 

높은 산에 오를 선()

()古字인 사람이 산 위에 있는 선()과 같이 사용한 글자이다.

 

옥야(玉耶)는 불교의 옥야경(玉耶經)에 나오는 아름다운 부인의 이름이다.

玉耶美人의 불교식 용어이다.

뒤에 <위화魏華> 옥야 이야기가 나온다.

 

 

風雲九天飛車 日月萬古長燈

바람과 구름은 구천(九天)을 나는 수레요

해와 달은 만고(萬古)의 긴 등불이라.

 

與人之道呼吸 風月馳聘雲日

사람과 더불어 함께 호흡하는 도(道)이니

바람과 달은 구름과 해를 뒤쫓아 마중하노라


 

풍운구천비거(風雲九天飛車) 일월만고장등(日月萬古長燈)

여인지도호흡(與人之道呼吸) 풍월치빙운일(風月馳聘雲日)

 

위화진경의 서두(書頭) 위 두 구절은 화랑도의 전신(前身)인

풍월도(風月道)를 수레와 등불에 비유하여 가장 잘 나타낸 글이다.

 

구천을 나는 수레는 공간의 개념이고 만고의 긴 등불은 시간의 개념이다.

 

풍월도는 天地人 三才와 神仙사상을 담고 있다.

 

바람과 구름을 타고 천공(天空)중에서 해와 달을 마중나가는 신선의 모습...

 

사당 안에는 이러한 신선도가 그려져 있지 않았을까?

 

주역(周易)에서 바람과 구름은 하늘(해)과 땅(달)의 은택이다.

 

구름은 땅의 수증기가 하늘로 올라가 생명수를 내려 주고, 

바람은 하늘의 기운이 땅으로 내려와 만물을 생장수장(生長收藏)한다.


 

昔熙昊之世 白馬天降 聖人造那

옛날 밝고 광대하던 시절에 백마(白馬)가 하늘에서 내려오니

성인(聖人)께서 나라를 세우셨도다.

 

파소=선도성모(혁서거=천신) - 혁거세=일광(BC5?-66?)

 

김부식이 삼국사를 편찬하면서 신라를 수위(首位)에 올리기 위하여

기년을 1갑자 정도 끌어 올려 18대 실성왕 이전의 삼국사기 기년은

맞지 않는 것이다.

 

혁거세가 나라를 세운 해는 BC57년이 아닌 AD 8년이다.

 

 

天神地仙相繼 而起德洽于上 樂腴於下

천신(天神)과 지선(地仙)이 잇달아 일어나,

위로는 덕(德)이 흡족하고 아래로는 즐거움이 풍성하였다.

 

歲和年豊國泰民安 舞袖遍山頌歌連天

시절은 화목하고 해마다 풍년이 들었고, 나라는 태평하고 백성은 편안하여,

춤추는 옷소매가 산에 가득하고, 기리는 노래 소리가 하늘에 잇닿았다. 

 

傳維朴昔金一體之心 風是康燕魏三代之目

다만 박(朴), 석(昔), 김(金)이 한 몸이 되어 마음을 전하니

풍월도(風月道)는 강(康), 연(燕), 위(魏) 삼대(三代)의 요목(目)이라.

 

신라는 神國의 나라이고 二聖의 나라로 모계를 중심으로 골품을 중히 여긴 나라이다.

혁명을 통하여 , , 이 왕위를 찬탈한 것이 아니라

二聖 중 여왕이 남왕 보다 권력이 높아 여왕의 副君이 되어 왕위를 계승하거나

여왕의 사위나 아들인 , , 이 왕위를 계승한 것이다.

 

, , 이라는 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 한 후

<혁거세>의 후손을 씨로 <탈해>의 후손을 씨로

<알지=세한>의 후손을 씨로 을 삼은 것이며

백성은 이 없었으며 공경대부들 중 나라에 큰 공을 세우면

가 특별히 을 하사하였으며

일반 백성은 고려 중엽 이후가 되어서야 족보를 만들어 을 사용하였다.

 

, , 삼대(三代)<탈해>의 아들인 <강조康造>, <포공>의 아들인 연공(燕公),

<염신>의 아들인 위화(魏花) 삼대(三代)를 말하는 것인가?

 

 

 

解脫上化之妙 遁甲開山之奧 盡在于此 天秘地(藏)可以忍之實

해탈하여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신묘함과

둔갑하여 선을 개창하는 오묘함이 여기에 빠짐없이 담겨있어

하늘이 숨기고 땅이 감추니 가히 인내의 결실이라.

 

興緣之寶大覺之珍 凡我郞徒潛心玩哉

큰 인연의 보배요 큰 깨달음의 보물이니

무릇 우리 낭도(郎徒)들은 마음속에 채워 담아 갖고 놀 것이로다.

 

 

傳曰達門大母生許婁曷文之子許乙是爲乙公

전(傳)에 말한다.

<달문達門(97-171)>대모(大母)가 <허루許婁(80-155)> 갈문왕의 아들

<허을許乙(131-176)>을 낳으니 이가 을공(乙公)이다.

 

대노(구을) - 허루(80-155)

탈해(장씨) - 달문(97-171)

허루(달문) - 허을(131-176)

 

허루는 탈해왕(46-130 4대왕 재위 107-125)>의 사위이고 

허을(을공)은 탈해의 외손자이다.

 

神仙得道與屈公吉公齊名當世

신선(神仙)을 좋아하여 득도하고

<굴공屈公>, <길공吉公>과 더불어 당세에 이름을 나란히 하였다.

 

심공(구을) - 굴공(66-141)

윤공(흘고) - 길공(113 - 170?)

 

길공은 파사왕 32년(157년)에 골문 각간이 되었다.

 

흘고대모기를 보면 길공은 113년생이다.

 

굴공은 66丙寅년생으로 호랑이 띠이고, 길공은 113癸丑년생으로 소 띠이다.

 

파사왕 16년(141) 3월

仙老屈公薨 以角干禮葬之 屈公者心公之子也 性淸閑 好神仙

壽至七十六 及其仙化 身體如玉 人多奇之

 

선노(仙老) <굴공屈公>이 죽어 각간례로 장사를 지냈다.

<굴공>은 <심공心公>의 아들인데, 성품이 청명하고 여유로우며 신선을 좋아하였다.

수명이 76세에 이르러 선화(仙化 : 신선의 죽음)하니

신체가 마치 옥(玉)과 같아서 많은 사람이 이를 기이하게 여겼다. 

 

 

屈公騎虎故其徒稱虎徒奉鳳凰大母

<굴공屈公>은 호랑이를 타고 다닌 까닭에 그 낭도(徒)를 칭하여 호도(虎徒)라 했으며

<봉황鳳凰> 대모를 받들었다.

 

吉公騎牛故其徒稱牛徒奉紇古大母

<길공吉公>은 소를 타고 다닌 까닭에 그 낭도(徒)를 칭하여 우도(牛徒)라 했으며

<흘고紇古> 대모를 받들었다.

 

탈해(금당) - 흘고(89- )

 

흘고는 탈해의 딸이며 89년 기축년 생으로 소띠이다. 

 

흘고는 14살(102년)에 유리왕(46-107, 3대왕 재위 84-106>의 후궁이 되었다.

 

乙公騎白羊故徒爲羊徒奉金剛大母 是爲古三徒

을공(乙公)은 백양을 타고 다닌 까닭에 그 낭도(徒)를 칭하여 양도(羊徒)라 했으며

<금강金剛> 대모를 받들었다.

 

이를 고삼도(古三徒)라 한다.

 

을공은 131辛未년생으로 양띠이다.

 

신라의 풍월도는 고삼도(古三徒)<굴공>, <길공>, <을공>으로부터 시작되어

<위화>가 화랑인 된 후 지방 호족에 분산된 모든 낭도를 통합하여

법흥왕 이후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구축한 것이 삼국통일의 기반이 된 것이다.


 

黑齒之徒奉道生大母爲鷄徒

<흑치黑齒>의 낭도(徒)는 <도생道生> 대모를 받들어 계도(鷄徒)가 되고,

 

유리(아리) - 파사(90-158, 5대왕 재위 126-158)

허루(?) - 사성(100?-173)

파사(사성) - 도생(121-174)

?(조호) - 흑치(133-186)

 

도생은 121辛酉년생으로 닭띠이고 흑치는 133년 癸酉년생으로 닭띠이다.

 

도생은 지마(131-191)의 누나로 백계성모로 불리었으며

도생의 딸 복생(155- )은 적계성모로 불리었고 

도생은 파사, 허루, 마제를 섬기다 159년 마제가 죽자 흑치의 처가 되어

세 상둥이를 낳다 174년에 54세의  나이에 죽었다.

 

 

木我之徒奉阿世大母爲狗徒

<목아木我>의 낭도(徒)는 <아세阿世> 대모를 받들어 구도(狗徒)가 되고,

 

일광(알영) - 차웅 남해왕(28?-84, 2대왕 재위 66-83)

천신(월지) - 운제(26?-108)

차웅(운제) - 아세(74- )

 

아세는 남해왕 차웅의 딸이며 74甲戌년생으로 개띠이다.

 

<목아>는 <아세>의 私臣이다.

 

지마왕 23년(181) 4월

初阿世大母有私臣木我者 不知何許人也

其根肥大 沈沈有味 阿世藏于密室 而好之

日知大王聞而惡之 遂焚于川上 自後有大蚊生于川

上多害人 命卜之 則木我之化也

乃配阿世 而作祠 而祭之 蚊自不見 而雨調 年豊 

 

처음에 <아세阿世>대모(大母)에게 <목아木我>라는 사신(私臣)이 있었는데,

어찌 받아 들인 사람인지 알지 못한다.

<목아>의 성기가 크고 왕성하여 맛이 있어,

<아세>가 밀실에 감추어 두고 좋아하였다.

<일지日知(85?-129)>대왕이 그 소리를 듣고 더럽다하여,

문천 위에서 태워 죽이기에 이르렀다.

<목아>를 죽인 후로부터 하천에 왕모기가 생겼다.

왕이 사람에게 해로움이 많으므로 점을 치도록 명한 즉 

<목아>가 화생한 것이라고 하였다.

이에 <아세>와 짝 지워 사당을 짓게 하고 제사지내게 하였다.

이 때부터 모기가 보이지 않고, 비가 고르게 와서 해마다 풍년이 들었다.



 

突山之徒奉玉帽聖母爲馬徒 爲後三徒

<돌산突山>의 낭도(徒)는 <옥모玉帽> 성모를 받들어 마도(馬徒)가 되니

이를 후삼도(後三徒)라 한다.

 

소벌(형산) - 돌산

욱보(호례) - 구도(218-301)

묘덕(초운) - 운모(208?- )

구도(운모) - 옥모(238-311)

 

옥모는 238戊午년생으로 말띠이다.

 

조분왕 7년(298)

五月 西巡撫恤 玉帽太后率馬徒 行突山大祭

 

5월 서쪽을 돌아다니며, 어루만지고 구휼하였다.

<옥모玉帽>태후가 마도(馬徒)를 거느리고 돌산대제(突山大祭)를 행하였다.



 

羊徒有奉阿惠聖母者與後三徒爲四友

양도(羊徒)는 <아혜阿惠> 성모를 받든 적이 있어서 후삼도와 더불어 네벗이 되었다.

 

탈해(운제) - 아혜(83-136)

 

아혜는 83癸未년생으로 양띠이다.


 

金剛之徒 多不振 唯有城東及召文

<금강金剛>의 낭도는 다소 부진하여 오직 성동(城東)과 소문(召文)만을 차지했다.

 

乙公子 山乙是爲山公

을공(乙公)의 아들을 <산을山乙(170-245)>이라하니 이가 산공(山公)이다.

 

허을(반화) - 산을(170-245) 

 

<반화盤花(157-248)><반산盤山>의 딸이다.

 

<반산盤山>은 <길공吉公(113-170?)>, <족공足公(120?-180>,

<을공乙公(131-176)>, <흑치黑齒(133-186)>등이

모두 스승으로 섬긴 성인(聖人)이다.

 

 

아달라왕 16(AD.228)

 

正月 召文妙德王殂

紅鳳碧海黃雲暖玉宝雲牧丹妙雲好蛙 八世主爭立 國中大亂

女主楚雲請救 乃命山乙率仙徒二千人 與盤述入召文

靖其亂立 楚雲子妙楚爲王 以山乙爲召文監國

山乙善占風雲 知人邪正 皓鬚過膝 召文人奉之 爲廟王 世稱乙公者是也

 

정월 소문(召文) <묘덕妙德>왕이 죽었다.

<홍봉紅鳳>, <벽해碧海>, <황운黃雲>, <난옥暖玉>, <보운宝雲>, <목단牧丹>,

<묘운妙雲>, <호와好蛙> 8세주(世主)가 왕위를 다투었다.

나라 안에 대란이 있어났다.

여주(女主) <초운楚雲>이 구원을 청하였다.

이에 <산을山乙>에게 명하여

선도(仙徒) 2000명을 이끌도록 하여 <반술盤述>과 함께 소문으로 들어갔다.

그 난리를 평정하고, <초운妙雲>의 아들 <묘초妙楚>를 세워 왕으로 삼았다.

<산을>을 소문 감국(監國)으로 하였다.

<산을>은 바람과 구름의 점을 잘 쳤고,

사람들의 그릇됨과 바름을 알았으며, 흰 수염이 무릎을 넘었다.

소문 사람들이 받들어 묘왕(廟王)으로 삼았다.

세칭(世稱) 을공(乙公)이라는 사람이다.

 

乙公許乙이고 山乙山公이라고 불렀다.

 

 

出守召文 世娶牧丹女 生子傳于

소문(召文)에 나가 지키며

대대로 <목단牧丹>의 딸에게 장가들어 아들을 낳아 칸(干)을 전했다.

 

목단은 아달라16년(228)에 소문왕 묘덕이 죽자 소문 8世主 중 1명이 되었다. 

 

山之子曰牛乙 牛之子曰燕乙 燕之子曰久乙 久之子曰水乙 水之子曰用乙

皆有祖風能傳舊道

<산을山乙>의 아들은 <우을牛乙>이고, <우을牛乙>의 아들은 <연을燕乙>고,

<연을燕乙>의 아들은 <구을久乙>이고, <구을久乙>의 아들은 <수을水乙>이고,

<수을水乙>의 아들은 <용을用乙>이라하니

모두 조상의 풍모를 가져서 능히 옛 도(道)를 전하였다.

 

산을(족화) - 우을(묘연) - 연을(?) - 구을(수단) - 수을(용단) - 용을(310? - )

 

時阿凰大母 尊奉乙公

때에 <아황阿凰> 대모(大母)가 을공(乙公)을 받들어 모셨다.

 

아황(317? - )은 13대 미추왕(292-362 재위 325-349)의 후궁이다.

 

用乙每入朝必拜阿凰設場于宅賓禮甚崇

<용을用乙>이 매번 입조할 때마다 <아황阿凰>을 배알하니

<아황阿凰>은 자택에 자리를 베풀어 대접하는 예(禮)가 매우 융숭했다.

 

宅婢粉兒 夢見白馬 侍用公生子 長大魁傑 阿凰名之曰 長大郞 

택비(宅婢) <분아粉兒>가 꿈에 백마(白馬)를 보고는

용공(用公)을 모셔서 아들을 낳았는데 몸집이 크고 재주가 뛰어났으므로

<아황阿凰>이 그를 <장대長大>랑이라 이름하였다.

 

용을(분아) - 장대(330?-405)

 

 

長屬衙門 骨微不展 自投羊徒 爲衆所推 善弓馬有膽力

장성해서는 위문(衛門)에 소속하였다.

골품이 미천하여 떨치지 못하자 스스로 양도(羊徒)에 투신하였는데

궁마(弓馬)를 잘하고 담력이 있어 무리들에게 추대된바 되었다.

 

時朝廷憂西北 欲以將才代用公

때에 조정은 서북면을 근심하여 용공(用公)으로써 장재(將材)를 대신하려 했다.

 

公憂之 乃謁阿凰而歎曰 世祿絶於臣

용공(用公)이 이를 근심하여 마침내 <아황阿凰>을 알현하고 탄식하여 말했다.

“세록(世祿)이 신(臣)에서 끊어집니다.”

 

阿凰憐之 乃召其女蝶凰計之

<아황阿凰>이 그를 딱하게 여기고

 

이에 그 딸 <접황蝶凰>을 불러서 그를 위해 계책을 내게 했다.

 

蝶凰有寵于帝得 專房事 乃以枕席之間告于帝曰

用乙世襲之臣 不可以汰 其子長大郞有將才 可以代之 帝許之

<접황蝶凰>은 제(帝)에게 총애가 있어 방사(房事)를 오로지 하였으므로

마침내 침석(寢席)하는 기회에 제(帝)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용을用乙>은 세습의 신하이니 내버려두어서는 안 됩니다.

그 아들 <장대長大>랑은 장수의 재주를 갖고 있으니 그를 대신할 수 있을 것입니다.”

라고 하니 제(帝)는 이를 허락하였다.

 

미추(아황) - 접황(332?-399)

 

<접황>은 <미추>와 <아황>의 딸로서 <기림>왕 4년(367년)에 품주에 올랐다.

 

羊徒乃盛飾以西召門 骨老以郎骨微 不肯配世主

양도(羊徒)가 이에 소문(召文)으로서 서쪽을  성대히 장식하려하자

소문(召文)의 골노(骨老)들은 <장대長大>랑의 골품이 미천함으로 해서

<접황蝶凰>의 배필이 되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主曰 當此危急之時 賢人最貴 安問骨品

之子 天帝之詔 敢不奉乎

<접황蝶凰>이 말했다.

“마땅히 이 위급한 시기에는 현인(賢人)이 가장 존귀하니

어찌 골품을 묻겠는가?

전(前) 칸(干)의 아들이요 천제(天帝)의 조칙인데 감히 받들지 않을 것인가?”

 

上老曰 臣等老且死矣 惟願報主 主若好新 敢有異

상로(上老)등이 말하기를

“신(臣)등은 늙었으니 또한 죽어야 합니다.

다만 세주께 보답하기를 원할 따름이오니 만약 세주께서 새 사람이 좋으시다면

감히 딴 말이 있겠습니까?” 

 

乃以十燭 迎于逢山 婚於樹王

이에 10촉(燭)을 밝혀 봉산(逢山)에서 맞이하고 수왕(樹王) 아래서 혼인(婚)하였다.

 

是夜 瑞光繞床 天樂下空

이 밤에 상서로운 빛이 침상(床)을 감돌았으며 하늘의 음악이 허공을 타고 내려왔다.

 

昏臣奏曰 必生貴子 

혼신(臣)이 아뢰기를

“반드시 귀한 자식을 낳을 것입니다.”하였다.

 

世主果夢 靑牛口摘樹王之碩果 以授之口受 而呑之 異香滿腹

세주(世主)가 과연 꿈을 꾸었는데

푸른소(靑牛)가 수왕(樹王)의 큰 열매를 입으로 따서 주므로 입으로 받아 삼켰더니

기이한 향내가 뱃속에 가득 차는 것이었다.

 

覺之見歡 而生子 名曰裵實郞

깨어나서 합환을 치르고 아들을 낳게 되자 <배실裵實>랑이라 이름하였다.

 

장대(접황) - 배실(347?- ) 

 

性豪宕 好施人 能屈己而下士

<배실裵實>랑은 성품이 호탕하고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며

능히 자신을 굽혀서 아랫사람(下士)을 대할 수 있었다.

 

欲遊京華 而交英雄 時羊徒以猪君爲頭

번화한 경도(京都)에 노닐면서 영웅(英雄)과 교제코자 했는데

당시 양도(羊徒)는 <저군猪君>을 우두머리로 삼고 있었다.

 

猪君 粉兒後夫之生也

<저군猪君>은 <분아粉兒>의 후남편의 소생이다.

 

長公在京時生三女 長曰羊兒爲猪君次曰翟兒侍世己公 季曰亥兒侍忽明公

<장대長大>공이 서울에 있었을 때 딸 셋을 낳았는데

장녀는 <양아羊兒>라 하며 <저군猪君>의 처가 되었고,

차녀는 <적아翟兒>라 하며 <세기世己(335-391)>공을 모셨고,

막내는 <해아亥兒>라 하며 <홀명忽明(341-412)>공을 모셨다.

 

 

조분(아소례) - 유례(306-367) 14대왕

미추(선례) - 선추(317-408)

서해(양기) - 양부(294-356)

우로(달례) - 줄례(321-387)

?(분아) - 저군(335?- )

유례(선추) - 세기(335-391)

양부(줄례) - 홀명(341-412)

장대(접황) - 양아(352?- )

                  적아(354?- )

                  해아(356?- )

 

粉兒尙無恙

<분아粉兒>는 오히려 별 탈 없이 건강하게 지냈다.

 

長公乃授弓馬 以送之 邸于猪君 

<장대長大>공이 이에 활과 말을 주어서 <배실裵實>랑을 보내어

<저군猪君>의 집에 묵게 했다.

 

猪君好俠義 善御衆 羊兒亦能與徒甘苦 且有達行 徒稱姐娘

<저군猪君>은 의협심이 있고 무리들을 잘 이끌었는데

<양아羊兒> 역시 능히 낭도(徒)들과 더불어 고락을 같이하며

또한 행실이 통달하여 낭도들이 저낭(姐娘)이라 칭했다.

 

東無品女皆從之 獨一奾子不從 自稱白羊神 呼羊兒以黃羊奾

성동(東)의 골품이 없는 여자들이 모두 그녀를 따랐으나

홀로 한 선자(奾子)만이 따르지 않고 스스로 백양신(白羊神)이라 칭하며

<양아羊兒>를 황양선(黃羊奾)이라 불렀다.

 

猪君怒將辱之羊兒曰

吾聞聖人之生 必有祥德 白羊之年 明活山神池復湧 是彼有其祥

<저군猪君>이 노하여 욕보이려하자 <양아羊兒>가 말하기를

“제가 듣건대 성인(聖人)의 태어남에는 반드시 상서로운 덕을 갖는다고 합니다.

백양(白羊)의 해에 명활산(明活山)의 신지(神池)가 다시 솟아올랐는데

저 이가 바로 그 상서로움을 가졌습니다." 

 

雖窮不鳩財於衆曰 不忍割貧 而自榮者 仁也

비록 궁핍하나 무리에게 재물을 모으지 않으며 말하기를

“ 참을 수 없이 가난해도 스스로 영화롭게 여기는 자는 어질(仁)다”


 

勸之嫁曰 以君之美侍 于高門 則富貴立至

사람들이 그녀에게 시집가기를 권하며 말하기를

“그대의 아름다움으로 높은 가문에서 섬기면 부귀가 선 채로 오리라.”하니

 

奾子曰 道惟所居富貴 不可淫者智也 不以老少美醜揀之 許其悅之者勇也

仁智且勇彼有其德也 我無有矣 君爲吾夫不能敎我 以道反辱聖人不亦恥乎

선자가 말하기를

“도는 오직 부귀하게 살 수 있으나 음란할 수 없는 것이 지(智)요,

늙은이나 젊은이나 아름답거나 추한 것으로 택하지 않고

그를 즐겁게 허용하는 것이 용(勇)이다라고 하며

인자함과 지혜와 또한 용기와 덕을 너는 가지고 있으나 나는 못 가졌노라!

그대는 내 남편이 되어서 도(道)로써 나를 가르치지 못하고

도리어 성인(聖人)을 욕하니 부끄럽지도 않은가?”

 

猪君乃謝 使裵實郞往見之

<저군猪君>이 이에 사과하고 <배실裵實>랑으로 하여금 가서 그를 만나게 하였다.

 

至其門 亂麥成堆 入其堂 破瓢雜錯 奾子 腰着短裙偃 臥不起

그 집 문전에 이르자 보리가 어지럽게 쌓여있고

당(堂)에 들어서자 깨진 박(瓢)이 나뒹굴어 난잡하였는데

선자(奾子)는 허리에 짧은 치마를 걸치고 드러누운 채 일어나지 않았다.

 

郎拜曰 聞奾高風 而來 願惠德音

<배실>랑이 절하며 말했다.

“선자(奾子)의 높은 풍월도(風月道)를 듣고서 왔으니 

바라건대 덕음(德音)을 베푸소서.”

 

奾子微笑擧足以加肩曰 我有月事 郎可換?

선자는 미소를 짓고 다리를 들어 랑의 어깨에 걸치며 말했다.

“내가 월사(月事)가 있으니 랑(郞)은 기저귀를 갈아야 할 것이다.”

 

郎不厭其腥汚 而換之

<배실>랑은 그 비린내와 더러움을 꺼려하지 않고 그것을 갈아주었다.

 

奾子曰 郎君遠來愛我無可以飯 且可與我舂麥乎

선자가 말했다.

“낭군(郞君)이 멀리서 와서 나를 아끼는데 밥이 없을 수 없으니

또한 나와 더불어 보리를 찧겠는가?”

 

郎諾之下庭對舂手脫而麥不脫奾子頽臥藁上曰

我無好夫常飢不堪舂誰能惠我一斤肉乎

<배실>랑이 응낙하고 뜰로 내려가서 절구에 넣고 껍질을 벗기려 하였으나

보리가 채 벗겨지지 않았는데 선자가 짚단 위에 쓰러져 누우며 말했다.

“나는 좋은 남편이 없어서 늘 굶주려 절구질을 감당할 수 없으니

누가 능히 나에게 한 근의 고기를 베풀겠는가?”

 

郎出門見肉舖 問價皆値百金 乃解所佩宝刀以換之

<배실>랑이 문을 나와서 푸줏간(肉舖)을 발견하고는

고기 값을 묻자 모두가 백금(百金) 가격이었으므로

이에 차고 있던 보도(寶刀)를 풀어서 고기와 바꾸었다.

 

歸見 奾子與醜丈 天歡于藁上 不忍見 而尋常 入厨烹 而進之

돌아와 보니 선자가 추하게 생긴 장부(丈夫)와 더불어 짚단 위에서 합환하는데

차마 못 볼 광경이었으나 <배실>랑은 예사롭고 생각하고

부엌에 들어가 고기를 삶아서 내어갔다.

 

奾子與醜盡食之腹脹 而瀉矢水濺衣臭氣難聞 而郎晏然扶護奾子

선자가 추장부와 더불어 고기를 남김없이 먹고는 배가 부르자

똥물을 싸서 옷에 뿌리니 냄새도 맡기 어려웠으나

<배실>랑은 태연히 선자를 부축하며 간호했다.

 

乃吐其食唾泥胆水完如膿汁

마침내 그 먹은 것을 토하니 토해낸 물이 완연히 고름즙과도 같았다.

 

命郎食之郎少無難色而食之

<배실>랑에게 그것을 먹도록 명하자

<배실>랑은 조금도 어려운 기색이 없이 그것을 핥아먹었다.

 

 

醜怒謂郎曰 汝必通吾婦甘其吐也 

추장부가 노하여 <배실>랑에게 말하기를

“네가 필시 내 아내와 통정했기에 그 토한 것을 달게 먹는 것이다."

 

欲倒懸以詰之郎正色曰 君子惟以道交 豈爲色乎

그를 거꾸로 매달고 힐문하려하자 <배실>랑이 정색하며 말했다.

“군자는 오직 도(道)로써 사귈 뿐이니 어찌 색(色)을 하리오?”

 

 

醜以爲僞 而將以脯之 霜刃過腹 而不動

추장부가 거짓이라 하며 장차 그의 포(脯)를 뜨려고 시퍼런 칼날이 배를 지나갔으나

<배실>랑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奾子仰天大笑 醜丈夫隨風 而倒 乃一蜀秦稈也

선자(奾子)가 앙천대소하고 추장부는 바람을 따라 쓰러지는데 보니

그것은 곧 한줄기의 수수깡이었다.

 

郎方知其神 而請爲弟子奾子曰

神仙之道惟在乎養眞 今看郎君眞氣已成非妾所可及也

妾與郎君有夫婦之緣今夕當之

<배실>랑이 바야흐로 그 신통함을 알고 제자가 될 것을 청하자 선자가 말하였다.

“신선(神仙)의 도는 오직 진(眞)을 기르는데 있을 뿐입니다.

지금 낭군을 보니 이미 진기(眞氣)가 이루어져 첩이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

첩이 낭군과 부부의 연을 맺는 것은 이 밤이 마땅합니다.” 라고 하였다.

 

乃出其珍味待之人間所無也

마침내 그 진미(珍味)를 차려내어 대접하니 이는 인간 세상에 없는 것이었다.

 

 

徹夜膠漆到曉而醒 奾子已無去處 只一空枕而已

밤을 새워 두터운 정을 나누고 새벽에 이르러서 깨어보니

선자는 이미 간데없고 다만 빈 베개 하나만이 덩그러니 있을 따름이었다.

 

郎怳惚自失 息見壁上題詩曰

<배실>랑이 황홀하여 망연자실하고 있는데

문득 벽을 보니 시(詩) 한 수가 있어 가로되

 

風吹天上雨 更作人間雲

散合本無常 何時再見君

바람 불어 하늘 위의 비를 뿌리니
다시 인간세상에 구름이 일어나네
모이고 흩어짐이 본래 무상하거니
어느 때나 그대를 다시 보려나.

 

愴然而歸過 昨日之肉舖 乃一瓜架也

<배실>랑이 몹씨 슬픈 마음으로 돌아가며 어제의 푸줏간을 보니

곧 하나의 오이 시렁이었다.

 

宝刀尙在架上 所濺矢水皆成紫金花紋

보도(寶刀)는 오히려 시렁위에 있었고,

똥물을 흩뿌렸던 곳은 모두 자금화(紫金花)의 무늬를 이루고 있었다.

 

羊兒謂郎曰 奾子婚汝而別者勉汝學也 京中多上仙 汝可就學而待也

<양아羊兒>가 <배실>랑에게 일러 말했다.

“선자가 오라비와 얼우고 떠난 것은 오라비가 학문에 힘쓰도록 함입니다.

경도 안에 상선(上仙)들이 많으니

오라비는 가히 취학(就學)하며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乃詣世己公受業

이에 <세기世己(335-391)>공에게 나아가 수업(受業)하였다.

 

公理方以郎爲舍知 有善政超授大舍 務省形政

<세기世己>공은 이방(理方)으로써 <배실>랑을 사지(舍知)로 삼았는데

잘 다스리자 차례를 뛰어넘어 대사(大舍)를 제수하고

힘써 형정(刑政)을 보살피게 하였다.

 

 

사지(舍知)는 13등급, 대사(大舍)는 12등급으로 황색 공복을 입었다. 

 

 

※ 흘해 2년(371) 6월,

 

<현운玄雲>에게 명하여 명활산(明活山)에서 백양제(白羊祭)를 행하도록 하였다.

 

때에 성동(城東)의 세민(細民:비천하고 가난한 백성)들이 허다히 백양신(白羊神)을

받들었는데 의(義)를 숭상하여 무리(徒)를 지으매 그 수가 심히 많았다.

 

저군(猪君)을 우두머리로 삼아 성대하게 말(盛言)하기를

“백양신이 강림하여 나라를 지킨다.”하고

다시 “제(帝)는 소이고 후(后)는 양이다(帝牛而后羊?)”하며

집집마다 광명(323-392)후(后)의 상(象)을 받들어 조석으로 그를 경배하였다.

 

후(后)가 (소문을) 듣고 그를 기이하게 여겨 세기(世己)에게 말하였다.

 

“성동(城東)의 양도(羊徒)는 대다수가 곧 빈민(細民)들인데

의(義)로써 서로 격려하여 각기 그 업(業)에 안주하며

짐의 몸(朕躬)에 충성하여 조석으로 상(象)에 절을 하니

비록 여느 선문(仙門)이라 해도 이 무리(輩)에는 미치지 못한다.

 

너 또한 양도(羊徒)인데 어찌 이 무리(衆)를 돌보아 돕지 않는가?”

 

세기(世己)가 말했다.

 

“신(臣) 또한 그 (소문)을 듣고 그 우두머리 저군(猪君)이란 자를 불러

의의(義)를 물었는데 자못 선도(仙道)를 알았습니다.

 

그 어미 분아(粉兒)란 자는 마선(馬先)의 서자 마아(馬兒)의 딸입니다.

 

그 골품이 비록 미미하나 이처럼 되어 오게한 사람이니 포상이 없을 수 없으나

신(臣)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까닭에 감히 아직 (못하였습니다.)”

 

후(后)가 말했다.

 

“이 무리(徒)는 가히 병관(兵官)에 속하게 함으로써 군려(軍旅)에 기용함이 가하리라.”

 

세기(世己)가 말하기를

 

“신(臣)의 뜻은 저군(猪君)을 신하로 삼아 관리(官吏)에 소속시키고

이방(理方)에 들이어 먼저 민속(民俗)을 바로잡도록 하고자 합니다.”하니

 

후(后)가 이를 허락하였다.

 

이에 저군(猪君)을 이방(理方) 사지(舍知)로 삼고 그대로 대제(大祭)를 행하였다.

 

 

 

371년은 백양(白羊)의 해이다.

 

신라는 신국(神國)의 나라이고 여왕의 나라이다.

 

<광명光明(323-392)>은 <조분>과 <아이혜>의 딸로서 미추왕(292-362)의 후가 되어

유례, 기림, 흘해,내물왕을 세우고 다섯 왕으로 부터 21명의 자녀를 두었으며

그녀의 딸 <보반(362-428)>은 실성(359-417)의 후가 된다.

 

 

삼국사기는 402년에 실성왕이 283년에 죽은 미추왕의 딸을 후로 하였다고 한다.

 

<미추>는 <구도>와 <술례> 사이에서 292년에 태어나 362년에 죽었다. 

 

<보반>은 360년에 <미추>와 <광명> 사이에서 태어났다.

 

360년에 태어난 <보반>을 삼국사기는 283년생으로 만들어

44세의 실성왕이 120세의 <보반>을 후로  삼은 것으로 하였으니

삼국사기 이 자체의 모순을 아직도 믿고 있는 우리의 사학자들이 한심할 뿐이다.

 

<45. 신라 건국년도 BC57년은 김부식의 뻥이다. 참조>

http://elfqkr.tistory.com/4551

 

 

※ 참고 <신라의 관등>

 

 

 

 

黃牛之春 

황우(黃牛){389년}의 봄.

 

17대 내물왕(350-402, 재위 377-401) 13년이다.

 

 

都大疫死者相繼 有一乞女施符則療

경도(京都)에 크게 역병이 돌아 죽는 자가 꼬리를 물었는데

한 걸인 여자(乞女)가 있어 부적(符)을 베풀면 병이 나았다.

 

都中士女爭赴如雲爲之作堂奉之

경도 안의 사녀(士女)들이 앞 다퉈서 구름처럼 몰려들어

그를 위해 당(堂)을 짓고 받들어 모셨다.

 

諸巫妬之 强引乞女 至明活池逼入水曰

昔金剛大母以盛冬浴池 汝若金剛之神可速入之

여러 무녀들이 그를 질투하여 강제로 걸녀(乞女)를 끌고가

명활지(明活池)에 이르자 물에 들어가도록 핍박하며 말하기를

“옛날에 <금강金剛> 대모(大母)가 한 겨울에 목욕하던 연못이다.

네가 만약 금강신(金剛之神)이라면 속히 들어가야 할 것이다.” 

 

是日大雪如席 水寒如氷

이 날은 큰 눈이 이불(席)을 깔듯 내리고 물은 차갑기가 얼음장 같았다.

 

信子三人號泣隨至 願以身代 諸巫皆投於水 而欲殺之

신자(信子) 3인이 울면서 따라와 자신들이 대신 빠질 것을 원하자

무녀들은 그들을 모두 물에 던져 넣고는 죽이고자 했다.

 

乞女乃脫衣雪上翻身入水 水忽沸騰變成金醬 信子三人皆成金色童子

걸녀(乞女)가 이에 눈 위에서 옷을 벗고 몸을 뒤집어 물로 들어가니

물이 홀연 끓어오르며 금빛장액(金醬)으로 변하고

신자(信子) 3인이 모두 금색동자(金色童子)가 되었다.

 

有大虹梯天光明射地 白羊以丹唇翠衣蹁蹮而下 乞女抱三童子而跨白羊

커다란 무지개 사다리가 나타나 하늘로부터 땅으로 광명이 쏟아져 내리고

백양(白羊)이 붉은 입술에 비취색 옷을 너울너울 흩날리며 내려오니

걸녀(乞女)가 세 동자를 안고서 백양(白羊) 위에 올라탔다.

 

諸巫大服 爭赴水中 抱羊脛 而納拜獻身

모든 무녀들이 크게 절복하고는 앞 다퉈 물속으로 뛰어들어

양(羊)의 정강이를 끌어안고 우러러 절하며 몸과 마음을 다 바쳤다.

 

脫衣處己有雙柵 湧出赤兔以銀刀披雪吹草露出 一大金茵

옷을 벗은 곳에는 이미 한 쌍의 단향목(栴)이 있었고

붉은 토끼(赤兔)가 솟구쳐 나오더니 은도(銀刀)로 눈을 헤치고 풀을 불어 젖히자

하나의 커다란 금빛 버섯(金箘)이 드러났다.

 

乞女乃坐樹下茵上 右羊左兎而 授戒諸巫 金色玲瓏香聞天

걸녀(乞女)가 마침내 단향목 아래 금버섯의 위에 앉아서 오른쪽엔 양(羊),

왼쪽엔 토끼(兎)를 거느리고 모든 무녀들에게 계(戒)를 주니

금빛이 영롱하고 향기가 천하로 퍼져나갔다.

 

子時那密聖帝在殿上 聞香望氣 召侍臣西今往見之 
때에 <나밀那密> 성제(聖帝)는 전각위에 있었는데

향기를 맡고서 멀리 기운을 바라보고는

시신(侍臣) <서금西今>을 불러 가서 살펴보고 오도록 시켰다.

 

西今見其美 而欲犯之不得 歸奏 妖巫可斬

<서금西今>이 걸녀의 아름다움을 보고는 그를 범(犯)하고자 하였으나

뜻대로 되지 않자 돌아와 아뢰기를

“요망한 무녀이니 베어야 할 것입니다.”하였다.

 

下理方 舍知等畏西今而從以謬之

사건을 이방(理方)에 내리자 사지(舍知) 등은

<서금西今>을 두려워하여 그릇된 명령을 좇았다.

 

乞女將赴刑場 大舍裵實郞在外聞之倍道而至

걸녀(乞女)가 장차 형장(刑場)에 이르려는데

대사(大舍) <배실裵實>랑이 밖에 있다가 그 소식을 듣고는 걸음을 배가하여 당도했다.

 

解縛查之乃白羊奾子也

포박을 풀고 그를 조사해보니 바로 백양선자(白羊奾子)였다.

 

悲喜交集遂劾西今之誣

기쁨과 슬픔(喜悲)이 번갈아 밀려오고 마침내 <서금西今>의 무고(誣)를 탄핵하였다.

 

帝乃賞裵實郞加爵奈麻 賜奾子紫衣崇品 命督諸巫皆世己公之力

제(帝)가 이에 <배실裵實>랑에게 상을 내려 나마(奈麻)의 작위를 더하고,

선자(奾子)에게는 자의숭품(紫衣崇品)을 하사하여

모든 무녀들을 감독하도록 명하니 이는 모두 <세기世己>공의 힘(力)이었다.

 

나마(奈麻)11관등으로 5두품이상의 골품에게 제수한 관직으로 청색 공복을 입었다.

 

世己乃飾仙子與裵實郞行吉鮑祠命爲夫婦以主羊徒

<세기世己>공이 이에 선자(奾子)와 <배실裵實>랑을 치장하여

포사에서 길례를 행하고 부부가 됨으로써 양도(羊徒)를 주관토록 명하였다.

 

之冬世己公薨

백토(白菟){391년}의 겨울에 <세기世己>공이 훙(薨)하였다.

 

奾子曰明年神后當崩 

督巫祈疾無效 西今當譖我等而誅之 不若早避

선자(奾子)가 말하기를

“내년에는 필시 신후(神后)가 붕(崩)할 것이니

무녀들을 독려하여 기도해도 효험이 없으리라.

<서금西今>은 마땅히 우리를 참소하여 주살할 것이니 일찍이 피하느니만 못하다.”


신후(神后)는 광명(323-392)을 말한다.


子乃誤食河豚 而假死 郎乃與三信子假葬之 
선자(奾子)가 이에 복어(河豚)를 잘못 먹고서 죽은 것으로 위장하니

<배실>랑이 세 신자(信子)와 함께 거짓으로 그를 장사지냈다.

 

郎亦悲傷佯狂棄官而歸與奾子會于境上

<배실>랑 또한 슬픔에 상심하여 미친 척하며 관직을 버리고는

돌아와 국경부근(境上)에서 선자(奾子)와 만났다.

 

奾子曰 我將行巫 而緩入召文 君可先入 謁于世主 而發病 我可入而治之    
선자(奾子)가 말하기를

“나는 장차 무녀 행세를 하며 천천히 소문(召文)으로 들어갈 것이니

그대가 먼저 들어가 <접황>을 뵈옵고 병(發)이 났다고 하면

내가 들어가 치료할 것입니다.”

 

郎諾之如其言

<배실>랑이 허락하고 그 말대로 하였다.

 

世主謂長公(曰) 吾夫婦唯有此子其疾如此 非神巫可治可以 重賞求之

<접황>이 <장대>공에게 이르기를

“우리 부부에게는 이 아들이 있을 뿐인데 병질이 이와 같으니

신무(神巫)가 아니면 치유할 수 없으리라.

무거운 상금(重賞)을 내걸어 그를 찾아야 할 것이오.”

 

乃榜得奾子 奾子佯若不知曰

太子之病發於喪偶若以我爲妻則可治不然則死

이에 방(榜)을 내걸어 선자(奾子)를 얻었는데

선자(奾子)는 짐짓 모르는 체하며 말하였다.

“태자(太子)의 병(病)은 짝(偶)을 잃음에서 온 것이니

만약 저를 처(妻)로 삼으면 나을 수 있으나 그렇지 않으면 죽습니다.”

 

世主曰治則妻之

<접황>이 말하기를

“치유되면 처(妻)로 삼으리라.”

 

乃與同枕一夜而便愈世主欲以妻之而難骨議

이에 하룻밤을 동침하고서 문득 나으니 <접황>이 그를 처(妻)로 삼고자했으나

골의(骨議)를 어렵게 여겼다.

 

奾子曰妾雖賤人未嘗許人 今爲太子薦枕者欲爲夫婦

今骨議不許則妾死而太子亦不可活

선자(奾子)가 말했다.
“첩이 비록 천인(賤人)이나 일찍이 남에게 몸을 허락한바 없으며

지금 태자를 위해 천침(薦枕)한 것은 부부(夫婦)가 되기 위함이니

이제 골의(骨議)에서 불허하면 첩은 죽고 태자 또한 살 수 없을 것입니다."

 

乃閉戶不食 郎病復發 世主憂之上老曰 臣聞暖玉太后東南來

牧丹花上復花開殆 此奾子之謂歟 今宗社將絶命在奾子

豈可以舊文絶社乎 請以奾子爲臣女嫁太子

마침내 문을 닫고 음식을 끊으니 <배실>랑의 병(病)도 재발하였다.
<접황>이 그를 근심하자 상로(上老)가 아뢰었다.
“신(臣)이 듣건대 <난옥暖玉> 태후가 동남으로 오시매

모란꽃(牧丹花)위에 다시 꽃이 피었다하니

이는 거의 선자(奾子)를 일컬음이 아닌가 합니다.

지금 종묘사직이 장차 끊어지려하여 그 운명이 선자(奾子)에게 달렸거늘

어찌 구문(舊文)에 얽매여 사직을 끊을 수 있겠습니까?

청컨대 선자(奾子)를 신(臣)의 딸로 삼아 태자에게 시집보내소서.”

 

長公曰善

<장대長>공이 “옳다.” 하였다.

 

乃以奾子爲上老女賜姓暖氏

이에 선자(奾子)를 상로(上老)의 딸로 삼고 성(姓)을 내려 난(暖)씨라 하였다.

 

 

十燭迎之 琴瑟友之不啻比翼連理

10촉(燭)을 밝혀 그를 맞이하였으니 금슬과 우애가

오히려 비익조(比翼)와 연리지(連理)에 비할바가 아니었다.

 

世主大喜重賞上老 命營太子堂於江上以樂山水

<접황>은 크게 기뻐하며 상로(上老)에게 무겁게 상(賞)을 내리고,

명을 내려 강(江) 위에 태자당(太子堂)을 지어 산수(山水)를 즐기도록 하였다.

 

郞與暖氏採藥于山而釣魚于水 野翁樵叟皆得以友 
<배실>랑은 <난씨暖氏>와 더불어 산에서는 약초를 캐고 물에서는 고기를 낚으니

들판의 늙은이와 어부들이 모두 그를 벗 삼을 수 있었다.

 

暖氏自京禱子將近千日  
<난씨暖氏>가 경도(京)에서부터 자식을 기원한 것이

근 천일(千日)에 가까워지려 하였다.

 

謂郎曰 婦道莫如生好子 今夜與之婚可生貴子 早歸無遠去  

이에 <배실>랑에게 말하였다.
“부도(婦道)는 좋은 자식을 낳는 것보다 더한 것이 없으니

오늘밤 서로 얼우면 귀한 자식을 낳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일찍 돌아올 수 있게 멀리가지 마십시오.”

 

郎諾之

<배실>랑은 이를 응낙하였다.

 

浮舟垂直釣盡買他魚放之 

<배실>랑은 강에 배를 띄워서 곧은 낚시를 드리우고는

다른 어부의 물고기를 남김없이 사들여서 그를 놓아 주었다.

 

有大黿爲漁子所逐 而入舟腹 郞護之不忍歸

홀연 큰 자라(大黿) 한마리가 고기잡이에게 쫒긴바 되어서

배 안으로 들어왔는데 <배실>랑은 자라를 보호하며 차마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暖氏疑其未歸 帶月下江 而覔之得於水中 

<난씨>가 그 돌아오지 않음을 이상히 여겨 달빛을 따라 강으로 내려갔는데

물 가운데서 그를 찾을 수 있었다.

 

郎指大黿曰 爲此而遲也 
<배실>랑이 자라(黿)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를 위하다 늦었소.”

 

暖氏曰吉祥也 非吾夫孰能如此

<난씨暖氏>가 말했다.
 “길상(吉祥)입니다. 우리 남편이 아니면 누가 이처럼 할 수 있으리오.”

 

乃與之歡于舟中 五雲蔽空 仙樂滿江

이에 부부가 배 안에서 합환하니 오색구름이 허공을 감싸고

선악(仙樂)소리가 강에 가득했다.

 

暖氏曰 此天子氣也 吾子必生貴孫 入爲天宮 當誕聖帝 兆在八十年

吾子孫遍滿天下 統合三韓 吾夫妻長爲護國世神 尊在帝后之上 不亦樂乎

<난씨暖氏>가 말했다.
 “이는 천자(天子)의 기운입니다.

우리 자식이 반드시 귀한 손주를 낳아 천궁(天宮)에 들어가게 되고

마땅히 성제(聖帝)가 탄생할 것입니다.

조짐이 80년 밖에 있으니 우리 자손이 천하에 두루 퍼져 가득하고

삼한(三韓)을 통합할 것입니다.

우리 부처(夫妻)는 길이 호국세신(護國世神)이 되어

존엄이 제후(帝后)의 위에 있게 되리니 또한 즐겁지 않습니까?”


백양선자 <난씨(347- ><연제(463-525)><위화(487- )>가 태어나

<연제>는 천궁이 되어 聖帝가 되고

<위화>仙徒를 통합하여 삼한통일의 초석이 될 것을 예언하고 있다.

 

郎曰 吾妻之德無以報

<배실>랑이 말했다.
 “우리 처(妻)의 덕(德)을 갚을 길이 없소.”

 

暖氏曰 皆郎君之福也 妾何力乎 天必報 郎君自謙之德矣

<난씨暖氏>가 말했다.
 “모두가 낭군(郎君)의 복입니다. 첩이 무슨 힘이 되리오.

하늘이 반드시 낭군의 자겸지덕(自謙之德)에 보응한 것입니다.”

 

大黿聞語口含火珠而進俛首而去

큰 자라가 그 말을 듣더니 입에 불구슬(火珠)을 물고 나아와

머리를 수그리고는 떠나갔다.

 

郎歎曰吾妻眞聖人也 撫愛     
<배실>랑이 탄복하여

“우리 처(妻)는 진실로 성인(聖人)이다.” 하며 어루만지고 아끼었다.

 

十朔誕生玉男姿態絶妙 名順實郞

10달 만에 옥(玉)같은 남아가 태어났는데 자태가 절묘하였다.

이에 이름을 <순실順實>랑이라하였다.

 

배실(난씨) - 순실(396-448)


 

長公與世主大宴骨門 

<장대>공은 <접황>과 더불어 골문(骨門)에 크게 잔치를 베풀었다.

 

景德陵玉竹復生 皆以爲笛仙復生

경덕릉(景德陵)의 옥죽(玉竹)이 다시 살아나자

모두들 적선(笛仙)이 다시 태어남이라 하였다.

 

及長能吹笛得眞歌舞天成

커감에 따라 피리(笛)를 부는 것이 능숙하여 가무(歌舞)의 진수(眞)를 얻으니

하늘이 이룸이었다.

 

四歲世主卒

4살때 <접황>이 졸(卒)하였다.

 

郎吹笛復活五日曰 吾托仙門而生當爲汝妻 是爲靑我之前托也

<순실>랑이 피리를 불자 닷새를 부활하였는데 말하기를

“나는 선문(仙門)에 의탁(託)해서 태어나 마땅히 네 처(妻)가 되리라.”하였으니

이가 바로 <청아靑我(399-452)>의 전탁(前託)이다.

 

제상(치술) - 청아(399-452)

 

世主卒長公以位傳于裵公夫妻 唯以育郎爲樂

세주(世主)가 졸(卒)하자

장대공(長大公)은 배공(裵公) 부처(夫妻)에게 보위(位)를 전하고

오직 <순실>랑을 기르는 것으로 즐거움을 삼았다.

 

十歲長公卒

열 살에 <장대>공이 졸(卒)하였다.

 

郎吹笛復活五日曰 生于天門 可以保汝 是爲山近公前托也

<순실>랑이 피리를 불자 닷새를 부활하였는데 말하기를

“천문(天門)에 태어나 가히 너를 지키리라.”하였으니

이가 바로 <산근山近(405-475)>공의 전탁(前託)이다.

 

눌지(산화) - 산근(405-475)

 

十五然入京 主忽明公宅

15세에 개탄하며 경도(京)에 들어가 <홀명忽明>공 집에 머물렀다.

 

時忽明公年七十 白鬚如雪 而尙有氣力 每朝與亥兒上白馬 謁桃山而歸

당시 <홀명忽明>공은 나이 70세로 흰 수염이 눈(雪)과 같았는데

오히려 기력(氣力)이 있어 아침마다 <해아亥兒>와 더불어 백마(白馬)를 타고

도산(桃山)을 참배하고 돌아오곤 했다.

 

양부(줄례) - 홀명(341-412)

 

或與郞偕使吹笛而過雲花公主宅公主聞之曰

此非人間 之笛也 命召之郎

혹은 <순실>랑과 더불어 동행했는데 피리를 불게 하며

<운화雲花(360?-419)>공주 집을 지나가니 공주(公主)가 그 소리를 듣고 말하기를

“이는 인간(人間)의 피리가 아니다.”라 하며 그를 부르도록 명하였다.

 

乃與亥兒謁公主 公主謂亥兒曰

東海上古有陰陽竹 晝分夜合 乃雌龍之精也

上世能吹此笛者 惟萬公吉公 而已 召文有玉上人 能吹此笛 今復生矣

<순실>랑이 이에 <해아亥兒>와 더불어 공주(公主)를 알현하자

공주(公主)가 <해아亥兒>에게 말했다.
“동해(東海)에 상고(上古)때에 음양죽(陰陽竹)이 있었는데

낮에는 나뉘고 밤에는 합쳐지니 곧 자룡(雌龍)의 정(精)이었다.

상세(上世)에 능히 이 피리를 불수 있었던 자는 <만공萬公>과 <길공吉公>뿐이고,

소문국(召文)에 옥상인(玉上人)이 있어 능히 이 피리를 불었는데

이제 그가 다시금 환생하였다.”

 

公主爲之鼓琴而和之異禽下舞

공주(公主)가 그를 위해 북(鼓)과 거문고(琴)를 연주하며

그의 피리와 화음하니 기이한 새(禽)가 내려와 춤을 추었다.

 

乃留於公主宅

<순실>랑이 마침내 공주(公主)의 저택(宅)에 머물렀다.

 

時公主年過五十 而事郎如少婦寢食必自撿而供之

당시 공주(公主)는 나이가 50을 넘었으나

마치 젊은 소부(少婦)처럼 <순실>랑을 섬기고

침식(寢食)은 반드시 손수 점검하고서 올렸다.

 

先是公主有嬖奴三人 至是皆不得寵 乃欲殺郎使人邀于門外 爲吏所覺 而下理方  
이에 앞서 공주는 아끼는 폐노(嬖奴)가 세 명이 있었는데

이에 이르러 모두 총애를 얻을 수 없게 되자

마침내 <순실>랑을 죽이고자 사람을 시켜 문밖에서 기다리게 했다가

관헌(吏)에게 발각되어 이방(理方)에 넘겨졌다.

 

時骨女好私奔 皆有嬖奴四五人或六七人

당시 골녀(骨女)들은 사분(私奔:사통)을 좋아하여

모두가 폐노(嬖奴) 네다섯 명, 혹은 예닐곱 명씩을 두고 있었다.

 

 

白豕之朝大雪 嬖奴縱酒相鬪血漓雪中

백시(白豕){411년}의 설날 아침에 큰 눈이 내렸는데

폐노(嬖奴)들이 술에 취해서 서로 다투어 눈 속에 피가 흥건하였다.

 

帝聞之禁骨女私奔 命下諸嬖奴于理方

제(帝)가 그 소문을 듣고 골녀(骨女)의 사분(私奔)을 금하며

모든 폐노(嬖奴)들을 이방(理方)에 넘기도록 명했다.

 

怨郎者以爲公主娠郎子 欲下之 帝爲忽明公特赦之 命學歌于暖凰宮 
<순실>랑에게 원한을 가진 자가 공주(公主)가 <순실>랑의 애를 뱄다하여

그를 넘기고자 했으나 제(帝)가 <홀명忽明>공을 위해 특사하고

<난황暖凰(365-422)>궁에서 노래(歌)를 배우도록 명했다.

 

흘해(접항) - 난황(365-422)

 

宮亦愛郎 命與布兒爲兄弟  
<난황暖凰>궁 또한 <순실>랑을 사랑하여

<포아布兒>와 형제(兄弟)가 될 것을 명하였다.

 

暖凰女陰凰亦有嬖奴 曰塞金 皆以微賤登龍 故時稱三傑

<난황暖凰>의 딸 <음황陰凰(386-441)> 역시 폐노(嬖奴)가 있어

이름을 <새금塞金>이라 했는데 모두 미천(微)한 신분으로써 등룡(登龍)한 까닭에

당시 3걸(三傑)이라 칭해졌다.

 

相與之友郎年最少 

서로 다 같이 벗이 되었는데 <순실>랑의 나이가 가장 어렸다.

 

每以淸風明月之夜 吹笛過郊聲徹九宵 城中士女雲集成堵不能 
매번 청풍명월(淸風明月)의 밤이면 피리를 불며 성밖 교외를 지나가는데

피리 소리가 선인이 거처하는 하늘을 꿰뚫으니

성안(城中)의 사녀(士女)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담장을 이뤄 마지않았다.

 

堤上公長女靑我娘主慕 而至請奉箕帚者歲餘不得近

<제상堤上>공의 장녀인 <청아靑我(399-452)>낭주(娘主)가 그를 사모해서 찾아와

첩이 될 것을 청(請)한지가 한 해 남짓 이었으나 가까워질 수 없었다.

 

靑我曰 妾慕君而來見踈於父母 君晝夜塑坐無復愛妾之意何太薄情乎

<청아靑我>가 말하였다. 
“첩이 그대를 사모하여 보러오느라 부모님과도 소원해졌는데

그대는 밤낮으로 우(土偶)처럼 앉아 첩을 다시는 사랑할 뜻이 없으니

어찌 박정함이 그리 큽니까?” 

 

郎笑曰 塑坐有爲試看吾呼吸中物 
<순실>랑이 웃으며 말했다.
 “토우처럼 앉는 것은 쓸모가 있으니 시험 삼아 내가 호흡 할 때 사물을 보라.”

 

靑我淨進視之 萬八億神將出入 如蜂房之蜂 坐理天下

<청아靑我>가 마음을 정갈히 하고 나아가 그것을 보매

만 팔천억 신장(神將)들이 출입하는 것이 마치 벌집의 벌(蜂)과도 같았으니

앉아서 천하(天下)를 다스림이었다.

 

是夜大星隕屋郎曰 天仙欲借汝腹 而生也

이 밤에 큰 별이 가옥에 떨어지자 <순실>랑이 말하였다.
“천선(天仙)이 네 배를 빌려 태어나고자 한다.”

 

靑我大喜 乃沐浴薦枕 而生 是爲登欣公

<청아靑我>가 크게 기뻐하며 마침내 목욕하고 천침(薦枕)해서 아이를 낳았으니

이가 바로 <등흔登欣>공이다.

 

순실(청아) - 등흔(416-483)

 

英雄莫比 鵄述神母 愛之以爲冢孫

비할데 없는 영웅(英雄)이었으니

<치술鵄述(380?-422)>신모(神母)가 그를 사랑하여 몽손(冡孫)으로 삼았다.

 

時實聖帝寵陰凰 召見三傑 命各賜爵許願

때에 <실성實聖>제(帝)는 <음황陰凰(386-441)>을 총애하여 3걸(三傑)을 불러

각자 작위를 내리고 원하는 바를 하도록 명하였다.

 

대서지(예) - 실성(359-417, 18대왕 재위 402-416)

 

羊徒踴躍以爲皆得靑雲求仕者塡門

郎笑謂衆曰 耕田而食庶民之職也

吾爲汝等得城東田數百頃可力穡

 

양도(羊徒)는 기뻐 날뛰며 모두가 높은 벼슬을 얻으려고

벼슬(仕)을 구하는 자가 문전을 메우니 <순실>랑이 웃으며 무리들에게 말했다.
“밭을 갈아 서민(庶民)을 먹이는 직책이다.

나는 너희들을 위해 성동(城東)의 수백 경(頃) 밭을 얻었으니

힘껏 수확해야 할 것이다.”

 

時布兒塞金之徒 皆入靑雲 笑郎之無能 羊徒多不平 或投入馬徒

당시 <포아布兒>와 <새금塞金>의 낭도(徒)는 모두 높은 벼슬에 올라서

<순실>랑의 무능을 비웃으니 양도(羊徒)들이 불평이 많아져

혹은 마도(馬徒)로 투신하여 들어갔다.

 

牛眞憂之 郎曰 午未之數 榮枯有序 不出二年

<우진牛眞>이 이를 근심하자 <순실>랑이 말했다.
 “오미(午未){418년과 419년}의 운수(數)는 번영과 쇠락이 있으니

2년은 출사하지 않을 것이다.”

 

翌年 好勿公 奉訥祇聖帝入京 馬徒之得士者多被誅戮

다음해에 <호물好勿(359-418)>공이 <눌지訥祗(387-458)> 성제(聖帝)를 받들어

입경(入京)하였는데 마도(馬徒)에서 관직을 얻었던 자들은

허다하게 주륙(誅戮)을 당했다.

 

<호물>이 비열흘에서 입경한 해는 417년이다.

 

羊徒晏然皆服先見

그러나 양도(羊徒)는 평온하였는데 모두가 그 선견(先見)에 감복하였다.

 

聖帝以郎有陰功於社稷封爲歌仙 命行南桃 典大舍分屬羊徒

<실성>제는 <순실>랑이 사직(社稷)에 음공(陰功)이 있었던까닭에

봉하여 가선(歌仙)으로 삼고 명을 내려 남도(南桃)를 행하도록 하였고,

전(典) 대사(大舍)를 양도(羊徒)에 분속(分屬)시켰다.

 

於內外一時榮之他徒不敢抗之

이에 내외가 일시에 그를 영예롭게 여겼으니,

다른 선도들이 감히 그에 대항하지 못했다.

 

先是 布兒之牛徒 欲與羊徒合 至是布兒得罪流外 其徒皆入于郎 

이에 앞서 <포아布兒>의 우도(牛徒)는 양도(羊徒)와 합치고자 했는데

이에 이르러 <포아布兒>가 득죄(得罪)하여 외방으로 유배되니

그 낭도(徒)들이 모두 <순실>랑에게 들어왔다.

 

金亦知勢不可及願以馬徒歸之

<새금塞金> 역시 세가 미칠 수 없음을 알고 마도(馬徒)로써 그를 따르기를 원하였다.

 

郎欲統諸徒而許之以其年長爲兄推爲日仙諸徒咸服其高義 

<순실>랑이 모든 낭도를 통합코자 하여 그를 허락하고

연장자(年長)인 까닭으로 그를 형(兄)으로 삼고 일선(日仙)으로 추대하니

모든 무리가 다 그 높은 의리(高義)에 함복(咸服)하였다.

 

<순실>이 우도와 마도를 양도에 통합한 해는 423년이다.

 

是年靑我娘主生郎女助里宮主

이 해에 <청아靑我>낭주(娘主)가 <순실>랑의 딸 <조리助里>궁주(宮主)를 낳았다.

 

순실(청아) - 조리(423-483)

 

夢見白鶴戻天命美媚

꿈에 흰 학(鶴)이 눈물을 흘리며 하늘을 나는 것을 보고 낳았는데

명석하고 아름답고 뛰어나게 예뻤다.

 

先是靑我薦枕于美海殿君而生白欣公   
이에 앞서 <청아(靑我)는 <미해美海> 전군(殿君)과 잠자리를 하여

<백흔白欣>공을 낳았었다.

 

미해(청아) - 백흔(420-482)

 

長助里三歲友愛至篤不能相離

<조리助里>보다 세 살이 많았는데

우애(友愛)가 지극히 도타워 서로 떼어 놓을 수가 없었다.

 

帝命爲夫婦生剡臣公

제(帝)가 부부가 될 것을 명하여 <염신剡臣>공을 낳았다.

 

백흔(조리) - 염신(447-503)

 

年順實公以日仙上化 郞徒如喪考妣立祠城東

이듬해 <순실順實>공이 일선(日仙)으로써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니

낭도(郎徒)들은 부모를 잃은 것처럼 슬퍼하고 성동(城東)에 사당(祠)을 세웠다.

 

興帝追崇爲葛文王 置宮屬以靑我后配之 故名曰靑淵宮

 법흥제(法興帝)가 추숭(追崇)하여 갈문왕(葛文王)으로 삼고 궁(宮)을 설치했는데

<청아靑我>후(后)의 배향(配)을 그곳에 속하게 한 까닭에

이름을 청연궁(靑淵宮)이라했다.

 

剡臣公生而頴異 好神仙骨秀肉淸 無一點煙霞氣

<염신剡臣>공은 태어나면서부터 남달리 총명했는데

신선(神仙)을 좋아하고 골격이 청수하며 살결이 맑아

점 하나도 없었으니 안개와 노을의 기질(氣)이었다.

 

靑我宮主曰 吾孫吉公之後身也 吉公肉淸 可以照物 此兒然也

<청아靑我>궁주(宮主)가 말하기를

“내 손자는 <길공吉公>의 후신(後身)이다.

<길공吉公>은 살결이 맑아 물건을 비출 수 있었는데 이 아이가 그러하다.”

 

帝謂助里曰 此兒美如順實雄 如堤上

제(帝)가 <조리助里>에게 말하기를

“이 아이는 아름답기는 <순실順實> 같고, 웅장하기는 <제상堤上> 같다”

 

白欣公曰此臣好白駒也

<백흔白欣>공이

“이는 신(臣)의 좋은 흰 망아지입니다.”라고 하였다.

 

慈悲帝四年

以上宮巴胡后子毗處爲太子 命剡臣爲太子舍人年才十五也

자비제(慈悲帝) 4년{461년}

상궁(上宮) <파호巴胡(420-482)>후(后)의 아들 <비처毗處(436-500)>를 태자로 삼고

<염신剡臣>에게 명을 내려 태자 사인(舍人)이 되도록 하니 나이 15세였다.

 

자비(파호) - 비처(436-500) 21대 소지

 

太子愛之命留宮中 白欣公憂其不學無禮辭之不得

태자가 그를 아껴 궁중에 머물도록 명하니

<백흔白欣>공은 그 불학무례함을 근심하여 그를 사양했으나 어쩔 수 없었다.

 

乃使助里宮主入太子宮敎之

이에 <조리助里>궁주로 하여금 태자궁(太子宮)에 들어가 그를 가르치게 했다.

 

宮主乃生太子女繡我于宮中帝嘉之加白欣公秩品賜奴婢田宅

궁주가 마침내 궁중에서 태자의 딸 <수아繡兒>를 낳으니

제(帝)가 그를 가상히 여겨 <백흔白欣>공의 질품(秩品)을 더하고

노비(奴婢)와 전택(田宅)을 하사하였다.

 

비처(조리) - 수아(462- )


翌年太子又納公女白氏爲侍妾乃剡臣胞妹

이듬해 태자가 다시 <백흔白欣>공의 딸 <백씨白氏>를 맞아들여 시첩(侍妾)을 삼으니

곧 <염신剡臣>의 포매(胞妹)이다.

 

太子乃命剡臣就學于好淵公及叔父登欣公以紹順實之業 
태자가 마침내 <염신剡臣>에게 명하여 <호연好淵>공 및 숙부 <등흔登欣>공에게

취학(就學)하여 <순실順實>의 업(業)을 계승(紹)하도록 했다.

 

심(보반) - 호연(397-466)


剡臣善於媚道 不喜文章 白欣公怒曰 汝以吾子不喜文章安能奉美海之祀乎

<염신剡臣>이 미도(媚道)는 잘하나 문장(文章)은 좋아하지 않자

<백흔白欣>공이 노하여 말했다.  

“네가 내 아들로써 문장을 좋아하지 않으니

어찌 <미해美海>의 제사를 받들 수 있겠는가?”

 

※ 미도(媚道) : 무축(巫祝)의 술법으로써 남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

 

好淵公曰 此兒得順實之淸 靑我之智 雖無文章 可合仙道 縱其所好可也

<호연好淵>공이 말했다.

“이 아이는 <순실順實>의 맑음과 <청아靑我>의 슬기를 얻어 비록 문장은 없어도

선도(仙道)에 가합(可合)하니 그 좋아하는 바대로 놓아 둠이 옳다.” 

 

剡臣公乃專事歌舞㔫精於神風

<염신剡臣>공이 이에 오로지 가무(歌舞)를 일삼아

신풍(神風)에 더 한층 정교(尤精)로워졌다.

 

骨女多就學于太子宮中 若蝴蝶之亂舞 故名其堂曰蝴

골녀(骨女)들이 많이 태자궁(太子宮) 안에 나아가 배웠는데

마치 나비들의 난무와도 같아서 그 당(堂)을 이름하여 호접당(蝴蝶堂)이라 했다.

 

骨女目剡臣爲舞聖

골녀(骨女)들이 <염신剡臣>을 무성(舞聖)으로 여겼다.

 

太子卽位 置胡蝶樓 廣開舞道 國中一時靡之

태자가 즉위하자 호접루(蝴蝶樓)를 설치하고 널리 무도(無道)를 공개하였는데

나라 안이 일시에 그에 휩쓸렸다.

 

毗帝以功超授非品之職得專國白欣公戒之曰

비처제(毗處帝)가 그 공(功)으로써 차례를 뛰어넘는 비품(非品)의 직(職)을 제수하여

국정(國政)을 오로지 할 수 있게 되자 <백흔白欣>공이 그를 경계하여 말했다.

 

 

汝以嬖幸年少位高得弄得柄權大不祥也 不如早乞休養父子共樂于林下

“네가 폐행(嬖倖)으로써 나이도 어린데 지위는 높고

권력을 농락할 수도 있고 휘어잡을 수도 있으니 크게 상서롭지 않다.

일찌감치 사퇴하여 나무아래서 부자(父子)의 공락(共樂)을 기르느니만 못하다.”

 

剡臣公乃以 白欣公志奏之 帝不許 築白欣公園池于城中 建父子堂使以時歸省

<염신剡臣>공이 이에 <백흔白欣>공의 뜻에 따라 사직코자하니 

제(帝)는 허락하지 않고 성 안에 <백흔白欣>공의 동산과 못을 조성하고

부자당(父子堂)을 세워 때로 귀성(歸省)하게끔 하였다.

 

先是帝愛從弟智度路公 求其妃 剡臣公以從妹迎帝薦之

이에 앞서 제(帝)는 종제(從弟)인 <지도로智度路>공을 아끼어

그 비(妃)를 구(求)하였는데 <염신剡臣>공이 종매(從妹)인 <영제迎帝>를 천거했다.

 

눌지(아로,효진) - 자비(414-479)

                         조생(418-487)

미해(자아) - 파호(420-482)

보해(성명) - 습보,보보아(420-485)

자비(파호) - 비처(436-500)

습보(조생) - 지도로(437-514)

등흔(모량) - 영제(463-525)

백흔(조리) - 염신(447-503)

 

조생은 자비의 동생으로 비처의 고모이다.

지도로는 비처보다 1살 어린 고종사촌 동생이다.

등흔과 백흔은 청아의 아들이다.

영제는 염신의 사촌동생이다 

 

至是迎帝得上寵 登欣公入相秉政 智度路公與剡臣公爲右左之輔

이에 이르러 <영제迎帝>가 상(上)의 총애를 얻자

<등흔登欣>공이 재상(相)으로 들어와 정권을 잡고,

<지도로智度路>공과 <염신剡臣>공을 좌보(左輔)와 우보(右輔)로 삼았다.

 

命智度路公妹 元兮宮主爲剡臣公妻 行吉鮑祠

제(帝)는 <지도로>공의 누이동생 <원혜元兮>궁주를 <염신>공의 처로 하여

포사(鮑祠)에서 길례(吉)를 올리도록 명했다.

 

내숙(조생) - 원혜(462- )


 

欣公爲白欣公曰剡兒雖少而敏吾無憂矣

<등흔登欣>공이 <백흔白欣>공에게 말했다.
“염아(剡兒)는 어리지만 영민(敏)하니 나는 걱정이 없다.”

 

白欣公與登欣公素篤友愛 至老㔫勤 每以朝夕團合以爲尤至樂

<백흔>공과 <등흔>공은 본래 우애가 두터웠는데 늙어가며 더욱 은근해져

매양 아침저녁으로 단합하는 것으로써 지극한 도락을 삼았다.

 

白欣公事兄如父 信其言故乃許剡臣公而不憂曰 吾有此子死亦足矣

<백흔>공은 형을 아버지처럼 섬겨 그 말을 신뢰하는 까닭에

마침내 <염신>공을 허락하고 근심하지 않으며 말하기를

“나는 이 아들을 가졌으니 죽어도 족하다.”라고 했다.

 

帝以酒食待 兩欣公 呼以叔父不名

제(帝)가 술과 음식으로 양 흔공(欣公)을 대접하는데

숙부(叔父)라 부르며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賜以豊車肥馬使乘府 供之恩渥最重

승부(乘府)로 하여금 풍차(豊車)와 비마(肥馬)를 하사하니 

두터운 은혜가 최고였다.

 

帝二年金猿之仲春十日迎帝生智度路公子慕珍宮于牟梁宮

비처제 2년 금원(金猿:경신 480년)의 중춘(仲春:음력 2월) 10일에

영제(迎帝)가 모량궁(牟粱宮)에서 <지도로>공의 아들 <모진慕珍>을 낳았다.

 

지도로(영제,연제) - 모진(480-540) 23대 법흥왕 재위 514-539

 

帝親幸賜米

제(帝)가 친히 행차하여 쌀(米)을 내렸다.

 

登欣公謂白欣公曰 白羊神母曰兆在八十年者 正謂此兒也 吾與汝雖老不及剡兒則見之

<등흔>공이 <백흔>공에게 말했다.

“백양신모(白羊神母)가 말한 ‘조짐이 80년 밖에 있다’한 것은

바로 이 아이를 이른 것이다.

나와 너는 늙어서 비록 볼 수 없으나 염아(剡兒)라면 그를 보리라.”

 

白欣公乃召剡臣公戒之

<백흔>공이 이에 <염신>공을 불러 그를 경계시켰다.

 

剡臣公以此 知天命之所歸 終始保護智帝 竟以副君受禪寶祚歸于慕珍宮 殆天授非人力也

<염신>공이 이로써 천명(天命)이 돌아갈 바를 알고

시종(終始) <지증>제를 보호하여 끝내는 부군(副君)으로써 선양을 받고

보조(寶祚)가 <모진慕珍>궁에게 돌아갔으니

거의 하늘이 내려주심이요 인력(人力)이 아니었다.

 

 

後三年水狗七月

후 3년(소지왕 4년) 수구(水狗:임술 482년) 7월,

 

白欣公以大等伊湌卒于仙院

<백흔白欣>공이 대등이찬(大等伊湌)으로써 선원(仙院)에서 졸(卒)하였다.

 

翌年二月登欣公及助里宮主薨 帝皆厚葬之

이듬해 2월에는 <등흔登欣>공과 <조리助里>궁주가 훙(薨)하였는데

제(帝)는 모두 후하게 그를 장사지냈다.

 

超授剡臣公波珍湌 命行稟主事

<염신剡臣>공에게 파진찬(波珍湌)을 제수(超授)하고

품주(稟主)의 일(事)을 행하도록 명했다.

 

翌年宝美宮主薨

이듬해 <보미宝美>궁주가 훙(薨)하였다.

 

보미(404-485)는 기림왕 5년(368)에 신라에서 왜로 건너가 인덕천황의 妃가 된

水皇(355?- )의 손녀로 419년 박제상이 왜로 가서 미해를 구출할 때

함께 신라로 돌아온 궁주이다.   

 

剡臣爲牟梁宮欲立大元祠 與毗己不合而免出按京外獄事

<염신剡臣>이 <모량牟粱>궁을 위하여 대원사(大元祠)를 세우고자 했으나

<비기毗己>와 불합하여서 면출(免出)되고 경외옥사(京外獄事)를 안핵(按)하였다.

 

눌지(파호) - 비기(445-504)

비기는 비처(소지왕)의 異父同母弟이다. 

翌年到捺己

이듬해에 날이(捺已)에 당도했다.

 

날이는 지금의 경북 영주이다. 

 

捺己古有月碧太后祠 乃召文之聖后也

날이(捺已)는 옛날에 월벽태후사(月碧太后祠)가 있었는데

곧 소문(召文)의 성후(聖后)이다.

 

其王孫世守而貧不能自存

그 왕손(王孫)이 세세로 수묘하다가 가난하여 스스로 먹고 살 수 없게 되었다.

 

富戶遜同見王孫之女碧我之美 願以千牛易之爲妻 王孫許之 生女曰碧花

부호(富戶)인 <손동孫同>이 왕손(王孫)의 딸 <벽아碧我>의 아름다움을 보고는

천마리 소(千牛)와 바꾸기를 원하자 왕손(王孫)이 그를 허락하였는데

딸을 낳아 <벽화碧花>라고 하였다.

 

벽망(벽회) - 벽씨

식진(벽씨) - 벽아(469-526)

손동(벽아) - 벽화(485- )

염신(벽아) - 위화(487- )

<벽아>는 소문국 <월벽>태후의 후손이며 왕손(王孫)은 <식진息晉>을 말한다.

 

或曰遜同與王孫賭以奪之 及生碧花以千牛幣之

혹은 <손동孫同>이 왕손(王孫)과 도박으로 그녀를 빼앗은 것이고

<벽화碧花>를 낳자 소 천마리로 납폐(納幣)한 것이라고도 한다.  

 

碧花生才五月遜同暴死

<벽화碧花>가 태어나고 겨우 5달만에 <손동孫同>이 급사하였다.

 

同異父弟 波路素與同嫡妻相通

<손동孫同>의 이부제(異父弟)인 <파로波路>는

평소 <손동孫同>의 적처(嫡妻)와 상통(相通)하고 있었다.

 

乃迎波路爲繼夫 有其財而欲逐碧我母女

적처(嫡妻)가 마침내 <파로波路>를 맞이해 계부(繼夫)로 삼아 그 재산을 차지하고서

<벽아碧我> 모녀를 쫓아내고자 하였다.

 

波路慕碧我 仍爲之副妻而不逐

<파로>가 <벽아>를 사모하여 그대로 그녀를 부처(副妻)로 삼고 쫓아내지 않았다.

 

嫡妻怒使其子告于官波路??其兄而取其妻財

적처(嫡妻)가 노하여 그 아들로 하여금 관청(官)에 고발하여 말하기를

“<파로>가 그 형을 독살(鴆)하고 그 처(妻)의 재산을 취했다.”고 했다.

 

吏知其誣而欲奪其財 及碧我强成其獄將誅之

관리는 그 무고(誣)임을 알자 그 재산과 <벽아>를 빼앗을 욕심으로

강제로 그 옥사(獄)를 성립시키고 장차 죽이려 했다.

 

吏謂碧我曰 汝爲我妾則當赦汝罪 碧我不得已許之 歸欲自盡

관리가 <벽아>에게 이르기를

“네가 내 첩이 되면 마땅히 네 죄는 사면할 것이다.” 라고 하니

<벽아碧我>가 어쩔 수 없어 그를 허락하고 돌아와서 자결(自盡)하려하자

 

侍女止之曰 今按使到郡 可詣訴之

시녀가 그를 만류하며 말했다.
“지금 안사(按使)가 군(郡)에 당도했다하니 그를 찾아 호소할 수 있습니다.”

 

碧我乃與侍女訴于途中 公乃黜其吏

<벽아碧我>가 마침내 시녀와 더불어 도중(途中)에서 공을 만나 호소하니

공(公)이 그 관리를 내쫓았다.

 

波路感恩願以碧我爲婢 公欲辭之 碧我曰 生不能奉供不若死以爲護鬼而報恩

<파로波路>가 은혜에 감동하여 <벽아>를 비녀(婢)로 삼아줄 것을 원하자

공(公)이 사양하려하니 <벽아>가 말했다.

“살아서 봉공할 수 없다면 죽어서 호귀(護鬼)가 되어 보은하는 것만 못합니다.”

 

公憐其志 命載後車而歸

공(公)이 그 뜻을 가련히 여겨 뒷수레(後車)에 태우도록 명하고 돌아왔다.

 

時公有正妻元兮宮主 副妻翠凰宮主 各有茅宅枕婢不可容

당시 공(公)은 정처 <원혜元兮>궁주와 부처 <취황翠凰>궁주가

각각 모택과 침비(枕婢)가 있어 용납이 불가하였다.

 

乃私立小院命居之

이에 사사로이 작은 원(院)을 세워 그곳에 거처하도록 명했다.

 

碧我乃禱子于樹王曰 生子則報恩萬世 身供只限一生

<벽아碧我>가 곧 수왕(樹王)에게 아들을 기원하며 말하기를

“아들을 낳은즉 만세에 보은함이니

이 몸의 봉공은 단지 한번 낳음에 한할 뿐입니다.” 

 

公爲合其歡 果夢 赤兎仙官 乘彩雲 而下降 授玉劍 而去 

有紫金書曰 魏華玉耶拔之 光明大射 異香滿

공(公)이 그 합환(合歡)하였는데 과연 꿈에 적토선관(赤兎仙官)이

채색구름(彩雲)을 타고 하강하여 옥검(玉劍)을 주고 가거늘,

자금서(紫金書)가 있어 이르되

“위화옥야(魏華玉耶)가 그것을 뽑는다.”라 하고,

광명이 크게 쏟아지며 이상한 향내가 가득 스며드는 것이었다.

 

公大奇之曰 必生貴子卽 進其秩爲暖房 置奴婢而供之

공(公)이 그를 크게 기이하게 여기고 말하기를

“반드시 귀한 자식을 낳으리라.”하며 즉시 그 품계(秩)를 높여 난방(煖房)을 삼고

노비(奴婢)를 두어 그녀를 받들게 하였다.

 

果以翌年赤兎之午月卯日生玉男 面如白玉 唇若赤脂

과연 이듬해 적토(赤免;정묘 487년)의 5월(午月) 묘일(卯日)에

옥남(玉男)을 낳았는데 얼굴은 하얀 백옥(白玉)과도 같고

입술은 마치 붉은 연지를 칠한 듯하였다.

 

乃名魏花郞

이에 이름을 <위화魏華>랑이라 하였다.

 

염신(벽아) - 위화(487- )


時日仙末厚夢見 順實郞見復生于剡臣家奏曰

今年大仙下降 明年雖有小邪 葺月城則除之

때에 일선(日仙) <말후末厚(433-487)>는 꿈에

<순실順實>랑이 <염신剡臣>의 집안에 다시 태어남을 보고 아뢰었다.

“금년에는 대선(大仙)이 하강하고, 명년에는 비록 작은 요사(邪)가 있을 것이나

월성(月城)을 수리하면 그를 제거(除)할 것입니다.”

 

눌지(신루) - 말후(433-487)


帝乃問其大仙 末厚乃以白盆盛水照之 有白雪亂下中

有一淨院 紫衣仙娥 抱玉兒 而出拜于帝 帝奇之

 

帝가 이에 그 대선(大仙)이 누구인가 묻자

<말후末厚>가 곧 하얀 합(白盒)에 물을 가득 채워서 그를 비추니

백설이 어지럽게 내리는 가운데 한 깨끗한 원(院)이 있고

자의(紫衣)를 입은 한 선녀(仙娥)가 옥아(玉兒)를 안고 나와서

帝에게 절을 하는 것이었다.

帝가 그것을 기이하게 여겼다.

 

未幾 末厚上化 妙心代之

얼마 지나지 않아 <말후末厚>가 상화(上化)하자 <묘심妙心>이 그를 대신하였다.

 

삼고위(나연) - 묘심(450?-488)

 

其冬帝以雪夜 訪剡臣家 碧我抱魏花 而出拜 完如盆中

그 겨울에 帝가 눈 내리는 밤에 <염신剡臣>의 집을 방문했는데

<벽아碧我>가 <위화魏華>를 안고 나와 절을 하니

완연히 합(盒)안에서 본바와 같았다.  

 

帝乃知其爲大仙 乃賜碧我爵品 而幸之

제(帝)가 이에 그 대선(大仙)임을 알고

<벽아碧我>에게 골품과 작위를 내리고 그녀를 행(幸)하였다.

 

累召宮中有寵 元兮翠凰等皆屈身 卑辭不敢以暖房侮之

누차 궁중에 불러들여 총애가 있자 <원혜元兮>와 <취황翠凰> 등이 모두 몸을 굽히고

언사를 겸손하게 하며 감히 난방(煖房)이라 하여 그녀를 깔보지 못했다.


時日仙妙心 爲天柱寺法 多亂骨女

이때 일선(日仙) <묘심妙心>은 천주사의 법()이 되어 골녀들을 음란함이 많았다.

 

元兮翠凰亦媚于妙心迎之設場

<원혜元兮>와 <취황翠凰> 역시 <묘심妙心>에게 교태를 부리고

그를 맞이 할 곳을 마련하였다.

 

비태(찬황) - 취황(465- ) 

 

妙心知碧我有寵于帝 欲引與之奸曰 我有媚道可以固寵

<묘심妙心>은 <벽아碧我>가 제에게 총애가 있음을 알고

그녀를 데려올려고 간사하게 말하였다.

"나에게는 미도(媚道)가 있어 총애를 굳게 할수 있다."

 

碧我知其詐而斥之曰 我乃宰相之妾也 帝寵非其分焉用媚道

<벽아碧我>가 거짓임을 알고 이를 배척하며 말하였다. 

"나는 재상(宰相)의 첩으로 제의 총애를 얻고자 

미도(媚道)를 사용하는 것은 본분이 아니다."

 

妙心不悅乃謂元兮曰 此女妖物若不逐出 三年之內必亡爾家

<묘심妙心>이 기뻐하지 않고 <원혜元兮>에게 말하였다.

"이 여자는 요물이니 만약 쫓아내지 않으면 3년내에 반드시 너의 집이 망할 것이다."

 

元兮信其言奏于剡臣公 公疑之問於碧我 碧我乃告妙心淫狀

<원혜元兮>가 그 말을 믿 <염신剡臣>공에게 아뢰니

공이 이를 의심하여 <벽아碧我>에게 물었다.

이에 <벽아碧我>가 <묘심妙心>의 음란함을 고발하였다.

 

公素憎妙心儧亂骨女

공은 평소 <묘심妙心>이 골녀를 음란함을 증오하였다.

 

及聞元兮納媚大怒曰 奴汚吾妻罪不可赦也

이윽고 <원혜元兮>가 아첨하여 받아들여졌다는 말을 듣고 대노하여 말했다.

"더러운 종(奴)이 내 처에게 죄를 지었으니 용서할 수 없다."

 

公乃踈元兮 欲誅妙

이에 공은 <원혜元兮>를 멀리하고 <묘심妙心>을 주살코자 하였다. 

 

時善兮后亦酷愛妙心遂娠其女

이때 <선혜善兮>후 역시 <묘심妙心>을 몹씨 사랑하여 마침내 그의 딸을 임신하였다.

 

내숙(조생) - 선혜(459-518) 

 

妙心以爲必生天子 后信其言 益愛妙心

<묘심妙心>이 반드시 천자(天子)를 낳을 것이라고 하니

그 말을 믿고 더욱 <묘심妙心>을 사랑하였다.

 

初智度路公女厚凰爲太子阿知妃

처음에 <지도로智度路>공의 딸 <후황厚凰>을 태자 <아지阿知>의 비로 하였다.

 

비처(치군) - 아지(463-483)

지도로(라황) - 후황(466-499)

 

阿知薨 受帝寵 進 爵璽宮 寵冠九宮 以此天宮久曠

<아지阿知>가 죽어 제의 총애를 받아 새궁(璽宮)의 작위를 받고

총애가 구궁(九宮)에서 으뜸으로

오래도록 비워둔 천궁(天宮)을 차지하였다. 

 

妙心夜夜抱后而臥常言曰

<묘심妙心>밤마다 <선혜善兮>후를 안고 누워 항상 말하기를

 

朕實神帝而毗處邪氣也 汝以吾妻不除邪氣 此腹中天子無以貴也

"짐이 사실 신제(神帝)이고 <비처毗處>는 사악한 기운이다.

당신은 나의 처로 시악한 기운을 제거하지 못하니

이 복중(腹中)의 천자(天子)는 귀하게 되지 못 할 것이다."

 

善兮曰妾爲郎君不避水火 况爲吾腹之兒敢不如敎

<선혜善兮>가 말하기를

"첩은 낭군을 위하여 물불을 피하지 않는데

하물며 내 복중의 아이를 위해서 감히 가르침을 따르지 않겠습니까?"

 

妙心曰 吾臣有善刺者可入琴匣 使處宮中夜入琴匣置

汝枕頭待汝抱毗處 而臥出匣刺之秘 不發喪矯詔 召智度路毗已剡臣等悉誅之

而後乃以遺詔 立我爲天子 以汝爲皇后不亦好乎

<묘심妙心>이 말하가를

"내 신하중에 칼을 잘 찌르는 자가 있는데 금갑(琴匣)에 들어갈 수 있다.

궁중에 들여보내 밤에 금갑(琴匣)에 들어 가 당신의 침상 머리에 두어라

당신이 <비처毗處>를 안고 눕기를 기다렸다가 금갑(琴匣)에서 나와

비밀리에 찔러 죽일 것이고 발상하지 않고 거짓 조서

<지도로智度路>와 <비이毗已>, <염신剡臣>등을 불러 모두 주살한 후

유조(遺詔)로 나를 천자로 당신을 황후로 세우면 역시 좋지 않겠는가?" 

 

善兮聞之 乃懼曰 毗處荒於厚凰 不與我好固有罪矣 他皆我骨肉豈忍 多誅也

<선혜善兮>가 이를 듣고 두려워하며 말하기를

"<비처毗處>는 <후황厚凰>에게 황음하여 나와는 사이가 좋지 않으니 죄가 있으나

다른 사람은 나의 골육인데 어찌 모두를 주살 하겠는가?

 

妙心知善兮之不忍 乃使其徒入衛天宮

<묘심妙心>은 <선혜善兮>가 차마 참지 못함을 알고

그 무리를 천궁 시위로 들어가게 하였다.

 

欲自行之期以上元夜天宮 初夕之時 幸天泉亭 有鵲亂噪相鬪

정월 대보름날 밤, 천궁(天宮)의 초저녁 일과시간에,

가 천천정(天泉亭)에 행차하였는데, 까치가 시끄럽게 울며 서로 싸웠다.

 

命駐輦而搜之得書於池中曰 開見二人死不開一人死

가마를 잠시 멈추고 못 속에서 글을 얻어 받아보니

"개봉하면 두 사람이 죽고 개봉하지 않으면  사람이 죽는다" 라고 쓰여 있었다.

 

帝謂剡臣曰 寧其二人死不若一人

제가 <염신剡臣>에게 일러 말하기를

" 두 사람이 죽는 것은 한 사람이 죽는 것 보다 못하다." 라고 하니

 

剡臣曰一人者君也 不開不可

<염신剡臣>이 아뢰기를

" 한 사람은 왕을 말합니다. 개봉하지 않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라고 하였다.

 

乃開視之 有夜入天宮 先射琴匣之語

이에 그것을 개봉하여 살펴보니

"밤에 천궁으로 들어 간 사람이 있으니 먼저 금갑을 쏘아라" 라고 적혀 있었다.

 

剡臣乃奏天宮荒淫之罪帝亦可之

이에 염신<剡臣>이 천궁의 황음의 죄를 아뢰니 제 역시 옳다고 하였다.

 

乃歸天宮 后不知而喜欲抱帝而媚 帝乃挽弓射枕頭琴匣

천궁으로 돌아가니 후는 알지 못하고 기뻐하며

제에게 교태를 부리고 제를 안고자 하니 활을 당겨 침상머리에 있는 금갑을 쏘았다.

 

血流出外 有人號呌而出

피가 바깥으로 흘러나오고 소리지르며 나오는 사람이 있었다.

 

智度路與剡臣引兵入衛曳出匣人視之乃妙心奴

<지도로智度路>와 <염신剡臣>이 시위 병을 인솔하여 들어와

금갑을 끌내어 사람을 살펴보니 <묘심妙心>의 종(奴)이었다. 

 

大搜宮中妙心以女服在蘭陵宮嬉戱曳出之 盡捕其徒下理方

궁중을 모조리 뒤지니 <묘심妙心>이 여복을 하고 난릉궁(蘭陵宮)에서 희희닥 거리며 놀고 있는 것을 끌어내고 이방(理方)에 이르기 까지 그 무리들을 모조리 체포하였다.

 

帝命剡臣公治之辭多連宮中 智度路公曰

제가 <염신剡臣>공에게 명하여 이를 치죄토록 하니

궁중의 많은 사람이 연관되어 있어 <지도로智度路>공이 말하였다.

 

二人者妙心與奴也 吾妹雖有罪天后也 刑不上於大夫 况天后乎 汝其止之

" 두 사람은 <묘심妙心>과 종이고 비록 내 여동생이 죄를 지었으나 천후이다.

형벌을 대부(大夫)에게도 올리지 않는데 하물며 천후이니 이를 막아야 한다."

 

剡臣公乃奏於帝曰 謀逆之事 天后實不知而嬖幸則有之

이에 <염신剡臣>공이 제에게 상주하여 이르기를

"역모의 사건을 천후는 사실 모르고 폐행(嬖幸)만의 짓입니다." 라고 하였다.  

 

 

帝乃賜妙心死 命后出宮 蘭陵英陵亦皆坐事而出遂廢日

이에 제는 <묘심妙心>에게 죽음을 내리고 후는 출궁토록 명하고

<란릉蘭陵>과 <영릉英陵> 모두는 역시 출궁하여 앉아서 죄를 기다리게 하고는

 

마침내 일선(日仙)과 월선(仙)을 폐하였다.

 

以璽宮厚凰爲天后 迎帝爲地后

새궁(璽宮) <후황厚凰>을 천후로 <영제迎帝>를 지후로 삼았다.

 

命智度路公攝行天子事 剡臣公與叔欣公爲左右輔 以運大政

<지도로智度路>공에게 천자(天子)의 일을 대행토록 하고

<염신剡臣>공과 <숙흔叔欣>공을 좌보와 우보로 하여

대정(大政)을 운영토록 명하였다.

 

忌舊宮之妖移居月城新宮

제는 구궁(舊宮)의 요사함을 기피하여 월성(月城) 신궁(新宮)으로 이거하였다. 

 

 

迎帝生帝子山宗殿君與魏花郞同日

<영제迎帝>가 제의 아들 <산종山宗> 전군을 <위화魏花>랑과 같은 날에 낳았다.

 

<위화>랑과 <산종>이 태어난 해는 소지왕 9년 487년 음력 5월 5일 단오일이다.

 

이때 소지왕 비처 52세, 지도로 51세, 영제 25세, 벽아 19세, 모진 8세이다.

 

帝乃召碧我抱郎入宮 賜食衣寶

이에 제는 <벽아碧我>를 불러 <위화魏花>랑을 안고 궁으로 들어오게 하여 

음식과 옷과 보물을 내렸다.

 

碧我 乳山宗 故遂留宮中 山宗之山取於大仙也

<벽아碧我>에게 명하여 <산종山宗>에게 젖을 먹이도록 하였다.

그런 연유로 마침내 궁중에 머물면서 <산종山宗>의 山을 취하여 大仙이라 하였다. 

 

謂迎帝曰 汝子當以汝兄之子爲臣而朕不及見也

제가 <영제迎帝>에게 일러 말하기를

" 너의 아들은 마땅히 너의 오빠의 아들로 신하이니 짐은 보지 않을 것이다."

라고 하니

 

迎帝曰 妾等願以己年?獻于陛下 何患聖壽不長

<영제迎帝>가 말하기를

" 첩 등은 몸과 마음을 폐하에게 바치길 원하니 

어찌 장수하심을 근심하지 않겠습니까?"라고 하니

 

嘉之言 命爵迎帝長子慕珍宮 爲山宗殿舍知曰

제가 그 말을 가상히 여겨 <영迎帝>의 장자 <모진慕珍>궁에게 작위를 내리고

<산종山宗> 전군의 사지(舍知)삼으며 말하였다.

 

兒之胞兄 智弟之冢子也 雖無吾妻之言 可以爵 此嘉言 不可不報也

" <산아兒>의 포형(胞兄) 지도로 동생의 적장자(冢子)이다.

비록 내 처의 말이 없더라도 작위를 내림이 옳은데

하물며 이토록 가상한 말을 듣고 보답하지 않음은 옳지 않다."

 

慕珍宮已八歲 天姿??成龍行 而虎步拜恩進退儼有威儀帝稱善曰 此子必碩吾

<모진慕珍>궁은 이미 8살로 천자의 자태를 지니고 천자의 행동으로

힘차고 씩씩하게 걸어나와 보은에 절하고,

나가고 물러남에 의젓하고 위엄이 있어 제가 칭찬하며 말하였다. 

" 이 아들은 우리나라를 반드시 크게 할것이다."

 

命加奴婢 又謂碧我曰 汝子神仙也 必興原道以安吾邦

노비를 더하도록 명하고 또 <벽아碧我>에게 일러 말하기를

" 너의 아들은 신선(神仙)이니 반드시 원도(原道)를 일으켜

우리나라를 편안하게 할 것이다." 라고 하며

 

亦加奴婢 碧我乃謝于迎帝曰

역시 노비를 더하도록 하니 <벽아>가 <영제>에게 사양하며 말하기를

 

上德及臣子亦慕公之恩也

"상의 덕과 신의 아들 역시 모진공의 은혜입니다." 라고 하니

 

迎帝笑曰 吾子兄子皆上之臣也 均沾雨露何有私恩

<영제迎帝>가 웃으며 말하였다.

"나의 아들과 형의 아들 모두 상의 신하입니다.

은혜를 고루 받는데 어찌 사사로운 은혜가 있겠습니까?"

 

仍命慕珍宮拜見碧我曰 汝叔母有汝好弟可與親也

<모진慕珍>궁에게 명하여 <벽아碧我>를 보고 절하도록 하고 말하기를

" 너의 숙모이니 너는 동생을 좋아하여 친하게 지냄이 옳다."라고 하니

 

碧我驚避不敢受拜曰 臣是賤人安敢當禮慕珍宮

<벽아碧我>가 놀라 감히 절을 받는 것을 피하며 말하기를

"신은 천한 사람인데 어찌 예를 감당하겠습니까?"라고 하였다

 

乃抱魏花郞愛之曰 此吾花

이에 <모진慕珍>을 안고 <위화魏花>랑을 사랑하며 말하기를

"이 아이는 나의 꽃(花)이다."

 

郎挽宮玉佩 宮卽 解而佩之曰 吾以此爵汝

<위화>랑이 <모진>궁의 옥퍠(玉佩) 당겨 <모진>궁의 옥패가 풀어지니 말하기를

"내가 이것을 너에게 작위로 줄 것이다" 라고 하였다. 

 

自是宮數往來碧我宅與郎遊

이때부터 <모진>궁은 수차례 <벽아碧我> 집을 왕래하며 <위화>랑과 놀았다.

 

剡臣公長子元臣 少宮 七元臣之妹越期帝女也

이때 <염신剡臣>공의 장자 <원신元臣> 소궁(少宮)은 7살이고

<원신元臣>의 여동생 <월기越期>는 제의 딸이다.

 

염신(원혜) - 원신(481- )

비처(원혜) - 월기(484- )

 

皆從郎遊尊宮爲君 事之

모두가 <위화>랑을 따라 놀며 <모진>궁을 존중하며 군(君)으로 섬기었다. 

 

天后生芬宗殿君 少山宗 七月 而帝酷愛之立 爲太子

천후가 <분종芬宗> 전군을 낳아 작은 <산종山宗>으로 하니

7월에 제가 그를 몹씨 사랑하여 태자로 하였다.

 

비처(후황) - 분종(488- )

 

命慕珍宮與元臣阿時等護太子

<모진慕珍>궁과 <원신元臣>, <아시阿時> 등에게 명하여 태자를 보호토록 하였다. 

 

碧我方生剡花 亦入乳太子 魏花郞才三歲 能知禮節不敢抗太子 能盡臣道

天后嘉之告于帝曰

<벽아碧我>가 바야흐로 <염화剡花>를 낳아 역시 태자에게 젖을 먹이려 들어오니

<위화魏花>는 겨우 3살이지만 능히 예절을 알아 감히 태자를 막지 못하고

신하의 도를 다하니 천후가 이를 가상히 여겨 제에게 말하였다.

 

魏花吾兒之忠臣也

"<위화魏花>는 우리 아이의 충신입니다."

 

帝乃呼以赤心花賞以緋袴翠佩

이에 제가 (위화를) 적심화(赤心花)라 하고 붉은 바지와 비취색 구슬을 상으로 주었다.

 

時翠凰亦生剡臣子非西 入乳太子 非西多與太子爭乳

이때 <취황翠凰> 역시 <염신剡臣>의 아들 <비서非西>를 낳아

태자에게 젖을 먹이려 들어오니 <비서非西>와 태자가 젖을 먹으려고 많이 다투었다.

 

염신(취황) - 비서(489- )

 

이때 <위화> 3세, <분종> 2세, <비서> 1세이다.

 

 

天后問曰 太子汝君 非西汝弟 汝將爲誰 郎曰爲君

천후가 (위화에게) 묻고 말하였다.

" 태자는 너의 군()이고 <비서非西>는 너의 동생이다.

너는 장차 누구를 위할 것인가?

위화랑(郎)은 군(君)을 위할것이라고 말하였다.

 

天后曰 然則可笞非西乎 郎泣曰 臣弟無知臣 願代受其笞

천후가 "<비서非西>의 볼기를 치는 것이 옳다." 라고 하니

<위화>가 울면서 말하였다.

"신의 동생은 신하임을 알지 못하니 그 볼기를 대신 맞기를 원합니다."

 

天后曰 忠君之心出於孝 友者果矣 朕若生女則 當妻于慕珍及汝矣

천후가 말하였다.

" 군을 섬기는 마음은 효에서 나오는데 과연 우애가 있는 아이로구나. 

짐이 만약 딸을 낳으면 마땅히 <모진慕珍>과 너의 처로 할 것이다."

 

郎喜起拜謝之

<위화>랑이 기뻐하며 일어나 사례하고 절하였다.

 

天后出翠凰問於郎曰

천후가 나가자 <취황翠凰>이 <위화>랑에게 묻고 말하였다.

 

吾亦生女妻汝何如

나 역시 딸을 낳아 너의 처로 하면 어떻겠는가?"

 

郎搖首曰 將娶天后女 不用伯母女

<위화>랑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하였다.

" 천후의 딸에게 장가들 것이니 백모(伯母)의 딸은 소용이 없습니다."

 

翠凰曰 汝不以吾女妻之 不使非西弟之

<취황翠凰>이 말하였다.

" 너는 나의 딸을 처로 하지 않으니 <비서非西>를 동생으로 여기지 말라"

 

郎乃泣曰 願從母言 恐天后不恕 母與我俱危 不如從天后

이에 <위화>랑이 울면서 말하였다.

" 원컨데 어머니의 말을 따르면

천후가 어머니와 나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 두렵습니다.

함께 위태로우니 천후를 따르는 것만 못할 것입니다.

 

翠凰奇其言 告于剡臣公曰

<취황翠凰>이 그 말이 기이하여 <염신剡臣>공에게 고하여 말하였다.

 

吾子雖愚 以魏花爲兄 必有幸矣

" 비록 나의 아들은 우매하나 <위화花>가 형이니 반드시 행운이 있을 것입니다."

 

公曰吾所信待 專在此兒汝與元兮 勿謂母微(而)輕之

(염신)공이 말하였다.

" 나의 소신은 기다리는 것이다. 

이 아이의 운명은 너와 <원혜兮>에게 오로지 달렸으니

어미에게는 이를 가볍게 말하지 말라"

 

翠凰曰妾等已知夫主之志 豈敢忽乎

<취황翠凰>이 말하였다.

"첩 등은 이미 남편의 뜻을 아는데 어찌 감히 이를 소홀히 하겠습니까?"

 

以此元臣欲讓其嗣于郎 公嘉其有太伯之孝 而欲許之

이리하여 <원신元臣>보다 <위화>랑에게 그 후사를 양보코자 하니

염신공은 태백지효(太伯之孝)가 있음을 가상히 여겨 이를 허락코자 하였다.

 

碧我爭之曰 賤妾之少子 安敢受嫡母冢子之位 命郎不受

<벽아碧我>가 이를 다투어 말하였다.

"천첩의 아들이 감히 적모적자지위를 받겠습니까?

<위화>랑에게 명하여 받지 않도록 하십시오"

 

公怒欲笞碧我 碧我拒之曰

공이 노하여 <벽아碧我>를 매질하려 하자 <벽아碧我>가 이를 거부하며 말하였다.

 

妾以獻身於郎君非妾身也 妾雖賤人郎君宰相也

不敢以宰相之身被笞也 郎君若免妾爲庶人歸

妾骸骨則可以受怒當笞 若以妾爲妻則不可

况妾在四節之林 不知何時當寵 安敢自輕

"첩이 낭군에게 몸응 바쳤으니 첩의 몸이 아닙니다. 

첩은 비록 천한 사람이나 낭군께서는 재상입니다.

감히 재상의 몸을 매질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만약 낭군께서 첩을 면하게 하여 서인(庶人)으로 돌아가도록 하면

첩의 해골이라도 노여움으로 마땅히 매질을 받음이 옳습니다.

만약 첩이 처라면 옳지 않습니다.

하물며 첩에게는 사절지림(四節之林)이 있어 

어느 때에 마땅히 총애가 있을 지 알지 못하는데

어찌 스스로 가볍게 할 수 있겠습니까?"

 

公乃釋怒而抱郎曰 汝母甚頑 汝當從父

이에 공이 노여움을 풀고 <위화>랑을 안고 말하였다.

"너의 어머니는 아주 완고하니 너는 마땅히 아버지를 따라야 한다."

 

郎方五歲而能不屈曰

母雖頑而忠于父 弟雖寵而服于兄

<위화>랑은 방년 5살로 굴복할 수 없어 말하였다.

"어머니는 비록 완고하나 아버지에게 충성하여야 하고

동생은 비록 총애하나 형에게 복종하여야 합니다."

 

 

公益愛之曰 汝言賢如此 故可以冢之 以賢興 家之道也

염신공이 더욱 이를 사랑하며 말하였다. 

"너의 말의 현명함이 이와같으니 가이 적자이다.

장흥() 대신 현()이 가문의 도()이다."

 

郎曰賢者知弟不可以爲兄 兄者君也 弟者臣也 臣可以爲君乎

國賴臣賢家依弟 良弟亦不可不賢也

<위화>랑이 말하였다.

"현명한 자는 동생이 형을 위함은 옳지않고 형은 군()이고 동생은 신하이니

신하가 군()을 위함이 옳은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나라는 현명한 신하에게 의지하고 가정은 좋은 동생에게 의지합니다.

동생이 현명하지 않음은 옳지 않습니다."

 

염신(원혜) - 원신(481- )

염신(벽아) - 위화(487- )

 

<위화>가 이복형인 <원신>을 형으로서가 아니라 군()으로 섬기고자 하는 것이다.

 

元兮宮主自內聞之走抱郎曰

<원혜元兮>궁주가 내실에서 이 말을 듣고 뛰쳐나와 <위화>랑을 안고 말하였다.

 

好吾子也 妾怨郎君之廢元臣者久矣 今聞此言 郎君欲立此子者無疑也

願以此子爲吾子以代元臣

"좋은 우리 아들이다.

첩은 <원신元臣>을 폐하니 오래도록 낭군을 원망하였습니다.

지금 이 말을 들으니 낭군께서 이 아들을 세우고자 하는 것은 의심할 바 없습니다. 

원컨데 이 아들로 우리 아들 <원신元臣>을 대신하기를 바랍니다." 

 

公大喜曰吾妻之言甚合

<염신>공이 크게 기뻐하며 말하였다. 

" 내 처의 말이 아주 합당하다."

 

乃命爲元兮子而郎與元臣 相讓其冢數年不決

이에 <원혜元兮>에게 명하여 <위화>랑과 <원신元臣>을 아들로 하여

서로 그 적자를 사양한 지 수년이었으나 해결이 되지 않았다.

 

帝乃命元臣爲白欣公冢孫 以郎爲助里宮冢婦孫

이에 제가 <원신臣>을 <백흔白欣>공 적손으

<위화>랑을 <조리助里>궁 부인쪽 적손으로 하였다.

 

미해(청아) - 백흔(조리) - 염신(원혜) - 원신

순실(청아) - 조리(백흔) - 염신(벽아) - 위화

 

以兩立之 爲郎賜田園及助里宮財寶 郎年七歲

양쪽 가문을 세우고 <위화>랑을 위하여

전원(田園)과 <조리助里>궁에 재물과 보화를 내리니 <위화>랑의 나이 7살이었다.

 

소지왕 15년 493년이다. 

 

 

時剡臣公 新娶乃宿公女玉梁娘主生子

때에 <염신剡臣>공은 <내숙乃宿>공의 딸 <옥량玉梁>낭주에게 새로 장가들어

아들을 낳았다.

 

내숙(미량) - 옥량(473- )

염신(옥량) - 염량(494?- )

 

剡梁寵冠 諸室碧我之寵亦大減 元兮宮主累至而毁

<염량剡梁>이 총애가 으뜸이었고

여러 내실 중 <벽아碧我>의 총애도 크게 줄고 <원혜元兮>궁주는 누차 무너지니

 

玉梁曰 郎君之疎 我輩者因 玉梁之䜛也

<옥玉梁>이 말하기를

" 낭군의 소홀함은 내 무리배들이 나를 참소하였기 때문이다." 라고 하였다.

 

碧我信之不愛剡梁郎諫之吾弟也母亦子之可也

<벽아碧我>가 이를 믿고 <염량剡梁>을 사랑하지 않으니

<위화>랑이 이를 간하여 말하였다.

" 나의 동생이고 역시 어머니의 자식입니다."

 

碧我曰 剡梁奪汝之財寶可乎

<벽아碧我>가 말하기를

" <염량剡梁>은 너의 재물과 보화를 뺏으려 한다." 라고 하니

 

郎曰 兄弟無所私 可與之

<위화>랑이 말하기를

" 형제는 사사로이 가지는 것이 없으니 주는 것이 옳습니다."라고 하였다.

 

碧我乃解其玩 寶盡與剡梁而不惜之

이에 <벽아碧我>가 그 완고함을 풀고

보화를 모두 <염량剡梁>에게 주고 애석해 하지 않았다.

 

玉梁以愛其子 告剡臣公 公益賢碧我曰

<옥량玉梁>이 그 아들을 사랑하여 <염신剡臣>공에게 고하니

공은 <벽아碧我>를 더욱 현명하다고 하며 말하였다. 

 

他妻皆妬 而汝不妬 汝眞吾妻也

" 다른 처들 모두가 질투를 하는데 당신은 질투하지 않으니 당신은 진정 나의 처이다."

 

乃生雪花 郎詣助里得順實郎古笛欲吹之

이에 <설화雪花>를 낳으니 <위화>랑이 <조리助里>에게 가서

<순실>랑의 옛 피리를 얻어 불고자 하였다.

 

염신(벽아) - 설화(494?- )

 

時猪君之裔 有善吹笛者 召之敎郎以笛得音

이때 <저군猪君>의 후예 중에 피리를 잘 부는 자가 있어

이를 불러 <위화>랑을 가르치니 <위화>는 피리 소리의 음을 얻었다.

 

其徒有駃兒者亦能笛 亦出入敎郎 駃嬌如婦女 能媎于內

그 무리 중에 <결아駃兒>라는 자가 있어 역시 피리에 능하여

출입하여 <위화>랑을 가르치니 <결아>는 마치 부녀같이 아리따워 

내실에서 잠자리 시중을 능히 할 수 있었다.

 

碧我與之和琴于月下 興高而相通娠女斗花

<벽아碧我>와 함께 달 아래서 거문고로 화답하다

흥이 최고에 이르자 상통하여 딸 두화를 임신하였다.

 

恐公知之而惱之 郎乃逐駃兒

염신공이 이를 알까 두려워하여 괴로워하니

<위화>랑이 <결아駃兒>를 쫓아내었다.

 

內宮衛監宣登亦善吹笛 願得見順公古

내궁위감(內宮衛監) <선등宣登> 역시 피리를 잘 불어

<순실>공의 엣 피리를 보고 얻기를 원하였다.

 

지도로(찬황) - 선등(469-526)

 

剡臣公命碧我邀宣登敎郎

<염신剡臣>공이 <벽아碧我>에게 명하여

<선등宣登(469-526)>을 맞이하여 <위화>랑을 가르치도록 하였다.

 

碧我乃邀之宣登曰

吾於蝴蝶樓吹笛之時 見叔母之善舞請一舞

이에 <벽아碧我>가 그를 맞이하니 <선등宣登>말하였다.

" 내가 호접루(蝴蝶樓)에서 피리를 불

숙모의 고운 춤을 보고 한번 춤 출 것을 청합니다."

 

벽아와 선등은 동갑으로 이때 28살이다.

 

염신은 등흔의 조카이고 선등은 등흔의 외손자이다.

벽아는 염신의 처로 선등의 외숙모가 된다.

 

碧我辭之 不得和笛 而舞 宣登稱之曰 眞舞聖之妻也

<벽아碧我>가 이를 사양하였으나 부득이 피리소리에 춤으로 화답하니

<선등宣登>이 이를 칭하여 말하기를  

" 진정 무성(舞聖)의 처입니다" 라고 하였다.

 

是宣登學舞于碧我 或至夜深偶因大雪宿于碧我寢 遂與之相通 宣登曰

久慕叔母 今夜奉枕 無以報

이로 부터 <선등宣登>이 <벽아碧我>에게 춤을 배우

혹은 심야에 이르러 우연히 큰 눈을 만나 <벽아碧我>의 침상에서 자게되어

마침내 서로 상통하니 <선등宣登>이 말하였다. 

" 오래도록 숙모를 사모하다 오늘 밤 잠자리를 받드니 은혜에 보답 할 길이 없습니다."

 

碧我乃以私通 駃兒之事告之所娠之兒 必肖駃兒奈何

이에 <벽아碧我>가 사통하여 <결아駃兒>의 일을 고하고

아이를 임신한 바 필히 <결아駃兒>를 닮을 것이니 어찌 하느냐 라고 하니 

 

宣登笑曰 一念生一㤼 一㤼生一業 情事亦天定

叔母何惱 叔父左抱索娥右取玉梁 久曠叔母

叔母亦與我行樂不亦可乎

<선등宣登>이 웃으며 말하였다.

"일념(一念)은 일겁(一㤼)을 낳고 일겁(一㤼)은 일업(一業)을 낳으니

사(情事) 역시 하늘이 정한 것입니다.

숙모는 어찌 괴로워 하십니까?

숙부는 왼쪽에 <색아索娥>를 안고 오른 쪽에 <옥량玉梁>을 취하여

오래도록 숙모를 비워 두었습니다.

숙모 역시 나와 함께 재미있게 놀고 즐기는 것도 역시 옳지 않겠습니까?"

 

碧我曰 誠如郎君之言 妾無憂矣 妾乃賤人恐得重罪

<벽아碧我>가 말하였다.

"낭군이 정성을 다하여 그와같이 말을 하니 첩은 걱정이 없습니다.

첩은 천한 사람으로 중죄를 받을까 두려웠습니다."

 

宣登曰 叔父若怒 我當娶叔母爲妻矣 勿慮也

<선등宣登>이 말하였다.

"숙부가 만약 노여워하면 마땅히 숙모에게 장가들어 처로 삼을 것이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碧我大喜乃 盡情而媎之

이에 <벽아碧我>는 크게 기뻐하며 정을 다하여 잠자리 시중을 들었다. 

 

自是宣登累宿於碧我 情若夫婦

이로 부터 <선등宣登>은 누차 <벽아碧我>에게서 잠을 자니 정이 부부같았다.

 

郎爲母而不言 碧我曰 吾子賢人必享大福

<위화>랑은 어머니를 위하여 말을 하지 않으니 <벽아碧我>가 말하였다.

"내 아들은 현인이니 반드시 대복(大福)을 누릴 것입니다."

 

及生斗花

급기야 <두화斗花>를 낳았다.

 

결아(벽아) - 두화(496?- )

 

宣登負??于剡臣公請罪曰 侄强于叔母也

<선등宣登>이 부담되어 <염신臣>공에 죄를 청하며 말하였다.

"조카가 강제로 숙모에게 한 짓입니다."

 

公笑曰 汝何言乎

공이 웃으며 말하였다.

"너는 무슨 말을 하는가?"

 

乃命宣登洗斗花 仍許碧我于宣登

이에 <선등宣登>에게 명하여 <두화斗花>를 씻게하고

<벽아碧我>를 <선등宣登>에게 허락하였다.

 

時宣登爲勝殿師 常在太子宮

이때 <선등宣登>은 승전사(勝殿師)로 항상 태자궁에 있었다.

 

天后乃召碧我于太子宮 拜爲內傳 以郎爲太子舍知

幷床而食同卷而讀 太子九歲而郎十

이에 천후가 <벽아碧我>를 태자궁에 불러 내전(內傳)으로, 

<위화>랑을 태자 사지(舍知)로 벼슬을 내리고 

상에 어울려 같이 먹도록하고 책 일기를 권하니

태자는 9살이고 <위화>랑은 10살이었다.

 

소지왕 18년 496년이다.

 

玉顔 龍光 完若日月之相對

구슬같은 얼굴과 빛나는 눈동자는 완전히 일월의 상과 같았다.

 

碧我與宣登同年二十八

<벽아碧我>와 <선등宣登>은 동갑으로로 28세였다.

 

식진(벽씨) - 벽아(469-526)

지도로(찬황) - 선등(469-526) 

 

<벽아>와 <선등>은 같은 해에 태어나서 같은 해에 죽어 백아릉에 함께 묻혔다.

 

 

始得比翼之情 又蒙甘盤之榮 不勝感激 至誠事太子

처음으로 비익(比翼)의 정을 얻고 또 감반(甘盤)의 영화(榮華)를 입으니

감격을 이기지 못하여 태자를 지성으로 섬기었다.

 

天后累至賞賜曰 吾子得好師傳 朕無憂矣

천후가 누차 상을 내리며 말하였다.

" 나의 아들이 좋은 스승을 얻어 전하니 짐은 걱정이 없다."

 

時天后以父公智度路爲副君委以政事 依二聖古事巡狩國中 封于神山爲樂

이때 천후는 아버지 <지도로智度路> 부군에게 정사(政事)를 위임하고

이성(二聖)의 고사(事)에 의하여 나라 안을 순수하며

신산(神山)에서 받들어 모심을 즐거움으로 하였다.

 

습보(조생) - 지도로(437-514 22대 지증왕 재위 500-513)

지도로(라황) - 후황(466-499)

 

又以剡臣公爲元元花士 掌骨女歌舞 帝與后亦至蝴蝶樓 對舞

또 <염신剡臣>공을 원원화사(元元花士)로 삼아 골녀를 관장하여 가무를 즐기니 

제와 후도 호접루(蝴蝶樓)에 이르러 마주보며 신명나게 춤을 추었다.

 

 

後來 帝文郎作詩 解其詞曰

훗날 <제문帝文>랑이 시를 지어 풀어 노래하기를 

 

胡蝶樓中 胡蝶兒 雙去雙來 唱新詞

翠衣緋袴 黃金帶 環無樹王 弄神

鳳車乍震 山呼高 東父西母 下瑤池

天宮綠髮 三千尺 鷄林天子 眼中垂

眞眞元元 妙妙裡 長得君王 寵如飴

如飴 寵始飴 九天銀河 濃如脂

 

호접루엔 나비가 짝을 지어 날아들며 새로운 노래를 부르네.

비취 저고리, 붉은 바지, 황금옥대와 고리 옥 없는 수왕은 꽃가지를 희롱하네.

봉황이 탄 수레가 잠시 흔들리니 만세소리 높고 아비와 어미가 연못으로 내려오네.

천궁의 길게 늘어트린 녹색 머리카락이 계림천자의 눈에 드리우네. 

진원(眞元)은 그 속이 묘하고도 묘하고 군왕에게 받은 오랜 총애는 엿처럼 달콤하네.

엿처럼 달콤한 총애는 달콤함에서 비롯되고

구천 은하수는 짙기가 기름을 친것 같구나.

 

비처의 총애를 받는 후황을 훗날 <제문>이 노래한 시이다.

 

모진(백란) - 란공(유문) - 제문帝文(547?- )

 

<제문>은 법흥대제 <모진>의 손자로

<미실(547-616?)>을 사랑하여 딸 <보림>과 <애함>을 낳았다.

 

호접루는 소지왕 6년(484년)에 건축한 골녀들의 연무장(演舞場)이다.

 

 

 

帝又至太子宮與后歌之 命太子與魏花郞 對舞

제가 또 태자궁에 이르러 후와 함께 노래하며

태자와 <위화魏花>랑에게 명하여 마주보며 춤을 추게 하였다.

 

郎歌舞天成每得帝讚

<위화>랑의 가무(歌舞)는 하늘의 이치를 이루어 매번 제의 칭찬을 받았다.

 

帝爲碧我賜錦衾 作新夫歌歌之 使宣登碧我起舞

제가 <벽아碧我>를 위하여 비단 이불을 내리고 신부가(新夫歌)를 지어 노래하고

<선등宣登>과 <벽아碧我>에게 일어나 춤추도록 하였다.

 

天后名其衾曰新夫衾 而謂宣登曰 汝若生女則可配吾子

천후가 그 이불을 신부금(新夫衾)이라 하고 <선등宣登>에게 말하였다.

" 너가 만약 딸을 낳으면 내 아들의 배필로 함이 옳다." 

 

宣登乃使碧我禱生女 不得悶之

이에 <선등宣登>은 <벽아碧我>가 딸을 낳도록 기도하게 하였으나

얻지 못하여 이를 근심하였다.

 

元兮宮主疾篤臨薨謂元臣曰 吾將復生于碧我腹中矣

<원혜元兮>궁주가 병이 위독하여 임종으로 <원신元臣>에게 일러 말하였다.

" 나는 장차 <벽아碧我>의 배 속에서 다시 태어나고자 한다."

 

是夜果娠生女陽花 天后親幸賜米衣

이날 밤 과연 임신하여 딸 <양화陽花>를 낳아

천후가 친히 행차하여 쌀과 옷을 내렸다.

 

선등(벽아) - 양화(498?- )

 

帝以玉蘭公主妻剡臣公代元兮 仙徒乃奉普賢爲花(主)慕珍宮爲花士

제가 <원혜元兮>를 대신하여 <옥란玉蘭>공주를 <염신剡臣>공의 처로 하고

선도들이 <보현普賢>을 원화(源花)로 <모진慕珍>궁을 화사(花士)로 받들었다.

 

비처(란릉) - 옥란(478-533) 

 

天后以厚惠約爲魏花(妻)郎 以善知妻慕珍宮 以陽花約爲太子媵妾

천후가 <후혜厚惠>를 <위화魏花>랑의 처로 할 것을 약조하고

<선지善知>를 <모진慕珍>궁의 처로 하고

<양화陽花>를 태자의 잉첩으로 할 것을 약조하였다.

 

비처(후황) - 후혜(497-532)

아지(후황) - 선지(484- )

 

乃賜碧我白馬紫金衣賜 以三等骨品加爵 宣登命吉鮑祠

이에 <벽아碧我>에게 백마와 자금의를 내리고 삼등 골품의 작위를 더하여

<선등宣登>에게 명하여 포사(鮑祠)에서 길례를  행하도록 하였다.

 

以魏花郞爲太子舍人 皆登骨門

<위화魏花>랑을 태자 사인(舍人)으로 하니 함께 골문(骨門)에 올랐다.

 

天后命魏花郎 以宣登爲父 郎以此呼宣登以父 剡臣以先父

천후가 <위화魏花>랑에게 명하여 <선등宣登>을 아버지로 하게 하니

<위화>랑이 이로써 <선등宣登>을 아버지로 <염신剡臣>을 선부(先父)로 불렀다.

 

后稱善曰 汝父吾弟也 汝可呼朕以叔母可也

후가 착하다고 하며 말하였다.

" 너의 아버지는 나의 동생이니 너는 짐을 숙모라고 부름이 옳다."

 

지도로(라황) - 후황(466-499)

지도로(찬황) - 선등(469-526)

 

선등은 천후 후황의 이복동생이다.

 

郎以是呼天后以叔母 呼帝以叔父

<위화>랑이 이로써 천후를 숙모로 제를 숙부로 불렀다.

 

碧我則呼以姊后兄皇他 骨女不可及矣

<벽아碧我>를 후(后) 형황(兄皇)의 동생으로 부르니 다른 골녀들은 미치지 못 하였다.

 

后好洗太子每召太子於湯殿抱 而入浴及約厚惠

후는 매번 대전 욕탕에 태자를 불러 안고 탕에 들어가

약조한 <후혜厚惠>와 더불어 태자를 씻는 것을 좋아하였다.

 

又洗魏花郎如太子左右抱之

또 태자와 같이 좌우에 안고 <위화魏花>랑을 씻었다.

 

太子好乳而哺之后 又使魏花郎哺其一曰 汝妻厚惠之乳也 汝亦可以得哺也

태자가 그 젖을 먹는 것을 좋아하니

후는 또 <위화魏花>랑을 그 한 쪽 젖을 먹도록 하고 말하였다.

" 너의 처 <후혜厚惠>의 젖이니 너 역시 젖을 먹는 것이 옳다." 

 

碧我感泣曰 賤子得接玉體恐得罪禍

<벽아碧我>가 감읍하여 말하였다.

" 천한 아들이 옥체의 젖을 받아 먹으니 죄를 받을까 두렵습니다."

 

后曰吾女之夫非汝子也 何罪之有

후가 말하였다.

" 내 딸의 남편은 너의 아들이 아니니 무슨 죄가 있겠는가?" 

 

宣登乃與剡臣議 上天宮尊號 而獻八寶玉仙冠

이에 <선등宣登>과 <염신剡臣>이 상의하여

천궁의 존호(尊號)를 올리고 팔보옥선관(八寶玉仙冠)을 바쳤다.

 

后曰汝等但知忠君而不知孝親 朕之父母無號 朕不甘心群臣

후가 말하였다.

" 너희들은 단지 임금에게 충성하는 것은 알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모른다.

짐의 부모는 존호(尊號)가 없으니 짐이 신하들을 달가워 하지 않는다." 

 

乃上王號於副君 后號于大廟主

이에 부군(副君)에게 왕(王)의 이름을 대묘주(大廟主)에 후(后)의 이름을 올렸다.

 

后大悅會仙徒于海上 而求天仙不避風雪

후가 크게 기뻐하며 해상에 선도를 모아 풍설을 무릎쓰고 천선(天仙)을 구하였다.

 

宣登諫之 乃歸玉體未寧 帝憂之求藥四方

<선등宣登>이 이를 간하여 돌아오니 옥체가 미령하여

제가 이를 걱정하여 사방에 약을 구하였다.

 

 

而未至 黃兎正月二日崩于龍宮

얼마 지나지 않아 황토(黃兎)(499년) 정월 2일 용궁에서 붕하였다.

 

太子與魏花郎號哭成病 帝亦悲泣不食

태자와 <위화魏花>랑이 통곡하다 병이들고 제 역시 슬피 울며 음식을 먹지 않았다.

 

群臣莫知所爲副君 乃命地后迎帝抱帝入臥殯殿 天后玉顔如華 帝以爲回魂

신하들이 부군(副君)을 위하여 어찌 할 바를 몰라

지후 영제(迎帝)에게 제를 안고 들어와 빈전(殯殿)에 눕게하니

천후의 옥안(玉顔)이 마치 살아있는 것 같아 제는 혼이 돌아온 것 같이 여겼다. 

 

命宣登率諸巫誦經七日

<선등宣登>에게 명하여 여러 선무를 데리고 7일간 경을 외우도록 하였다.

 

帝夢見天后跨紫鹿 而入玉京曰 可以地后爲天后

제가 꿈에 천후가 자색 사슴을 걸터 앉아 타고 옥경(玉京)으로 들어 와 말하기를

"지후를 천후로 함이 옳다" 라고 하는 것을 보고

 

帝泣而 挽其袖曰 願與吾妻同去

제가 울면서 그 소매를 당기며 말하기를

" 내 처와 같이 가기를 원한다" 라고 하였다.

 

天后曰 上元之會入侍玉黃 當卽召君幸勿悲泣而少待也

천후가 말하였다.

"대보름의 집회에 옥황(玉黃)을 모시고 들어와 즉시 군행(君幸)을 부르게 하였으니

슬피 울지말고 잠시 기다리십시오."

 

帝猶不忍別之則 后自袖中出一花枝與之此可以慰郎君也

제는 오히려 이별을 참지 못하니 후가 소매에서 꽃 가지 하니를 꺼내며 말하였다.

"이것으로 낭군을 위로함이 옳다"

 

帝乃受而聞其香 有少女自花蕾中抱帝接肳(曰) 妾當奉枕

이에 제가 받아서 그 향을 맡으니

꽃봉오리 속에서 소녀가 나와 제를 안고 입맞추며 말하였다.

"첩은 마땅히 잠자리를 받들것입니다."

 

帝奇之引其手 而出花娟麗可愛

제가 이를 기이하게 여겨 그 손을 잡아 당겼다.

꽃에서 나오니 예쁘고 고와서 사랑할 만 하였다.

 

帝乃大喜抱女 而歡覺之乃迎帝也

이에 제가 크게 기뻐하여 여인을 안으니 이는 환각이고 <영제迎帝>였다.

 

迎帝曰天后以妾獻于陛下也 願陛下愛妾而忘先后

<영제迎帝>가 말하였다.

"천후가 첩을 폐하께 바쳤습니다

원컨데 폐하께서는 첩을 사랑하여 선후(先后)를 잊으시길 바랍니다."

 

帝乃與迎帝共入浴殿 群臣山呼 獻賀葬先后于伊同宮

이에 제와 <영제迎帝>가 같이 대전으로 들어 가 목욕을 하니

신하들이 산호만세를 부르고

이동궁(伊同宮)에서 선후(先后)를 장례하고 하례를 드렸다.

 

以迎帝爲天后 命以太子爲迎帝子

<영제迎帝>를 천후로 하고 태자를 <영제迎帝>의 아들로 명하였다.

 

太子乃以華服拜謁新后 行母子之禮

이에 태자는 화복(華服)으로 신후(新后)를 알현하고 절하여

모자(母子)의 예()를 행하였다.

 

迎帝乃抱太子入湯洗之曰

汝母嘗欲以吾女普仁妻汝 朕今爲汝母當守其約 而慰汝母之靈矣

<영제迎帝>가 태자를 안고 탕에 들어 가 씻으며 말하였다.

" 너의 어머니는 이미 나의 딸 <보인普仁>을 너의 처로 하고자 하였다.

짐이 지금 너의 어머니가 되어 마땅히 그 약조를 지켜

너의 어머니의 혼령을 위로코자 한다."

 

乃召普仁與太子同浴

이에 <보인普仁>을 불러 태자와 같이 목욕하였다.

 

普仁長太子(十)二歲 能抱太子 入湯洗之 出湯衣之 奉供如流

<보인普仁>은 장성하고 태자는 12살이라

능히 태자를 안고 탕에 들어 와 씻고 탕을 나와 옷을 입히니

봉공(奉供)하는 것이 흐르는 물과 같았다.

 

소지명왕기에는 태자 분종이 488년에 태어났다고 하였다.

천후 <후황>이 죽은 해는 499년이다.

위의 기사는 499년의 일이다.

이때 태자 분종은 12살이다 十자가 탈락되어 있다.

 

子便之常在迎后之側與普仁起臥

태자는 이를 편하게 여기고 항상 영후(迎后)의 곁에서

보인과 함께 일어나고 누웠다.

 

以此碧我魏花郞不得近太子

이로써 <벽아碧我>와 <위화魏花>랑은 태자를 가까이 하지 못하였다.

 

迎帝命碧我魏花郞復歸剡臣公

<영제迎帝>가 <벽아碧我>와 <위화魏花>랑에게 명하여

<염신剡臣>공에게 다시 돌아가도록 하였다.

 

大喜置酒 命郎歌之 抱碧我而舞 碧我曰

공이 크게 기뻐하며 술을 차리고 <위화>랑에게 명하여 노래를 부르도록 하고

<벽아碧我>를 안고 춤을 추니 <벽아碧我>가 말하였다.

 

妾本郎君之妻 復歸郎君好也 但恐宣登郎君 無我則不能自活矣

" 첩은 본래 낭군의 첩이었으니 다시 돌아 와 좋습니다만

<선등宣登> 낭군은 제가 없으면 스스로 살아가지 못함이 두렵습니다."

 

公不許碧我乃作紫鳩歌而傷之

공이 허락하지 않아 <벽아碧我>가 자구가(紫鳩歌)를 지어 마음 아파 하였다.

 

郎乃密迎宣登以慰碧我 剡臣公知之責郎

이에 <위화>랑이 몰래 <선등宣登>을 만나 <벽아碧我>를 위로하니

<염신剡臣>이 이를 알고 <위화>랑을 문책하였다.

 

郎曰靑我祖亦有二夫 父何妬之神仙之道 無貪無嗔 惟淡然而已

<위화>랑이 말하였다.

"<청아靑我> 조모 역시 두 남편인데 아버지는 어찌 이를 질투하십니까?

신선(神仙)의 도()는 탐이 없고 성냄이 없어 무심함을 생각할 뿐입니다."

 

公乃許碧我事二夫

이에 공이 허락하여 <벽아碧我>는 두 남편을 섬기었다.

 

八月帝與善知普賢入捺己行宮

8월 제와 <선善知>, <보현普賢>이 날기 행궁으로 들어갔다. 

 

臣公以頭上先駕 而發碧我與郎從之 次于波路家

<염신臣>공이 두상(頭上)으로 가마 앞에 서고

<벽아碧我>와 <위화>랑이 그를 따르고

다음으로 <파로波路>가()가 따르며 출발하였다.

 

<파로>는 <벽아>의 전남편 <손동>의 아우이다.  

 

時碧我已長濃姿艶態 神仙中人也

이때 <벽아碧我>는 이미 장성하여 자태가 농염하니 신선 중의 사람이었다.

 

剡臣公大喜 命碧我治其容帝

<염신剡臣>공이 크게 기뻐하며 <벽아碧我>에게 명하여

그 용모로 제를 치료토록 하였다.

 

以波路爲碧我古主幸其家置酒半酣 波路以大花蒂獻之

<파로波路>는 <벽아碧我>의 옛 주인인 그 집으로 행차하여 술을 차리고

주연이 반쯤 무르익을 때 <파로波路>가 큰 꽃봉오리를 바쳤다.

 

帝奇之聞其香 花忽開 而美人由中出蹁蹮而舞 帝召而抱之曰

제가 기이하게 여겨 그 꽃의 향기를 맡으니 홀연히 꽃이 열리며 가운데로 부터

미인이 비틀거리며 나와 춤을 추니 제가 불러 이를 안으며 말하였다.

 

此眞吾妻神中之花也 從何而來

" 이 아이가 진실로 나의 처로 신() 중의 화()이다.

어떻게 따라 왔느냐?"

 

碧我(曰)此實妾與前夫遜同生也

<벽아碧我>가 말하였다.

" 이 아이는 실은 첩과 전 남편 <손동遜同>이 낳았습니다."

 

손동(벽아) - 벽화(485- )

 

乃幸之寵高

이에 제가 잠자리 시중을 들게하니 총애가 최고였다.

 

命波路爲行宮大舍 碧花爲行宮夫人

<파로波路>를 행궁 대사(大舍)로 <벽아碧花>를 행궁 부인으로 명하였다.

 

碧我與郎亦留行宮奉供帝

벽아碧我와 <위화>랑 역시 행궁에 머물면서 제를 봉공하였다.

 

恐迎帝妬之不得納之

<영제迎帝>가 질투할까 두려워 납폐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副君乃使迎帝勸納 碧花還都寵無比者

이에 부군이 <영제迎帝>에게 시켜 납폐를 받아들이도록 권하여

<벽화碧花>가 경도로 돌아오니 총애를 비교할 자가 없었다.

 

帝乃起臥於剡臣家 呼碧我以母 而悅碧花之心

이에 제는 <염신剡臣>가()에서 일어나고 누워 <벽아碧我>를 어머니라 부르며

<벽화碧花>의 마음을 기뻐게 하였다.

 

迎帝乃以普仁爲太子妃 將吉神宮願 與帝淨 帝不得已歸天宮吉畢

<영제迎帝>는 <보인仁>을 태자비로 하고 신궁에서 길례를 치루고자

제와 함께 깨끗하게 하기를 원하니 제는 부득이 천궁으로 돌아와 길례를 마쳤다.

 

復幸剡臣家愛碧花宴群臣

다시 <염신剡臣>가에 행차하여 <벽화碧花>를 사랑하고 신하들에게 주연을 베풀었다. 

 

群臣皆賀新宮 請入暖宮許之

신하들 모두는 신궁에서 하례하고 난궁(暖宮)으로 들이기를 청하니 이를 허락하였다.

 

乃以碧我及郎主暖政

이에 벽아碧我와 <위화>랑이 난궁의 다스림을 주관하였다.

 

時慕珍宮交結豪傑 欲行大志有智囊 阿時說之曰 帝寵傾于暖宮可拜于碧我魏花

이때 <모진慕珍>궁은 호걸과 서로 결합하여 큰 뜻을 펼치고자

지혜가 많은 사람을 모으니 <아시阿時>가 이를 설명하며 말하였다.

"제의 총애가 난궁에 기울었으니 <벽아碧我>와 <위화魏花>에게 절함이 옳습니다."

 

慕珍宮與妃善知每謁帝于暖宮 拜帝及碧花于床下祝福 次拜碧我又拜魏花郎

<모진慕珍>궁과 비() <선지善知>가 매번 난궁에서 제를 알현하고

평상 아래에서 복을 빌며 제와 <벽화碧花>에게 절을 하고

다음으로 <벽아碧我> 또 <위화魏花>랑에게 절 하였다.

 

告于剡臣公 公曰 慕宮有天命而拜汝者 欲臣汝也

<위화>랑이 <염신剡臣>공에게 고하니 공이 말하였다.

"<모진>궁에게는 천명(天命)이 있으니 너에게 절 하는 것은

너를 신하로 삼고자 하는 것이다."

 

乃邀慕珍宮使碧我奉酒魏花以臣見之

이에 <모진慕珍>궁을 맞이하여 <벽아碧我>에게 술을 올리도록 하고

<위화魏花>를 신하로 하여 만나게 하였다. 

 

自是常侍左右宮 素愛郎美遂作枕臣

이로부터 항상 좌우궁을 모시니 <위화>랑의 아름다움을 평소대로 사랑하여

마침내 침신(枕臣)이 되었다. 

 

起臥藉之郎奉之益恭宮寵之

일어나고 눕는 것을 도우며 <위화>랑이 받들어 더욱 공경하니

<모진>궁이 그를 총애하였다. 

 

愈密 口中 傳甘 眼中 授密 魚水 膠添 無以加

더구나 몰래 입 속으로 달콤함을 전하고 눈 속으로 몰래 친밀함을 주니

더 이상 가까워 짐은 없었다.

 

剡臣公乃置慕珍堂于園中以邀之奉供

이에 <염신剡臣>공이 동산 가운데에 모진당(慕珍堂)을 세우고

그를 맞이하여 받들어 모셨다.

 

時帝沈臥暖宮 政事都在天宮副君

이때 제는 난궁(暖宮)에서 누워 자니 정사(政事)는 천궁의 부군(副君)에게 있었다. 

 

未幾帝崩于暖宮

얼마 되지 않아 제가 난궁(暖宮)에서 붕하였다. 

 

薦上碧花自知罪重 而欲殉于帝

상에게 천거된 <벽화碧花>는 스스로 죄가 중대함을 알고 순사코자 하였다.

 

 

碧我止之曰 腹中之兒貴莫大何自棄而不報帝恩乎

<벽아碧我>가 이를 막으며 말하였다.

" 배 속의 아이의 귀함이 막대한데 어찌 스스로 버려

제의 은혜에 보답하지 않으려 하는가?"

 

碧花乃以素衣待罪

이에 <벽화碧花>는 소복으로 대죄하고 있었다. 

 

迎帝天后乃與副君行祥登宝位 而命碧花退居剡臣公家 不賜骨品

이에 <영迎帝> 천후와 부군이 보위에 등극하여

<벽화碧花>에게 명하여 <염신臣>공 집으로 퇴거토록 하고 골품을 내리지 않았다.

 

故不敢朝賀行祭 碧我憐之慰以歌舞

그런 연유로 감히 제사를 지내지 못하고 조하를 받지 못하니

<벽아碧我>가 이를 가련히 여겨 가무로 위로하였다.

 

慕珍宮累至送郎請見花拒之 不得遂與相見

<모진慕珍>궁이 누차 <위화>랑을 보내어 만나기를 청하였으나

<벽화>가 거절하여 만나지 못하다가 마침내 서로 만났다.

 

宮悅其色而欲通之 碧我亦勸與之 偕而不聽

<모진>궁이 그 색()을 좋아하여 통정코자 하니

<벽아碧我> 역사 이를 권하였으나 모두 듣지 않았다. 

 

宮乃宿于碧我而不去

이에 <모진>궁이 <벽아碧我>에게 자면서 가지 않았다.

 

遂濡於碧我娠女曰堯花

마침내 <벽아碧我>를 적시어 딸을 임신하니 이름이 <요화堯花>이다.

 

모진(벽아) - 요화(500?- ) 

 

時宮好 內荒巡遊骨女如 宝兮肜肜妙梁等

이때 <모진>궁은 내실과 황음함을 좋아하여

골녀 <보혜宝兮>, <융융肜肜>, <묘량妙梁> 등과 다니며 놀았다.

 

습보(오수) - 보혜(460-517)

질지(?) - 융융(470?-523)

자비(미량) - 묘량(467- )

 

皆媚于宮生子

모두 <모진>궁에게 아첨하여 자식을 낳았다.

 

宮每與阿時魏花宿于諸家 莫有敢拒

<모진>궁은 매번 <아시阿時>와 <위화魏花>와 함께 여러 집에서 잤으나

감히 막지 못하였다.

 

선모(보혜) - 아시(481- )

 

 

翌年四月 迎帝天后廢前太子芬宗爲殿君 以慕珍宮爲太子

芬宗兄淨凰爲太子妃 魏花郞比梁爲太子左右枕

다음 해 4월 <영제迎帝> 천후가 전(前) 태자 <분종芬宗>을 폐하여 전군(殿君)으로

<모진慕珍>궁을 태자로 <분종芬宗>의 누나 <정황淨凰>을 태자 비로

<위화魏花>랑과 <비량比梁>을 태자 좌우 침신(枕臣)으로 하였다.

 

비처(후황) - 정황(486- )

비지묘량) - 비량(488- )

 

太子乃召碧我碧花入太子(宮) 碧花知不能自守 乃薦于太子寵隆誓以同穴

이에 태자가 <벽아碧我>와 <벽화碧花>를 불러 태자궁에 들어오게 하니

<벽화碧花>는 스스로 지킬 수 없음을 알고 태자에게 천거되어

융성한 총애를 받고 같이 묻히기를 명세하였다.

 

迎帝聞之賜以牧丹花衣

<영제迎帝>가 이를 듣고 모란꽃을 수놓은 옷을 내렸다.

 

自是太子累幸碧我母女 郎寵益加 事無不成 言無不聽

이로부터 태자는 누차 <벽아碧我> 모녀를 잠자리 시중을 들게하여

<위화>랑을 총애함이 점점 더하니 안 되는 일이 없고 듣지 않는 말이 없었다.

 

是年八月 太子以金寶二十彩飾 魏花郞以主嘉俳 其美古今無雙

이해 8월 태자가 금보(金寶) 20가지 빛깔로 장식하고

<위화魏花>랑이 주관하여 가배를 행하니 

그 아름다움은 고금에 견줄 만한 짝이 없었다.

 

骨女爭獻新錦 以拜之 皆言白羊神復來 欲見者雲集

골녀들이 다투어 새 비단을 바치고 절하니

모두가 백양신(羊神)이 다시 왔다고 말하고 보고자 하는 사람이 구름처럼 모였다.

 

獻錦者列于前而歌之名曰前方

獻痲者列于其後而歌之名曰後方

비단을 바치는 자들이 앞에서 줄을 서서 노래하니 이를 전방(前方)이라 하고 

삼베를 바치는 자들이 그 뒤에 줄을 서서 노래하니 이를 후방(後方)이라 하였다.

 

郎散花而舞於其中 得其花者榮之 名曰白中

<위화>랑이 꽃을 뿌리며 그 가운데서 춤을 추고 그 꽃을 받은 자는

이를 영광으로 여기니 이를 백중(白中)이라 하였다.

 

白者花也 言花中於己也

백(白)은 화()이고 중(中)은 가슴에 단 꽃이다. 

 

白中皆設宴于其家邀郎壽之名曰奉花

가슴에 꽃을 단 모두는 그 집에서 잔치를 열어 <위화>랑을 맞이하여 그 장수를 비니

이를 봉화(奉花)라 하였다.

 

年中不絶奉花之女多 被太子寵嫁于權門

년중 끊어지지 않고 봉화(奉花)하는 여자들이 많아

태자의 총애를 받고는 권문(權門)에 출가하였다.

 

故白中女不惜金錢 而歡徒 歡徒者以酒食衣帛接待郎之徒屬也

그런 연유로 백중(白中)의 여자는 금전을 애석해 하지 않고 무리를영하였고

무리를 환영하는 자는 술과 음식과 옷과 비단으로 <위화>랑을 접대하니

그 무리들은 <위화>랑에 속하게 되었다.

 

初 順實公 統合諸徒 推上 日 ??歷 好淵 末厚 至妙心

처음에 <순실順實>공이 여러 선도를 통합하여 상에게 추천하며

<호연好淵>과 <말후末厚>, <묘심妙心>까지의 이력을 말하였다. 

 

심(보반) - 호연(397-466)

눌지(신루) - 말후(433-487)

삼고위(나연) - 묘심(440?-488)

 

妙心美 而骨微學德 且非首望 而芊山力推

<묘심妙心>은 아름다우나 골이 미천하고 학문과 덕이 있으나

오히려 우두머리가 되지 못하니 <간산竿山>이 힘써 이를 추천하였다.

 

時羊徒多推剡臣公 馬徒多推翁文郞 相抗妙心

이때 양도(羊徒)는 많은 사람이 <염剡臣>공을 추천하고

마도(馬徒)는 많은 사람이 <옹문翁文>랑을 추천하여 서로 <묘심妙心>과 대항하였다.

 

새문(동보) - 옹문(463- )

 

竟以天宮地宮之勅得立順之者爲妙心徒不順者各歸

마침내 천궁과 지궁의 조칙으로 순종하는 자를 세우도록 하니

<묘심妙心> 무리들 중 순종하지 않는 자는 각각 돌아갔다.

 

以此羊徒多從剡臣公 發妙心之奸 以功多入靑雲 欲奉剡臣公爲日仙 帝亦許之

이로써 양도(羊徒)는 많은 사람이 <염신剡臣>공을 따르고

<묘심妙心>의 간사함을 고발하여 공을 세운 많은 사람은 높은 벼슬에 올라

<염신剡臣>공을 일선(日仙)으로 받들고자 하니 제가 이를 허락하였다.

 

而上仙章伊公止之曰

상선(上仙) <장이章伊>공이 이를 저지하며 말하였다.

 

보해(보미) - 장이(425-490) 

 

汝學不及眞仙俊登太子 汝欲爲太子而奉徒則可也

別立則有妙心之轍 汝父白兄以汝托我 汝乃我子也

濁亂之餘不可 使汝繼也

" 너의 학문은 진선(眞仙) <준등俊登>태자에 미치지 못하니

너가 태자를 위하여 무리를 받드는 것이 옳다.

특별히 세우고자 함은 <묘심妙心>의 전철을 밟는 것이다.

너의 아버지와 맏 형이 너를 나에게 맡겼으니 너는 곧 나의 아들이다.

혼탁하고 어지럽힘이 남아 있으니 옳지 않아 너가 계승토록 한 것이다."

 

지도로(파호) - 준등(459-494)

 

剡臣公乃以章伊公言奏之帝曰 方今之仙惟此叔父而已乃廢日月仙

이에 <염신剡臣>공이 <장이章伊>공의 말을 상주하니 제가 말하였다.

" 바야흐로 지금의 선()은 이 숙부가 이미 이루었으니

이에 일선(仙)월선(月仙)을 폐한다."

 

命內外仙巫 皆宗章伊公 仙徒 素服 其德 咸願 戴之

나라안팎 선무(仙巫)에게 명하여 모든 종(宗)을 <장이章伊>공으로 하니

선도는 소복으로 그 덕을 기리고 원하는 바를 이루고자 그를 받들었다.

 

而固辭不受曰 十四之數當見白羊花 汝等奉之 吾今受之 誰能繼十四之數乎

<장이>공이 고사하며 받지 않고 말하기를

" 14의 운수에 백양(白羊)의 화(花)를 만날 것이니 너희들은 이를 받들어아 한다. 

내가 자금 이를 받으면 누가 14의 운수를 이을 수 있겠는가? 라고 하며

 

仍謂剡臣公曰 汝雖多慾福在汝兒 今後十四年而發至是

<염신剡臣>공에게 일러 말하기를

" 너는 비록 많은 복을 바라나 너의 아이에게 있다.

지금 부터 14년 후에 일어난다." 라고 하였다.  

 

果驗仙徒之趨赴者甚衆皆賀于剡臣公曰 國仙出矣

과연 효험이 있어 뵈러 간 선도들이 매우 많이 모이고

모두가 <염신剡臣>공에게 축하하며 말하였다.

" 국선(國仙)이 나타났다." 

 

公大喜曰 吾以順祖白父之子得此兒 可以歸見祖先而不愧

공이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 나는 <순실> 할아버지와 큰 아버지의 아들로 이 아이를 얻었으니

돌아가 부끄럽지 않게 먼저 할아버지를 뵙는 것이 옳다," 라고 하며

 

乃大享仙徒五千人七日 宣登公亦享之五日

선도 5천명을 7일간 크게 접대하니

<선등宣登>공 역시 5일간 이를 접대하였다.

 

郎命大振年才十五

<위화>랑의 운이 크게 떨치니 나이 겨우 15살이었다.

 

지증왕 2년 501년이다.

 

金官阿羅等皆遣使納幣

금관과 아라 등이 모두 사신을 보내어 납폐(納幣)하였다.

 

太子命賜郎徒衣食置仙院 皆令東宮宅師營之

태자가 낭도에게 옷과 음식을 내리고

선원(仙院)을 설치하여 모든 령을 동궁 택사(宅師)가 내리도록 하엿다.

 

以猪君昭牛之裔胡滿爲徒頭 以治徒衆階其徒十二 德授秩無相㪰雜

<저군猪君>과 <소우昭牛>의 후예인 <호만胡滿>을 도두(徒頭)로 하고

낭도를 12계급으로 하여 다스리도록 하여 덕으로써 가르쳐 난잡함이 없도록 하였다.

 

太子亦數出院視徒

태자 역시 수시로 선원에 나가 낭도들을 살펴보았다

 

徒衆願奉碧花爲源花太子許之

낭도들이 <벽화碧花>를 원화로 받들기를 원하니 태자가 이를 허락하였다.

 

時仙院成於凉宮之側 故太子與碧花出居凉宮 以督仙政

그 때 선원(仙院)이 양궁(凉宮) 곁에 완공되어 태자와 <벽화碧花>가 양궁(凉宮)에서

출입하고 거주하며 선정(仙政)을 감독하였다.

 

宣登之光院 芬宗之勝院 皆隣接 故亦出仙院 講論眞經 謂之眞談

<선등宣登>의 광원(光院)과 <분종芬宗>의 승원(勝院) 모두 인접하여서

또한 선원으로 나가 진경(眞經)을 강론하니 이를 일러 진담(眞談)이라 하였다.

 

太子與碧花亦或親臨 下問能善對者賞用之

태자와 <벽화> 또한 간혹 친히 왕림하여 하문하여 잘 대답하는 자에게 상을 주었다.

 

天下之能言仙(者) 皆聚仙院 爭以其道進之

천하의 선(仙)을 말하는 자 모두가 선원에 모여 다투어 그 도(道)를 올렸다.

 

太子使宣登採其善否 苟有一枝一能

雖曰鷄鳴狗吠之類 亦皆賜祿以養其才

태자가 <선등宣登>을 시켜 한 가지에 한 능력이 있는지,

비록 하찮은 말이라도 진실로 잘하고 못함을 가려내도록 하고

또한 녹봉을 내려 그 재능을 양성토록 하였다. 

 

郎 多才所得諸術以百計 而有若不知 衆皆服 其德

<위화>랑은 재능이 많아 여러 계략을 얻어 백 가지 계책으로 하니

만약 알지 못하면 여러 사람을 덕으로 복종시켰다. 

 

有以瑤草 進者 其術 未精

기화요초로 나아가고자 하는자는 그 계략이 정(精)에 달하지 못하였다

 

郎(曰) 若用汝言則 草不可生 若欲草生則 汝不可食

奈何 草人乃眠退究 其業 十年而復進方稱旨

<위화>랑이 말하였다. 

" 너의 말대로 한즉 풀이 자라지 않고 풀이 자라도 너는 먹지 못한다.

초인(草人)은 그 직업을 십년 잠을 자지 않고 연구하여도 어찌 다시 나아가겠는가?"

 

故術士不敢以年幼欺郎

그런 연유로 술사(術士)는 감히 어리다고 <위화>랑을 속이지 못하였다.

 

進其精 輒一見聞 而解之 若熟知 莫不服 其才 曰天仙 非人才也

각 자 그 정(精)으로 나아가니 문득 한번 보고 들어도 그것을 이해하여 외우며

그 재능에 복종하며 단단히 말하기를

"천선의 재능은 인간의 재능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玄駒四月丑日 仙徒奉碧花于仙院眞殿 奉太子于仙院元殿 行源花淨儀

현구(玄駒){502} 4월 축(丑)일 선도들이 <벽화碧花>를 선원 진전(眞殿)에서 받들고

태자를 선원 원전(元殿)에서 받들어 원화정의(源花淨儀)를 행하였다. 

 

郎主其事 有節次皆合規矩

<위화>랑이 그 일을 절차있게 주관하니 모두 규율에 맞았다.

 

觀者歎服其神其儀曰 是日 太子與妃碧花娘主 幷騎白神馬入仙院水宮

관람하는 자들이 그 신(神)과 그 원화정의(源花淨儀)에 탄복하며 말하였다.

"오늘 태자와 태자비 <벽화>낭주가 나란히 백신마(白神馬)를 타고

선원 수궁(水宮)으로 들어 오셨다."

 

여기서 신(神)은 태자 <모진>을 말하고 원화정의는 <벽화> 원화를 말한다

 

各服羽衣霓裳 出就眞元殿 郎具仙冠仙服加以二十彩 率徒朝見納拜獻身 奉歌奏樂

각 자 우의예상(羽衣霓裳)을 입고 진전(眞殿)과 원전(元殿)을 나와 나아가니

<위화>랑이 20가지 채색을 더한 선관(仙冠)과 선복(仙服)을 구비하여

낭도를 인솔하여 와서 만나 뵙고 절을 드리고 노래와 연주를 올렸다. 

 

 

上言 惟我 太平 千歲 聖骨太子 眞仙 元元花士 慕珍宮 殿下 康寧 通明

太子 曰神 休 仙徒 五拜

오직 우리의 성골태자 진선(眞仙) 원원화사(元元花士) 모진궁 전하께서는  

강녕(康寧)과 통명(通明)으로 태평 천세를 누리소서 라고 올리니

태자 일신(曰神)은 쉬고 선도들은 오배(五拜)를 올렸다.  

 

又上言 惟我 太平 千代 聖骨太子 慕珍宮 第三妃 源花 碧花宮娘主 康寧 理明

또 오직 우리의 성골태자 모진궁의 제 3비 원화(源花) <벽화>궁 낭주께서는

강녕(康寧)과 이명(理明)으로 태평천대를 누리소서라고 올렸다. 

 

碧花曰 太子在我仙徒四拜奏樂

<벽화>가 말하기를

" 태자는 나에게 있으니 선도는 사배를 올리고 음악을 연주하라." 라고 하였다.

 

太子源花就玉座共坐下言 吾花郞吾仙徒均霑仙雨得無憂苦

태자와 원화가 옥좌로 나아가 함께 앉아 말씀을 내리시기를

" 내 화랑, 내 선도는 고루고루 선의 비를 적시어 근심과 괴로음이 없음을 이룰지어다."

라고 하니

 

仙徒皆伏奏達如天聖恩歡喜在身

선도들 모두는 엎드려 하늘과 같은 성은과 환희를 입었음을 아뢰었다. 

 

郎跪 奉仙茶 于子源花 而俯伏 奏達歡天欣地敢上仙茶太子與妃交茶

위화랑이 무릎을 꿇고 태자와 원화에게 선다(仙茶)를 올리고

엎드려 하늘의 흔감과 땅의 과감을 환호하여 아뢰고

상선(上仙)이 태자와 비(妃)에게 교대로 다(茶)를 올렸다.

 

仙徒齊歌而郎舞之其歌曰 我太子我妃宮是眞仙是源花 眞仙兮源花兮

千秋萬歲 長相樂 四海八方 共太平

선도들이 가지런히 노래하고 위화랑이 그 노래에 춤을 추며 말하기를

"우리 태자 우리 태자비는 진선(眞仙)이시고 원화(源花)이시다. 

진선(眞仙)이시여! 원화(源花)이시여!

천추만세를 누리시고 사해팔방을 두루 태평하게 하시어 오래토록 서로 즐기소서"

 

子答歌曰 吾花郞吾仙徒皆我股肱 爲國柱爲我夫妻 皆有福妃爲之起舞座上

태자가 화답하여 노래하며 말하기를

"우리 화랑 우리 선도 모두는 나의 팔 다리이니

우리 부처(夫妻)를 위하여 나라의 기둥이 되라.

모두들 복이 있으니 비(妃)를 위하여 춤추도록 하라"

 

賜仙徒序坐堂下 食 郎及徒頭有司賜坐堂上 下茶食有次

당하에 앉아 있는 선도들에게 차례로 차와 음식을 내리고

<위화>랑과 당상에 앉아 있는 대두와 유사에게 차례로 차와 음식을 내렸다. 

 

畢徒頭下堂伏地奏曰 臣等當此佳日 請行源花淨儀上下共

마침내 대두가 당하에서 땅에 엎드려 아뢰기를

" 신(臣)들은 마땅히 이 좋은 날 원화정의를 상하와 같이 즐기시기를 청하옵니다." 

 

太子辭之 郎就前跪請再三 乃許

태자가 이를 사양하니 위화랑이 무릎을 꿁고 앞으로 나아가 재삼 청하니 허락하였다.

 

妃乃還水宮 換着牧丹花衣 施臙脂 太子與郎上樹王壇 取花枝

이에 비(妃)는 수궁으로 돌아가 모란꽃을 수놓은 옷으로 갈아입고 연지를 바르고

태자와 위화랑과 함께 수왕단(樹王壇) 위에서 꽃가지를 꺾었다.

 

御元殿玉座 妃自水宮還御眞殿金座

태자는 원전(元殿)으로 돌아와 옥좌(玉座)에 앉고

비(妃)는 수궁으로부터 돌아와 진전(眞殿) 금좌(金座)에 앉았다.

 

仙徒奉歌奏樂 郎以玉盤盛璋璧奉于妃宮四拜

선도들이 노래와 악기를 연주하니 위화랑이 옥쟁반에 옥홀(璋)을 가득 담아 

비(妃)에게 네번 절하고 올렸다. 

 

妃宮受之步詣太子前獻之再拜 太子受之而以花枝授妃 妃受之

비(妃)는 이를 받아 태자 앞으로 걸어 가 두번 절하고 이를 바치니

태자는 이를 받고 꽃가지를 비(妃)에게 주니 비(妃)가 꽃가지를 받았다.

 

郎奉歌曰 萬物之中人爲花 萬人之中仙爲花

今我太子仙之眞 今我妃宮花之源 源花抱璧拜眞仙 仙授花抱源花

위화랑이 노래하며 아뢰기를

" 만물중엔 사람이 꽃이며 만인중엔 仙이 꽃이다.

지금 우리 태자는 仙의 眞이며 우리 비(妃)는 花의 源이다.

源花가 옥구슬을 안고 眞仙에게 절하니 은 꽃을 주고 源花를 포옹하네"

 

나무의 결정체는 꽃이고 빛의 결정체는 밝음이다.

만물 중에서는 사람이 그 결정체이고 사람의 결정체가 仙이다

그 仙의 결정체가 神인 것이다.

태자는 만인의 으뜸인 진선(眞仙)이고 벽화는 만물의 으뜸인 원화(源花)이다.

502년 4월에 벽화가 원화정의를 통하여 처음으로 원화(源花)가 되었다.

 

나무는 꽃을 피우고자 하는 것이고 사람은 仙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며

仙道는 神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太子乃抱妃而舞妃上

이에 태자는 일어나 비(妃)를 안고 춤 추었다.

 

太子肩上弄花枝而舞 仙徒一齊奉歌如辭 歡極而下

태자의 어깨 넘으로 농염한 꽃가지가 춤추고

선도들도 일제히 노래하니 즐거움이 극에 이르렀다.

 

郎獻仙酒 太子與妃交酒 郎起舞仙徒奉歌如初辭

위화랑이 선주(仙酒)를 바치니 태자와 비가 교대로 술을 마시고

위화랑이 일어나 춤을 추니 선도들이 처음 말대로 노래를 불러 올렸다.

 

太子答如初賜坐堂上下 下酒食命盡歡

태자는 처음과 같이 답하고 당상 당하에 술과 음식을 내리고 마음껏 즐기라고 하였다.

 

太子召徒頭以下有司於玉座之下 命妃親賜酒 命郎親賜仙徒酒

태자는 대두이하 유사를 옥좌의 아래로 불러

비(妃)가 친히 술을 따르게 하고 위화랑에게도 친히 술을 따르게 하였다.

 

乃山呼千秋 太子抱妃入眞殿玉帳

이에 천추만세를 부르니 태자는 비(妃)를 안고 진전(眞殿) 옥장(玉帳)으로 들어갔다.

 

仙徒奉歌奏樂帳下 而郎退仙徒皆下拜

선도들은 장막아래에서 노래와 악기를 연주하고

위화랑은 선도들 모두에게 하배(下拜)하고 물러났다.

 

有司進遊花行酒醉舞達夜歌聲不絶

유사들은 꽃놀이와 술에 취해 밤이 되도록 춤을 추며 노래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翌日太子與妃謁帝及后請加郎爵召入大內進位奈麻

다음날 태자와 비는 제와 후를 알현하고 <위화>랑에게 작위를 더하여 줄 것을 청하니

불러 대내(大內)에 들어오게하여 나마(奈麻)의 직위로 진급시켰다.

 

天后美之(曰)此兒玉膏人(也)

妙心遠不及之 豈謂今日復見如此尤物乎仍問

천후가 위화랑의 아름다움을 보고 말하였다.

" 이 아이는 옥으로 만든 사람이다.

<묘심>은 멀리서도 미치지 못한다.

오늘 다시 보니 어찌 이처럼 뛰어나다고 오히려 묻지 않을 수 있겠는가?" 

 

郎曰 何時何人何處 眞 郎對曰 無時無人無處 眞

위화랑이 자문자답 하였다.

"무엇이 時이며 人이며 處이며  眞인가?

無時 無人 無處가 眞이다."

 

위화랑은 天地人 三才의 眞이 無라고 자문자답하고 있다.

주역에서는 無極 → 太極 → 兩儀(陰陽) → 四象 → 八卦로 천지가 창조되었다고 한다.

 

后曰 我眞誰元

후가 말하기를

" 나는 眞이란 오로지 元이다."


郎對曰 臣是元 元自天來

위화랑이 대답하기를 

" 臣이 元입니다. 元은 본래 하늘에서 온 것입니다."

 

后大笑抱郎曰 虎狼有食牛之志 此兒之謂也

후가 크게 웃고 위화랑을 안으며 말하기를

"소를 잡아먹는 호랑이와 이리의 뜻이 바로 이 아이를 일러 말함이다."

 

命加紫袖綠衣而舞完若蝴蝶 后爲調歌而援之

자수와 녹의를 더하여 내리고 호접무가 끝날 때 쯤 후가 노래로 응원하였다.

 

自是寵愛日加 常召入內 與后開瑒講眞

이로부터 총애가 날로 더하여 항상 불러 대내(大內)에 들어와

후와 함께 탕()을 열고 진(眞)을 강연하였다.

 

或圍碁蹴鞠交 以歌舞至于夜深 則宿于宮中

때로는 서로 바둑을 두고 축국을 하고 밤이 깊을 때 가지 가무를 즐긴즉

궁중에서 자기도 하였다.

 

與殿君公主同槽而后爲之洗而加衣曰

전군과 공주와 더불어 같은 욕조를 쓰니 후가 위화의 몸을 씻고 옷을 입히며 말하기를

 

朕以天下養一仙 兒者欲報于天也

짐이 천하의 일선(一仙)을 양육하니 아이는 하늘에 보답코자 한다.”

 

太子侍后同槽 而浴郎亦洗

태자는 후와 위화랑이 같은 욕조에서 목욕하고 씻는 것을 시중들었다.

 

后加衣曰 奉淨

후가 옷을 입으며 말하기를 몸을 깨끗이 하여 받들어라

 

后好淸淨備香湯于內外 或一日數次行湯

후는 내외에 향을 넣은 욕탕을 준비하여 청정(淸淨)한 것을 좋아하고

때로는 하루에 수차 욕탕에 행차하였다.

 

每臨仙院必先行湯于水宮 而拜樹王

선원에 올 때 마다 반드시 수궁에서 먼저 목욕을 하고 수왕에게 절하였다.

 

后體洪 而胖郎能抱 而入湯洗之

후는 체격이 커서 뚱뚱한 위화랑을 안고 욕탕에 들어가 씻어 주었다.

 

后笑曰此所謂以氣運耶

후가 웃으며 말하기를 이것이 소위 의 운행이다.”

 

郎對曰 臣幼冲不敢以氣運敢以誠運

위화랑이 대답하기를

()은 너무 어려 감히 를 운행하기를 감당치 못하겠습니다.”

 

后曰 誠能致力 氣能運理 造化之秘也

후가 말하기를

힘을 다하면 능히 이룰 수 있다.

를 운행할 수 있는 조화(造化)의 비결이다.“

 

郎得之可謂仙也

위화랑이 이를 체득하니 한마디로 일러 이다.

 

郎曰 皆天宮萬歲之恩也 非臣得之也

위화랑이 말하기를

모든 것이 천궁의 만세의 은혜입니다. () 신이 득한 것이 아닙니다.”

 

后嘉之 賜碧我白馬紫衣 以賞 仙母之功

후가 이를 기뻐하며 <벽아>에게 선모(仙母)의 공으로 백마와 자의를 상으로 내렸다.

 

是年 嘉俳太子命郎行祭于南桃

이 해 태자가 위화랑에게 명하여 남도에서 가배를 행하게 하였다.

 

503년 8월과10월에 가배제와 백양제를 통하여 위화랑이 처음으로 화랑이 되고

벽아가 최초의 화모가 된다.

영제와 태자 모진이 원화정의와 백양제를 열어

낭도들을 끌어들이고 세를 모으고 있는 것이다.

 

 

發羽林軍衛之載碧我於高車 飾以錦繡 鼓噪而進 名曰花母

우림군 시위가 비단으로 수놓아 장식한 높은 수레에 <벽아>를 태우고

북소리가 요란하게 출진하니 이를 화모(花母)라 하였다.

 

車太子與妃碧花 迎花母奉之壇上 飾郎以金寶色貝二十八彩

導以十二仙童奏樂而進太子迎之就位主席拜謁花母

태자와 비 벽화가 금과 보석 스물여덟 빛으로 장식한 단상의 화모를 맞이하여 받들고

열 두 선동이 음악을 연주하니 태자가 주석으로 나아가 화모를 배알하였다.

 

太子與侍女主幣帛 妃與侍女主香粲 分坐花母()東西 郎跪進幣香

폐백(幣帛)을 주관하는 태자와 시녀, 향찬(香粲)을 주관하는 비와 시녀가

화모의 좌우로 앉아있고 위화랑이 무릎을 꿇고 폐백과 향찬을 올렸다.

 

仙童奉于花母 太子勸母受之

선동들이 화모를 받들어 모시고 태자가 화모에게 이를 받도록 권하였다.

 

衆彩女一齊拜謁 乞巧 獻其品彩

여러 채녀들이 일제히 그 품채를 바치며 걸교로써 배알하였다.

 

前後方一時歌之 郎舞而散花群女爭花 而獨一女 髮長而美

不與之爭而讓花 自後惟祝郎福

전후방에서 일시에 노래를 부르고 위화랑이 춤을 추며 꽃을 뿌리니

여러 여인들이 꽃을 가지려 쟁탈하는데 유독 머리카락이 긴 미모의 한 여인이

꽃을 가지려 하지 않고 사양하며 오직 위화랑의 복을 축원하고 있었다.

 

郎憐之而歌曰 髮長姬 髮長姬 花不及奈手短

위화랑이 이를 가련히 여겨 노래하여 말하기를

머리카락이 긴 여인이여, 머리카락이 긴 여인이여!

꽃이 이르지 못하니 내 손이 짧기만 하구나!“

 

女答歌曰 長短在伸縮拾心 勝拾花聖心伸到我 何論手上花

여인이 답하여 노래하며 말하기를

길고 짧음은 마음을 줍는 펼침과 오그림에 있고

꽃을 줍는 것은 성심이 나에게 이르러 펼침이니

어찌 손 위에 있는 꽃을 논하겠습니까?“

 

郞知其非凡 使人探之 乃畏山公之女也

위화랑이 그 비범함을 알고 사람을 시켜 알아보게 하니 <외산畏山>공의 딸이었다.

 

외산(람연) - 발장(479? - )

 

발장은 법흥왕 6(519)에 조주가 되었다.

 

其母覧淵忽明公之雲孫也 畏山以山近公之子

그 모친 <람연覧淵><홀명忽明>공의 먼 후손이고

<외산畏山>은 <산근山近>공의 아들이었다.

 

양부(줄례) - 홀명(343?-412)

눌지(산화) - 산근(405-475)(외황) - 외산(459-521)(람연) - 발장(479?- )

 

好淸德 家甚貧 無以奉花歡徒 故姬不欲拾花也

청명하고 덕을 좋아하며 집안이 심히 가난하였으나

봉화(奉花)하지 않고 낭도들을 좋아하였으니 여인은 꽃을 줍지 않은 것이다.

 

郎益重之 密行訪之于狼山之下 姬着短褐布裳 與母娘舂粟

<위화>랑이 이를 더욱 중히 여겨 <외산>의 집 아래에 몰래 방문하니

여인은 짧은 갈포 저고리를 입고 모친과 더불어 좁쌀을 찧고 있었다.

 

母衣襤樓殆不能掩體 門墻皆鵚自外可窺

모친의 옷은 남루하여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이고

문 담장은 모두 무너져 바깥에서 볼 수 있었다.

 

郎入拜母前母避曰 何處公子誤拜貧婦

<위화>랑이 들어 와 모친에게 절하니 피하며 말하기를

어찌 공자께서 잘못 알고 빈부(貧婦)에게 절을 하십니까?”

 

姬知爲郎而走前扶之曰 無至汚衣而禮母

여인이 <위화>랑이 앞서 달려와 도울려는 것을 알고 말하기를

지극히 더러운 옷을 입고 있으니 예()가 아닙니다.”

 

郎曰姬母卽吾母也 衣何論乎

위화랑이 말하기를

여인의 모친은 곧 나의 모친입니다. 어찌 옷을 논하겠습니까?”

 

乃引姬入堂 共籍而談心 姬着喜交集不能成言曰 家貧無以奉 郎欲剪髮而獻之

이에 여인을 이끌고 방에 들어가 마음을 터놓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니

여인의 얼굴에 기쁨이 감도나 이런저런 생각에 말을 잇지 못하고 말하기를

집안이 가난하여 받들 길이 없습니다.

낭군이 머리카락을 자르기를 원하시면 이를 잘라 드리겠습니다.“

 

言于母則母亦許之

모친에게 말하니 모친도 이를 허락하였다.

 

昨夢花生于髮 今見郎君實不虛也

어제 꿈에 머리카락에 꽃이 피는 것을 보았는데

지금 낭군을 만나니 사실이 헛되지 않았다.

 

郎乃抱姬曰 姬髮卽吾髮 何必剪乎 吾所欲者姬之心身也 豈一髮乎

이에 위화랑이 여인을 안으며 말하기를

그대의 머리카락은 곧 나의 머리카락입니다.

어찌 잘라야만 하오?

나는 그대의 마음과 몸을 바랄뿐인데 어찌 한 가닥 머리카락이겠소?“

 

姬曰 心是天稟自合于郎君 而身爲父母之所有 非父母之許共之 而難獻也

여인이 말하기를

마음은 하늘이 내린 것이어서 스스로 낭군에게 합하나

몸은 부모의 것이니 부모의 허락이 함께하지 아니하면 바치기 어렵습니다.“

 

郎曰 惟心而已神仙不言難

<위화>랑이 말하기를

오로지 마음은 이미 신선이니 말은 어렵지 않습니다.”

 

姬曰妾迷不知道 願郎君敎之

여인이 말하기를

첩은 미혹하여 도를 알지 못합니다.

원컨대 낭군께서 가르쳐 주십시오

 

郎乃言道談笑

이에 <위화>랑이 도를 말하며 담소하였다.

 

畏山自外而還見郎而喜曰 權門多好女仙 郎愛吾女亦天定也 敢以奉之爲妾

<외산畏山>이 바깥에서 돌아와 <위화>랑을 보고 기뻐하며 말하기를

권문의 많은 사람이 여선(女仙)을 좋아하는데

<위화>랑이 나의 딸을 사랑하는 것 역시 하늘의 정함이니 감히 첩으로 받아 주시오

 

郎再拜受之 覧淵烹新粟而進之 此吾女所種之園物也

<위화>랑이 재배하고 받아들이니

<람연覧淵>이 햇 좁쌀을 쪄서 올리며 이것은 내 딸이 심은 것이라고 하였다.

 

仙郎愛吾女則庶可一嘗

선랑(仙郎)이 내 딸을 사랑하니 첩의 자식을 한번 맛봄이 옳다.

 

郎再拜受之自是郎數往來

<위화>랑이 재배하고 받아들이며 이로부터 수차 왕래하였다.

 

仙徒乃供姬一新茅宅而豊其衣食

이에 선도들은 여인에게 새 모옥(茅屋)을 한 채 지어주고 옷과 음식을 풍족히 주었다.

 

郎不自知而問於姬曰 何至如此

<위화>랑이 자초지종을 알지 못하여 여인에게 물으며 말하기를

어찌 된 일입니까? ”

 

姬曰 自郎君之來 仙徒日董家役 負駄 相繼致 此富裕 妾以爲郎君之遺 而不敢辭也

何戱之爲

여인이 말하기를

낭군께서 오신 이래 하루는 선도들이 집을 바로 세우고 짐을 싣고 왔습니다.

이런 부유함은 첩이 낭군의 유명으로 알아서 감히 사양하지 못하였습니다.

어찌 이를 희롱하겠습니까?

 

郎曰 吾所以來密行也 何有囑乎 此必徒頭之爲也

위화랑이 말하기를

내 몰래 한 짓입니다. 어찌 부탁하였겠습니까?

이것은 필히 도두(徒頭)가 한 짓입니다.“

 

姬曰 徒頭外人不可受 其賂可以斥之乎

여인이 말하기를

남인 도두는 받을 수 없으니 그 뇌물을 물리침이 옳습니까?”

 

郎曰 汝爲吾妻 徒頭卽汝身()也 何可斥乎

吾當稟于太子 加爵祿奴婢矣

<위화>랑이 말하기를

당신은 나의 처이니 도두 역시 당신의 몸종입니다. 어찌 물리치겠습니까?

내가 마땅히 태자에게 품하여 작록과 노비를 더하도록 할 것입니다.“

 

姬止之曰 妾爲郎君而不禁治宅 今已足矣 無功而受爵不可 况多奴婢則只增煩累而已

여인이 이를 막으며 말하기를

첩은 낭군을 위하여 집을 짓는 것을 금하지 못하고 지금 이미 족합니다.

공이 없는데 작위를 받는 것은 불가합니다.

하물며 많은 노비는 오히려 번거러움만 더할 뿐입니다.“

 

郎曰 我有功於太子 而汝有功於我 何謂無功乎

且天爵高而功爵下 何以功論乎

<위화>랑이 말하기를

내가 태자에게 공이 있고 당신이 나에게 공이 있는데 어찌 공이 없다고 하십니까?

또한 하늘이 준 벼슬은 높고 공을 세운 벼슬은 낮으니 어찌 공을 논하겠습니까?“

 

乃告于太子曰 臣有密妻 貧不能自生 願祿其父畏山

이에 태자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신에게 밀처가 있는데 가난하여 스스로 살아갈 수 없으니

그 부친 <외산畏山>에게 녹을 내려주시길 원합니다.“

 

太子許之 拜爲理方巡行州郡

태자가 이를 허락하니 절을 올리고 이방(理方)이 되어 주군(州郡)을 순행하였다.

 

畏山所到刑獄 殆空從者 恐其太寬

<외산>이 감옥에 도착한 바

<태공殆空>을 따르는 자들은 크게 관대함을 두려워하였다.

 

畏山曰 罪之爲罪 罪之也 非爲罪也 吾爲仙郎之父治 吾民安可以刑罰加人乎

<외산>이 말하기를

죄는 벌을 내리는 것이고 죄가 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선랑의 아비가 되어 다스리니 나의 백성을 어찌 형벌을 더하겠는가?

 

諸曰 感泣頌聲大振 而民不得私 故肅然而歸

모두가 감읍하여 칭송하는 소리가 크게 퍼지고

백성들은 사사로이 득하지 않느니 숙연이 돌아갔다.

 

仙徒曰 畏公淸直不可以致財

선도들이 말하기를

“ <외산>공은 청직하니 재물을 모으는 것은 불가하다.”

 

郎叱之曰 吾父自有爵祿 豈爲汝輩所誤哉

<위화>랑이 이를 질책하며 말하기를

나의 아버지는 스스로 작위와 녹봉을 가졌는데 어찌 너희들 무리의 잘못이겠는가?”

 

帝果知其賢 而崇其秩曰 今日始得好理方 命專內外刑政

제가 과연 그 현명함을 알고 그 질서를 존중하며 이르기를

오늘 비로소 좋은 이방(理方)을 얻었으니 내외 형정(刑政)을 전담토록 하라

 

郎爲姬 行白羊大祭于明活山 而散花空中使姬白中 黃鵠一雙來鳴于上俳佪數回

<위화>랑이 여인을 위하여 명활산에서 백양제를 행하고

공중에 꽃을 뿌리며 여인으로 하여금 백중(白中)토록 하니

누른 고니 한 쌍이 위에서 내려와 수차례 돌며 배회하였다.

 

郎曰吉祥也

<위화>랑이 말하기를

상서로운 조짐이다.”

 

命姬出舞於太子之前 太子嘉之 命下歡徒錢使之奉花

여인에게 명하여 태자의 앞으로 나아가 춤추도록 하니 태자가 기뻐하며

선도(仙徒)와 금전과 사신(使臣)의 봉화(奉花)를 내렸다.

 

姬不勝感激 歸治其具 而涓吉邀郎

여인이 감격을 이기지 못하고 돌아가 선도와 사신을 다스리며

<위화>랑을 맞이할 혼인날을 정하였다.

 

太子與郎幷騎白神馬到宅

태자와 <위화>랑이 나란히 백신마를 타고 집에 도착하였다.

 

畏山公與妻覧淵娘主出拜馬下 郎扶起之公導

<외산>공과 처 <람연>낭주가 나와 말 아래에 엎드려 절을 올리니

위화랑이 부축하여 일어나게 하여 <외산>공을 인도하였다.

 

太子及郎升堂下坐娘主引姬

태자와 위화랑이 마루에 올라가니 아래에 앉아있던 낭주가 여인을 데려왔다.

 

而入姬以七彩五寶盛粧 而前奉花于太子五拜()退

일곱 빛깔 다섯 보물로 성대하게 장식한 여인이 들어와

먼저 태자에게 봉화(奉花)하며 오배(五拜)를 올리고 물러났다.

 

又奉花于郎再拜而退

<위화>랑에게 봉화(奉花)하며 재배(再拜)하고 물러났다.

 

娘主獻酒於太子五拜 酙酒於郎勸食

낭주가 태자에게 술을 올리며 오배하고 위화랑에게 술을 따르며 음식을 권하였다.

 

太子召姬抱之 命行酒太子旣醉 命郎與姬對舞

태자가 여인을 불러 안으며 이미 취한 태자에게 술을 올리게 하고

<위화>랑과 함께 마주보며 춤을 추도록 하였다.

 

使娘主歌之 太子亦歌之 仙徒以花車載姬鼓舞樂之

낭주에게 노래를 부르도록 하고 태자 역시 노래를 부르고

선도들이 꽃수레에 여인을 태우고 북을 치고 춤을 추며 연주하였다.

 

入仙院眞殿太子與郎從之 是夕 太子幸姬 授品命爲仙院之主 白中女皆羡之黑羊

태자와 <위화>랑이 이를 따라 선원 진전(眞殿)으로 들어와서

이날 저녁 태자는 여인에게 행차하여 선원주(仙院主)로 명하고

모든 백중녀들이 부러워하는 흑양의 품계를 주었다.

 

三月剡臣公 往誄 叔欣公于桃山 而將歸出神門之外欲上馬

3<염신>공이 도산에 <숙흔>공의 명복을 빌러 가서

신문(神門)을 나와 돌아가려고 말을 탈려고 하였다.

 

夜已三更 月色稀迷 有美人在神樹下召之 公疑其爲祠主 而詣之美人無言步入西殿

밤은 이미 삼경이고 달빛이 희미한데 미인이 신목(神樹)아래서 그를 부르니

<염신>공이 사주(祠主)인줄 알고 다가가니

미인은 아무 말 없이 걸어서 서전(西殿)으로 들어갔다.

 

公隨之無燭 公疾趣抱之 乃助里宮主也

<염신>공이 촛불도 없이 그를 따라가서 걸음을 재촉하여 그녀를 안으니

<조리助里>궁주였다.

 

公號泣昏倒 馬奴搜之

<염신>공이 울면서 부르짖다가 정신을 잃고 쓰러지니 마노(馬奴)가 찾아 나섰다.

 

公不省人事 西殿 助里所居也

<염신>공은 인사불성이었고 서전(西殿)은 조리가 거처하는 곳이었다.

 

久廢不用 煤苔滿衣 公歸邸 而疾篤謂郎曰

歸侍吾母于天上無餘恨矣 汝可繼我治家子女幸矣

오래도록 내버려 두고 사용하지 않아 그을음과 이끼가 가득 낀 옷을 가지고

<염신>공이 자택으로 돌아가 <위화>랑에게 돈독히 일러 말하기를

천상에서 기다리는 내 어머니에게 돌아가는데 무슨 여한이 있겠는가!

너는 나를 이어 나의 집안 자녀들을 다스려 행복하게 하여야한다

 

元臣乃以家讓之郎不受 其夕公卒

이에 <원신元臣>이 집안을 <위화>랑에게 양보하였으나 받지 않았다.

그날 밤 <염신>공이 죽었다.

 

순실(청아) - 등흔(416-483)

                 조리(423-483)

미해(청아) - 백흔(420-482)

등흔(보미) - 숙흔(434?-502)

백흔(조리) - 염신(447-503)

 

지난 해(502) 죽은<숙흔>은  <염신>의 외사촌 형이다.

 

 

宅主玉蘭不歸于元臣 而歸于郎曰 先夫之言也

택주 <옥란><원신>에게 돌아가지 않고 <위화>랑에게 돌아와서 말하기를

죽은 아버지의 언약이라고 하였다

 

비처(란릉) - 옥란(478-533)

 

郎乃與玉蘭行祥 碧我遂爲宣登妻入光院

<위화>랑과 <옥란>이 상서러운 결혼식을 치루고

<벽아>는 마침내 <선등>의 처가 되어 광원(光院)으로 들어갔다.

 

지도로(찬황) - 선등(469-526)

 

太子命玉蘭爲剡公院主 督宅師 增新宅園泉石以爲遊賞之地

태자는 옥란을 염공원주(剡公院主)로 명하여 택사(宅師)를 감독케하고

새 집과 정원 연못을 증설하여 놀이터로 하였다.

 

時以仙光剡三院爲太子別院 天后亦數親臨之 *선원, 광원, ()

이때 선원(仙院), 광원(光院), 염원(剡院) 세 원()은 태자의 별원(別院)이 되었고

천후 역시 수차 이 곳에 왕림하였다.

 

<모진> 태자의 별궁

 

선원(仙院): 벽화

광원(光院): 벽아

염원(剡院): 옥란

 

 

調用皆自宮中出 奢麗冠 於骨門珠履金冠之屬

골문의 구슬달린 신발과 금관에 달린 사치스럽고 화려한 의관들은

모두 궁중에서 조달한 것이었다.

 

莫不畢擧 盛冬嚴夏皆用不時之物

한겨울과 한여름에는 사용되지 않는 물건도 남기지 않고 모두 들어오지 아니하였는가?

 

時帝以宿疾命后禱于捺己神山

이때 제는 고질병이 있어 후로 하여금 날기 신산에서 기도하게 하였다.

 

太子從之 郎亦侍左右 至神山齋七日

태자가 따라가니 위화랑 역시 좌우에서 시중들며 신산에 도착하여 7일간 재()를 지냈다.

 

困盛夏留連 山中滯雨

무더운 여름에 객지에서 머물러 피곤한데 산중에서 비를 만났다.

 

后方有乳公主在京 故乳漲 則命郎哺之

후가 경도(京都)에 있을 때 공주에게 적을 먹였기 때문에

젖이 흘러나와 위화랑에게 젖을 먹도록 하였다.

 

이때 위하랑 17, 연제 41세이다.

 

因抱與之寢遂得天寵及歸 加爵大奈麻 命行天宮衛監便宜入侍后

마침내 침실에서 함께 포옹하여 하늘의 총애를 받고 돌아오니

위화랑에게 대나마의 작의를 더하여 천궁 위감(衛監)이 되어

편하게 들어와 후를 시중하게 되었다.

 

始嬖寵臣 恩漢(?)自大 召幸無時 郎恐得罪于帝

폐신(嬖臣)의 시작으로 은택을 뽐내게 되었고 때도 없이 불러 잠자리 시중을 들게 하니

<위화>랑은 제에게 죄를 받을까봐 두려워하였다.

 

后乃設天臺于狼山置博士 命郎主之 仍幸三院及臺而會于郎

이에 후가 낭산에 천대를 설치하고 박사를 두어 위화랑을 천대주로 명하여

삼원과 천대에 행차하여 위화랑을 만났다.

 

郎以神后神帝之號上之 帝亦大喜

위화랑이 신후와 신제를 상제(上帝)로 부르니 제 역시 크게 기뻐하였다.

 

時碧花生太子子三夫

이때 벽화가 태자의 아들 <삼부三夫>를 낳았다.

 

모진(벽화) - 삼부(503- )

 

郞以妹剡花薦于太子 太子不甚愛

<위화>랑이 여동생 <염화剡花>를 태자에게 천거하니 태자는 깊이 사랑하지 않았다.

 

염신(벽아) - 염화(489- )

 

又以玉蘭薦之有寵 太子久留剡院

<옥란玉蘭>을 천거하니 총애가 있어 태자가 염원(剡院)에 오래도록 머물렀다.

 

后怒命郎責玉蘭及太子

후가 노하여 <위화>랑에게 명하여 <옥란>과 태자를 꾸짖도록 하였다.

 

郎乃使玉蘭稱疾不起 太子憂之求藥四方

이에 <위화>랑이 <옥란>이 병이나서 일어나지 못한다고 시키니

태자가 염려하여 사방으로 약을 구하엿다.

 

玉蘭曰 妾之疾非藥可救 但太子均寵 而無妬 則自何

<옥란>이 말하기를

첩의 병은 약으로 고치지 못하고

태자의 고른 총애와 질시가 없으면 바로 나을 것입니다.”

 

太子善之乃還東宮 天后責太子多寵 而已亦絶郎爲誓 郎不敢復進之

태자가 착하게 여기고 동궁으로 돌아가니 천후는 태자의 지나친 총애를 꾸짖고

위화랑에게도 역시 절제토록 맹서하게 하니 위화랑은 감히 다시는 천거하지 못하였다.

 

十月帝上閼川壇上 受號定國名曰新羅

10월 제가 알천 단상에 올라 신라(新羅)라는 국호를 정하고 이를 받았다.

 

遂與后巡狩國中 而歸命太子監國執行政事 大事后自決之

마침내 후와 함께 나라 안을 순수하고

태자에게 정사(政事)를 집행하고 감국(監國)토록 명하고

돌아 와 대사(大事)는 후가 스스로 해결하였다.

 

時德智公卒 太子臨喪 其室肜肜公主 以粉脂薦枕于殯室

이때 <덕지德智>공이 죽어 태자가 상가(喪家)에 왕림하니

그 아내 <융융肜肜>공주가 분과 연지를 바르고 빈소에서 잠자리 시중을 들었다.

 

내기(장총) - 총덕(394-464)

취희(인덕) - 질지(428-492) 금관가야 제 8대왕(재위 451-491)

총덕(황아) - 덕지(440-503)

질지(?) - 융융(470?-523)

 

 

太子稱慰孤 而宿之 后命郎召太子

태자가 융융공주의 외로움을 위로하며 잠을 자니

후가 <위화>랑에게 명하여 태자를 불렀다.

 

太子欲柔后 而命郎先入侍后 郎不敢違之如其言

태자는 후에게 유순코자 위화랑이 먼저 들어 가 후를 시중토록 명하니

위화랑은 감히 그 말대로 하고 어기지 못하였다.

 

后果復寵之太子

과연 후가 다시 태자를 총애하였다.

 

乃入后自漸而不能責太子

이에 태자가 들어가니 후는 스스로 점점 더 태자를 꾸짖을 수가 없었다.

 

以此郎益見寵愛 宣登碧我賴以爲重

이로써 <위화>랑은 더욱 총애를 받고 <선등>과 <벽아>는 귀중하게 되었다.

 

翌年正月 后與太子受朝眞宮 賜酒骨老上仙 命郎行酒上仙

다음 해 정월 후와 태자가 진궁(眞宮)에서 조하를 받고 골노와 상선에게 술을 내리며

<위화>랑에게 명하여 상선에게 술을 올리도록 하였다.

 

沛覧公奏曰 臣家世修仙業 以造國風 先臣忽明實爲順實日仙之悟道師

先臣沙覧繼爲其師實有功蹟於斯門 臣不敢以私聞也

今當此筵不無感舊臣欲 以先臣遺物皆傳臣女覧淵 以歸臣孫魏花郞副仙

<패람沛覧>공이 아뢰기를

신의 집안은 대를 이어 선업(仙業)을 수학하여 나라의 풍속을 조성하였습니다.

신의 선조 <홀명忽明><순실順實> 일선(日仙)

실로 도를 깨달아 사부로 삼았습니다.

신의 선친 <사람沙覧>은 그 사부를 위하여 계속하여 이 문에 실로 공을 남겼습니다.

신은 감히 사사로이 들은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이 자리는 당연히 옛 신하의 욕망을 드러냄이 없지 않으나

신의 선친이 남긴 유물은 모두 신의 딸 <람연覧淵>에게 전해져서

신의 손자인 <위화>랑 부선(副仙)에게 돌아갔습니다.“

 

산근(405-475)(외황) - 외산(459-521)(람연) - 발장(479?- )

사람(382- )(?) - 패람(410?- )(?) - 람연(460?- )

배실(난씨) - 순실(396-448)

 

 

山兼公亦奏曰 臣母靑我常言 忽明世己之學宗于當世

章伊好淵之學亦出于此 今其子孫淸貧無 以守廟保蹟 臣等當此盛筵實愧于心

<산겸山兼>공도 역시 아뢰기를

신의 모친 <청아靑我>가 항상 말하기를

<홀명忽明><세기世己>의 학문이 당세에 가장 뛰어나고

<장이章伊><호연好淵>의 학문도 여기에서 나왔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그 자손들이 청빈 무위로 조상의 묘를 지키고 보존하니

신 등은 이 성대한 자리가 실로 부끄러울 뿐입니다.“

 

눌지(산아) - 산근(405-475)

제상(치술) - 청아(399-452)

산근(청아) - 산겸(438-508)

양부(줄례) - 홀명(343?-412)

유례(선추) - 세기(335-391)

보해(보미) - 장이(425-490)

(보반) - 호연(397-466)

 

 

天后曰 世己忽明兩公皆爲吾祖之師 中興仙道 宜令有司置其廟 田祿

其子孫諸仙咸(?)

천후가 말하기를

“<세기世己><홀명忽明> 두 공은 모두 나의 조부의 사부로 선도를 중흥하였다.”

마땅히 유사(有司)에게 그 사당을 설치하고 밭과 녹봉을 내리도록 하니

그 자손 선도들 모두가 마음속으로 감동하여 탄복하였다.

 

순실(청아) - 등흔(모량) - 연제(463-525)

 

 

后德以爲必有仙報 後五日 太子 感?陪 后謁 桃滯雪 御厨乏雉

후의 덕은 반드시 선의 보답이 있었다.

5일 후 태자가 후를 알현하고 곱절로 감동하였다.

눈이 쌓여 수라상에 올릴 꿩이 모자랐다.

 

后日 食五雉 故厨人憂之 欲自刎以贖祥 忽有群雉自走入厨舍 皆肥彭咮佳

후가 말하기를

꿩 다섯 마리를 먹어야겠다고 하였다.

수라간 나인이 이를 걱정하고 스스로 목을 베어 속죄코자 하니

홀연히 살이 찌고 맛이 좋은 꿩 여러 마리가 스스로 수라간으로 뛰어 들어왔다.

 

后異之問其事 命太子??其忠賜厨人爵舍知

후가 기이한 그 일을 묻고 태자에게 명하여

그 충성으로 수라간 나인에게 사지(舍知)의 작위를 내리도록 하였다.

 

厨人曰 臣聞世己忽明兩公有陰報於陛下 豈臣微忠之所感哉

수라간 나인이 말하기를

신은 <세기><홀명> 두 공이 폐하에게 은밀한 보답을 내렸다고 들었습니다.

어찌 신의 미천한 충성이겠습니까?

 

后益賢之 命屬仙院看厨天宮賜名雉人

후가 더욱 현명하다고 여겨 선원에 배속하여 천궁의 수라간을 살피도록 하고

치인(雉人)이라는 이름을 내렸다.

 

后出入必從之 后入仙院每與魏花郞交食

院主親自下厨 與婢子 捨身等學厨于雉人 得其精熟后嘉之

후가 출입 시 반드시 따라 다녔고 후가 선원에서 매번 위화랑과 함께 식사를 하였다.

 

선원주(仙院主)는 친히 스스로 수라간 아래에서 계집종과 함께

몸을 바쳐 치인에게 수라간 일을 배워 그 정교하고 익숙함을 득하니 후가 기뻐하였다.

 

三月帝自海宮還都 命太子巡視國中城堞

3월 제가 해궁에서 경도로 돌아와 태자에게 나라 안 성첩(城堞)을 순시토록 하였다.

 

后願從之 郎亦從出都 病發 而還畏山公與覧淵娘主 迎于途中 治藥卽効 仙徒皆喜

후가 따라가고자 하니 위화랑 역시 경도(京都)를 나와 따라가서 병이 나니

<외산>공과 <람연>낭주를 돌아오는 도중에 만나 약으로 치료하여 즉시 나아서

선도들 모두가 기뻐하였다.

 

時郎姑尋尋有別院泉石甚佳 郎養調于此

이때 위화랑의 고모 <심심尋尋>이 별원(別院) 천석(泉石)에 있었는데 아주 아름다워

위화랑이 물자를 조달하여 부양하였다.

 

백흔(조리) - 염신(447-503)(벽아) - 위화(487- )

백흔(?) - 심심(470?-530)

 

<심심><염신>의 이복동생으로 <위화>의 고모이다.

 

 

太子寵妾吾道素慕郎 風典郎 服部 納情于郎

태자의 총첩 <오도吾道><위화>랑을 사모하여

<위화>랑이 풍전(風典) 복부(服部)에 있을 때부터 <위화>랑에게 정을 주고 있었다.

 

<오도吾道><묘심><선혜>의 딸로 <위화>랑과 동갑이다.

 

 

時因太子出狩常來院中 情戀頓加遂相和濡 而娠郎夢見白羊神母入吾道懷中

知其爲當生貴人

이때 태자는 수렵을 갈려고 별원으로 오고 있었는데

마침내 연정(戀情)이 더하여 서로 고루 적시어 임신을 하니

<위화>랑의 꿈에 백양신모가 <오도>의 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귀인을 낳을 것을 알았다.

 

吾道一情片慾無非業緣 况此大夢天已定之復何懼哉

<오도>의 일편 정욕(情慾)은 업()과 인연이 아님이 없는데

하물며 이 같은 큰 꿈은 하늘이 이미 정한 것이니 어찌 두려워하겠는가?

 

乃約爲夫婦 至翌年二月羊日生女玉珍 瑞氣滿堂鳳鳥來鳴

이에 부부가 될 것을 약속하고 다음 해 2羊日에 딸 <옥진玉珍>을 낳으니

서기가 산실에 가득하고 봉황이 날아와서 울었다.

 

묘심(선혜) - 오도(487-539)

위화(오도) - 옥진(505- )

 

 

太子以其非時之娠詰其所夫 吾道不敢諱之太子 乃命郎洗兒

태자가 때가 아닌데 임신하여 그 남편이 누구인가를 물으니

<오도>는 감히 태자를 속일 수가 없어 이에 <위화>랑에게 명하여 아기를 씻게 하였다.

 

郎乃負??*荊罪 太子曰 吾嘗以牝狗賜汝 而汝不受而諫我今竊

其妹而生子初何義 而後何邪乎

이에 <위화>랑이 엎드려 죄를 청하니 태자가 말하기를

나는 일찍이 암캐로써 너에게 하사하였는데 너는 내가 총애한다고 받지 않았다.

그 여동생이 처음으로 자식을 낳으니 의로운 일이지 어찌 사악한 일이겠는가?

 

비처(선혜) - 보도(485-528)

묘심(선혜) - 오도(487-539)

 

여기서 태자가 말한 암캐는 <오도吾道>의 언니인 <보도保道>를 말한다.

 

 

郎對曰 眞骨正妃非 臣敢犯故也 牝狗者保道妃也

吾道乃其異父妹 故美保道體洪 而音大若男子狀 以善兮正統入爲妃吾道??

위화랑이 답하여 말하기를

진골 정비가 아니어서 신이 감히 죄를 지었습니다.

암캐는 <보도保道> ()입니다.

<오도吾道>는 아버지가 다른 여동생이므로 아름답고

<보도保道>는 체격이 넓고 목소리가 커서 남자의 상이고

<선혜善兮>의 정통은 <오도>를 비()로 들어오게 하였습니다.“

 

太子愛吾道 而嘲保道之肥曰 牝狗可爲吾花郞茵也

태자가 <오도>를 사랑하며 <보도>의 비대함을 조롱하며 말하기를

암캐는 우리 화랑의 돗자리로 함이 가하다.”

 

乃命通妃 而郎常拒之故也

이에 비()를 통정토록  하니 위화랑이 항상 이를 거절하는 이유이다.

 

時太子有嬖臣七人 阿時最長 呼作星兄

이때 태자는 폐신(嬖臣) 7인이 있었는데

<아시阿時>가 나이가 많아 성형(星兄)으로 불리었다.

 

선모(보혜) - 아시(481- )

 

 

初吾道娠賬恐太子罪之 郎乃乞于阿時 阿時曰 吾當之乃誘吾道通之

처음에 <오도>가 임신하여 태자에게 죄를 받을까 두려워하였다.

이에 <위화>랑이 <아시>에게 애걸하니 <아시>가 말하기를

내가 당연히 <오도>를 유혹하여 통정하였다.”

 

乃言於太子曰 聖人寬於妻妾 盖愛人如己 故不問所私也

燕太子畜妾七百人雜處于客 而不問客皆欲效死趙高自宮 而滅秦盖爲燕太子報仇也

今臣等七人義則君臣情則 骨肉雖弄嬪妾設有密私何足問乎

이에 태자에게 말하기를

성인은 처첩에게 관대하여 사랑하는 사람을 자기 몸처럼 여기므로

사사로운 일은 묻지 않습니다.

<> 태자는 칠백 명의 첩을 여러 곳 식객에게 두었는데

모든 식객에게 묻지 않고 스스로 불알을 까서 사력을 다하여 <조고趙高>를 죽이고

()을 멸하여 덮은 것이 <> 태자의 원수를 갚음입니다.

지금 신 등 7인의 의()는 군신(君臣)의 정()인 즉

비록 골육(骨肉)의 빈첩(嬪妾)을 우롱하였다하나

남몰래 한 사사로운 일이니 어찌 지나침을 묻겠습니까?

 

<아시><> 태자가 식객의 도움으로

()나라의 환관 <조고>를 죽인 것을 말하고

<위화>랑과 <오도>의 관계는 사사로운 일이므로

군신의 의()와 정()으로 용서하여 줄 것을 태자에게 말하고 있다.

 

 

太子曰 善乃以吾道妻郎

태자가 말하기를

좋다. <오도><위화>랑의 처로 하라.”

 

郎乃邀阿時于剡院 命玉蘭奉酒 而媚之阿時欲通之

이에 <위화>랑은 염원(剡院)에서 <아시>를 맞이하여

<옥란玉蘭>에게 술을 올리도록 명하니

<옥란>의 아리따움에 <아시>가 통정코자하였다.

 

玉蘭鄙之而拒曰 我雖魏花之妻 而太子之妾也

太子無命安敢私奉乎

옥란이 이를 촌스럽게 여겨 거절하며 말하기를

나는 비록 <위화>의 처이지만 태자의 첩이다.

태자의 명이 없는데 어찌 감히 사사로이 받들 수 있겠는가?“

 

阿時不悅 而起 郎悶之使蘭挽之 蘭猶豫未決

<아시>가 불쾌하게 여기고 일어나니 <위화>랑이 걱정하여

<옥란>으로 하여금 만류토록 하니 <옥란>은 아직도 결정을 못하였다.

 

阿時出謂太子曰 魏之竊之則可 而隱之則不可

主之宥之則可 而愛之則不可 且有罪 而無戒 不足以懲衆 請改枕臣

<아시>가 나가 태자에게 일러 말하기를

“<위화>랑의 총애는 옳으나 숨김은 옳지 않습니다.

주인의 용서는 옳으나 사랑은 옳지 않습니다.

또한 죄가 있는데 징계가 없어 무리들을 징계하는데 부족함이 있습니다.

청컨대 침신을 바꾸십시오.“

 

太子乃罷郎爲衛監曰 吾非不愛汝也 奈有衆口何

이에 태자가 <위화>랑을 위감(衛監)에서 파면하며 말하기를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여러 사람의 입이 있으니 어찌 하겠는가?

 

郎歸院泣謂玉蘭曰 汝不聽阿兄之言使我至此

<위화>랑이 염원(剡院)으로 돌아와 <옥란>에게 울며 일러 말하기를

당신이 형의 말을 듣지 않아 내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玉蘭乃詣宝兮宅乞于阿時

이에 <옥란><보혜宝兮> 집으로 가서 <아시>에게 애걸하였다.

 

阿時乃抱入寢 而濡私約鮮郎譴

이에 <아시>가 침실에 들어가 포옹하여 적시고

사사로이 위화랑을 꾸짖어 새롭게 하기로 약속하였다.

 

時善知淨凰保道等皆憎

이때 <선지善知><정봉淨凰> <보도保道> 등 모두가 싫어하였다.

 

碧花讒郎于帝曰 魏花之罪不可居內

<벽아><위화>랑을 참소하여 제에게 말하기를

“<위화>의 죄는 내궁에 거주함이 불가합니다.”

 

帝乃命放于天鏡林 以視林木鳥獸 黜吾道爲遊花

이에 제는 천경림으로 내쫓아 임목과 조수를 살피도록 하고

<오도>를 유화(遊花)로 내쳤다.

 

阿時乃請於太子曰 雲人不可照泥 請贖吾道爲婢

이에 <아시>가 태자에게 청하여 말하기를

“떠돌이는 진흙탕 속에서 빛나지 못합니다.

청컨대 <오도>를 노비가 되도록 속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太子乃賜吾道以爲妾

이에 태자가 <오도><아시>의 첩으로 하사하였다.

 

吾道乃抱阿時而泣曰 妾非夫公 則落??矣 浩恩如天 奈魏郎之放何

이에 <오도><아시>를 포옹하며 울며 말하기를

" 첩은 남편이 아니면 어지럽게 떨어진 낙엽입니다.

하늘과 같은 넓은 은혜로 어찌 <위화>랑을 내칩니까?"


玉蘭亦泣乞曰 兄公約我以鮮吾夫 而濡我禍愈大者何也

<옥란> 역시 울며 애걸하여 말하기를

형은 나에게 내 지아비를 새롭게 하기로 약속하면서 나를 적시었는데

화가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阿時乃說保道曰 魏花之得罪專爲吾妃也

이에 <아시><보도>에게 설명하여 말하기를

“<위화>의 지은 죄는 오로지 나의 비()가 한 일이다.”

 

時太子以保道爲正大 不似吾道之輕薄 而寵始生 故阿時托言之妃乃然之奏于帝曰

魏花之與吾道自誤者 欲使太子愛妾也

其忠可賞 而不可罪

이때 태자가 <보도>의 정대(正大)함을 <오도>의 경박함과 같지않게 여겨

처음으로 총애를 주고 있어 <아시><보도>에게 그 말을 부탁하니 제에게 아뢰기를

“<위화><오도>와 함께 스스로 잘 못함을 알고

태자에게 첩을 사랑하도록 하였습니다.

그 충성은 상을 내림이 가하고 죄는 불가합니다.“

 

帝怒稍解命輕其罪

제가 겨우 알아듣고 노하여 그 죄를 가볍게 하라고 하였다.

 

天后之不得救郎者恐 帝 激怒也

천후가 위화랑을 구제하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니 제가 격노하였다.

 

及帝怒解乃與太子托獵于林中 而載郎歸之 自四月五日至九月八日 凡百有餘日也

제가 노함을 풀고 태자와 함께 천경림에서 사냥을 하고 위화랑을 태우고 돌아오니

45일에서 99일까지 무릇 백여 일이었다.

 

郎自幼生長豪華 不識艱苦被譴之日

위화랑은 어려서부터 호화롭게 자라

어려움과 고난과 꾸지람을 받은 날을 알지 못하였다.

 

玉淚交橫不能仰視天日 仙徒嗚咽不能成言

구슬같은 눈물이 앞을 가리니 하늘의 해를 바라볼 수 없고

선도들은 오열하여 목이 매여 말을 할 수 없었다.

 

或有以死欲贖 畏山公命皆止之曰 恩譴皆是恩也 安敢不體天意乎

때로는 선도들이 죽음으로 속죄코자 하니 <외산>공이 모두에게 저지하며 말하기를

꾸지람의 은혜 모두가 은혜이다.

어찌 감히 하늘의 뜻을 거슬리겠는가?

 

郎乃止泣望闕五拜四拜 而出理方之法 父母兄弟 不得相送

이에 위화랑이 저지하며 대궐을 바라보며 울며 계속하여 절을 올렸으며

이방(理方)의 법은 부모 형제를 나가게 하여 서로 만나지 못하게 하였다.

 

仙院主髮長姬泣曰 吾夫非妾則不便願隨 而同生死

선원주 <발장>이 울며 말하기를

나의 지아비는 첩이 따름을 불편하게 생각지 아니하고

생사를 같이 하기로 하였습니다.”

 

太子許之 乃以布衣扶郎 而至謫 乃一湥林中土窟也

태자가 허락하여 무명옷을 입고 위화랑을 도울려고 귀양지에 이르니

일돌림(一湥林) 속 토굴이었다.

 

日暮則萬林俱黑 但聞咆哮之聲 郎與姬枕籍 而泣

해가 저물어 온갖 수풀은 모두 흑색인데

다만 울부짖는 소리는 <위화>랑과 <발장>이 포개어 누워서 우는 소리였다.

 

又値長霖水浸屋中衣盡濕汚 姬爲之乾於竹枝 仙徒自京來傳

또 토굴 속에서 큰 장마 비를 만나 옷은 헤어지고 눅눅하여 더러워지니

<발장>이 대나무 가지에 걸어 말린다고 선도들이 경도(京都)에서 와서 전하였다.

 

阿時與吾道婚于剡院 吾道喜不自勝 而舞

<아시><오도>가 염원(剡院)에서 혼인하고

<오도>는 기쁘나 뽐내지 아니하고 춤을 추었다.

 

阿時命玉蘭歌之 蘭曰 妾夫在謫妾獨何心樂爲之歌乎

<아시><옥란>에게 노래를 부르도록 하니 <옥란>이 말하기를

첩의 지아비는 귀양 가 있는데 첩이 어찌 혼자 즐기며 노래할 마음이 있겠습니까?”

 

阿時曰 汝今以我爲夫尙念魏花 故吾不救解也

<아시>가 말하기를

너는 지금 나를 지아비로 삼았는데

아직도 <위화>를 생각하니 내가 구하지 않는 것이다.“

 

玉蘭乃泣而歌之 婢僕皆泣云郎聞 而歌之曰 烏竹之枝 可以晒衣 桃李之花 不可以爲門

歌罪而 嗚咽淚下

이에 <옥란>이 울며 노래하니 비복들 모두가 위화랑의 소문을 듣고 울었다.

그 노래에서 말하기를

오죽의 가지는 젖은 옷을 말리네

복숭아와 오얏나무 꽃은 동문이 아닌데

노래하여 죄를 지으니 설움에 북받쳐 눈물이 흘러내리네

 

姬慰之曰 富貴浮雲也 道惟長存 妾自得郎君之寵身爲仙院之主錦衣

而玉食 未嘗忘狼山之布褐 此正 郎君立脚 悟道之秋也 何自悲爲

<발장>이 위로하여 말하기를

부귀는 뜬 구름 같은 것이며 도()는 오로지 오래 가는 것입니다.

첩이 스스로 낭군의 총애를 몸에 입어 선원주가 되어

비단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도

일찍이 낭산(狼山)의 초라한 의복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이 같은 바름은 낭군이 <오도>의 가을 입장인데 어찌 스스로 슬퍼하십니까?

 

郎乃喜曰 吾妻眞聖人也

이에 위화랑이 기뻐하며 말하기를

내 처는 참으로 성인(聖人)이다.”

 

乃面壁誦經晝夜不徹道力大進

이에 면벽하여 불철주야로 경을 암송하니 도력이 크게 진보하였다.

 

時髮長姬娠郎子天林 不堪勞役

이때 <발장><위화>랑의 아들 <천림天林>을 임신하여 심한 일을 할 수 없었다.

 

郎乃待姬睡熟 而手自舂麥手皮盡坼

이에 <위화>랑이 <발장>을 충분히 자도록 하고 스스로 보리를 찧고 껍질을 벗겼다.

 

姬覺之互相爭杵於月下 完然若舞 忽有仙人下降于庭

賜以靈丹敎以妙道 通解三生之業 修得眞元之宗 無復人間之苦 只有天上之樂

心廣而體胖 顔華自生

<발장>이 꿈에 월하(月下)에서 서로 열심히 방아를 찧는데

문득 선인이 뜰로 내려와 완연히 춤을 추며 영단(靈丹)을 주며 묘한 도를 가르치니

삼생(三生)의 업()에 통달하고 진원(眞元)의 종()을 배워서

다시는 인간의 고통을 없게 하고 오로지 천상의 락()

마음이 넓으니 몸이 살찌고 눈이 빛나 자생(自生)하는 도를 체득하다 깨어났다.

 

後數日天后來獵 阿時以駿馬迎之

수일 후 천후가 수렵을 나가니 <아시>가 준마를 위화랑에게 보냈다.

 

乃騎其馬馳騁如飛射殪大猪

이에 <위화>랑이 말을 타고 활이 나는 것처럼 달려 큰 멧돼지를 잡았다.

 

后壯之曰 朕知魏花一玉冠 而已其英勇如此 何可居外乎

후가 장하다고 하며 말하기를

짐이 <위화>의 한 옥관(玉冠)을 알고 이미 그 영특하고 용맹함이 이와 같은데

그 외에 누가 있겠는가?“

 

乃召而執手慰之曰 使汝受苦乃朕寡德

이에 불러 손을 잡으며 위로하여 말하기를

너를 고생하게 하였으니 짐의 덕이 부족함이다.“

 

郎乃進抱 聖頸 而噫泣號哭

이에 <위화>랑이 후의 목을 안고 탄식하며 소리내어 울었다.

 

后乃抱以與太子曰 可復和也

후가 태자와 함께 안으며 말하기를

다시 화목함이 옳다.‘

 

太子亦揮淚抱之曰 浮雲之乍翳也 無傷爾心

태자 역시 눈물을 훔치며 안으며 말하기를

뜬 구름이 잠시 가린 것이다. 상심하지 말라

 

遂復愛之如初 以弟呼之 使居枕臣頭上 加級五重 賜髮長姬綠袖緋衣

마침내 다시 처음과 같이 사랑하여 동생이라 부르며

침신 두상(頭上)으로 거주토록 하여 거듭하여 다섯 계급을 더하고

<발장髮長>에게는 녹수비의(綠袖緋衣)를 내렸다.

 

冬姬生子天林 時碧花亦生帝子三智 帝以是欲重用 郎命爲三智師 辭不得

겨울에 <발장>이 아들 <천림>을 낳았다.

이때 <벽화> 역시 제의 아들 <삼지三智>를 낳으니 제가 중용코자하여

<위화>랑을 <삼지>의 스승으로 명하니 사양하지 못하였다.

 

위화(발장) - 천림(505- )

지도로(벽화) - 삼지(505- )

 

后與太子 不協力勸不二

후와 태자가 협력하지 않아 불이(不二)토록 권하였다.

 

郎乃與盟于仙院約爲一身 后爲郎行赤兎祭于宮中洗郎賜衣

이에 위화랑이 선원에서 한 몸이 됨을 맹약하니

후와 위화랑이 궁중에서 적토제(赤兎祭)를 행하고 위화랑을 씻어주고 옷을 내렸다.

 

太子命仙徒以淺璜爲源花以孤碧花

태자는 선도들에게 명하여 <천황淺璜>을 원화로 하고 <벽화>를 멀리 하였다.

 

지증왕 7(506)<천황淺璜>이 원화가 되었다.

 

碧花謂郎曰 帝欲以三智爲太子 深依仙徒 汝何以花郞奪我花位

벽화가 위화랑에게 일러 말하기를

제는 <삼지>를 태자로 삼고자 선도들에게 깊이 의존하고 있는데

너는 어찌 화랑으로서 내 원화의 직위를 빼앗으려 하는가?”

 

郎曰姊以太子妃 媚帝而生子 故仙徒不肯奉之帝老 而太子莢勇何不深思乎

위화랑이 말하기를

누님은 태자의 비로 제에 아첨하여 아들을 낳았으니 선도들은 늙은 제를 받들지 않고

태자는 용맹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데 어찌 깊이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碧花曰 吾豈樂爲之哉 汝爲我善言太子 明我無二心

벽화가 말하기를

내가 어찌 이를 즐기겠는가?

너가 나를 태자에게 좋게 말하여 내 마음이 둘이 아님을 밝혀주기 바란다.“

 

時帝累幸勝院見芬宗之賢 而有道無罪 見廢 乃倦于天后及太子

이때 제는 누차 승원(勝院)에 행차하여

<분종芬宗>의 현명함과 도과 있고 죄가 없는데 폐한 것을 보고

천후와 태자에게 권태를 느꼈다.

 

乃密謂芬宗曰 朕爲天子皆汝母之力 汝不紹我安得見汝母乎

이에 비밀히 <분종>에게 말하기를

짐이 천자가 된 것은 모두 너의 어머니의 힘이다.

너가 불초하니 내가 어찌 너의 어머니를 편히 볼 수 있겠는가?“

 

芬宗辭曰 聖祖何言臣孤虛不嗜大權 唯以福母養眞爲樂 今太子賢叔聖祖之寵子

臣母之愛弟也 以母之孝友豈肯以孤虛之子 貪不嗜之權乎

<분종>이 사양하며 아뢰기를

돌아가신 아버님의 말씀은

신은 고허(孤虛)하여 대권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오직 모친의 복을 빌며 진()을 양성함을 즐거움으로 삼고 있습니다.

지금 태자 숙부는 돌아가신 아버님이 총애한 아들입니다.

신의 모친의 사랑은 동생입니다.

어머님의 효와 우애가 어찌 고허한 아들을 수긍하여

대권을 탐하는 것을 좋아하겠습니까?

 

자비(파호) - 비처(436-500)

습보(조생) - 지도로(437-514)

지도로(라황) - 후황(466-499)

지도로(연제) - 모진(480-540)

비처(후황) - 분종(488- )

 

賢叔은 숙부에 대한 경칭이다.

 

<분종>은 지증왕 <지도로>의 외손자이고

<모진><지도로>의 아들이므로 <분종>의 외삼촌이다.

 

지증왕은 딸 <후황>의 힘으로 천자가 되었음으로

외손자인 <분종>이 폐 태자가 된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신라가 신국의 나라이고 여왕의 나라임을 알 수 있다.

 

帝乃吁曰 朕爲迎帝所誤也

이에 제가 탄식하며 말하기를

짐이 <영제迎帝>를 잘 못되게 하였다.”

 

乃欲以三智爲太子 命郎廣畜郎徒累下黃金以爲費 命與芬宗密行

이에 <삼지>를 태자로 삼고자 <위화>랑에게 명하여 황금을 비용으로 하여

낭도들을 널리 모으도록 <분종>과 함께 밀행토록 하였다.

 

芬宗謂郎曰 天后太子天縱之聖也 老帝雖倦不可背反

<분종><위화>랑에게 일러 말하기를

천후와 태자는 하늘이 낳은 성인입니다.

늙은 제()가 비록 싫어하나 배반은 불가합니다.“

 

郎曰 臣亦自知乃以黃金獻于太子

<위화>랑이 말하기를

신도 역시 알고 있어 황금을 태자에게 바치고자 합니다.”

 

太子已知而不受曰 汝畜犬馬爲三智芬宗計可也

태자가 이미 알고 받지 않고 말하기를

너는 개와 말을 길러 <삼지><분종>을 헤아림이 옳다.”

 

郎曰臣之一髮一膏皆我太子之有也 豈有異心乎

芬宗殿君自是 天降神仙 不喜煙霞事 豈肯有人間之慾乎

臣姊乃我太子之寵妃也 其心常在太子豈三智之所可移哉

<위화>랑이 말하기를

신의 머리카락 하나 몸뚱이 하나가 모두 태자의 것입니다.

어찌 다른 마음이 있겠습니까?“

<분종>전군은 이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온 신선으로

안개와 노을의 일도 좋아하지 않는데 어찌 인간의 욕망을 가지겠습니까?

신의 누님은 태자의 총비로 그 마음이 언제나 태자에게 있는데

어찌 <삼지>에게 마음이 가겠습니까?

 

太子笑曰 吾亦知汝 兄弟之心矣 吾之得保 今日皆汝姊之力也

吾爲天子可立爲后汝 善言之無使父帝蠱惑

태자가 웃으며 말하기를

나 역시 네가 형제의 마음을 가지고 있고 나의 자리를 보존함은

오늘 너와 너의 누님의 힘임을 알고 있다.

내가 천자가 되면 너를 후로 삼을 것이니 좋은 말로 부제(父帝)를 고혹치 않게 하라.“

 

郎乃使碧花說上曰 太子勢大不可抗 妾與三智勢孤安能敵乎

陛下若以妾復歸太子 而托三智則 太子愛妾 故百歲之后可得爲后

이에 <위화>랑이 <벽화>로 하여금 말하도록 하니 <벽화>가 말하기를

태자의 세가 커서 대항 할 수 없습니다.

첩과 <삼지>의 세는 외로운데 어찌 적이 되겠습니까?

폐하가 만약 첩을 다시 불러 태자를 <삼지>로 부탁한 즉

태자가 첩을 사랑하므로 오래도록 후로 삼고자 한다고 할 것입니다.“

 

三智亦可以紹 其後事便 而計完

<삼지> 역시 느슨하여 그 후 사정이 변하여 계획이 끝났다.

 

帝乃自知天命之所歸 乃命三智爲太子嗣 而歸碧花

이에 제는 스스로 천명(天命)의 돌아감을 알아

<삼지>를 태자의 후사로 삼아 <벽화>에게 돌아가게 하였다.

 

太子知郎之有密贊之功 而益愛之曰 汝吾鄧通 而子房也

태자는 위화랑의 남몰래 찬동한 공이 있음을 알아 더욱 사랑하며 말하기를

너는 나의 <등통鄧通>이고 <자방子房>이다.”

 

참고

 

등통(鄧通) : 한 나라 문제의 총애를 받던 신하

자방(子房) : 한 고조 유방의 공신, 장량(張良)

 

 

天后亦隆愛篤寵 每至剡院及仙院 托以福事授乳於郎 髮長乳玉宗

천후 역시 돈독한 총애로 융성히 사랑하여 염원(剡院)과 선원(仙院)에 이를 때 마다

복 받을 일을 부탁하고 <위화>랑에게 젖을 주니

<발장><옥종玉宗>에게 젖을 주었다.

 

모진(연제) - 옥종(505-528)

 

신라는 신국(神國)의 나라이고 모계의 나라이며 이성(二聖)의 나라이다.

 

신라의 여성관은 삼종지도(三從之道)라 하여

어려서는 아버지를 따르고 시집가서는 남편을 따르고

늙어서는 자식을 따르는 것을 말한다.

 

여자가 젖을 주는 것은 일심동체를 상징한다.

 

 

時東海上有一漁子得魚換酒醉臥窟中

夢行天子事故曰 夢天子坐臥起行常

이때 동해에 한 어부가 있어 고기를 잡아 술로 바꾸어 술이 취하여

굴속에 누워 잠이 들었는데 꿈에 천자가 행차하여 사고를 당하여 말하기를

꿈에 항상 천자가 앉았다 누웠다 일어나서 간다.”

 

多醉睡逢人則逢首 括目 而言若不能

或行乞于人家顔常童子 而耆老亦不知其年 皆以爲神仙

술이 많이 취하여 졸면서 사람을 만나본 즉 머리뿐이라

눈을 비벼 말을 하려고 하였으나 할 수 없었다.

혹은 인가에 구걸하러 가니 동안(童顔)이라

노인들도 역시 그 나이를 알지 못하니 모두들 신선이라 하였다.

 

軍主伊宗公迎之 問道對曰 吾豈道人哉 惟自然 而已公敬

군주 <이종伊宗>이 그를 영접하여 도를 물으니 대답하기를

내가 어찌 도인이겠는가?

오직 저절로 이미 공경할 뿐이다.“

 

방석() - 이종(454-524) 이사부(異斯夫)

 

 

其言欲奉爲師 漁子曰 芬宗魏花之世 何用我爲遂歸其窟

그 말에 스승으로 모시고자 하니 어부가 말하기를

분종과 위화의 시절에 내가 그 굴로 돌아가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公乃報于朝

이에 공이 조정에 보고하였다.

 

時春旱不雨 宣登累祈于野 無效

이때 봄에 가물어 비가 오지 않아

<선등>이 누차 야외에서 기우제를 지냈으나 효험이 없었다.

 

聞此報 乃以郎代之

이 보고를 듣고 <위화>랑에게 대신하게 하였다.

 

郎曰 天旱在政必 先發倉賑民 王公以下皆 宜減食施民

<위화>랑이 말하기를

하늘의 가뭄은 반드시 정치에 있다.

우선 창고를 열어 백성을 구휼하고

왕공(王公)이하 모두가 마땅히 감식하여 백성을 돌보아야 한다.“

 

后曰吾郎聖人也

후가 말하기를

나의 위화랑은 성인이다.”

 

乃減雉食 與郎 曝露茅身天乃大雨

이에 꿩고기를 줄여 먹고 <위화>랑과 함께 바깥에서 뜨거운 햇빛을 쬐며

띠를 둘러쓰고 기우제를 지내니 마침내 하늘에서 큰 비를 내렸다.

 

國人皆知 郎已通仙

나라 사람들 모두가 <위화>랑이 이미 선()에 통달하였음을 알았다.

 

朝廷命畏山公 往迎夢天子已不知所去 惟土窟一座白雲數片 而已夏月

조정에서 <외산>공에게 명하여 천자를 마중 나가게 하였으나 이미 간곳을 알지 못하니

오직 토굴 한 자리에 몇 조각 흰 구름과 여름 날 달만 떠 있었다.

 

后與郎出遊尋院浴于川上岩下

후와 <위화>랑이 심원(尋院)으로 가서 목욕하고 개천 위 바위 아래에서 놀고 있었다.

 

심원(尋院)는 위화랑의 고모인 <심심尋尋>이다.

 

 

后謂郎曰 汝知此岩乎

후가 <위화>랑에게 일러 말하기를

너는 이 바위를 아는가?”

 

郎笑而不答尋尋曰 古有大蚊作崇 今無其弊幸矣

<위화>랑이 웃으며 답을 하지 않으니 <심심尋尋>이 말하기를

옛날에 큰 모기가 있어 모여 들었는데 지금은 그 폐단이 없어 다행이다.”

 

郎又笑而不言后曰 朕與汝姑爲汝 而言 汝何微笑而已乎

<위화>랑이 또 웃으며 말을 하지 않으니 후가 말하기를

짐과 너의 고모가 너에게 말하는데 너는 어찌 웃기만 하는가?”

 

郎曰 一言一笑皆有所應 非臣自爲何少焉

<위화>랑이 말하기를

한 마디 말과 한 마디 미소가 모두 응답입니다.

신은 스스로 몇 마디도 하지 못 합니다.“

 

后負郎出水至岩上 尋尋亦出水擧岩 爲林蚊所咬 驚墮落水 后欲救之不得

후가 물에서 나와 <위화>랑을 업고 바위 위에 이르고

<심심>도 물에서 나와 바위에 오르니 수풀 모기가 물어뜯어 놀라 물에 떨어지니

후가 구할 수 없었다.

 

郎曰 俄言驗矣 姑是阿世之後化 而蚊是班君之後化也

<위화>랑이 말하기를

제 말이 증험하고 있습니다.

고모는 <아세阿世> 이후의 변화이고 모기는 <반군班君> 이후의 변화입니다.“

 

차웅(운제) - 아세(74- )

지마(애례) - 반군(156-181)

 

<위화><아세> 이후에는 바위에 모기가 없어졌으나

다시 <반군> 이후에 모기가 나타났음을 말하고 있다.

 

后曰然則何以救之乎

후가 말하기를

그런 즉 어찌 구하겠는가?”

 

郎不答熟視雙蝇合翅交足

위화랑이 대답하지 않고 자세히 보니 파리 한 쌍이 교합하고 있었다.

 

后怒以手撲之蝇皆微塵

후가 노하여 손으로 치니 파리들이 작은 티끌이나 먼지가 되었다.

 

郎曰一怒片嗔皆有所應聖后 俄言驗矣

위화랑이 말하기를

한 번 노하고 성을 내니 모두 성후에게 응하는 바가 있습니다.

제 말이 증험하고 있습니다.“

 

后乃悔害物葬蝇 而祝之 尋尋亦葬蚊 而祝之

이에 후가 미물을 해친 것을 뉘우치고 파리를 땅에 묻고 기도하니

<심심> 역시 모기를 묻고 기도하였다.

 

后謂尋尋曰 郎已知朕汝之兆 而不言不得 免崇無乃誠薄 而不足以奉聖人也

후가 <심심>에게 일러 말하기를

위화랑은 이미 짐과 너의 조짐을 알고 부득불 말을 하지 않으니

숭상함에 벗어남이 없으나 정성이 모자라 성인을 받드는 것이 부족함이다.“

 

郎曰 非不言也 不敢言也 未定之崇 可以逃之 已定之崇 不可逃

逃菸不可 逃渠㔫重 故不敢言也

<위화>랑이 말하기를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감히 말을 못하는 것입니다.

결정하지 못하고 숭상하는 것은 도망가는 것이고

이미 결정하여 숭상하는 것은 도망가는 것이 아닙니다.

시들어 도망가는 것은 불가하며 도랑으로 도망침은 힘이 드니

감히 말을 못하는 것입니다.

 

尋尋曰 臣母翟京十歲 謁靑我祖

祖以衆上玉卑子授之曰 此兒當生吾叢(?)

山近公乃取爲山兼叔之婦

生翟山 山京 而情衰

乃侍臣父白欣 學茶求仙 臣父素好文章 而淡於色 念久未近之

一日偶見玉卑子問其出母 以祖言告之 父乃笑曰 此乃吾物汝誤作兼妻也

乃携入枕遂生臣身 母乃以卑子傳臣 臣幼時常佩之與世艾遊

艾約臣爲夫婦 而前夫叔欣愛臣娶之 艾心痛之 願得卑子佩之 臣憐 而許之

 

<심심>이 말하기를

신의 모친 <적경翟京>이 열 살에 <청아靑我> 선조를 알현하였습니다.

 

선조께서 여러 사람들 앞에서 옥비자(玉卑子)를 주며 말하기를

이 아이는 나의 총손(寵孫)을 낳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산근山近>공이 받아 <산겸山兼>숙부의 부인에게 주었습니다

 

저의 모친은 <적산翟山><산경山京>을 낳고 정()이 쇠하여

신의 부친 <백흔白欣>을 모시고 다()를 배우고 선()을 구하였습니다.

 

신의 부친은 소박하고 문장을 좋아하여 색에는 담담하여

오래도록 가까이 할 마음이 없었습니다.

 

하루는 우연히 옥비자(玉卑子)를 보고

그 어머니의 출생을 물으니 선조의 말을 고하였습니다.

 

이에 부친이 웃으며 말하기를

이는 내 물건인데 네가 잘못하여 <산겸>의 처의 것이 되었구나.’라고 하며

마침내 침실에 끌어 들여 신의 몸을 낳았습니다.

 

이에 모친은 옥비자(玉卑子)를 신에게 전하였습니다.

 

신은 어렸을 때 항상 그것을 차고 <세애世艾>와 함께 놀았습니다.

 

<세애>는 신과 부부가 되기를 약속하였는데

전 남편 <숙흔叔欣>이 신을 사랑하여 신에게 장가들었습니다.

 

<세애>의 마음이 아프니 원컨대 신을 가련히 여겨

옥비자 노리개를 얻도록 청하옵니다

 

후가 이를 허락하였다.

 

눌지(산화) - 산근(청아) - 산애(435- )(세두) - 세애(470?- )

                                   산겸(438-508)

내물(보반) - 미해(청아) - 백흔(조리) - 염신(447-503)(벽아) - 위화(487- )

백흔(적경) - 심심(470?-532)

순실(청아) - 등흔(보미) - 숙흔(434?-502)

 

 

白羊之秋 叔欣出理誠國 臣歸家侍母 艾尙未斷念 越墻入寢 臣憐 而許之

백양(白羊)(502)의 가을에 <숙흔>이 나가 나라를 정성으로 다스리니

신은 집으로 돌아가 어머니를 모시는데 <세애>는 아직도 단념하지 못하여

담을 넘어 신의 침실로 들어오니 신이 가련히 여겨 허락하였습니다.

 

夢見大蜃入悔曰 汝有活人陰德

꿈에 큰 무명조개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후회하며 말하기를

당신은 사람을 살리는 음덕이 있다.”

 

可以居之 果有娠

거주토록 하니 과연 임신이 되었다.

 

臣乃索卑子于艾曰 汝已通我 可還卑子吾母 以其世傳 故憂其失也

이에 신이 <세애>에게 옥비자를 찾도록 하며 말하기를

당신은 이미 나를 통정하였으니 옥비자를 나의 어머니에게 돌려주어

세세토록 전하게 하여야 하니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십시오.“

 

艾曰 吾兒生則 可以還之

<세애>가 말하기를

우리는 아이를 낳을 것인 즉 돌려줌이 옳다.”

 

翌年 叔蜃生皃類於艾 艾喜而還之 今蜃入仙院 得聖郎之寵

다음 해 <숙신叔蜃>을 낳으니  용모가 세효를

<세애>가 기뻐하며 그것을 돌려주니

지금 <숙신>이 선원으로 들어 와 성랑(聖郎)의 총애를 받고 있는 것이다.

 

臣不勝喜 欲以卑子獻之 願得聖后之 勅許

신은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옥비자를 바치고자 하오니

원컨대 성후께서는 이것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조칙으로 허락하였다.

 

后乃取其卑子視之 乃紫龜神象也

이에 후가 그 옥비자를 얻어서 살펴보니 자주색 거북이 신상(神象)이었다.

 

問其所出 尋尋不知

그 촐소를 물으니 <심심>은 알지 못하였다.

 

郎曰 是出阿世 入板久 傳于姑 皆因緣也

雙蝇板久黑齒也 與班君 共一祠 而以卑子體之則 庶可禐矣

위화랑이 말하기를

이것은 <아세阿世>에서 나온 것인데 <판구板久>가 들어 와 시어머니에게 전하였으니

모두가 인연이 있는 것입니다.

두 마리의 파리는 <판구板久><흑치黑齒>인데

<반군班君>과 더불어 같이 한 사당을 세우니

옥비자의 체()인 즉 뭇 사람들의 노리개입니다.

 

<판구板久(136-193)><산억山檍(135?-193)>의 처이다.

 

<흑치黑齒(133-186)>는 지마이사금 때 성인으로 자칭한 인물이며

계도를 모아 반역을 도모하였다.

 

지마(애례) - 반군(156-181)

 

尋尋曰 我爲阿世 誰爲辛公乎 曰叔欣叔也 曰孰爲木我乎

<심심>이 말하기를

내가 <아세阿世>라면 누가 <신공辛公>인가?

<숙흔叔欣> 숙부인가 <목아木我>인가?

 

차웅(운제) - 아세(74- )

거신(알영) - 신공(60?-138)

 

목아는 아세의 私臣이다.

 

 

郎不言后曰 何爲不言

위화랑이 말을 하지 않으니 후가 말하기를

어찌 말이 없는가?”

 

郎曰 姑自知也 兆在今夕 必生班君乃其父也

위화랑이 말하기를

고모는 스스로 알고 있습니다.

오늘 저녁 조짐이 있으니 반드시 반군(班君)을 낳으니 그 아버지입니다.“

 

尋尋遂 低首 赦面 其夕 森欣烝之 遂生班欣 自是 后益重愛之

마침내 <심심>이 머리를 숙여 사면해 줄 것을 간청하였다.

그날 저녁 <삼흔森欣>이 그 어미를 증()하여 마침내 <반흔班欣>을 낳았다.

이로부터 후는 더욱 <위화>랑을 사랑하였다.

 

以朔望入日 月之皐 與郎沐浴朝于樹王 名曰眞淨元淨

5월 초하루와 보름날 아침에 수왕에서 위화랑과 목욕하니

이름하여 진정(眞淨) 원정(元淨)이라 하였다.

 

以般惠爲日婢子 菱花爲月婢子 掌水宮

<반혜般惠>를 일비자(日婢子)<릉화菱花>를 월비자(月婢子)로 하여

수궁(水宮)을 관장토록하고

 

又置 貝王殿婢子 叔蜃 蘇王殿婢子 剡梁 如來殿婢() 沛雲 索聖殿婢子 蟾艾

樹王坍婢子 末里 是爲七婢子

또 패왕전비자 <숙신叔蜃>, 소왕전비자 <염량剡梁>, 여래전비자 <패운沛雲>

색성전비자 <섬애蟾艾>, 수왕담비자 <말리末里>를 두니 이것이 칠비자(七婢子)이다.

 

비처(후황) - 반혜(491- )

염신(벽아) - 릉화(491?- )

세애(심심) - 숙신(503- )

염신(옥량) - 염량(494- )

비처(지열) - 말리(489- )

 

以雪花 天能 山帝 翠燕 爲眞元四童子

<설화雪花>, <천능天能>, <산제山帝>, <취연翠燕>을 진원사동자(眞元四童子)로 하고

 

염신(벽아) - 설화(494?- )

비처(연제) - 산제(494- )

 

以千覧 畏嵐 爲奉盖使者 以碧我 兄子息臣爲院翁大舍

<천람千覧><외람畏嵐>을 봉개사자로

<벽아碧我> 언니의 아들 <식신息臣>을 원옹대사로로 하였다.

 

舍知皆取 仙徒之優秀有骨者

사지가 선도들 중 우수하고 골이 있는 자를 모두 모았다.

 

郎閑居命婢子濯足淨几 而眠玉皃風采完然 若天降神仙

위화랑이 비자들에게 명하여 발을 씻고 깨끗한 책상에서 한가로이 지내다

잠을 자니 얼굴은 옥과 같고 풍채는 완연하여 하늘에서 신선이 내려 온 것 같았다.

 

有異香襲人 人不得遠之 諸婢皆浴 郎湯 而得其香

기이한 향기가 있어 사람들에게 스며드니 사람들은 이를 멀리하지 못하고

여러 비자들이 함께 위화랑의 탕에서 목욕하여 그 향을 득하였다.

 

覧淵娘主亦喜入郎湯 而得香 畏山公責之曰 如汝醜婦偸香何爲

<람연>낭주 역시 기쁘게 위화랑의 탕에 들어가 향기를 득하니

<외산>공이 이를 나무라며 말하기를

당신은 추부(醜婦)처럼 남모르는 무슨 향인가?”

 

覧淵曰 吾婿之香也 可不聞乎

<람연>이 말하기를

우리 사위의 향입니다. 듣지 못하였습니까?”

 

公遂愛其香 而浸帝亦聞后之香 而情新 故每有滯愛則 輒引郎入浴曰

朕所以愛汝實愛汝香也

마침내 <외산>공도 그 향을 사랑하고 제 역시 소문을 듣고 후의 향에 빠지니

()이 새로워져서 사랑에 빠지게 된 즉

후가 번번이 위화랑을 이끌고 욕탕에 들어가며 말하기를

짐이 너를 사랑함은 실로 너의 향을 사랑함이다.”

 

郎曰 香者花之神也 得花之神則 香自生也 聖后何不得其神乎

위화랑이 말하기를

향은 꽃의 신()입니다.

꽃의 신()을 득한 즉 향은 스스로 생기는 것입니다.

성후께서 어찌 그 꽃의 신()을 득하지 못하겠습니까?“

 

后曰 朕爲汝雌 而受眞 汝何不與之以神乎

후가 말하기를

짐은 너의 암컷이 되어 너의 진()을 받고자 하는데

너는 어찌 신()을 주지 않으려고 하는가?“

 

郎笑曰 陛下以人間之貴 行人間之樂 臣以天上之貴 行天上之樂

人間 天上間之神 何得通乎

위화랑이 웃으며 말하기를

폐하께서는 인간의 귀함으로 인간의 즐거움으로 행하고

신은 천상의 귀함으로 천상의 즐거움으로 행하는데

인간과 천상 사이의 신()이 어찌 통함을 얻겠습니까?

 

后曰 何謂天上之貴

후가 말하기를

천상의 귀함은 무엇을 말하는가?”

 

郎曰 如夢天子人間之一乞人 天上之位高於陛下 古(?)不肯爲臣逃入北界

위화랑이 말하기를

천자와 인간의 한 걸인은 꿈만 같은 것입니다.

천상의 높은 지위가 폐하에게 있으므로

신은 도망하여 북계(北界)로 들어가지 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后曰 汝何知之

후가 말하기를

너는 그것을 어찌 알았는가?”

 

郎曰 呼吸之間 風爲之言 而月爲之顔 故雖在萬里 而能通也

위화랑이 말하기를

호흡하는 사이 바람이 말()이 되고 달이 얼굴()이 되니

비록 멀리 있으나 능히 통합니다.“

 

后曰 天上之樂何如

후가 말하기를

천상의 즐거움은 어떠한가?”

 

郎曰 質重 而濁肉交 而胎生氣淸 而淨聲交 而化生眞界靈感 而百化

위화랑이 말하기를

무거운 질()이 혼탁한 육체와 만나 기()와 정()을 낳고

맑은 소리와 만나 진()의 세계의 영감(靈感)을 낳으니

여러 가지 변화가 나타납니다.“

 

后歎曰 朕多慾 而內塞安能得神仙乎 惟與汝行人間之樂足矣

후가 탄식하며 말하기를

짐은 욕심이 많아 기()가 막혔으니 어찌 신선을 득할 수 있겠는가?

오직 너와 함께 인간의 즐거움에 만족할 뿐이다.“

 

遂荒蕩無度 郎諫之 不得竟以媚道慰后

마침내 황음하고 방탕하여 절제가 없어 위화랑이 이를 간하였으나

필경에는 부득이 미도(媚道)로써 후를 위로하게 되었다.

 

后乃快之回輦入帝寢

이에 후가 기뻐하여 수레를 타고 돌아가 제의 침실에 들어갔다.

 

郎喟然曰 業風也 奈何

위화랑이 한숨지으며 말하기를

업풍(業風)이니 어찌 할꼬?”

 

 

업풍(業風)

 

악업의 보답으로 이리저리 몰리며 고통을 받는 모양을 바람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지옥에서 분다는 무서운 폭풍

 

 

後來帝文郎作詩讚之曰

훗날 <제문帝文>랑이 시를 지어 노래하기를

 

紫盖靑燈兩 兩開散花

童子雙雙回 淨男淨女

呼山拜仙母 仙郞比翼

來雲雨情濃 下玉帳業

風吹入合歡 臺莫言

天上人間別 大雌英雄相抱鵚

 

자주색 덮개의 두 개의 푸른 등을 열고 꽃을 날리네

동자(童子)가 짝을 지어 돌고도니 깨끗한 남자와 여자인데

만세 부르며 선모(仙母)에게 절을 하니 선랑(仙郞)은 어깨를 나란히 하네

운우의 정은 짙기만 하여 옥을 두른 휘장 아래에서 업을 짓네

바람 불어 들어와 합환하니 누대는 말이 없고

천상과 인간은 유별한데 큰 암컷과 영웅이 서로 독수리를 포옹하네

 

<영제><위화>랑을 사랑한 것을 노래한 시이다.

 

 

時末曷入貢

이때 말갈이 조정에 들어와 공물을 바쳤다.

 

郎曰 奴欲伐扶余也 乃使人通之

위화랑이 말하기를

말갈이 백제를 치러하는 것이니 사람을 보내 이를 알려야 합니다.”

 

果入高木城

과연 고목성(高木城)으로 쳐들어 왔다.

 

帝命郎出巡北界 以慰戍軍 伊宗公 問養眞之道

제가 위화랑에게 명하여 나가서 북계를 순시토록하고 수비군을 위로토록 하니

<이종伊宗>공이 진()의 도를 기르는 것을 물었다.

 

郎曰 知敵之情 則不難防 知眞之眞 則不難養難者 知之難 雖知之

亦行之難 世皆養外 而壞其內者 聞見在外故也

聖人忘於耳目 昧入太玄者 視聽在於眞也 蛣蜣博糞 能運其穴者 專其力也

苟欲入玄探眞 不亦不知也 知之而不行知不精也

善用兵者 不用兵知敵之內 故不刃而破也

善用藥者 不用藥知眞之所由傷 故惟護其眞 而已眞在內 不可聞見而知也

위화랑이 말하기를

적의 사정을 알면 방어가 어렵지 않습니다.

()의 진()을 알면 진()을 기르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아는 것이 어려우나 비록 그것을 알더라도 행하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바깥에서 진()을 기르고자 하나

안에서 기르는 자만이 듣고 본 것이 바깥에 있음을 아는 까닭입니다.

성인은 귀와 눈을 막고 태현(太玄)의 삼매경에 들어간 자이니

보고 들음이 진()의 경지에 있는 것입니다.

쇠똥구리는 똥을 넓게 싸서 그 구덩이를 능히 운영할 수 있는 것이며

그 힘을 오로지 하는 것입니다.

눈앞의 안전만 꾀하며 현()에 들어가 진()을 탐구하면 역시 알지 못하고

알아도 행하지 아니하면 진()의 정수(精粹)가 아닙니다.

용병을 잘 하는 자는 적의 내부를 알아 병을 움직이지 않으니

병기를 쓰지 않고도 적을 이기는 것입니다.

약을 잘 쓰는 사람은 상처의 원인을 알아 약을 쓰지 않고도

오직 그 진()을 간호하니 이미 진()이 그 안에 있으니

묻고 보지 않아도 아는 것입니다.“

 

伊宗公大驚曰 誠如夢天子言也

<이종>공이 크게 놀라며 말하기를

진정 천자의 말이 꿈만 같구나

 

今世欲見眞仙 當拜 吾侄於是 阿瑟羅諸仙咸來服之

지금 세인들이 진선(眞仙)을 보면 당연히 절을 올리고자 하고

<이종>공의 조카들도 절을 올리니 아슬라(阿瑟羅)의 모든 선도들이 와서 복종하였다.

 

郎乃就吉公祠 行大祭 享 其徒於海上

이에 <위화>랑이 길공사(吉公祠)에 나아가 대제(大祭)를 지내고

해상에서 그 낭도들에게 잔치를 열었다.

 

是感日瑞雲滿天 白鶴亂舞 吉公以白鬚狀跨母牛來

해가 감응하여 하늘에는 서기와 구름이 가득하고 백학이 어지러이 춤을 추니

<길공吉公>이 흰 수염을 널어 트리고 어미 소를 타고 내려왔다.

 

人皆不知 郎獨知之 迎之 上坐談笑若舊知 衆皆疑之

사람들 모두는 알지 못하였으나 위화랑 혼자 알고 맞이하여

상석에 앉아 오래전에 아는 것처럼 담소하니 모두가 의심하였다.

 

時海上赤壁之上有花 無人可折 徒衆皆言能致 此花者神仙也

이때 바다의 적벽(赤壁) 위에 있는 꽃을 사람은 없는데 꺾어오니

모인 선도들 모두의 말이 이 꽃은 신선(神仙)이라고 치사하였다.

 

吉公謂玉蘭曰 仙母以爲何如

<길공吉公><옥란玉蘭>에게 일러 말하기를

선모(仙母)는 어찌 된 일인가?”

 

蘭曰 妾坤順 而已安能解仙語乎

옥란이 말하기를

첩은 땅에 순종하니 어찌 신선의 말을 알 수 있겠습니까?”

 

公善之 乃執蘭手 蹈海緣岩 而上其疾如飛 採其花 與之衆

乃知爲吉公 爭欲獻誠

<길공>이 착하다고 여겨 해연암(海緣岩)을 밟고 나는 것처럼 재빨리 그 꽃을 캐어

손으로 난을 집어 여러 사람들에게 주었다.

 

公笑謂郎曰 紫岩上 白蘭花 千年萬年 人不採 跨牛老人爲君採去作 人間無雙

<길공>이 웃으며 <위화>랑에게 일러 말하기

자주색 바위 위의 흰 난 꽃은 천년만년 사람이 캐지 못 하였다.

소를 탄 노인이 군()을 위하여 캐 갔으니 인간사에는 없는 일이다.

 

花郎與玉蘭髮長歌之

화랑과 <옥란> <발장>이 이를 노래하였다.

 

公跨牛 而舞蹁 䙴入雲中去 衆仰其影 而嗟嘆下泣

“<길공>이 소를 타고 비틀거리며 춤을 추어 구름 속에 올라가니

사람들이 그 환영을 우러러보며 탄식하며 눈물을 흘리네.“

 

玉蘭曰 吉公前世之花 吾夫今世之花 今以其花傳于我者 道歸于吾夫也

汝等事吾夫如吉公 則何患不得仙乎

<옥란>이 말하기를

“ <길공>은 전세(前世)의 꽃이고 우리 지아비는 금세(今世)의 꽃이다.

지금 그 꽃을 나에게 전하는 것은 도()가 우리 지아비에게 돌아온 것이다.

너희들이 우리 지아비를 <길공>과 같이 받든 즉

어찌 우환이 있으며 선을 득하지 못하겠느냐?“

 

衆皆俯伏 聽命

모두들 부복하여 명을 들었다.

 

是夜 玉蘭夢見紇古大母 騎赤鰲 而來遂娠

이날 밤 <옥란>이 꿈에 <흘고>대모가 붉은 자라를 타고 오는 것을 보고 임신하였다.

 

白蘭是爲蘭公之母 皆天定也

<백란白蘭><란공蘭公>의 어머니이니 모든 것은 하늘이 정한 것이다.

 

위화(옥란) - 백란(507- )

모진(백란) - 란공(524- )

 

 

北路皆知天仙之在我 而民心歡悅

북로군의 모두는 천선(天仙)이 나에게 있음을 알고 기쁘게 환영하였다.

 

伊宗公以其孫女?雲獻 爲童子年才十二 自願捨身奉供

이종공은 그 손녀 <?>을 바쳤다.

방년 12살의 어린 나이인데 스스로 원하여 몸을 바쳐 봉공하였다.

 

乃與之歸 天后與太子迎于郊外 賜醖

이에 함께 돌아오니 천후와 태자가 교외에서 맞이하고 빚은 술을 내렸다.

 

從臣郎與后 同車入謁天子

신하들이 뒤 따르고 위화랑과 후가 같이 수레에 들어가  천자를 알현하였다.

 

陪食于天宮 超級九重 加彩 上慰之曰

汝以妙年達道鎭撫 吾民宰相器也 神國仙道 吾邦之元氣也

聞汝 徒衆日加 仙院 儉嗇 不足 宣揚 賜汝 狼山仙臺之地 用其泉石 可營別洞仙院也

천궁에 음식을 배로하고 아홉 배를 초월하여 채단을 내리며 상이 위로하며 말하기를

너는 스물 살의 나이로 도에 통달하여 백성을 어루만지니

우리 백성들의 재상의 그릇이고

신국(神國)의 선도(仙道)는 우리나라의 원기(元氣)이다.“

너에게 들으니 낭도들이 날마다 늘어나서 선원이 비좁고 부족하니

선원을 넓히고자 너에게 낭산 선대(仙臺)의 땅을 하사하니

그 천석(泉石)을 이용하여 별동선원(別洞仙院)을 운영함이 옳을 것이다.

 

乃下黃金宅師輸材經始 郎感泣 而退 仙徒歡呼 壽祝 京都爲之路塞

이에 황금과 택사(宅師)를 내리고 자재를 날라 처음으로 경영하니

<위화>랑이 감읍하여 물러나고 선도들은 환호하며 만수무강을 축원하니

경도(京都)의 도로가 막힐 지경이었다.

 

布淵娘主 上樓觀光曰 吾父之所未及也

老身有此愛孫 死亦何恨 願以吾壽加 吾愛孫 禱于樹王

<포연布淵>낭주가 누각에 올라 풍경을 보며 말하기를

나의 아버지는 미치지 못한다.

늙은 몸이 손자를 이같이 사랑하니 죽어도 무슨 여한이 있겠는가?

수왕에게 나의 장수와 내가 손자를 사랑함을 빌기를 기원 한다

 

패람(포연) - 람연(외산) - 발장(위화)

 

郎聞之謝曰 我自有壽無苦

위화랑이 듣고 사례하며 말하기를

저는 스스로 장수하고 고통이 없습니다.”

 

祖母娘主 不聽 竟無疾而卒

조모 낭주가 듣지 아니하고 결국 병 없이 죽었다.

 

覧淵娘主泣謂郎曰 吾母爲汝獻壽 汝爲吾母福之可也

<람연覧淵>낭주가 울며 <위화>랑에게 일러 말하기를

나의 모친은 너를 위하여 목숨을 바쳤는데

너는 나의 모친을 위하여 복을 비는 것이 옳다.“

 

郎乃與髮長姬設齋于仙院 大享仙巫以福之

이에 <위화>랑과 <발장>이 선원에 재실(齋室)을 설치하고

선무들이 복을 빌도록 하였다.

 

布淵者好淵公女 沛覧公妻也 其母布姬布兒女也

<포연布淵><호연好淵>공의 딸이고 <패람沛覧>공의 처이다

그 어머니 <포희布姬><포아布兒>의 딸이다.

 

(보반 360-428) - 호연(397-466)(포희) - 포연(435?-507)

 

<포아布兒>는 실성왕 때 가선(歌仙)이다.

 

平生不害物 惟養眞氣 至是能知自化

평생 만물을 해치지 않았으며 오로지 진기(眞氣)를 길러

지금에 이르러 능히 스스로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감을 알았다.

 

沛覧公曰 吾妻自幼不喜邪色 與吾同居五十年常如

初夜未嘗少倦 且於婢妾 施以厚德 未嘗妬猜 雖古聖女未有加也

今忽先我 而去者 爲我往掃玉邸 而待也

唯願速往玉京逢此愛妻

<패람>공이 말하기를

내 처는 어릴 때부터 사악한 색()을 좋아하지 않고

나와 더불어 50년을 한결같이 살았다.

첫 날 밤부터 일찍이 조그만 싫증을 낸 적이 없으며

또 비첩에게 후덕하여 질투와 시기를 한 적이 없으니

비록 옛 성녀(聖女)도 아직까지 내 처에 더하지 못하였다.

지금 홀연히 나를 앞서 간 것은 내가 가서 옥저(玉邸)를 치우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오직 빨리 옥경(玉京)에 가서 처를 만나 사랑할 것이다.“

 

乃歸上仙之位 傳于山兼公 而閉門獨處 四十七日 而召畏山公傳家寶曰

將從汝母 于天上 吾化之後 不可號哭 汝與汝妻 吹簫彈琴可也

이에 상선(上仙)의 지위를 <산겸山兼> 공에게 전하고 돌아 가

문을 닫고 홀로 47일을 지내다 외산 공을 불러 가보를 전하며 말하기를

장차 천상으로 너의 어미를 따라 가고자 하니

내가 하늘로 올라가 신선이 된 후 울어서는 안 된다.

너와 너의 처는 퉁소를 불고 가야금을 타는 것이 옳을 것이다.“

 

산근(청아) - 산겸(438-508)

 

後二日 公遂長眠 蟬化乃火豕孟春之五日也

이틀 후 마침내 <패람>공이 오랜 잠에 빠져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니

화시(火豕)(507) 음력 정월 5일이다.

 

子女皆已會坐 而郎時與天后 薰沐 未及時 家人不敢收

郎自浴室見異氣上天驚曰 上仙化矣

자녀들 모두는 이미 모여 앉아 있고

위화랑과 천후가 향기 나는 풀로 머리를 감고 있었는데

가인들이 머리를 가지런히 하기 전에

위화랑이 스스로 욕실에서 기이한 기가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놀라 말하기를

상선(上仙)이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다.”

 

后爲之改衣 幷馬 來會曰 天后與我 來祖 其知之 公舍笑頷之 而逝

후가 옷을 갈아입고 나란히 말에 올라 모임에 와서 천후와 내가 조부에게 다가오니

이를 알고 <패람>공이 집에서 미소를 지으며 턱을 끄덕이더니 서거하였다.

 

畏山公乃簫 覧淵娘主乃琴 子女皆 念眞元

<외산>공은 퉁소를 불고 <람연>낭주는 가야금을 타고

자녀들 모두는 진원(眞元)을 외웠다.

 

郎與髮長姬奉魄收棺曰 吾祖 雪白精神 必爲光明言下

<위화>랑과 <발장>이 혼백을 받들고 관을 수습하며 말하기를

우리 조부는 눈같이 흰 정신(精神)이니 반드시 광명(光明)의 말을 내릴 것이다.”

 

白雪粉粉 雪明三日

흰 눈이 흩날려 눈의 광명이 3일간 계속되었다.

 

帝命立其祠曰 雪明

제가 사당을 세우기를 명하고 설명사(雪明祠)라 하였다.

 

覧淵主之六月 行剡臣公大祭于剡院

<람연>낭주가 6월에 염원(剡院)에서 <염신>공의 대제를 행하였다.

 

玉蘭當産請止 郎曰 産亦重事 祭不再來不可廢也 雖祭而産可也

<옥란>이 출산기가 있어 저지하기를 청하니 <위화>랑이 말하기를

출산 역시 중요한 일이지만 제()는 다시 오지 않으니 폐하지 못한다.

비록 제를 지내다 출산하여도 가하다.“

 

玉蘭乃登壇行祭胎動 而娩是爲白蘭 娟美無雙

이에 <옥란>이 단에 올라 제를 행하니 태기가 있어 분만하니 <백란白蘭>이다.

예쁘고 아름다움이 견줄 데가 없었다.

 

郎愛之曰 此兒紇古之化也 必生聖人 但其生已苟目多波浪

위화랑이 사랑하며 말하기를

이 아이는 <흘고紇古>의 다시 태어남이다.

반드시 성인을 낳을 것이다.

다만 이미 그 생이 구차하여 눈앞에 많은 파도가 있을 것이다.“

 

玉蘭憐之曰 郎君之女也 何不福之

옥란이 이를 가련히 여겨 말하기를

낭군의 딸입니다. 어찌 복이 없다고 하십니까?

 

郎曰 可福之福 福之不可 福之福 雖天仙不能也

위화랑이 말하기를

가는 복은 불가하니 가는 복은 비록 천선이라도 어찌 할 수 없는 것이다.

 

玉蘭曰 亦有不能天仙之貴 何在

옥란이 말하기를

천선의 귀함으로 할 수 없는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郎笑曰 汝眞慈癡兒也 事有可能 而不可爲此 乃天機之不能也

不能 而不可爲者 人智之不能也

天仙欲汝之所貴 而肯違天機乎

<위화>랑이 웃으며 말하기를

당신은 진정 자식을 사랑하나 어리석은 아이입니다.

일에는 가능한 것이 있고 불가한 것이 있으니 천기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불가능한 것은 불가한 것이니 사람은 불가능한 것을 아는 것입니다.

천선(天仙)이 당신을 귀하게 하고자하나 천기(天機)를 어찌 그슬리겠습니까?

 

玉蘭乃漸而謝曰 順祖嘗責靑祖曰 汝昧吾心不足爲吾妻 今妾之謂也

願郎君憐妾而恕之

이에 <옥란>이 점점 마음을 가라앉히고 사례하며 말하기를

일찍이 <순실> 선조가 <청아> 선조를 나무라며 말하기를

너는 어리석어 내 마음을 알지 못하니 내 처로 부족하다고 하셨는데

지금 첩을 두고 한 말입니다.

낭군께서는 첩을 가련히 여겨 용서하시길 바랍니다.“

 

郎曰 夫婦一體 汝過 卽吾過 安有相責 汝聞 色癡爲房癡 房癡爲慈癡

此三癡者 慾之源也 故大人 無愛 雖愛而不染 雖染而不癡 雖癡而不亂

愛染癡亂慾之程也

眞者宇宙之總花 而神仙之所往也

眞與慾相背十年之功一朝毁之

吾妻聦慧 宜汝自知

위화랑이 말하기를

부부는 일심동체입니다.

당신이 모자라는 것은 내가 모자라는 것이니 서로에게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색()이 어리석은 집안이 되고

어리석은 집안은 자식을 사랑하는 어리석음이 된다는 것을 당신은 들었을 것입니다.

이 세 어리석음은 욕망의 근원입니다.

그러므로 대인은 사랑하지 않고 비록 사랑하더라도 더러워지지 않으며

비록 더러워지더라도 어리석지 않으며 비록 어리석더라도 난잡하지 않으니

사랑하고 더러워지고 어리석고 난잡함은 욕망의 정도입니다.

()은 우주의 총화(總花)이고 신선이 머무는 곳입니다.

()과 욕망은 서로 등지니 십년의 공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것입니다.

내 처는 총명하고 지혜로우니 마땅히 스스로 알 것입니다.“

 

玉蘭大悅聰曰 郎君一言洞開 妾心謹當銘心奉行矣

옥란이 듣고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낭군의 한 마디는 어두운 동굴을 여는 것과 같으니

첩은 마땅히 마음을 삼가고 명심하여 받들 것입니다.“

 

時天后有娠出居凉宮 召郎談眞話元 或至夜深 后爲之相送到橋 不能相別

命駕小舟 郎與后 棹至深林 后枕郎 而臥 命郎摩腹曰 朕娠汝子也

이때 천후가 임신하여 출궁하여 양궁(凉宮)에 거주하였는데

위화랑을 불러 진원(眞元)을 담화하고

혹은 한 밤에 이르러 위화랑을 보내려고 다리에 도착하니 서로 이별을 할 수 없어

가마가 있는 작은 배를 가져 오도록 하여 위화랑과 후과 노를 저어 우거진 숲에 이르니

후가 <위화>랑을 베고 누워서 <위화>랑에게 배를 문지르도록 하며 말하기를

짐이 임신한 너의 자식이다.”

 

郎曰 聖躬如天 雖臣薦枕 安能動胎神乎

<위화>랑이 말하기를

하늘과 같은 성체(聖體)인데 비록 신()이 잠자리에서 시중을 들었지만

어찌 신()의 태동(胎動)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后曰 朕與汝 外雖君臣 而內實夫婦 朕不生汝子 安能答汝恩乎

후가 말하기를

짐과 너는 바깥으로는 군신이지만 안으로는 실제로 부부이다.

짐이 너의 자식을 낳지 않으면 어찌 너의 은혜에 보답하겠느냐?“

 

郎曰 臣與陛下皆是業也 陛下至尊臣 則至微雖臣 奉胤天腹 敢以子之乎

위화랑이 말하기를

신과 폐하의 업()입니다.

폐하는 신의 지존이신 즉 미천한 신이 감히 천복(天腹)을 이을 자식으로 받들겠습니까?

 

后乃抱郎嗚咽曰 朕與汝爲夫妻()如草介 况汝所點之子乎

후가 <위화>랑을 안고 울며 말하기를

짐과 너가 부부가 되는 것을 제는 초개(草介)와 같이 생각하는데

하물며 너도 자식을 가볍게 생각하는가?“

 

郎曰 帝與太子在 願陛下自重 夜氣漸冷 不宜 聖躬恐 傷胎君

위화랑이 말하기를

제와 태자가 있으니 폐하께서는 자중하시기를 바랍니다.

밤기운이 점점 서늘하여 성체가 염려되니 태군(胎君)을 상하게 하여서는 안 됩니다.

 

后乃命掉入水宮 月色如晝 四顧無人 但閒水鳥驚飛 后不勝興擊水 而歌

이에 후가 명하여 노를 저어 수궁(水宮)으로 들어가니

대낮같은 달밤인데 사방을 둘러보아도 사람은 없고

단지 한가로운 물새만 놀라 날아오르니

후가 흥을 이기지 못하여 물을 치며 노래하였다.

 

後來 帝文郎 解其歌曰

훗날 <제문帝文>랑이 풀어 노래하기를

 

見郎君於天上兮 漢水高於萬丈

萬丈水千丈月 不及郎君愛

妾心只在郎君 上完似明月在水中

妾心雖謂天長 月高懸却入水中

郎君懷相抱淸風樂 眞元樂無窮夜無盡長在

郎君寵潢海明月兮 淸風兮

妾與郎君長無窮歌罪 而抱郎而舞舟入皐梁

 

천상에서 낭군을 바라봄이여! 은하수는 높아 만 길인데

만 길 은하수 천 길 달도 낭군의 사랑에 미치지 못하네

첩의 마음은 오로지 낭군에게 있어 물속의 밝은 달과 같은데

첩의 마음이 비록 하늘과 같이 영원하다 하지만

달은 높아 물속에 물러나 걸려있네

낭군이 청풍(淸風)을 안고 품어 즐기니 진원(眞元)의 즐거움은 끝이 없네.

낭군의 황해(潢海) 명월(明月) 청풍(淸風)을 총애함이여!

첩과 낭군이 오래도록 죄를 노래하며 낭군을 안고 춤추는 배가 고량으로 들어오네

 

 

髮長姬出迎奉以枕席 后爲月色命不下帳 玉體玲瓏露於月下 抱郎綢繆密話

<발장>이 나가 맞이하여 잠자리를 받드니

후가 달빛이 있어 장막을 내리지 않도록 명하였다.

옥체가 달빛 아래서 영롱히 드러나고 위화랑을 휘감아 안으며 속삭였다.

 

姬與菱花不敢仰視 但聞天語水回梁下 則激爲之聲亦不可聞

<발장><릉화>가 감히 바라보지 못하고

다만 하늘의 말과 물이 돌아서 교량 아래로 흐르는 것을 들은 즉

부딪쳐 흐르는 소리는 역시 듣지 못하였다.

 

帝文郞作詩讚之曰

<제문>랑이 시를 지어 노래하기를

 

正是情濃雲雨高 月色水聲兩相宜

鳳凰枕上玉猉麟 纏纏繆繆宛轉之

天生大元配玄牝 沛然眞漓洗大雌

大雌天帝柔於綿 交垂鳳頸吐龍漦

龍漦深處紫龍起 抬頭直上貝王池

貝王隹躍含龍頭 暗濆細吹緊相持

慈雲蒸濕魚路滑 一場風高浪打

 

운우의 정은 짙고도 높으니 달빛과 물소리가 서로 화답하네

봉황과 기린이 베개를 베고 얽히고 묶이어 뒤척이는데

하늘이 낳은 대원(大元)은 현빈(玄牝)의 배필이라

크고도 큰 진()이 큰 암컷에 스며드네

큰 암컷과 천제(天帝)는 금슬이 약하여 봉황의 목을 끌어안고 용은 땀을 흘리는데

용이 흘린 깊숙한 곳에서 자룡(紫龍)이 일어나 머리를 치며 올라 왕의 연못을 바라보네

패왕(貝王)이 높이 뛰어올라 용의 머리를 머금으며

몰래 내뿜는 작은 숨은 서로 긴장을 지속하는데

구름이 뒤덮고 습하여 고기는 어지러이 미끄러지고 한 줄기 바람은 높은 파도를 치네

 

時千般嬌 萬般愛 抱着嬌郎 朕且死七生八 業有 誰知 翠玉床 雪花䄄 與我 仙皇爾長隧

때에 천 번을 보아도 아리땁고 만 번을 보아도 사랑스러워 <위화>랑을 끌어안으며

짐이 다시 일곱 번 죽고 여덟 번 태어나도 업이 있으니

누가 취옥상(翠玉床)과 설화연(雪花䄄)을 알겠는가?

나와 더불어 너도 선황(仙皇)의 무덤길을 따를 것이다.

 

時帝春秋已高 倦於內事 不問 后之出入

때에 제는 이미 늙어 내사(內事)에 권태를 느껴 후의 출입을 묻지 않았다.

 

后以此益勤于郎 舟遊山行晝以繼夜 或連數日

후는 <위화>랑을 더욱 자주 만나 배를 타고

밤낮으로 때로는 수일을 연속하여 산행을 유람하였다.

 

帝慕后 而至 后與郎睡熟 而未起帝待于外久

제가 후를 사모하여 이르니 후는 위화랑과 깊이 잠들어 일어나지 못하고

제가 바깥에서 오래도록 기다렸다.

 

后才睡眼曚曨 而來曰爲汝 夜福不能眠也

후가 겨우 잠에서 깨어나 내일은 당신을 위하여 밤에 잠을 자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帝曰 人言汝與魏花 調陰理陽果乎

제가 말하기를

사람들의 말이 당신과 위화가 음양의 이치를 조절한다는데 과연 그러한가?”

 

后怒曰 誰讒吾聖人於汝乎 不斬不可

후가 노하여 말하기를

누가 나의 성인을 당신에게 참소하였습니까? 목을 베어야 할 것입니다.”

 

帝笑曰 朕孤而 自妬之 豈有人言乎

제가 웃으며 말하기를

짐이 홀로 생각하여 스스로 질투한 것인데 어찌 말할 사람이 있겠는가?”

 

后乃與帝入別寢 而慰媚帝倦 而睡

이에 후와 제가 별침으로 들어가 아첨하여 제를 위로하니 권태를 느끼며 잠이 들었다.

 

后乃脫歸郎寢 郎尙未覺也

이에 후가 위화랑의 침실로 돌아오니 위화랑은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

 

后抱起愛之曰 老物來矣 少帝勿驚

후가 안고 일으키며 사랑스럽게 말하기를

늙은 물건이 왔다. 소제(少帝)는 놀라지 말라.”

 

郎欲辭歸不得 帝竟先自還宮

<위화>랑이 사양하며 부득이 돌아가고자 하니 제가 마침 먼저 스스로 환궁하였다.

 

凉宮婢皆呼 郎以少帝 服用器盂皆天子物也 郎欲辭之則

양궁 노비들이 위화랑을 소제라 부르고

의복과 그릇, 바리등 천자의 물건을 사용토록 하니 <위화>랑이 사양코자 한 즉

 

后曰 朕與汝一體 汝不用此孰敢用之

후가 말하기를

짐과 너는 일심동체인데 너는 감히 이를 사용하지 않으려고 하는가?”

 

郎曰 臣雖雄也 非正位安得與天子同乎

위화랑이 말하기를

비록 신이 영웅이지만 정위(正位)가 아닌데 어찌 천자와 같겠습니까?

 

后笑曰 朕以汝爲正位 汝勿多言

후가 웃으며 말하기를

짐이 너를 정위(正位)로 삼고자 하니 너는 말을 삼가 하라.”

 

乃命玉人 造郎玉器十二彫 以瑤池宴圖極

이에 옥인(玉人)에게 명하여 <위화>랑에게

신선도(神仙圖)가 그려진 옥 그릇 12개를 조각하여 만들어 주었다.

 

其精妙飾 以珊瑚黃金載 以六神枬盤 其侈倍於帝

육신단반(六神枬盤)에 산호와 황금을 입히니

그 정교하고 절묘한 장식은 제의 것보다 사치가 갑절이었다.

 

后彩典獻錦繡 后親檢之

후가 채전(彩典)에 수놓은 비단을 헌납하고 친히 검열하였다.

 

先擇郎用 而後帝

먼저 <위화>랑이 선택하여 사용하고 후에 제()가 사용하였다.

 

后曰 朕以天下奉吾仙夫

후가 말하기를

짐은 천하의 내 선부(仙夫)를 받들 것이다.”

 

是年 佛祖異次頓生

이 해 불조(佛祖) <이차돈異次頓>이 태어났다.

 

其母息蘭 乃玉蘭之胞妹 而妙心女也

그 어머니 <식란息蘭><옥란玉蘭>의 포매(胞妹)이고 <묘심妙心>의 딸이다.

 

與郎同年 而美 嫁阿珍宗子吉升 生之

<위화>랑과 동갑이고 아름다워

<아진종阿珍宗>의 아들 <길승吉升>에게 출가하여 <이차돈>을 낳았다.

 

자비(파호) - 비처(436-499 21대 소지왕 재위 479-499)

삼고위(나연) - 묘심(450?-488)

                     란릉(452?-490)

비처(란릉) - 옥란(478-533)

묘심(란릉) - 식란(487- )

위화(식란) - 이차돈(507-528)

습보(보량) - 아진종(451-511)

 

 

息蘭常慕郎 每入剡院 羡玉蘭之得好夫 玉蘭憐之 乘郎之深睡命代己薦枕

<식란>이 항상 <위화>랑을 사모하여 염원(剡院)에 들어올 때마다

<옥란>이 좋은 지아비를 얻은 것을 부러워하니 <옥란>이 가엾이 여겨

<위화>랑이 깊이 잠든 사이 자기 대신 수레를 타고 천침(薦枕)하게 하였다.

 

郎到曉 而覺之曰 吾未嘗亂 汝何以至

위화랑이 새벽에 깨어서 말하기를

나는 아직도 정신이 어지러운데 당신이 어찌 여기에 있습니까?”

 

息蘭泣曰 妾願生聖兄之子 慕之欲死

<식란>이 울면서 말하기를

첩은 성형(聖兄)의 자식을 낳기를 원하니 사모하다 죽고자 합니다.”

 

故玉姐憐 而代之也

<옥란>의 누이라 가엾게 여겨 대신하게 하였다.

 

郎曰業也 勿泣 必生貴子 而極慘亦命也

貴者誠之報 慘者僞之報如何

<위화>랑이 말하기를

()이니 울지 마시오.

반드시 귀한 자식을 낳을 것이니 지극한 애처로움도 역시 운명입니다.

귀한 것은 정성의 보답인데 애처로운 것은 어찌 보답하여야 합니까?“

 

息蘭曰 若生貴子 慘亦不辭

<식란>이 말하기를

만약 귀한 자식을 낳게 되면 애처로움 역시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郎乃引而 成其願 息蘭感泣拜謝

이에 <위화>랑이 이끌어 그 소원을 이루니 <식란>은 감읍하여 절로 사례하였다.

 

郎曰 汝夫吉升待之 可急歸

<위화>랑이 말하기를

당신의 지아비 <길승吉升>이 기다리니 급히 돌아가시오.‘

 

息蘭乃歸 郎之香滿其身

이에 <식란>이 돌아오니 <위화>랑의 향기가 그 몸에 가득하였다.

 

吉升悅之 貪而不捨 遂化玄上 息蘭悲哀

<길승>은 그 향기를 좋아하여 탐하여 버리지 않고

마침내 현묘한 기()가 하늘로 올라가니 <식란>은 슬퍼하였다.

 

至是 生子異香滿室 阿珍宗洗之曰 吾家始得如此仙兒天惠吾兒

이 때에 이르러 아들을 낳으니 기이한 향기가 산실에 가득하였다.

<아진종>이 아이를 씻으며 말하기를

우리 집안이 처음으로 이와 같은 신선을 얻으니 이 아이는 하늘의 은택이다.”

 

息蘭心知爲郎子 而不敢曰其私

<식란>은 마음속으로 위화랑의 아들임을 알았으나

그 사사로움을 감히 말하지 못하였다.

 

이차돈은 사실은 위화의 아들이다.

 

 

及長 與白蘭無異 酷肖於郎 聰明絶人

장성해감에 따라 <백란白蘭>과 다름이 없었고

위화랑을 꼭 빼어 닮아 총명하고 절대가인이었다.

 

위화(옥란) - 백란(507- )

위화(식란) - 이차돈(507-528)

 

郎愛之曰 鸛生三子 一爲鶴此吾鶴

위화랑이 이를 사랑하며 말하기를

구관조가 세 마리의 새끼를 낳으니 이 한 마리의 학은 나의 학이다.”

 

息蘭遂爲郎捨身

<식란>은 마침내 <위화>랑을 위하여 몸을 내던졌다.

 

時碧花妃亦生太子女三葉 太子命郎福之 郎爲白蘭三葉異次頓 行赤蟹祭 于剡院七日

이 때 <벽화碧花> () 역시 태자의 딸 <삼엽三葉>을 낳아

태자가 <위화>랑에게 명하여 복을 빌게 하니

<위화랑> <백란><삼엽>, <이차돈>을 위하여

염원(剡院)에서 7일 간 적해제(赤蟹祭)를 지냈다.

 

모진(벽화) - 삼엽(507- )

 

 

后令州郡 獻其新穀 于仙院 以助之賜 以金銀幣齋明 洗兒于神池

후가 주군(州郡)에 영을 내려 햇곡식을 선원에 바치도록 하여 이를 하사하여 도우고

금은과 예물로 적해제(赤蟹祭)를 빛나게 하고 신지(神池)에서 아이를 씻었다.

 

后爲之主齋宿仙院 有異鳥怪鳴

후가 적해제(赤蟹祭)를 주관하고 선원에서 잠이 드니

기이한 새의 괴상한 울음이 있었다.

 

后問之郎曰 此鳥乃阿羅太后阿兮園中之鳥也

其君八海 暴虐囚 阿兮 故此鳥來報也

후가 이를 위화랑에게 물으니 말하기를

이 새는 아라태후(阿羅太后) <아혜阿兮> 동산의 새입니다.

그 군() <팔해八海>가 사납고 흉포하여 <아혜阿兮>를 가두니

이 새가 와서 우는 것입니다.“

 

효국(아리) - 아혜(456-518)

?(팔의) - 팔해(472- )

 

后乃使元臣 往迎阿兮 果如其言

이에 <원신元臣>을 보내어 <아혜阿兮>를 만나게 하니 과연 그 말과 같았다.

 

后曰 有此仙夫 朕之福也

후가 말하기를

이와 같은 선부(仙夫)가 있으니 짐의 복이다.”

 

乃加級伐湌 賜白大馬 黃神衣

이에 벌찬의 직급을 더하고 백대마(白大馬)와 황신의(黃神衣)를 하사하였다.

 

阿兮 感恩 願獻其園之合歡樹 爲別洞樹王 后許之

<아혜阿兮>가 은혜에 감격하여 그 동산의 합환수(合歡樹)

별동선원의 수왕(樹王)을 위하여 바치기를 원하니 후가 허락하였다.

 

與郎親行封壇入 九曜宮 天行甘雨

<위화>랑과 함께 친히 행차하여 구요궁(九曜宮)에 들어 가

제단을 쌓고 감우제(甘雨祭)를 올렸다.

 

后與郎晝寢于三碧殿 丹靑殆未成

후와 <위화>랑이 낮에 삼벽전(三碧殿)에서 잠을 자는데

단청(丹靑)이 완성 되지 않아 위태로웠다.

 

后謂郎 此宮落成 此腹之子 可生 男乎女乎

후가 <위화>랑에게 이르기를

이 궁이 준공될 때 내 배속의 자식이 태어나는데 남아인가 여아인가?

 

郎曰 陛下所欲生也

<위화>랑이 말하기를

폐하께서 바라는 바대로 태어날 것입니다.”

 

后大悅曰 汝能種男女 如朕意 不愧爲朕夫也

후가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너는 능히 남녀를 가릴 수 있으나 짐의 뜻과 같으니

부끄러움이 없는 짐의 지아비가 될 것이다.

 

郎曰 腹君實非臣子

<위화>랑이 말하기를

배속의 군()은 사실 신의 자식이 아닙니다.”

 

后曰 非汝則誰乎

후가 말하기를

네가 아닌 즉 누구인가?”

 

郎曰 陛下自知之

위화랑이 말하기를

폐하께서는 스스로 알고 있습니다.”

 

后曰 太子乎

후가 말하기를

태자인가? ”

 

郎曰 非也

위화랑이 말하기를

아닙니다.”

 

后曰 此兒入時 唯 汝與太子 親合 汝何謬乎

후가 말하기를

이 아이가 생겼을 때 오직 너와 태자가 친히 합궁하였는데

어찌 네가 잘 못한 것인가?

 

郎笑曰 臣何敢謬哉 凡於四生 胎爲二 凡於胎生血爲下 陛下但知血 故不自解也

<위화>랑이 웃으며 말하기를

신이 어찌 감히 잘 못을 저지르겠습니까?

무릇 네 가지 태어남에 태생이 두 번째가 됩니다.

무릇 태생에는 혈()은 아래로 흐르니 폐하만이 혈()을 알 수 있으므로

스스로는 풀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생(四生)

 

불교의 출생 방식에 따른 생물 분류.

난생(卵生) · 태생(胎生) · 습생(濕生) · 화생(化生)의 네 가지.

난생은 알에서 태어나는 것, 태생은 모태로부터 태어나는 것,

습생은 습한 곳에서 태어나는 것, 화생은 변태(變態)를 통해 태어나는 것을 가리킨다.

 

 

后曰 血爲下 則何爲上乎

후가 말하기를

혈은 아래로 흐른 즉 어찌 위로 흐르겠는가?”

 

郎曰 以靈受胎爲上 以氣受胎爲次 以血受胎下也

此爲三胎 靈源乎 眞氣出乎 元血者所以爲質也

<위화>랑이 말하기를

()으로써 수태하면 위로 흐르고 기()로써 수태하면 그 다음으로 흐르고

()로써 수태하면 아래로 흐릅니다.

이것이 삼태(三胎)이니 영()은 근원()이며 진()은 기()가 나오는 곳이며

()은 혈()이라 질()이 되는 것입니다.

 

()朕聞 三胎缺一 不能成人 爾各別之者何也

후가 말하기를

짐이 듣건대 삼태 중에 하나가 부족하여도 사람을 이룰 수 없다고 하는데

너는 어찌 각각 별개라고 하는가?

 

郎曰 受靈 則心性肖之 受氣 則容皃肖之 受血 則肥膚肖之

有各受 而爲胎 故有容皃肖 而心性異 陛下雖受臣之血 而氣出乎

天帝臣何敢子之

<위화>랑이 말하기를

()을 받은 즉 심성(心性)이 닮고, ()를 받은 즉 용모가 닮고,

()을 받은 즉 몸과 피부가 닮습니다.

각각을 받아 태어나니 용모는 닮았는데 심성(心性)이 다른 것입니다.

비록 폐하께서 신()의 혈()을 받아 용모가 닮았다하여

어찌 감히 신()이 천제(天帝)가 되며 신()의 자식이라 하겠습니까?

 

后笑曰 朕愛汝 而吸汝氣 豈有各氣之理乎

후가 웃으며 말하기를

짐이 너를 사랑하여 너의 기()를 호흡하였는데 어찌 기()가 각각 있겠는가?”

 

郎曰 臣之氣 未嘗 爲胎氣者 陛下 無雌伏之心也

草木禽獸皆有雌伏之心 而雄氣始通眞池 陛下之於臣 雌雄顚倒

故臣之氣 只足爲珍味 而已

<위화>랑이 말하기를

신의 기()가 일찍이 태기(胎氣)가 된 적이 없으니

폐하께서는 자복지심(雌伏之心)이 없는 것입니다.

초목(草木)과 금수(禽獸)는 모두 자복지심(雌伏之心)이 있어

수컷의 기()가 처음으로 진()의 못으로 통하는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신()에게 암컷과 수컷을 거꾸로 뒤바뀌게 하였으므로

신의 기()는 단 하나의 진미(珍味)가 되기에 아직도 부족합니다.

 

 

자복지심(雌伏之心)

암컷 새가 수컷 새에게 복종한다는 뜻으로, 남에게 스스로 굴복함을 이르는 말

 

 

后謝曰 果如汝言朕之過也 朕爲汝妻 而汝不妻之 亦汝過也

후가 사과하며 말하기를

과연 너의 말을 들으니 짐의 잘 못이구나.

짐은 너의 처가 되고자 하는데 너는 처로 생각하지 않으니 너 역시 잘못이다.“

 

郎曰 非吾雌雄之過也 乃業之過也

汝嘗爲吾母 故今君臣 而夫婦往生 則汝與()爲夫婦

又往生 則爲子母 又往生 則爲姐弟 子母之時受恩甚多 今爲君臣以報之也

<위화>랑이 말하기를

우리 암컷과 수컷의 잘 못이 아니고 업과(業過)입니다.”

당신은 일찍이 나의 어머니인데 지금은 군신(君臣)으로 부부로 다시 태어난 즉

당신과 나는 부부가 되었고 또 다시 태어난 즉 아들과 어머니가 되었고

또 다시 태어난 즉 누이와 동생이 되었습니다.

아들과 어머니가 되었을 때 은혜를 많이 받아 지금 군신으로 보답하는 것입니다.

 

后曰 汝常爲男 而朕常爲女乎

후가 말하기를

너는 언제나 남자가 되고 짐은 언제나 여자가 되어야 하는가?”

 

郎曰 天仙之壽 萬八千歲 如人間之六十 故不滿此數 則陰陽不變 夫陰陽者氣也

論眞者 不言氣 雖常女何妨

<위화>랑이 말하기를

천선(天仙)이 일만 팔천 살을 사는 것이 인간이 육십 살을 사는 것과 같으므로

이 수에 불만인 즉 음양은 불변이고 무릇 음양이라는 것은 기()입니다.

()을 논하는 자는 기()를 말하지 않는데

비록 언제나 여자라도 무슨 방해가 있겠습니까?“

 

后曰 朕樂爲汝妻 故願常女也

후가 말하기를

짐은 너의 처가 되어 즐기고자 항상 여자이기를 바란다.”

 

郎曰 此言亦一業也 願解樹王

위화랑이 말하기를

이와 같은 말 역시 하나의 업()입니다. 수왕에게 기원하면 풀릴 것입니다.”

 

后曰 汝亦誓世 世爲吾夫可也

후가 말하기를

너 역시 세상 사람들에게 맹서하여

세상 사람들이 나의 지아비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郎乃 如其言 酌水致誠

이에 <위화>랑이 그 말과 같이 물 한 그릇 떠 놓고 정성을 드려 혼례를 올렸다.

 

后乃 督九曜之役 將誕聖子 于此仙院

이에 후는 구요궁(九曜宮)의 사역을 독촉하여

이 선원(仙院)에서 장차 성자(聖子)를 낳고자 하였다.

 

圖曰 二黑在西南直 三碧在其內曲 五黃在東南直 四綠在其內曲

綠碧相望 其曲爲門舗 以白沙靑沙 內䥣大池 架橋築坍上奉樹王

星主陰主陽主後列 一白紫赤六白之殿 八白間於紫赤 而爲樓下爲池 柄上爲坍室

 

구요궁 도면에 이르기를

이흑전(二黑殿)이 서남쪽에 직선으로 있고

삼벽전(三碧殿)이 그 안쪽에 곡선으로 있으며

오황전(五黃殿)이 동남쪽에 직선으로 있고

사록전(四綠殿)이 그 안쪽에 곡선으로 있다.

사록전(四綠殿)과 삼벽전(三碧殿)이 서로 마주보며 그 곡선으로 문을 펼치게 하였다.

안쪽에 큰 못을 만들어 백사와 청사를 깔고 담 위에 다리를 만들어 수왕을 받들었다.

북두칠성과 달과 해를 뒤에 배열하니

일백전(一白殿)구자전(九紫殿) 칠적전(七赤殿) 육백전(六白殿)이 있으며

구자전(九紫殿) 칠적전(七赤殿) 사이에 팔백전(八白殿)이 있고

누각 아래는 연못이 되고

일백전(一白殿) 육백전(六白殿) 팔백전(八白殿) 위는 담집이 되었다.

 

구요궁은 해와 달과 북두칠성을 상징하는 궁궐이며

9개의 전각으로 이루어진 궁궐이다.

 

后天乾坤配合  生一白水 二黑土 三碧木 四綠木 五黃土 六白金 七赤金 八白土 九紫火

- 최치원의 천부경 해설 

 

후천의 건(하늘)과 곤(땅)이 서로 짝이 되어 합하여,

一(일)의 흰 수를 만들고, 二(이)의 검은 토를 만들며,

三(삼)의 푸른 목을 만들고, 四(사)의 초록 목을 만들고,

五(오)의 누런 토를 만들고, 六(육)의 흰 금을 만들고,

七(칠)의 붉은 금을 만들고, 八(팔)의 흰 토를 만들고,

九(구)의 자주 빛의 화를 만드는 것으로 변화한다.

 

 

 

성주(星主) 음주(陰主) 양주(陽主)

 

별을 주관하는 북두칠성, ()을 주관하는 달, ()을 주관하는 해를 말하며

북두칠성과 해와 달은 하늘을 상징하는 천부(天符)이다.

()은 하늘()의 광명을, ()은 땅()의 광명을,

()은 칸, king, one으로 사람()의 광명을 말한다.

 

우리나라는 天地人 三才 桓國, 檀國, 三韓을 이어 오늘날 대한민국에 이르렀다.

 

 

<구요궁의 전각 위치도>

 

后與郎 齋宿宇()各殿 以蟻穴互相往來碧池上 多畜 紫鯉 白鶴

玉垣圍 以綠竹靑松築 以白石 望之 若蓬萊仙島 極其蕭酒淸雅

후와 <위화>랑이 각 전각에서 자며 재()를 올리니

개미가 구멍을 뚫어 삼벽전 연못 위로 서로 왕래하였다.

연못에는 자주색 잉어와 백학을 많이 기르고

옥으로 장식한 담 주위에 록색 대나무와 푸른 소나무를 심고 흰 돌을 쌓아 바라보니

마치 봉래산의 신선이 사는 섬의 지극히 맑고 시원하며 청아함과 같았다.

 

及其落成 后與郎 浴于九紫 從雲梯人八白 合歡致齋 從十二仙女 下降坍上

金彩玉魚燦爛光明 后自持鼓桴

마침내 구요궁이 준공되어 후와 <위화>랑이 구자전(九紫殿)에서 목욕을 한 후

운제인(雲梯人) 팔백 명을 데리고 합환(合歡)하여 재()를 올리고

열 두 선녀를 데리고 담 위로 내려왔다.

금으로 채색한 옥어(玉魚)가 찬란히 빛나고 후는 스스로 지탱하며 마룻대의 북을 쳤다.

 

옥어(玉魚)는 제()와 황후가 차는 허리띠이고

금어(金魚)1품부터 4품까지 찬 허리띠이다

 

郎吟樹王經曰 靑龍 白虎 左幢右盖 赤()雀 玄武 前扇後炬

大樹天王十二眷屬降臨 牛頭加耶山上 理陰調陽順

<위화>랑이 수왕경(樹王經)을 나직이 읊조리며 말하기를

청룡기와 백호기가 좌우에 서고 주작기와 현무기가 앞뒤에서 나부끼니

대수천황(大樹天王) 열 두 권속이 우두(牛頭) 가야산에 내려와 음양 조화를 설하네

 

時和物人間畜生草木昆虫 一㘦衆生咸 感被其化

때에 만물이 조화를 이루니 일체 중생 모두는 그 조화에 감응 되었다.

 

郎起舞宛轉 十二仙女散花唱歌曰

<위화>랑이 일어나 허리를 굽혀 천천히 돌며 춤을 추니

열 두 선녀가 꽃을 날리며 노래하기를

 

大慈天皇 妙香大王 一㘦衆生賴 以生殖 點之壽命 祿之衣食

極樂天皇 歡喜大王 一㘦衆生賴 以婚親 樂其室家 偕老千春

大悲天皇 藥師大王 一㘦衆生賴 以保命 鍊其心身 治其疾病

日皐天皇 陽主大王 一㘦衆生賴 以修德 守眞抱元 光明八域

月皐天皇 陰主大王 一㘦衆生賴 以色鮮 才皃雙絶 羽化登仙

牛頭天皇 神武大王 一㘦衆生賴 以爲力 征伐不義 以安邦國

宝果天皇 豊歲大王 一㘦衆生賴 以致富 食以膏梁 衣以錦繡

常世天皇 長壽大王 一㘦衆生賴 以遐齡 聰明固齒 六體康寧

波穌天皇 白馬大王 一㘦衆生賴 以嗣后 百子千孫 如龍如虎

龍師天皇 五雷大王 一㘦衆生賴 以息夾 施雲行雨 水陸生財

火師天皇 太山大王 一㘦衆生賴 以除邪 天羅地網 捕賊消魔

風師天皇 四海龍王 一㘦衆生賴 以穌生 甘露解渴 回復元情

 

대자천황 묘향대왕님 일체중생이 의뢰하오니 태어나 자라니

장수와 복록과 의복과 먹을 것을 주소서

 

극락천황 환희대왕님 일체중생이 의뢰하오니 결혼과 친목으로

그 집안을 즐겁게 하고 모든 늙은이가 천수를 누리게 하소서

 

대비천황 약사대왕님 일체중생이 의뢰하오니 생명을 보전하여

그 마음과 몸을 단련하여 질병을 낫게 하여 주소서

 

일고천황 양주대왕님 일체중생이 의뢰하오니 덕을 닦아

(眞)과 원(元)을 간직하여 온 누리를 밝게 하소서

 

월고천황 음주대왕님 일체중생이 의뢰하오니 선명한 빛으로

재주와 용모를 뛰어나게 하여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오르도록 하소서

 

우두천황 신무대왕님 일체중생이 의뢰하오니 힘을 다하여

불의를 정벌하여 나라를 편안하게 하소서

 

보과천황 풍세대왕님 일체중생이 의뢰하오니 부자가 되어

맛있는 것을 먹게 하고 비단옷을 입게 하소서

 

상세천황 장수대왕님 일체중생이 의뢰하오니 오래 살아

총명하고 이가 단단하여 몸을 강녕케 하소서

 

파소천황 백마대왕님 일체중생이 의뢰하오니 후()를 이어

자손을 많이 낳아 용과 호랑이와 같이 되게 하소서

 

용사천황 오뢰대왕님 일체중생이 의뢰하오니 숨을 쉬게 하여

구름과 비를 내려 바다와 육지에 재물을 낳게 하소서

 

화사천황 태산대왕님 일체중생이 의뢰하오니 사악함을 제거하여

하늘과 땅에 그물을 쳐서 도적을 잡고 마귀를 소탕 하소서

 

풍사천황 사해용왕님 일체중생이 의뢰하오니 소생하여

감로(甘露)를 내려 갈증을 해소하고 원(元)과 정(情)을 회복토록 하소서

 

后與郎 對舞 降神 獻身酌水 奠蘭 一吹奏樂 環舞踏歌通賓鼓吹

후와 <위화>랑이 마주보고 춤을 추며 신()을 맞이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물을 떠놓고 합환하여 난초를 제물로 올리고

풍악을 연주하며 강강수월래를 노래하며 북을 치고 나발을 불었다.

 

后與郎 着白神衣 下橋 仙徒 手抬腕輿 山呼動地

후와 위화랑은 다리 아래에서 백신의(白神衣)를 입고 있었으며

선도들은 팔로 수레를 끼고 손으로 치며 만세를 부르니 천지에 진동하였다.

 

后快之抱郎入碧 仙徒 齊唱歡詞曰

拜我聖天 歡喜碧宮 九天雨露 洗我震宮

太平天子 在我天宮 萬年花郞 在我仙宮 聖天萬年 花郞萬年

후가 기뻐하며 <위화>랑을 안고 삼벽전(三碧殿)으로 들어가니

선도들은 환호하며 제창하기를

우리 성인(聖人) 천후(天后)에게 절을 올리니 삼벽궁을 환희에 차도록 하소서

하늘에서 비와 이슬을 내려 우리 진궁(震宮)을 씻어

태평천자가 우리 천궁(天宮)에 머물고 만년화랑이 우리 선궁(仙宮)에 머물게 하소서

성인 천후 만세, 화랑 만세

 

구요궁(九曜宮)과 주역

 

一白殿 : ()은 한겨울 하얗게 대지에 내린 서리와 흰 눈을 상징하니 백색이다.

二黑殿 : ()은 하추(夏秋) 교대기 8, 9월의 염열에 불기운에 타버린 검은 흙을 상징한다.

三碧殿 : ()은 봄철 옥돌처럼 맑고 푸른 새싹의 기상이 대지를 덮는 것을 상징한다.

四綠殿 : ()은 맹춘의 바람을 맞으며 점차 짙은 녹색으로 변한 푸르른 대지를 상징한다.

五黃殿 : 中宮은 모든 것이 조화되어 그 속에 간직하고 있는 황토 흙의 색상이다.

六白殿 : ()은 늦가을 백색 서리를 상징하는 백색이다.

七赤殿 : ()는 가을철 붉게 익은 나무의 열매의 색깔을 상징한다.

八白殿 : ()은 눈 덥힌 겨울 산을 의미하니 흰색이다.

九紫殿 : ()는 여름의 붉은 기운과 지하의 푸른 기운이 합쳐져 생기 자색이다.

 

 

后命徒頭 有司 大享 仙徒 賞賜甚隆

후가 도두와 유사에게 명하여 선도들에게 크게 잔치를 열고 융성하게 상을 내렸다.

 

時太子妃 淨凰慕郎 盡情郎 以義却之

때에 태자비 <정황淨凰><위화>랑을 사모하여 <위화>랑에게 정을 다하니

이를 의()로써 물리쳤다.

 

비처(후황) - 정황(486- )

 

 

淨凰曰 汝與天母 施雲不洽我情 我當訴汝誅之

<정황>이 말하기를

너와 천모(天母)는 나의 정에 미치지 못하니

나는 당연히 너를 참소하여 주살할 것이다.”

 

郎鄙其言不許出入仙院

<위화>랑이 그 말을 촌스럽게 여겨 선원(仙院)에 출입을 못하게 하였다.

 

淨凰乃讒郎烝后 而娠 善知憎太子讒曰 太子烝之 而娠也

이에 <정황><위화>랑이 후를 증()하여 임신하였음을 참소하고

<선지善知>는 태자를 미워하여 참소하여 말하기를

태자가 증()하여 임신한 것이다.”

 

아지(후황) - 선지(484- )

 

 

帝乃 與善知 淨凰居之 不見天后

이에 제와 더불어 <선지><정황>을 거주토록하고 천후를 만나지 못하게 하였다.

 

后乃與郎居于仙院 仙徒乃上仙號 于后及郎 太平萬歲極樂仙母 太平萬歲極樂仙父

이에 후와 위화랑이 선원에 거주하니 선도들은 후와 위화랑을 상선(上仙)이라 부르며

태평만세 극락을 빌었다.

 

后乃抱郎 而詔曰 朕與仙父在院 則夫婦在朝 則君臣男女之道 上陽 而下陰

水火之濟 下陽 而上陰 汝等 仙臣皆朕股肱也 許朕事我仙父 敬執婦道宜

이에 후가 <위화>랑을 안으며 조칙을 내리기를

짐과 선부(仙父)가 선원에 있는 즉 부부가 조당에 있는 것이니

군신과 남녀의 도는 양()은 위이고 음()은 아래이나

수화(水火)는 기제(旣濟)이니 양()이 아래이고 음()이 위이다.

너희 선도와 신하들은 모두 짐의 팔다리이다.

짐이 나의 선부(仙父)를 받들도록 하였으니 마땅히 부도(婦道)로 존경하여야 한다.“

 

주역의 63번째 괘가 수화기제(水火旣濟)이고

마지막 64번째 괘가 화수미제(火水未濟)이다.

 

 

令大書 修其節目 院中秘密 勿使外漏 仙臣等附伏聽命

대서(大書)에 영을 내려 선원에서 비밀리에 그 절목(節目)을 수정토록하고

외부에 누설되지 않도록 하니 선도와 신하들이 엎드려 명을 들었다.

 

黃鼠之元旦 帝在海宮 太子奉后入玉座 受朝

508년 정월 초하루

()가 해궁(海宮)에 있어 태자가 들어와 후를 모시고

옥좌에 앉아 조하(朝賀)를 받았다.

 

 

碧花妃侍立于太子之 側郎侍立于天后之 側朝畢 后酌酒親賜上仙山兼

<벽화> ()가 태자 옆에 시립하고 <위화>랑은 천후 옆에 시립한 즉

조하를 마치자 후가 친히 상선(上仙) <산겸山兼>에게 술을 따랐다.

 

兼曰 臣夢見大盧神君 騎黃大虎入陛下之懷

今見天腹隆高産日漸迫 老臣之喜無過 於此

<산겸>이 말하기를

신이 꿈에 대노신군(大盧神君)이 누런 큰 호랑이를 타고

폐하의 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는데

지금 천후의 배가 부른 것을 보니 산일(産日)이 가깝습니다.

노신(老臣)의 기쁨이 이와 같으니 잘 못이 없습니다.“

 

일광(알영) - 대노(40?-100?)

 

后大悅曰 叔父忠心 感天 賜我佳子 朕甚嘉之 幸壽千春

후가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숙부의 충성스런 마음에 하늘이 감응하여

나에게 고운 자식을 내리니 짐은 심히 이를 기뻐합니다.

오래 살아 행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순실(청아) - 등흔(모량) - 연제(463-525)

산근(청아) - 산겸(438-508)

 

兼曰 臣年當獻聖子

<산겸>이 말하기를

신은 금년에 마땅히 성자(聖子)를 바치고자 합니다.”

 

乃詣后前手捫后腹 而禱之

이에 후의 앞에 이르러 후의 배를 어루만지며 빌었다.

 

后脹腹而喜曰 叔父此情 實出慈愛也 朕當事之如父

후가 배를 안고 기뻐하며 말하기를

숙부의 이와 같은 정은 실은 자애(慈愛)에서 나온 것이니

짐은 마땅히 아버지와 같이 섬길 것입니다.”

 

乃命太子及妃 拜跪獻酒 后又與郎拜跪獻酒 而附耳言曰 郎是兒父也

이에 태자와 태자비에게 명하여 꿇어앉아 술을 올리고 절을 하게하고

또 후와 <위화>랑이 꿇어앉아 술을 올리며 귀에 대고 말하기를

“ <위화>랑이 이 아이의 아버지입니다.”

 

 

兼佯若耳聾 而良久乃笑曰 仙門之福

<산겸>이 귀가 먹어 들리지 않은 체 하며 한참 있다가 웃으며 말하기를

선문(仙門)의 복입니다.”

 

兼乃賜酒於郎 而或之曰 戰戰兢兢無 以寵高謹守 仙門無 以祿驕

이에 <산겸><위화>랑에게 술을 내리고 혹 말하기를

높은 총애를 삼가 하여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다.

선문에는 복록과 교만이 없다.“

 

郎再拜謝之曰 仙祖之詔 敬佩勿忘

<위화>랑이 다시 절을 올리며 사례하며 말하기를

선조(仙祖)의 말씀을 마음에 새겨 잊지 않겠습니다.”

 

後五日 子半 后與郎 抱臥碧殿 胎動熟 母奾子等 惶㤈設席

5일 후 자시가 조금 지나 후와 <위화>랑이 삼벽전에서 안고 누워있었는데

태아의 움직임이 무르익으니 선모와 선자 등이 좌불안석이었다.

 

后乃抱郎腰 而誕聖子 甚雄大 有龍虎狀

이에 후가 <위화>랑의 허리를 안고 성자(聖子)가 태어나니

심히 웅대하여 용호(龍虎)의 상이 있었다.

 

郎抱后慰之曰 汝以我 故辛苦不忍見也

<위화>랑이 후를 안으며 위로하며 말하기를

당신이 바로 나이니 차마 고통을 보지 못 하겠습니다.”

 

이때 위화랑 22세 연제 46세이다.

 

 

后乃忍痛 而媚曰 爲夫生子 妾之樂也 惟願郎君洗兒授乳

후가 고통을 참으며 아양을 떨며 말하기를

지아비의 자식을 낳는 것이 첩의 즐거움이니

낭군이 아이를 씻고 젖을 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郎乃拜胎神剪胎 洗兒 口含聖乳 淨以香湯授之 聖子后見

이에 <위화>랑이 태신(胎神)에게 절하고 태를 자르고 아이를 씻어

천후의 젖을 입에 물려 맑고 향기 나는 젖을 주니 성자(聖子)가 후를 바라보았다.

 

聖子龍狀 大喜曰 肖父 而美肖母 而雄 朕所初有之子也

성자(聖子)가 용의 상이라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아비를 닮고 아름다움은 어미를 닮아 웅대하니 짐이 이와 같은 아이는 처음 낳았다.”

 

一手抱郎 一手抱兒乳之 喜不自勝歡天欣地

한 손으로 <위화>랑을 안고 한 손으로는 아이를 안고 젖을 먹이니

끓어오르는 기쁨과 환희는 주체할 수 없고 하늘도 기뻐하고 땅도 기뻐하였다.

 

太子與碧花妃聞 喜馳到

태자와 벽화 비()가 소식을 듣고 달려와 기뻐하였다.

 

太子抱后洗兒曰 此子酷肖於我 汝何賜魏花乎

태자가 후를 안고 아이를 씻으며 말하기를

이 아이는 나를 꼭 빼어 닮았습니다.

어찌 <위화>에게 하사하였습니까?“

 

后笑曰 知子莫如母 汝有玉宗 勿貪此子

후가 웃으며 말하기를

자식을 아는 것은 어미만 못하다.

너는 <옥종玉宗>이 있는데 이 아이를 탐하지 말라.“

 

모진(연제) - 옥종(505-528)

 

옥종은 모진이 어머니 연제를 증()하여 낳은 자식이다.

 

妃以錦褓薦兒曰 聖子洪大 天下英雄

벽화 비가 비단보에 싸인 아이를 보며 말하기를

성자(聖子)는 매우 웅대하니 천하의 영웅이다.”

 

后執妃手 而喜曰 朕爲此子爲汝姊妹 汝其許之

후가 <벽화> 비의 손을 잡고 기뻐하며 말하기를

짐이 이 아이를 위하여 너의 자매로 할 것이니 너는 이를 허락하여야 할 것이다.”

 

妃曰 臣弟侍寵專房托子 天腹萬 死有榮 尊卑不同 安敢子之

况臣爲妃事我聖母 敢言姊妹

<벽화> ()가 말하기를

신의 동생이 시총(侍寵) 전방탁자(專房托子)가 되어

천후의 배를 부르게 하였으니 높고 낮음이 같지 아니한데

감히 자식을 낳았으니 죽음도 도리어 빛나지 않겠습니까?

하물며 신은 비()가 되어 성모(聖母)를 모시는데

어찌 감히 자매라는 말을 거역하겠습니까?“

 

帝在海宮聞后誕子 召芬宗殿君 命之曰

人言 后與魏花通而生子 或言慕眞之子 汝往福之 而辨其兒 而來

()가 해궁에서 후가 자식을 낳았다는 것을 듣고

<분종芬宗>전군(殿君)을 불러 명하기를

사람들의 말이 후와 <위화>랑이 통정하여 자식을 낳았다하고

혹은 <모진慕眞>의 자식이라 하니 네가 가서 복을 빌고 그 아이를 살펴보고 오라.“

 

비처(후황) - 분종(488- )

 

芬宗乃至碧殿 謁后視兒 奉以神衣禱之曰

妙香大王 歡喜大王 白馬大王 三位産神福我 神子無病長大 位高 祿崇 才德

俱備 龍虎風采 天仙美皃 能通造化 妙入眞元

子孫滿堂 忠孝列門 財貨京坻 奴婢滿國 百歲千春

歡喜人世長 在母后寵愛中  

이에 <분종>이 삼벽전에 이르러 후를 알현하고 아이를 살펴보고

신의(神衣)를 입고 복을 빌며 말하기를

묘향대왕, 환희대왕, 백마대왕 세 대왕이 산신(産神)이 되어 복을 내리니

()의 자식이 아무 탈 없이 잘 자라

높은 지위와 높은 복록과 재덕(才德)을 갖도록 하소서.

용호의 풍채와 천선의 미모를 지니고 조화에 능히 통달하여

진원(眞元)의 경지에 들어가도록 하소서.

자손이 가득하도록 하고 충효열문을 세우도록 하고

재화가 산더미처럼 쌓이게 하고 노비가 가득하도록 하고 오래 살도록 하소서.

세상 사람의 오랜 기쁨이 모후의 총애에 달려있게 하소서"

 

后問曰 此兒肖於誰乎

후가 물으며 말하기를

이 아이는 누구를 닮았는가?”

 

芬宗曰 諺言夫愛妻 則子類妻 臣見聖子皃多陛下 可知帝愛母后也

<분종>이 말하기를

속된 말에 지아비가 처를 사랑한 즉 자식은 처의 무리입니다.

신이 보건데 성자(聖子)의 모습이 폐하를 많이 닮았으니

제가 모후를 사랑함을 알겠습니다.“

 

后曰 帝送汝福兒 而不來洗兒 豈謂愛朕乎

후가 말하기를

()가 너를 보내어 아이의 복을 빌게하고 와서 아이를 씻지 아니하는데

어찌 짐을 사랑한다 말하는가?“

 

芬宗曰 上有微恙 當此雪寒 不可動 駕待臣之 歸而 必還

<분종>이 말하기를

()께서는 조그만 병이 있어 이와 같은 엄동설한에 움직일 수 없어

()에게 가마를 대기시켜 돌아가고자 하였으니 반드시 돌아올 것입니다.“

 

后有怒色曰 不愛朕躬 不洗朕子 惟與汝等 兄弟 淫 于海宮可也

후가 노여움을 띠며 말하기를

짐의 몸을 사랑하지 않으니 짐의 자식을 씻지 않는 것이다.

너희들 형제는 오로지 해궁에서 간음을 일삼은 것이다.“

 

芬宗曰 臣當奉帝 而還

<분종>이 말하기를

()이 마땅히 제()를 모시고 돌아올 것입니다.”

 

乃退 而歸

이에 물러나 돌아갔다.

 

后謂魏花曰 賊子必以宿怨 報朕讒于其祖 汝可追斬滅口

후가 <위화>랑에게 일러 말하기를

도적의 자식은 반드시 묵은 원한이 있어 짐을 그 조상에게 참소하여 보고할 것이니

당신은 추방되어 목이 잘리고 가족을 멸할 것입니다.“

 

<후황>이 죽자 <연제>가 그의 아들 <모진>을 태자로 세우고

<분종>을 태자에서 폐하였다.

지증왕 <지도로><분종>을 태자로 다시 세우고자 하였으나

<연제>의 세에 눌려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郎曰 芬宗仙君也 淡泊無害物之心 汝勿猜之不利於子也

<위화>랑이 말하기를

“ <분종>은 선군(仙君)으로 담백하여 만물을 해칠 마음이 없으니

자식에게도 이롭지 않으니 이를 시기하지 마십시오.‘

 

后怒曰 朕爲汝君 汝何恃寵 而不聞詔乎

후가 노하여 말하기를

짐이 당신을 군()으로 삼는데 당신은 어찌 시총(恃寵)으로 내 말을 듣지 않습니까?”

 

乃以寶釰下 于仙臣 欲追之 郎奪其劒 而叱其臣

이에 선도와 신하들에게 보검을 내려 <분종>을 추격코자하니

<위화>랑이 그 칼을 빼앗으며 그 신하를 질책하였다.

 

后乃自悶曰 朕爲汝妻 如龍落地將 爲螻蟻 食乎

이에 후는 스스로 번민하며 말하기를

짐은 당신의 처가 되었으니 하늘에서 떨어진 용으로 지상의 장수와 같은데

보잘 것 없는 벌레를 잡아먹겠습니까?“

 

郎抱后慰之曰 汝爲吾妻 如龍在天 天地神明 莫不護之 何乃自懼如此

<위화>랑이 후를 안고 위로하며 말하기를

당신은 나의 처가 되어 하늘에 있는 용과 같은데 천지신명이 보호가 없더라도

어찌 이와 같이 스스로 두려워하십니까?“

 

后曰 芬宗讒我及汝 安能保此子

후가 말하기를

“ <분종>은 나와 당신을 참소할 것이니 이 자식을 어찌 보호할 것입니까?”

 

郎笑曰 此子雖幼天出聖人 吾年雖少 爲仙夫 大小 因緣 莫不知之 汝何不信 而自怯

<위화>랑이 웃으며 말하기를

이 아이는 비록 어리지만 하늘이 내린 성인(聖人)입니다.

내 나이가 비록 어리나 선부(仙夫)가 되어 크고 작은 인연을 모르는 바가 없는데

당신은 어찌 믿지 아니하고 스스로 겁을 먹고 있습니까?“

 

后曰 汝知 芬宗與我 有何業緣

후가 말하기를

당신은 <분종>과 내가 무슨 업과 인연이 있는 것을 알 것입니다.”

 

郎曰 芬宗 未嘗怨汝 而汝自猜之 汝不悔改業生於後

<위화>랑이 말하기를

분종은 이미 당신을 원망하지 않는데 당신은 스스로 시기하고 있으니

당신은 뒤에 일어날 업()을 뉘우치지 않는 것입니다.“

 

后曰 何以知乎

芬宗來自 上淸 天上之位 非吾輩可及 豈以小事 怨人乎

후가 말하기를

어떻게 아십니까?

분종은 스스로 와서 상에게 천상의 지위를 청하고 우리들 무리에 미치지 못하는데

어찌 작은 일로 사람의 원망한다 합니까?

 

后猶未釋時 芬宗歸報于帝曰 臣聞其聲 而已知爲帝子及見其狀益無疑也

후가 아직도 의심을 풀지 못하고 있을 때 <분종>이 돌아가 제에게 보고하기를

신이 그 목소리를 들어보고 제의 자식임을 알았고

그 모습을 보고 더욱 의심하지 못하였습니다.“

 

帝曰 朕不見后 久矣 豈有不見 而娠乎

()가 말하기를

짐이 후를 보지 못한 지 오래 되었는데 어찌 보지 못하는데 임신이 되었겠는가?”

 

芬宗曰 聖人之生 不計月日 古有七十年 而生 况有夢娠氣娠 豈曰不見不娠

臣見帝子英雄天縱聖人也

<분종>이 말하기를

성인의 태어남에는 월일(月日)을 세지 않습니다.

옛날에는 칠십년에 태어나기도 하였습니다.

하물며 꿈에 임신하기도 하고 기()로써 임신하기도 하는데

어찌 보지 않는다고 임신이 되지 않겠습니까?“

 

帝大喜 卽命還都 馳入碧殿

제가 크게 기뻐한 즉 경도로 돌아가기를 명하여 치달아 삼벽전으로 들어갔다.

 

抱后洗兒曰 此眞吾子也 乃名眞宗

후를 안고 아이를 씻으며 말하기를

이 아이는 진실로 내 자식이라 하며 <진종眞宗>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위화(연제) - 진종(508- )

 

后乃感 芬宗之恩 賜以錦衣白馬曰 汝以眞仙 受嫌于朕 朕今悔改 汝其(?)恕我

이에 후는 <분종>의 은혜에 감격하여 은의(錦衣)와 백마(白馬)를 내리며 말하기를

너는 진선(眞仙)으로 짐에게 미움을 받았으나

짐은 이제 뉘우치니 너는 나를 원망하지 밀라.“

 

芬宗曰 當今之仙魏花 而已臣以駑鈍得罪 母后常 蒙鴻庇 無以仰報 今承此詔 不勝惶汗

<분종>이 말하기를

지금의 진선(眞仙)은 마땅히 <위화>이고

이미 신()은 어리석고 둔하여 죄를 얻었습니다.

모후께서 언제나 크고 넓은 은혜를 베풀어 주시니 보답할 길이 없었는데

지금 이와 같은 말씀을 내리니 두렵고 황송하여 식은땀이 흘러내립니다.“

 

后曰 魏仙言 汝眞仙 十倍于魏 汝何自謙 而欺朕 無可爲耶

후가 말하기를

“ <위화>랑 진선의 말이 네가 진선으로 <위화>랑보다 열배라고 하는데

너는 어찌 스스로 겸손하여 짐을 기만하나 사악함은 없구나.‘

 

芬宗曰 臣於陛下義 則君臣情 則母子 敢有所欺乎

臣母嘗言臣是 布兒魏是順實世世 弟兄以興斯道

郎以是 不忘舊誼 常保臣躬

臣素好淸閑 不就名利 而已神仙之事皆問於郎 豈有十倍之理

분종이 말하기를

신은 폐하에게 의()이고 군신의 정()인 즉

어머니와 자식으로 감히 기만함이 있겠습니까?

신의 어머니가 일찍이 신에게 말하기를 <포아><위화><순실>의 후손이니

형제로서 이 도()를 흥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위화>랑은 이로써 옛 정을 잊지 못하여 언제나 신의 몸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신은 소박하여 조용한 가운데 여유를 찾고 명리(名利)에 나가지 않고자 합니다.

이미 신선의 일 모두가 <위화>랑에게 있는데 어찌 열배의 도()가 있겠습니까?

 

后曰 汝妻普仁 醜 而無行 汝善愛之 朕以爲癡 今聞汝言 汝實大眞人也

朕實曚昧 久違賢婿從 今 而後 朝暮入侍以聞眞言

후가 말하기를

너의 처 <보인普仁>은 추악하고 행실이 없으나 네가 좋다고 사랑하니

짐이 의심하였으나 지금 너의 말을 들으니 너는 진실로 큰 진인(眞人)이다.

짐이 실로 몽매하여 오래 동안 현명한 사위를 따르지 아니 하였으나

오늘 이후로 아침저녁으로 입시(入侍)하여 진언을 들려다오.“

 

<분종>의 처 <보인普仁><연제蓮帝>의 딸이다.

 

芬宗曰 臣之二姐 在帝左右 多違母后 亦一業也 願后赦之

<분종>이 말하기를

()의 두 누이가 제()의 좌우에 있어

모후에게 많은 배신을 하였으니 역시 하나의 업()입니다.

후께서 사면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두 누이는 <분종>의 누나인 <정황>과 <선지>이다.

 

后曰 朕之過也 宜各安心

후가 말하기를

짐의 잘못이다. 마땅히 각자 안심 하도록 하라.”

 

乃大起芬宗仙院 命普仁 敬執婦道

이에 분종선원(芬宗仙院)을 크게 일으키고

<보인>에게 명하여 공손히 부도(婦道)를 지키라고 하였다.

 

先是 普仁多引美少?情生子 皆非芬宗之子 而芬宗愛如己子

이에 앞서 <보인>은 미소년을 많이 끌어당겨 통정하여 자식을 낳았다.

모두가 <분종>의 자식이 아니었으나 <분종>은 자기 자식처럼 사랑하였다.

 

普仁乃感其德遂淨 而生女芬兒 皃類芬宗侯 命爲天林妻

이에 <보인>이 감격하여 마침내 그 덕을 깨끗이 하여 딸 <분아芬兒>를 낳으니

모습이 분종의 아름다움을 닮아  장차 <천림天林>의 처가 되도록 명하였다.

 

분종(보인) - 분아(508- )

위화(발장) - 천림(505- )

 

普仁乃取天林爲子

이에 <보인><천림>을 아들로 취하였다.

 

時髮長姬又生次子蕙林乳之 天林爭乳

때에 <발장>이 또 둘째 아들 <혜림蕙林>을 낳아 젖을 먹이니 <천림>과 젖을 다투었다.

 

普仁乃以其乳 誘之 而去曰 母后之命亦天定也

이에 <보인>이 그녀의 젖으로 꾀어서 <천림><발장> 곁을 떠나게 하니

모후의 명령 역시 하늘이 정한 것이었다.

 

眞宗百日 帝與后 謁神宮

<진종眞宗>의 백일에 제와 후가 신궁(神宮)을 알현하였다.

 

翌月 后與眞宗入剡院 與郎 沐浴 洗兒 以謁剡臣廟 迎碧我 獻壽呼母

다음 달 후와 <진종>이 염원에 들어와 <위화>랑과 함께 목욕하고 아이를 씻고

<염신>의 사당을 알현하고 <벽아>를 맞이하여 장수를 빌며 술을 올리고

어머니라고 불렀다.

 

이때 위화 22세, 위화의 어머니 벽아 40세, 천후 연제 46세, 태자 모진 30세이다.

 

碧我乃以黃神衣 奉后紫錦衣 薦兒 而抱之曰

聖子天瞼肖吾子 可知聖躬多惠 吾子賤臣 死無以報也

이에 <벽아>가 황신의(黃神衣)를 입고 후에게 자금의(紫錦衣)를 올리고

아이를 껴안으며 말하기를

성자(聖子)의 눈꺼풀이 내 아이를 닮았으니 천후의 많은 은혜를 알겠습니다.

내 아들은 천한 신하이니 죽음으로도 보답하지 못할 것입니다.“

 

后曰 母生仙夫 使朕得此子 此外何保母 與此兒一家人也 今日 須樂之

후가 말하기를

어머니가 선부(仙夫)를 낳아 짐이 이 아이를 얻었으니

이 외에 무엇으로 어머니에게 보답하겠습니까?

이 아이와 함께 한 가족입니다.

오늘은 반드시 즐거운 날이 될 것입니다.“

 

碧我乃奉歌獻壽 后亦與郎歌之

이에 <벽아>가 장수를 빌며 술을 올리고 노래를 부르니

후 역시 <위화>랑과 함께 노래를 불렀다.

 

水陸珍味俱至 后命賜衣 于郎家兄弟 許謁眞宗

바다와 육지의 온갖 진미가 갖추어져 있고

후가 <위화>랑 집안의 형제들에게 옷을 내리며 <진종>을 알현하는 것을 허락하였다.

 

皆俯伏稱賀獻壽 后醉甚 不能如厠 郎抱 而如之 仍入 寢殿

모두들 엎드려 장수를 빌며 술을 올리며 하례를 드리니 후가 심히 취하여

측간을 찾을 수 없을 정도여서 <위화>랑이 안고 침전으로 들어갔다.

 

碧我遂乳眞宗侍 于側室 院中設齋福之曰

太平萬歲 仙母仙父 乾泰坤寧 聖子殿君

千春長靑 十二樹王 護法在此 兄弟姊妹

마침내 <벽아>가 옆방으로 <진종>을 데려가 젖을 먹이고

염원에 재(齋)를 설치하고 복을 빌며 말하기를

선모(仙母) 선부(仙父)는 태평 만세를 누리시고

성자(聖子) 전군(殿君)은 하늘의 편안함과 땅의 안녕을 누리시고

열 두 수왕(樹王)은 오래도록 푸름을 누리시고

형제자매는 법을 수호함이 여기에 있음을 알게 하소서.“

 

皆着賜衣 環舞踏歌 以娛神祈

모두들 후가 내린 옷을 입고 강강수월래를 부르고 즐기며 신에게 기도하였다.

 

翌日 山兼公卒

다음 날 <산겸山兼>공이 죽었다.

 

 

后謂郎曰 叔父爲吾子 而化 朕與汝可福其往

후가 <위화>랑에게 일러 말하기를

숙부는 나의 아들을 위하여 하늘로 올라갔으니

짐과 너는 극락왕생을 기도함이 옳다.“

 

郎曰 諾郎與后乃主 其祥帝慕后 而召之 后以祥事 未畢不歸

<위화>랑이 말하기를

위화랑과 더불어 후를 주군(主君)으로 승낙하는 것은

그 상서로움은 제()가 후를 사모하여 후를 부르는 것이나

후께서 상서로운 일에 아직껏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帝召太子責曰 汝母沈 惑魏花不勤內事 汝可往 而譴之

제가 태자를 불러 꾸짖으며 말하기를

너의 어머니가 의지가 약하고 혹은 <위화>가 내사(內事)를 게을리 하니

네가 가서 이를 나무라야 한다.“

 

太子曰 臣母春秋鼎盛 不能坤順 于內 得罪父皇 臣當其罪 願受楚撻

태자가 말하기를

신의 어머니 춘추가 한창이라 내사(內事)

땅의 유순함으로 하늘의 강건함을 받들지 못하여 부황께 죄를 지었으니

신은 마땅히 그 죄로 회초리를 맡기를 원합니다.“

 

帝怒曰 汝爲母 而不爲父 天下者厚凰之天下也

孝友天成 汝爲太子 不亦愧乎

제가 노하여 말하기를

너는 어머니를 위하고 아버지는 위하지 않는구나.

천하는 <후황厚凰>이 물려 준 천하이다.

효도와 우애는 하늘이 이루는 것으로 너를 태자로 삼았는데 부끄럽지 아니한가?

 

乃命大書郞 守知阿湌 草詔 廢 后及太子 守知 爭之 不奉 乃使 舍人 好知急 迎天后歸

이에 대서(大書)<수지守知> 아찬에게 명하여

후와 태자를 폐하도록 조서를 작성케 하니 <수지守知>는 그 다툼을 받들지 않고

사인(舍人) <호지好知>를 급히 보내어 천후를 만나 돌아오게 하였다.

 

이흔(준명) - 수지(482- )

                 호지(486- )

 

后見太子免冠俯伏 而怒 而批帝顔曰

毗已 用謀之時 汝嘗何言乎 今我勤于仙政 汝妬若此何 老狂之甚

후는 태자가 관을 벗고 엎드려 있는 것을 보고 노하여

제의 용안을 흘켜보며 말하기를

“ <비이毗已>가 모략을 꾸밀 때 당신은 일찍이 무슨 말을 하였습니까?

지금 내가 선정(仙政)에 부지런하다하여 당신의 질투가 이와 같으니

어찌 늙은 광기가 이렇게 심합니까?“

 

눌지(파호) - 비처(436-500 소지왕 재위 479-499)

                 비이(445-504)

 

<비이>는 소지왕의 동생이다.

 

습보(조생) - 지도로(437-514 지증왕 재위 500-513)

지도로(라황) - 후황(466-499 소지왕의 천후)

 

지증왕 <지도로>는 그의 딸 <후황>을 소지왕 <비처>에게 바쳐

소지왕으로 부터 왕위를 물려받았다.

 

帝聞后有郎香 不覺心 喜抱之曰 朕欲見汝 而已豈廢愛子

제가 후에게 <위화>랑의 향기가 있음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고

기쁘게 후를 안고 말하기를

짐이 당신을 보고자 한 일인데 어찌 사랑하는 자식을 폐하겠는가?”

 

이때 지증왕 <지도로> 72세이다.

 

乃命太子出視 太子大喜 起舞 而歌曰

好吾母兮 好吾父 二聖合兮

生我身 吾母吾父 萬年歡 萬年歡 萬年歡 使我長舞父母前

이에 태자를 나가도록 하니 태자는 크게 기뻐하며 일어나 춤추며 노래하기를

좋은 나의 어머니여! 좋은 나의 아버지와 이성(二聖)으로 합하였구나!

나를 낳으신 나의 어머니, 나의 아버지!

제가 부모님 앞에서 오래도록 춤을 추게 하니

오래토록 기뻐하소서! 오래토록 기뻐하소서! 오래토록 기뻐하소서!“

 

后乃抱帝入寢 命太子隨入下帳 又召大書郞 守知阿湌 草詔 以太子爲副君 委以軍國大政

이에 후가 제()를 안고 침전으로 들어가 태자에게 들어와 휘장을 내리도록 하고

또 대서랑 <수지> 아찬을 불러 태자를 부군(副君)으로 삼고

군국대정(軍國大政)을 위임토록 하였다.

 

自是太子專政 帝與后 優遊國中 后輒命郎隨之 帝不能禁之

이로부터 태자가 대정을 전담하고 제와 후는 나라 안을 유람하니

후가 번번이 <위화>랑에게 따르도록 명하였으나 제는 이를 막지 못하였다.

 

仙徒呼爲三聖 於是 築 三聖 上仙號於帝 曰 太平萬歲 理化千春 靑雄大聖 智證天帝

선도들이 삼성(三聖)이라고 부르고 이에 삼성사(三聖祠)를 세워

상선(上仙)을 제()라고 부르며 말하기를

태평 만세를 누리소서! 선도(仙道)가 영원토록 하소서!

청웅(靑雄) 상선(上仙), 천후(天后) 대성(大聖), 지증(智證) 천제(天帝)!

 

后曰 太平萬歲 極()千春 玄牝大雌 仙母天后

郎曰 太平萬歲 極樂千春 谷神大雄 仙父花郞

후를 일러 태평만세 극락천춘 현빈대자 선모천후라 하고

위화랑을 일러 태평만세 극락천춘 곡신대웅 선부화랑이라 하였다.

 

帝乃賜酒慰郎曰 吾妻非汝 則不安 朕非吾妻 則不安 汝實安此朕躬者也

이에 제가 술을 내려 <위화>랑을 위로하며 말하기를

내 처는 네가 아니면 불안하고 짐은 내 처가 아니면 불안하니

너는 실로 짐의 몸을 편안하게 하는 자이다.“

 

自是郎與后 起臥帝床

이로부터 <위화>랑과 후가 제의 침상에서 같이 눕고 일어났다.

 

郎婉如婦女 輕若飛仙 甚稱帝旨

<위화>랑은 부녀자와 같이 아름다워 가볍게 나는 선녀와 같아

정도에 지나치게 제()라고 칭하였다.

 

恨不早合 帝且血衰毛脫 不能快后 困疲昏睡 委后於郎

()가 진작 합하지 못한 것을 뉘우치고 또 혈이 쇠하고 머리카락이 빠져

후를 즐겁게 하지 못하고 피곤하고 혼수상태에 빠지니 후를 <위화>랑에게 맡겼다.

 

郎有神力 能令后泣 能令后笑 晝以繼夜 不分雌雄 纒綿黑甛

玉體玲瓏 不知日 高三丈腰入肺心

<위화>랑은 신묘한 힘이 있어 후를 울게 하고 웃게 하니

밤낮을 계속하여 떨어지지 않는 암컷과 수컷은 서로 정이 얽혀 단잠을 잤다.

 

帝輒睡覺起視 郎蹯后上 雪花香濃宛 若玉龍交心

()가 문득 잠에서 깨어 바라보니 <위화>랑의 발바닥이 후의 몸 위에 있는데

눈꽃향이 짙고 완연하니 마치 옥룡(玉龍)이 마음을 나누는 것 같았다.

 

帝嗟歎 良久 撫 郞及后曰 眞天降雌雄也

()가 오랫동안 한숨을 짓고 탄식하더니 <위화>랑과 후를 어루만지며 말하기를

진정 하늘에서 내려온 암컷과 수컷이다.”

 

暗引御被加之 不使驚覺

어둠 속에서 이불을 당겨 덮어주며 놀라 깨지 않게 하였다.

 

時玉蘭從郞 入宮

때에 <옥란><위화>랑을 따라 입궁하였다.

 

奉供茗飮 起梳雲髮 于帳外鏡臺 帝擧帳 而出 玉蘭驚起 下臺握髮獻身

아침에 일어나 차를 올리고자 휘장 밖 경대(鏡臺)에서 탐스러운 머리를 빗고 있는데

제가 휘장을 섣고 나오니 <옥란>이 놀라 일어나

경대 아래에서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차를 올렸다.

 

帝抱難曰 爾髮靑靑 我鬚白白

제가 <옥란>을 안고 근심스럽게 말하기를

네 머리카락은 푸르고 푸른데 내 머리카락은 희고도 희구나.”

 

蘭曰 白是原色 光明之源 天子居之靑是 東方樹王生物之色 妾等牝道居之

옥란이 말하기를

흰색은 원색이며 광명의 근원이고

천자(天子)가 거주하는 푸른색은 동방 수왕(樹王) 생물(生物)의 색으로

첩 등 암컷의 도()가 거주하는 색입니다.“

 

帝稱善曰 汝眞仙家婦也

제가 좋은 말이라고 하며 말하기를

너는 진정 선가(仙家)의 아내이다.”

 

乃命香茶淨口携蘭入湯

이에 향기로운 차로 입을 깨끗이 하도록 하고 <옥란>을 데리고 욕탕에 들어갔다.

 

帝命玉蘭 脫衣 蘭不敢拒之 縮羞脫下

제가 <옥란>에게 옷을 벗도록 명하니 <옥란>은 감히 거절하지 못하고

부끄러워 움츠리며 옷을 벗었다.

 

帝見其膚豊美娟膩 抱而撫之曰 爾膚彈彈 我膚谷谷

제가 그 풍만하고 아름답고 예쁘고 미끄러운 피부를 보고 안고 어루만지며 말하기를

네 피부는 탄탄한데 내 피부는 쭈굴쭈굴하구나.”

 

蘭曰 日出賜谷天子居之 赤心彈誠臣子居之

<옥란>이 말하기를

해가 떠서 골짜기에 천자(天子)가 묵을 곳을 내리고

거짓 없는 마음과 탄탄한 정성은 신하가 묵을 곳입니다.”

 

帝曰 爾膚如此靑春 失夫 獨宿 應有怨后之心 何云赤心彈誠乎

제가 말하기를

“ 네 피부는 이와 같이 청춘인데 지아비를 잃고 독수공방하니

응당 후를 원망하는 마음이 있을 터인데

어찌 거짓 없는 마음과 탄탄한 정성을 말하는가?“

 

蘭曰 妾聞 物供不如心供 心供不如身供 身供之道以色供

爲上 獻供 爲次 役供 爲下妾夫 得其上 臣子之幸也 豈有怨乎

但所感泣者 聖上愛后 鴻仁之德 不罪妾夫 重恩妾身也

옥란이 말하기를

첩이 듣기로 물건을 바치는 것은 마음을 바치는 것만 못하고

마음을 바치는 것은 몸을 바치는 것만 못하니

몸을 바치는 도()는 색을 바치는 것입니다.

위로 몸과 마음을 바치고 다음으로 노역을 바치고 아래로 첩과 지아비를 바쳐

그 위를 득함이 신하의 행복인데 어찌 원망이 있겠습니까?

단지 감읍하는 바는 성상께서 후를 사랑하고 기러기와 같은 인자한 덕으로

첩과 지아비에게 죄를 묻지 아니하시고 첩의 몸에 막중한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帝笑曰 爾夫奪吾妻 朕亦奪汝可乎

제가 웃으며 말하기를

너의 지아비가 내 처를 빼앗았으니 짐 역시 너를 빼앗음이 옳은가?”

 

蘭曰 妾與妾夫之身 皆陛()之有也 何有奪乎

但妾醜庸 不敢奉浼聖躬

<옥란>이 말하기를

첩과 첩의 지아비의 몸은 모두 폐하의 것인데 어찌 빼앗는다 하십니까?

다만 첩이 이미 더러워진 몸으로 감히 옥체를 더럽힐까 받들지 못하는 것입니다.“

 

 

帝曰 朕少恃血力 貪房擅芬

今已大耗頓消色念 而但見如汝 端美者 春自回矣

()가 말하기를

짐이 적은 혈력(血力)을 믿고 멋대로 여색(女色)을 즐기다

지금은 여색(女色)에 대한 생각이 이미 크게 소모되어 줄었으나

너와 같이 단정하고 아름다움을 보니 저절로 회춘이 되는구나.“

 

蘭乃含笑送情 帝遂幸 蘭于湯殿

이에 <옥란>이 미소를 머금고 정()을 보내니

마침내 제()가 탕전(湯殿)에서 <옥란>을 행()하였다.

 

() : 성교

 

蘭慇懃綢繆 極快帝心

<옥란>이 제의 마음을 지극히 상쾌하게 하기 위하여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속으로 정을 주며 자세하고 꼼꼼히 다루었다.

 

帝歡極 而大敗萎如泥牛

제의 기쁨이 극에 달하니 진흙으로 만든 소처럼 시들어 버렸다.

 

蘭驚起 救護負帝 至帳外 郎與后 雲雨正濃 笑啼聲聞

<옥란>이 놀라 일어나 제를 업고 휘장 밖에 이르니

<위화>랑과 후는 운우(雲雨)의 정이 한창 무르익어 웃고 우는 소리가 들렸다.

 

蘭不敢入負帝 潛聽漸聞 郎蕩骨逼 后絶呌戾天

<옥란>이 제를 업고 감히 들어갈 수 없어 조용히 귀를 기울여 잠시 들으니

<위화>랑이 성기를 쓸어 넣어 다그치니 후의 절규하는 소리가 하늘에 닿았다.

 

郞乃抱后如厠 后呻吟蕤苾 而忽見帝 在蘭背

이에 <위화>랑이 후를 안고 측간에 이르니

후의 신음 소리는 아직도 꽃이 향기를 뿜듯 하는데

문득 제()를 보니 뒤에 <옥란>이 있엇다.

 

以手撲 帝曰 奴又偸蘭如此耶

제가 손으로 <옥란>을 때리며 말하기를

()이 또 란()을 훔치는 것이 이와 같구나.”

 

玉蘭含羞俯謝曰 死罪死罪

<옥란>이 부끄러움을 머금고 엎드려 사죄하며 말하기를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后乃命蘭抱帝入帳

이에 후가 <옥란>에게 명하여 제를 안고 휘장 안으로 들어오게 하였다.

 

自是 后許玉蘭 聯枕 以慰帝心

이로부터 후는 <옥란>과 같이 자는 것을 허락하여 제의 마음을 위로하였다.

 

帝乃加郞 爵沙湌 殿中大夫 玉蘭五品權妻 授牧丹衣

이에 제는 <위화>랑에게 사찬(沙湌) 전중대부(殿中大夫)의 작위를 더하고

<옥란>에게 오품 권처(權妻)를 내리고 목단의(牧丹衣)를 하사하였다.

 

後來帝文郞讚之曰

훗날 <제문帝文>랑이 이를 찬하여 노래하기를

 

靑靑白白 蘭牝智雄

笑笑啼啼 蓮牝魏雄

兩牝兩雄 混成春風

雲雨如海 好是谷風

民樂太平 時和年豊

兩儀乾坤 造化斯功

푸르고 희다고 한 <옥란> 암컷과 <지증> 수컷

웃고 울고한 <연제> 암컷과 <위화> 수컷

두 암컷과 두 수컷이 섞여 춘풍을 이루네

운우의 정은 바다와 같고 골짜기 바람이 좋으니

백성은 즐겁고 태평하고 시절은 화목하고 해마다 풍년이네

하늘과 땅의 음양은 조화의 공()이로다.

 

時淨凰娠帝女 腹高

때에 <정황淨凰>이 제의 딸을 임신하여 배가 불렀다.

 

<정황淨凰><분종>의 누나로 이때 23살이다.

 

善知知好淫 怨帝 愛后而不愛己 或毆 或泣 帝苦之

<선지善知>가 음탕함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제가 후를 사랑하고 자기를 사랑하지 않음을 원망하며

때로는 때리고 때로는 우니 제가 이를 고통스러워하였다.

 

后乃 以外(?)山子畏須 爲善知臣 命密通之勸

이에 후가 <외산畏山>의 아들 <외수畏須><선지善知>의 신하로 하고

비밀히 통정토록 명하였다.

 

帝下嫁 于須 善知不肯之

제가 <외수>에게 하가토록 하였으나 <선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芬宗曰 帝老 而愛后 姊若爭妬 則禍不如早嫁

<분종>이 말하기를

제는 늙었으나 후를 사랑하는데 누님이 만약 질투한즉

화가 미치니 일찍 출가함만 못합니다.“

 

<선지><분종>의 어머니가 같고 아버지가 다른 누나로 이때 25살이다.

 

善知頓足曰 金枝之女 安可適貧骨乎

<선지>가 발을 동동 구르며 말하기를

금지옥엽의 딸이 어찌 빈골(貧骨)에게 적합하겠는가?”

 

芬宗曰 姊不愛須 須何敢犯

<분종>이 말하기를

누님은 반드시 사랑을 받지 못하니 반드시 누군가가 범할 것입니다.”

 

善知() 吾雖愛其雄 不愛其貧

<선지>가 말하기를

나는 오직 <위화>랑을 사랑하지 <외수>를 사랑하지 않는다.”

 

芬宗曰 吾以與之 則可嫁乎

<분종>이 말하기를

우리가 승원(勝院)을 흥하게 하려고 한 즉 출가함이 옳지 않겠습니까?”

 

善知喜而許之

<선지善知>가 기쁘게 이를 허락하였다.

 

后聞之加賜 黃金 白銀 白馬 錦衣 大行吉明 于鮑祠

후가 이를 듣고 황금과 백은, 백마, 금의를 하사하고 포사에서 혼례를 올렸다.

 

善知得 金銀 好夫 遂 斷邪念 雌伏事須 畏山公 每 以公 暇垂 以眞經曰

臣嘗見 竹長宮 乾坤合德 天縱聖人 惟我公主體 父母之心 生子生女 其福無豊

<선지>가 금은과 좋은 지아비를 얻어 마침내 사사로운 생각을 끊고

자복(雌伏)하여 <외수>공을 섬기니

<외산>공이 공주가 한가로울 때마다 진경(眞經)으로 이르기를

신이 일찍이 죽장궁(竹長宮)을 보니

건곤이 합덕하여 하늘이 성인을 놓아 주었습니다.

오직 나와 공주는 체()이고 부모의 마음입니다.

아들과 딸을 낳으나 그 복이 많지 않습니다.

 

善知曰 早失父母 無所見聞 今日所恃 惟 郎君與父也 父命若是 敢不佩之

<선지>가 말하기를

일찍이 부모를 여의어서 보고 들은 바가 없는데

오늘 믿고 의지할만한 사람은 오직 낭군과 아버님입니다.

아버님의 명령이 이와 같으니 감히 이를 명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帝聞其悔改 嘉 畏山父子命 各加爵 賜衣

제가 그 뉘우침을 듣고 기뻐하며

<외산>공 부자(父子)에게 작위를 더하고 옷을 하사하였다.

 

后又賜 畏山夫妻 白馬 神衣 令太子慰 淨凰於 娠宮

又使魏花 往洽 其情二祲 遂淨

또 후가 <외산>공 부부에게 백마와 신의를 내리고

태자에게 명하여 신궁(娠宮)에 있는 <정황淨凰>을 위로케 하였다.

<위화>로 하여금 가서 화합토록 하니

그 두 요기(妖氣)의 정()이 마침내 맑게 되었다.

 

이침(二祲)은 <지도로>를 시중드는 <분종>의 누나 <정황>과 <선지>이다.

 

后乃專情于郎 帝亦周遊三院 髮長姬亦 被上寵 授五品權妻 牧丹衣 及 姬生蕙林

帝洗爲摩腹子

이에 후는 <위화랑>에게 정()을 독차지하고 제 역시 삼원(三院)을 두루 유람하니

<발장髮長> 역시 상의 은총을 입어 오품 권처(權妻)와 목단의(牧丹衣)를 하사받고

<혜림蕙林>을 낳으니 제가 마복자(摩腹子)가 되도록 하고 아이를 씻었다.

 

后乃 作當夕籙

이에 후는 석록(夕籙)을 작성하도록 하였다.

 

一白 后與郎侍帝 于天宮

일백전에 해당하는 후와 <위화>랑이 천궁에서 제를 모시고

 

玉蘭當黑 髮長當碧 碧花當綠 保道當黃 淨凰當赤 皆太子妃一品權妻也

善知當紫 六八海梁阿氏等 當之

<옥란>은 이흑전, <발장>은 삼벽전, <벽화>는 사록전, <보도>는 오황전,

<정황>은 칠적전에 해당하여 모두 태자비로 일품 권처(權妻)이고

<선지>는 구자전에 해당하고 <해량><아씨> 등은 육백전과 팔백전에 해당하였다.

 

지도로(연제) - 모진(480-540, 23대 법흥왕 재위 514-539)

비처(란릉) - 옥란(478-533)

외산(람연) - 발장(479?- )

손동(벽아) - 벽화(485- )

비처(선혜) - 보도(485-528)

비처(후황) - 정황(486- )

아지(후황) - 선지(484- )

등흔(모량) - 해량(465-519)

비처(치군) - 아씨(460?- )

 

 

后以綠紫如太子宮 以爲郎暇

후가 사록전과 구자전을 태자궁으로 하니 <위화>랑이 느긋하게 되었다.

 

蘭髮乃以是奉郎 于正寢 而合歡

이에 <옥란><발장><위화>랑을 모시고 침실에서 합환하였다.

 

太子知蘭髮之閑 微行 幸之

태자가 <옥란><발장>의 한가로움을 알고 미행하여 행()하고자 하였다.

 

玉蘭以夏月灑水高樓當風 而臥不覺晝寢 太子密至濡之曰 吾妻待 誰濶門

<옥란>이 여름철에 높은 누각에서 분수가 솟고 바람이 부니 누워 낮잠을 자는데

태자가 몰래 다가와 적시며 말하기를

내 처는 기다리고 있는데 누가 옥문을 벌려놓았는가?”

 

蘭辨之 不得遂絶盡寢

<옥란>이 변명하다 부득이 잠자리를 같이하여 깊은 잠에 떨어졌다.

 

太子又欲戱髮長姬 而姬甚自持無以乘間 太子歎曰 髮長可使理方 而宰肉也

태자는 또 <발장>을 희롱코자하니 <발장>이 심히 반항하여 올라탈 수가 없어

태자가 탄식하며 말하기를

“ <발장>은 이방(理方)을 시켜 육체를 수색하여야 하겠다.”

 

髮長 性淸高 不喜淫事 晨起 沐髮 潔食 淡衣 終日 誦經 不知疲倦

<발장>은 성품이 맑고 고상하여 음탕한 일을 좋아하지 않고

새벽에 일어나 머리를 감고 간결한 음식을 먹고

수수한 옷차림으로 종일 경을 외웠으나 피로와 권태를 몰랐다.

 

芬宗公常稱之曰 娶妻當如髮長姬

<분종>공이 항상 말하기를

아내를 맞으려면 마땅히 <발장> 같아야 한다.”

 

郎乃命姬月二夕于勝殿 芬宗公 雖不好色 而惟姬薦枕 則雲雨終賓 其情愈新

姬亦事公如郎曰 芬夫仙之實 魏夫仙之花 我遊花實之間 得仙之種 以殖吾道

이에 <위화>랑이 <발장>에게 명하여 한 달에 두 번 저녁에 승전(勝殿)에 가도록 하니

<분종>공은 비록 색을 좋아하지 않으나 오로지 <발장>과 천침한즉

운우의 정은 빈객으로 끝났으나 그 정으로 새롭게 병이나 치유하니

<발장> 역시 <분종>공을 <위화>랑과 같이 모시며 말하기를

“ <분종> 지아비는 선()의 열매이고 <위화> 지아비는 선()의 꽃입니다.

제가 꽃과 열매 사이에 노닐어 선()의 씨앗을 얻어

우리 도()를 자라게 하고자 합니다.“

 

玉蘭曰 髮妹 鶴身 蕙心宜乎 仙妻如我桃李輩 一種春花 而已

<옥란>이 말하기를

“ <발장> 동생은 마땅히 몸은 학이고 마음은 향풀과 같은 향기가 나니

나와 같은 복숭아와 오얏나무 무리들은 한 낱 봄꽃에 지나지 않습니다.“

 

髮長姬曰 蘭兄 神淵之金鯉 瑤砌之水蘭宜乎 仙牝院相 如我蒲柳 何敢比其萬一乎

<발장>이 말하기를

“ <옥란> 언니는 마땅히 신묘한 연못의 금빛 잉어이고

옥석 섬돌의 물에 있는 난초의 향기가 나는 선빈(仙牝)의 원상(院相)인데

나와 같은 갯버들이 어찌 감히 만에 하나라도 비교가 되겠습니까?“

 

郎曰 鯉妻 肥 而美 鶴妻 瘦 而潔 肥美楚潔乃吾膏梁 而藥石二妻缺一 不可以爲仙

<위화>랑이 말하기를

잉어 처는 통통하고 아름다우며 학 처는 수척하고 순결하니

통통하며 아름다움과 청초하고 순결함은 나의 좋아하는 음식이니

약석(藥石) 두 처 중에 하나라도 없으면 선()이 되지 못한다.“

 

是年七月 別洞仙院 雲梯水宮成

이 해 7월 별동선원(別洞仙院)에 운제(雲梯) 수궁(水宮)이 완공되었다.

 

后與郎 奉帝行浴 大享仙巫

후와 <위화>랑이 제를 모시고 수궁 욕전(浴殿)에 행차하여

선무(仙巫)들에게 크게 잔치를 열었다.

 

水宮高百尺 上坎下离 四隅 各有震宮 以爲 四時之皐 從其內臯起三層雲梯 高九十尺

수궁은 높이가 백 척이고 위는 물이고 아래는 불이다.

네 모퉁이에 각각 진궁(震宮)이 있어 네 계절의 못이 있고

그 못 안에는 삼층의 구름다리가 솟아 있는데 높이가 구십 척이다.

 

仙巫隨其品位 登梯望拜水宮

선무들이 그 골품과 지위에 따라 구름다리에 올라 수궁을 바라보며 절하였다.

 

其中連爲三聖殿 日月陰陽 爲四節之殿 上樓下水 撑以石柱 房室帳楹 飾以金玉 極其奢侈

수궁의 중앙은 삼성전(三聖殿)에 연결되어 있고 일월음양 네 계절의 전각이 있고

위는 누각이고 아래는 물이 흐르는데 돌기둥으로 지탱하고

방과 내실과 휘장과 기둥은 금과 옥으로 장식하여 그 사치가 극치에 달하였다.

 

各殿有龍珠鳳嘴 以爲漏水 仙女掌上之 珍懸燈 太史指間之實

각 전각에는 구슬을 머금은 용과 봉황의 부리에서 물이 흐르게 하고

그 위에서 선녀가 손으로 보물을 매단 등불을 잡고 있고

태사가 손가락으로 보물을 가리키고 있다.

 

中央玄兎玉座天后萬歲定坐 左邊紅牛金座天帝萬歲坐御

右邊赤兎金座花郞萬歲定坐 受三聖大眞之享 其詞曰

중앙은 현토옥좌에 천후가 바로 앉아 있고 왼쪽은 홍우금좌에 천제가 앉아 있고

오른쪽은 적토금좌에 <위화>랑이 앉아서 삼성(三聖)의 대진(大眞) ()을 받으니

그 노래에 말하기를

 

惟我天后萬歲 出牟梁之大元神統 旣嘉駕白鸞於上 淸夢兆多祥

오직 우리 천후는 모량(牟梁)에서 태어난 대원신통(大元神統)으로

이미 하늘에서 흰 봉황 가마를 타고 내려왔으니 꿈에 많은 상스러운 징조가 있었네.

 

天生聖 陰神配鴻陽

하늘이 성인을 낳아 음신(陰神)과 홍양(鴻陽)으로 짝을 지었네.

 

二氣落於九天 業有 丹墀之盟 三使會于雙狗

두 기()가 하늘에서 떨어지니 업()이 있어

쌍구(雙狗)에서 세 사신과 만나 대궐의 붉은 섬돌에서 맹약하였네.

 

乃尋冬老之緣 宝車七百 香奴五千 麟慈 而凰美欽 牝德之如天日麗 ()月嬋歎

동노(冬老)의 인연을 찾으니 보물을 실은 수레는 칠백이고 향노(香奴)는 오천인데

기린의 자애로움과 봉황의 아름다움과 공경하는 여인의 덕이

하늘의 해와 같이 고우니 고운 달빛이 탄식하네

 

동노(冬老) : 지증왕 <지도로>이다.

 

雌儀之出仙 琴瑟 旣洽 於室 家色 聞 上達 恩潢 又高 於椒房 香品 大遷

()은 선()에서 나오니 금슬은 이미 집안에 화합하고

가색(家色)을 물어 상달하니 은혜는 초방(椒房)에 깊고도 높아

초방의 향기와 품위가 크게 바뀌었네

 

초방(椒房) : 후궁이 거처하는 방

 

乾坤合 ()日月明 宇宙通 而山澤 深抱 璋懷瓊 天子悅 於神池

건곤(乾坤)이 합덕하고 일월(日月)이 밝으니

우주가 통하여 산택(山澤)이 깊이 포옹하고

()이 옥()을 품으니 천자(天子)는 신지(神池)에서 기뻐하네.

 

() = () = () = () = 天帝 = 지도로

() = () = () = () = 天后 = 연제

 

産虎誕龍 聖人降 于鷄林 白龍呈祥知宝祚之有數

호랑이를 낳고 용이 태어나고 성인이 계림에 내려오니

백용(白龍)의 상서로운 조짐으로 옥좌가 여러 번 바뀌었네.

 

玄兎定壺解 王氣之無窮 於是 國泰民安

현토가 호리병을 해체하여 바르게 하니

왕의 기운이 무궁하여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은 편안하네

 

玄兎는 달을 의미하며 여기서는 천후 <연제>를 말한다.

 

雲雨時行賴后德之輔內忘 帝力之在中倉廩實 而民可敎 衣食足 而道可成

후의 덕으로 비가 때 맞춰 내려 안으로 도와서 근심을 잊게 하니

()의 힘이 창름(倉廩)에 가득하여 백성을 가르치니

의식이 풍족하여 도()가 이루어졌네.

 

天后萬歲 洞開慈門 滿吸仙風 身供大雌 心通眞雄

천후만세!

자문(慈門)을 활짝 열어젖히고 선풍(仙風)을 마음껏 들어 마셔

대자(大雌)에게 몸을 바치니 진웅(眞雄)에게 마음이 통하네

 

대자(大雌)는 천후 <연제>이고 진웅(眞雄)은 <위화>이다.

 

()魏華玉耶 龍頭花郞 乃天縱之仙 宇宙之精 萬八億之神將出入肺腑

오직 우리 <위화> 옥야는 화랑의 우두머리로

하늘이 놓아 준 선()이며 우주의 정()으로

만 팔백 억 신장(神將)이 폐부(肺腑)로 출입하네.

 

 

千京垓之星 臣 擁衛丹城 坐理 萬方 統治 三生 仙道之化 未有盛於

천억의 별이 신하가 되어 단성(丹城)을 옹위하고

앉아서 만방을 통치하는 삼생(三生)의 도를 득하니

선도(仙道)의 도가 이토록 성한 바가 없었네.

 

삼생(三生) : 과거와 현재, 미래를 뜻하는

전생(前生), 현생(現生), 후생(後生)을 아울러 이르는 말.

 

今日國運之長 從可期乎萬年 乃奉樹王設此檀筳水宮

오늘 국운의 장성이 만년에 달하도록 수왕을 모시어 수궁에 이 단정(檀筳)을 세웠네

 

日月合 仙父之仙母 慈雲 千層 火樓 乾坤歡 卯陽之卯陰 惠雨 萬升 乃者

일월이 합덕하니 선부(仙父)의 선모(仙母)

자애로운 구름이 되어 겹겹이 불 누각을 뒤덮고

건곤이 합환하니 묘양(卯陽)의 묘음(卯陰)은 은혜로운 비가 되어 만물을 자라게 하네

 

六萬精黎 會合丹心 願報鳥情 備水陸之荇菜 奏龍舞 而鳳聲

天帝萬歲 理化之主 天后萬歲 理化之牝 花郞萬歲 理化之眞

육만 정려(精黎)로 단심(丹心)을 모아 조정(鳥情)에 보답코자

바다와 육지의 행채(荇菜)를 준비하고 용무(龍舞)를 연주하니

천제만세 이화지주(理化之主), 천후만세 이화지빈(理化之牝),

화랑만세 이화지진(理化之眞)을 봉성(鳳聲)하네

 

단전호흡으로 기(氣)를 모아 신선의 경지에 도달함인가? 

 

伏願 三聖一體和合千春 福雨洽於九黎 慶雲興於八津

엎드려 바라오니 세 성인은 한몸으로 화합하여 천수를 누리시고

복 비가 내려 아홉 골짜기를 적시고

경사스런 구름이 일어나 여덟 나루터를 덮게 하소서

 

 

后受詞 而與郎 郎起舞 而歌之 后起 而對舞之 帝亦舞之

후가 <위화>랑과 함께 노래를 받으니 <위화>랑이 일어나 춤추며 노래하고

후가 일어나 마주보고 춤추니 제 역시 춤을 추었다.

 

后爲六萬精旅 親自解髮濡墨 以郎袖 九十八幅 題爲軍旗 其二大白舞袖 賜之

후가 친히 머리를 풀어 먹물에 적시어 <위화>랑의 소매 구십 여덟 폭에

육만 정려(精旅) 군기의 명칭을 써서 그 두 개의 흰 춤추는 소매를 하사하였다.

 

前後方 九十六藍 舞袖賜之 十六部 以勵其衆 仙徒大喜勇躍 獻誓願 以死効

전후방 96()을 춤추는 소매에 내리고 16() 무리들에게 힘쓰도록 하니

선도들 모두가 기뻐 날뛰며 죽음으로 헌신할 것을 맹서하였다.

 

后乃親酌賜酒 前後方 徒頭及十六部頭

이에 후가 전후방 도두와 16부 우두머리에게 친히 술을 따라 내렸다.

 

玉蘭髮長 以下三院 奾婢總出 而供衆 不知其倦

<옥란><발장>이 삼원(三院)으로 내려가고

비녀들이 모두 나와 대중들에게 음식을 제공하였으나 싫어함을 알지 못하였다.

 

帝亦大嘉之 不厭 困憊軫汗

제 역시 이를 크게 기뻐하고 피곤하고 땀이 났으나 싫어하지 않았다.

 

后恐帝勞 命郎 扶帝先入燕室

후가 제의 피로를 염려하여 <위화>랑에게 제를 부축하여

먼저 연실(燕室)에 들어가도록 하였다.

 

연실(燕室) : 잠시 머물면서 쉴 수 있도록 마련된 방

 

帝不肯之曰 朕欲見吾妻施衆之姿

제가 수락하지 않으며 말하기를

짐은 내 처가 군중에게 베푸는 모습을 보고자 한다.”

 

后乃抱帝頸 而撫禿頭曰 汝年七十二 朕年四十六 郎年二十二

三合百四十 三分四十六 此年長不盡 汝禿頭 朕禿頭 郎禿頭

이에 후가 제의 목을 안고 대머리를 어루만지며 말하기를

당신은 72살이고 짐은 46살이고 위화랑은 22살이니 세 사람을 합하면 140입니다.

3으로 나누면 46입니다.

이 나이는 많지만 다한 것이 아닌데

당신도 대머리 짐도 대머리 위화랑도 대머리입니다.“

 

禿頭 禿頭 禿頭 長不盡 帝大笑

대머리, 대머리, 대머리, 나이가 많지만 다한 것이 아니라

제가 크게 웃었다.

 

后乃挾帝抱郎 而入 仙臣郎徒 仰拜祗送 山呼 動天地

이에 후가 제의 팔을 끼고 <위화>랑을 안고 들어가니

선도와 신하와 낭도들이 우러러 절하며 배웅하고 만세를 부르니 천지가 진동하였다.

 

徒衆 醉 飽 鼓舞

낭도 무리들이 술이 취하고 배가 불러 북을 치며 춤을 추었다.

 

后以香湯洗 帝及郎 郎亦洗后 乃入凉 枕

후가 향탕(香湯)에서 제와 <위화>랑을 씻으니

위화랑 역시 후를 씻고 양궁(凉宮)에 들어가 잠을 잤다.

 

甘雨時下 郎徒皆 暴雨中 而抃之曰 聖雨滌暑遂歌之

때에 단 비가 내리니 낭도들 모두는 폭우 속에서 손뼉을 치며 말하기를

성스러운 비가 내려 더위를 씻어 내리니 이를 노래하여야 한다.”

 

後來 帝文郞 以詩解其方言曰

훗날 <제문>랑이 시로써 풀어 방언으로 말하기를

 

紫龍佩雙虎 搖尾入深扈

二陽一陰蕩 离臺坎宮春色濃如乳

如乳聖水濺人間 灌作頂上滌暑

雨滌暑 雨滌暑 雨飽吸

聖雨 須盡 舞皆脫衣裸舞 於泥濘之中

자주색 용()이 두 호랑이를 끼어 차고 꼬리를 흔들며 깊이 들어가 뒤따르네

두 수컷이 한 암컷을 방탕하게 적시니

감궁(坎宮)의 리대(离臺)에는 춘색이 젖과 같이 짙네.

젖과 같은 성스러운 물을 사람에게 뿌리고 맨 위 꼭대기에 물을 대어 더위를 씻어내네

비는 더위를 식히네.  비는 더위를 식히네. 비를 배부르게 마시자.

성스러운 비가 마침내 그치니 모두들 옷을 벗고 나체로 질퍽한 진흙 속에서 춤을 추네

 

자룡(紫龍)은 천후 <연제>이고 쌍호(雙虎)는 지증왕 <지도로><위화>이다.

 

后命玉蘭 開三院衣庫 出新麻衣 千襲分賜之

후가 <옥란>에게 명하여 삼원(三院)의 옷 창고를 열어

새 삼베옷 천 벌을 나누어 하사하게 하였다.

 

入夜雨霽天晴月色女(?)

밤에 들어오니 비가 그치고 하늘이 개어 달빛이 대낮 같았다.

 

后與帝郎 出欄頭 賞 郎徒之 善歌舞者 三十六人 幷賞 其妻巫七十五人 遊花五人

皆以衣帛宝貝 歌舞通育不絶

후와 제, <위화>랑이 난간마루의 한쪽 귀퉁이로 나가서

낭도들 중 가무(歌舞)를 잘 하는 자 36명에게 상을 주고

그 처 무인(巫人) 75명과 유화(遊花) 5명에게도

모두 비단옷과 돈을 주어 가무(歌舞)를 육성시키니 끊어지지 않았다.

 

自是 后居水宮 或縱舟順流 入凉宮 又入仙院 水宮 往來 逍遙

이로부터 후는 수궁에 거주하면서

때로는 유유히 흐르는 배를 타고 양궁(凉宮)에 들어가고

때로는 선원(仙院)에 들어가  수궁을 왕래하며 소요하였다.

 

后好騎馬蕩舟 或與郎 繫舟水邊 幷騎牧馬 入野人家 問其疾苦 施其乏者 以爲樂民

후는 말을 타고 배를 흐르게 하는 것을 좋아하고

때로는 배를 물가에 묶어두고 같이 말을 타고 민가에 들어가

질병과 고통을 묻고 가난한 자들을 보살피며 백성과 즐거움을 함께하였다.

 

多不知 爲后問 以巫籍

많은 사람들은 후의 골품을 알지 못하였다.

 

后笑曰 無品女也

후가 웃으며 말하기를

골품이 없는 여자이다.”

 

又問郎籍 郎曰 我只是 此無品之情夫 而已民皆賀無品 好 德有好夫

또 위화랑의 골품을 물으니 위화랑이 말하기를

저는 단지 골품이 없는 여자의 정부(情夫)이니

이미 백성들 모두가 골품이 없음을 좋아하여 하례하니 덕이 있는 좋은 지아비입니다.“

 

后抱郎乳之曰 此吾子也 狂言爲夫幸 勿信也

후가 위화랑을 안고 젖을 주며 말하기를

이 아이는 나의 아들이니 농담으로도 지아비를 행()하였다는 것을 믿지 말라.”

 

民之有識鑑者疑 爲后及郎 欲窺天機

백성들의 유식한 견식은 후와 <위화>랑이 천기를 엿보고자 한다고 의심하였다.

 

郎不言 輒抱后上馬 而走其疾如飛星

<위화>랑은 말을 하지 않고 번번이 후를 안고 말에 올라 날으는 별과 같이 질주하였다.

 

一日后與溯水微行 后見川魚 銀鱗 五彩曰 以川魚無知亦得此彩 抑亦得其眞乎

하루는 후와 함께 물을 거슬러 미행하다가

후가 은빛의 오색 비늘이 있는 하천의 고기를 보고 말하기를

하천의 고기 역시 이 은빛의 오색을 얻었음을 알지 못하는데

고기를 잡아 억지로 그 진()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郎曰 然華蟲之華 甲蟲之甲 皆得其眞也 聽於無聲 視於不見 覺於無知

所謂 有知之知 多非眞知 故彩色之家多 不及魚蟲也

<위화>랑이 말하기를

화려한 벌레의 화려함과 껍질 벌레의 껍질은

모두가 자연으로 그 진()을 얻은 것입니다.

없는 소리를 듣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알지 못하는 것을 깨닫는 것이 소위 지혜로서 아는 것입니다.

많은 것은 진정한 지혜가 아니므로

채색이 많은 집은 고기와 벌레만도 못하는 것입니다.“

 

后曰 善

후가 말하기를

좋은 말입니다.”

 

乃逐 野花 水草 或渡 或涉 九曲一川 日已向午

이에 야생화와 수초를 뽑고 굽어 흐르는 하천을 때로는 건너고 때로는 가로지르니

날은 이미 오후가 되었다.

 

后茵草而 臥曰 朕而疫矣

후가 풀밭에 자리를 깔며 누워서 말하기를

짐이 피로하구나.”

 

郎取路傍靑豆燃 而獻之 后才嘗一枝

<위화>랑이 길 가에서 푸른 콩을 따서 구워 바치니 후는 겨우 한 가지를 맛보았다.

 

田翁見煙 而來叱之曰 偷人之田 可告理方

밭 주인 할아버지가 연기를 보고 와서 꾸짖으며 말하기를

사람의 밭을 훔쳤으니 이방(理方)에 고발할 것이다.”

 

后曰 我有首飾 可以償之

후가 말하기를

내가 머리 장식을 가지고 있으니 이로써 보상하겠습니다.”

 

乃以金鈿與之 翁喜 而受之

금으로 세공한 장식을 주니 늙은이는 기뻐하며 받았다.

 

又貪郎宝刀曰 靑豆之價雖足 又 有可告

또 위화랑의 보도(宝刀)를 탐내어 말하기를

푸른 콩의 가격이 아직도 부족하고 또 고발할 것이 있다.”

 

后曰 何也

후가 말하기를

무엇인가?”

 

翁曰 看汝()高 而美 必是骨門娘主 此兒少 而妙 必是山房 郎徒

汝等貪色 逃 命 若不解刀 與我 可告理方之吏

할아버지가 말하기를

당신을 보니 나이가 많은데 아름다우니 반드시 골문(骨門) 낭주(娘主)이고

이 아이는 젊지만 신묘하니 반드시 산방(山房)의 낭도이다.

너희들이 색을 탐하여 도주하였으니 만약 칼을 풀어 나에게 주지 않으면

이방(理方)의 관리에게 고발 할 것이다.“

 

郎笑 而許之 翁大喜 而去忽

<위화>랑이 웃으며 허락하니 할아버지는 크게 기뻐하며 홀연히 가버렸다.

 

 

見上流 有老嫗 積瓜洗之

상류를 바라보니 늙은 할머니가 오이를 쌓아 씻고 있었다.

 

郎負后涉川往 而見之其瓜 皆如蛙皮 甘香觸鼻

<위화>랑이 후를 업고 하천을 건너 와서 그 오이를 보니

모두 개구리 껍질 같은 색갈인데 달콤한 향이 코를 찔렀다.

 

后問曰 伯母一人 洗此多瓜 何爲

후가 묻기를

백모(伯母) 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 오이를 어떻게 다 씻으려 합니까?”

 

嫗曰 我有三子八女 皆在城中 賣瓜資生 于西市

할머니가 말하길

나는 세 아들과 여덟 딸이 있는데

모두 성안 서쪽 시장에서 오이를 팔아 생활을 꾸려가고 있습니다.“

 

長子夜 以駄去 乃以好瓜獻之

큰 아들은 밤에 짐을 싣고 간다며 이에 좋은 오이를 바치고자 하였다.

 

后曰 我等 貧無所持 無以答價 不敢取也

후가 말하길

우리는 가질 욕심이 없고 돈도 없으니 받을 수 없습니다.”

 

嫗曰 同病相憐 豈望報乎 我見好郞負奾子 而來 知其孝 貧不足憂也

할머니가 말하길

같은 처지로 서로 어려운데 어찌 돈을 바라겠습니까?

내가 보니 좋은 낭군이 선자(奾子)를 업고 오니 그 효성을 알만 하고

욕심은 근심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后笑曰 伯母誤矣 此實吾夫也 我本城中 某豪之妻 悅此妙郞 而逃 命遂至此困嫗

후가 웃으며 말하기를

백모는 잘 못 보셨습니다. 이 사람은 실은 저의 남편입니다.

저는 본래 성안의 이름 없는 호족의 처인데 기쁘게 이 젊은 낭군에게 도망 와서

마침내 이렇게 피곤한 몸으로 할머니에게 이르게 된 것입니다,“

 

乃細笑視郞曰 眞好郎君也 我亦少時 喜逐 好郎 八女皆非一夫所生也

此固女子之癡也 男子多薄情 此郞愛奾子 如此貧 何足憂乎

我有斗室在此林中 可獻麥飯葱湯

이에 <위화>랑을 보고 살짝 웃으며 말하기를

진실로 좋은 낭군입니다.

나 역시 어린 시절에 기쁘게 좋은 낭군을 따라 갔습니다.

여덟 딸은 모두 한 남편의 소생이 아닙니다.

이와 같이 완고함은 여자의 어리석음이고 남자는 정에 야박한데

이 낭군은 선자(奾子)를 사랑하여 욕심이 이와 같은데 어찌 근심이 지나치겠습니까?

나는 이 숲 속에 아주 작은 방이 있는데 보리밥과 나물국을 바치고자 합니다.

 

后感其言 與郎 隨 至岵岺之下柕林之中 瓜田連頃內 有萬㵡 茅屋 數間 引澗 爲泉

후가 그 말에 감격하여 <위화>랑과 함께 따라가 

호령(岵岺) 아래 무성한 수풀 속에 이르니

오이 밭을 따라 물이 흐르고 있고 초가집에 두서너 칸 방이 있고

물을 끌어 샘을 만들었다.

 

泉流入川 故摘瓜泛之 自至 于下

하천의 물이 아래로 스스로 이르러 샘으로 들어오니 시들지 않는 오이를 딸 수 있었다.

 

有翁着席 於樹下 乃其夫也

할아버지가 나무 아래에 앉아 있는데 그 남편이었다.

 

嫗謂翁曰 此奾子與郎 逃情完如汝我前事 吾欲待以一飯 汝可取魚來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일러 말하기를

이 선자와 낭군은 서로 좋아하여 도망쳤으니 당신과 나의 옛일과 같습니다.

우리가 한 끼 밥으로 모시고자 하니 당신은 고기를 잡아 오시오.“

 

翁諾之 取其所養之魚烹 而進之 皆有味

할아버지가 승낙하고 살찐 고기를 잡아 구워 올리니 모두 맛이 있었다.

 

時山雨驟至 后乃與郎 入其淨室 一眠 而起 日將夕矣 乃謝 而出

때에 산속에서 비가 내리니 후와 <위화>랑이 그 깨끗한 방으로 뛰어 들어와

한 숨을 자고 일어나니 날은 저녁이라 사례하며 갈려고 하니

 

嫗翁勸留曰 山中無味適口 可避 一時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만류하며 말하기를

산중의 음식이 입에 맞지 아니하지만 조금 더 쉬었다 가십시오.”

 

郎曰 城東有友可歸 得意 當再來 報恩

<위화>랑이 말하기를

성동(城東)에 친구가 있어 돌아가야 합니다.

정 뜻이 그러시다면 다음에 다시 와서 은혜에 보답코자 합니다.“

 

翁曰 居者資行人之情() 何謂恩乎 城東有吾女三人 皆以奾子 自活 以羊皮

爲門若言我夫妻 必喜 而留之 若友()在 可訪之

할아버지가 말하길

“ 묵고 가는 것은 사람의 정인데 어찌 은혜라 하십니까?

성동(城東)에 있는 내 딸 3명은 모두가 선자(奾子)로 양피(羊皮)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 부부의 말을 물으면 반드시 기뻐하며 머무르게 할 것입니다.

만약 친구를 만나지 못하면 찾아 가십시오.“

 

 

后感其慇懃 下山謂郎曰 豆翁瓜翁 皆吾民也 一則貪暴 一則仁慈何也

후가 그 은근한 정에 감격하여 산을 내려오며 <위화>랑에게 일러 말하기를

콩 밭의 할아버지와 오이 밭의 할아버지 모두가 나의 백성이다.

한 사람은 욕심이 많고 포악하고 한 사람은 어질고 자애롭다

 

郎曰 生()瘠田 則苦生於沃田 則甘所經不自同也

故聖人之治 先使民足 欲使民足 不取 於民也

今汝與我 行樂仙院土木興 賦欽重 豆翁之侮 不亦宜乎

<위화>랑이 말하기를

메마른 밭에서의 삶은 비옥한 밭에서의 삶보다 고생스러우니

맛 좋은 것을 경작하는 것이 스스로 같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으로 성인의 다스림은 먼저 백성을 만족하게 하는 것이고

백성을 만족시키고자 백성들에게서 거두어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 당신과 내가 선원 토목공사를 일으켜 무거운 노역을 지우고 놀고 즐기는데

콩 밭의 할아버지를 어찌 업신여길 수 있겠습니까?“

 

后曰 汝言雖是 仙道亦不可 不興 汝何自謙若是

후가 말하기를

당신의 말이 비록 옳지만 선도(仙道)로는 옳지 않습니다.

토목공사를 일으키지 않았으면 당신이 어찌 이처럼 스스로 겸손하겠습니까?“

 

乃歸別洞 召宅師 勅其 勿淫役

이에 별동선원으로 돌아와 택사를 불러 조서를 내려 지나친 노역을 못하도록 하였다.

 

宅師曰 仙院之役異 於築城 庶民子來

故捀其能者以授之 決無淫役 且多富裕郎徒之捨身赴役 京都貪民無 有召募

택사가 말하기를

선원의 노역은 특이하여 성을 쌓는데 서민의 자녀가 오고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무거운 돌을 지탱할 수 있는 자들이 나르고 있고

지나친 노역은 결코 없습니다.

또 많은 부유한 낭도가 몸을 던져 노역을 하고 있고

경도(京都)에는 욕심 많은 백성이 없고 부르니 모인 사람들입니다.

 

后爲徒頭曰 汝知 市上有 蛙皮郎乎

후가 도두를 위하여 말하기를

너는 시장에 있는 <와피蛙皮>랑을 아는가?”

 

徒頭曰 臣之臣 有巨勝者 明 於人情 可召 而問之

도두가 말하기를

신의 부하에 <거승巨勝>이라는 자가 있는데

인정(人情)에 밝으니 불러서 물어 봄이 옳을 것입니다.”

 

乃召 而至 勝 沈吟良久曰 城市無蛙皮爲名者 但有可疑者三人 其一賣乾石蛙

其一賣蛙紋布 其一賣蛙皮瓜 抑 或岵岺之瓜子乎

이에 부르니 <거승>이 와서 속으로 오래 생각하며 말하기를

성안의 시장에는 <와피蛙皮>라는 이름을 가진 자가 없습니다.

단지 의심스러운 자가 세 명 있습니다.

한 사람은 배를 갈라 넓적하게 편 개구리를 팔고

한 사람은 개구리 무늬를 넣은 무명을 팔고

한 사람은 개구리 껍질과 같이 생긴 오이를 파는데

혹은 호령(岵岺)의 과자(瓜子)라 합니다.

 

后驚其能察市情 命昇其秩 召瓜子 問其所欲瓜子

후가 <거승>이 시정(市情)을 능히 살피는 것에 놀라

그 차례를 뛰어넘어 과자(瓜子)를 불러오게 하여 바라는 바를 물었다.

 

臣家本城東 若設東市 運瓜甚便

신의 집은 본래 성동(城東)에 있어 만약 동시(東市)를 설치하여 주시면

오이를 운반하는데 매우 편리할 것이라고 하였다.

 

后命市典 察其巷議 遂設東市

후가 시전(市典)에 명하여 항간의 소문을 살펴보고

마침내 동시(東市)를 설치하게 하였다.

 

瓜翁 感恩 每以夏月 獻瓜

오이 밭 할아버지는 은혜에 감사하여 여름마다 오이를 바쳤다.

 

后召而賜食 命其孫子女 屬仙院 又使畏山公 召靑豆翁 於理方 賞之曰

聞 汝能知 逃命男女可告之

후가 불러 음식을 내리고 그 손자와 손녀를 선원에 속하게 하고

<외산>공을 시켜 푸른 콩 밭 할아버지를 이방에 불러 상을 주도록 하니

<외산>공이 말하기를

듣자니 너는 명을 어기고 도망간 남녀는 고발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翁 畏其掠奪 爲罪 獻其金飾宝刀

할아버지는 그 약탈한 것이 죄가 될 것을 두려워하여

그 금 세공품과 보도를 내어 놓았다.

 

公曰 如此宝物何不賣 而資生

<외산>공이 말하기를

이와 같은 보물을 어찌 팔아 생활을 꾸리겠는가?"

 

翁曰 金玉之商 皆以爲非民物不買

할아버지가 말하기를

금옥의 상인들 모두가 백성의 물건이 아니니 사지 못한다.”고 하였다.

 

公笑曰 吾當買之汝言其價

외산공이 웃으며 말하기를

나는 당연히 살 것이니 값을 말해 보라.”

 

翁曰 靑豆一枝 而已不足 爲價

할아버지가 말하기를

푸른 콩 한 가지 가격도 안 됩니다.”

 

公乃 給一石豆 命勿雪行旅

이에 <외산>공이 한 섬의 콩을 주며 거처 없이 떠돌아다니지 말라하였다.

 

翁歸語 瓜翁知爲天后 待罪仙院

할아버지가 돌아가 말하니

오이 밭 할아버지는 천후임을 알고 선원에서 죄를 기다렸다.

 

后笑曰 汝言皆直 何罪之有

후가 웃으며 말하기를

당신의 말은 모두가 정직한데 무슨 죄가 있습니까?”

 

翁願獻靑豆於仙院

푸른 콩 밭 할아버지는 선원에 푸른 콩을 바치기를 원하였다.

 

后曰 汝若慈悲行旅無食者 何必仙院乎

후가 말하기를

당신이 만약 떠돌아다니는 자와 배고픈 자에게 자비를 베풀면 되지

하필이면  선원입니까?“

 

翁出置行旅田 其孫子女亦屬仙院 爲靑豆郎與蛙皮郞 傳名于後

할아버지가 나가서 행여전(行旅田)을 설치하였다.

그 손자와 손녀 역시 선원에 속하게 하니

<청두靑豆>랑과 함께 <와피蛙皮>랑이라는 이름이 후대에 까지 전하여 온다.

 

 

時芬宗殿君與沙嵩殿君 西遊太白 諸山 而還 獻白羊於后曰

白羊者神母之像也 非聖母之德 安能致此其大似鹿可

때에 <분종>전군과 함께 <사숭>전군이 태백(太白)의 여러 산 서쪽을 유람하다

돌아와서 후에게 백양을 바치며 말하기를

백양은 신모(神母)의 상()입니다.

성모(聖母)의 덕()이 어찌 사슴과 같이 큰 덕에 이르지 않겠습니까?“

 

비처(사세) - 사숭(482-520)

비처(후황) - 분종(488- )

 

以騎 乃以翡翠㗽之 黃金勒之 鞍以細錦 以爲神馬

이에 비취 방울과 황금 굴레를 달고 가는 비단으로 안장을 만들어 타며

신마(神馬)라 하였다.

 

每値白羊日 郎以三十六彩 騎之 朝 后名曰 行羊其儀

백양일(白羊日) 마다 <위화>랑이 서른여섯 가지 채색을 하여 아침에 타니

후가 그 의례를 행양(行羊)이라 이름 하였다.

 

緋衣童子六人 散花 於前羊大夫

주홍색 옷을 입은 동자(童子) 6명이 양대부(羊大夫) 앞에서 꽃을 날렸다.

 

一人執㗽宝盖 童子二人綠衣紅裳 藍衣 童子六人散香 至神庭

한 사람은 보석이 달린 방울을 잡고, 동자 두 명은 녹색 저고리에 붉은 바지를 입고

남색 저고리를 입은 동자 6명이 향을 날리며 신정(神庭)에 이르렀다.

 

后以白神衣 黃金晥 從十二仙女 降自西階 東向 再拜 十二仙女散花 而歌曰

東王父 白羊君 三十六彩 下春風

후가 백신의(白神衣)를 입고 황금으로 치장하여 열 두 선녀를 데리고

서쪽 계단으로부터 내려와 동쪽을 향하여 두 번 절하니

열 두 선녀가 꽃을 날리며 노래하기를

동왕부(東王父) 백양군(白羊君)이 서른여섯 가지 채색으로 춘풍을 내리네.”

 

十二童子 跪奏答歌曰

坤德乾象 西王母 抱着東王父 走入瑤池宮

열두 동자가 무릎을 꿇고 답가하여 노래하기를

땅의 덕이고 하늘의 상()이니

서왕모(西王母)가 동왕부(東王父)를 안고 요지궁(瑤池宮)으로 달려 들어가네.“

 

양대부(羊大夫) = 동왕부(東王父) = 백양군(白羊君) = 위화

서왕모(西王母) = 현빈양(玄牝羊) = 연제

 

后乃詣羊前抱郎授乳 郎乃抱着於后 后抱而走入眞元殿 合歡

이에 후가 <위화>랑 앞에 이르러 <위화>랑을 안고 젖을 주니

<위화>랑은 후를 안고 진원전(眞元殿)으로 달려 들어가 합환하였다.

 

童子仙女環舞於庭 以娛白羊

동자와 선녀들이 정원에서 강강수월래를 추며 백양제를 즐겼다.

 

后歎畢與郎換着 紫錦衣 降自東階 西向再拜 進食白羊 賜衣羊大夫

후는 노래가 끝나자 위화랑과 함께 자금의(紫錦衣)로 갈아입고

동쪽 계단으로부터 내려와 서쪽을 향하여 두 번 절하고

백양(白羊)에게 음식을 올리고 양대부(羊大夫)에게 옷을 내렸다.

 

郎乃再拜於后 后扶郎而起曰 黃河如葦 泰山如垤 郎君愛我 我愛郎君 勿出瑤池

이에 <위화>랑이 후에게 두 번 절하니 후가 <위화>랑을 부축하여 일으키며 말하기를

낭군이 나를 사랑함과 내가 낭군을 사랑함이 황하의 갈대와 태산의 언덕과 같으니

요지(瑤池)의 물은 넘치지 말라.“

 

郎乃抱后入眞元殿 拜玄牝羊 與仙童女皆歌 后進食于郎享 仙臣男女

이에 <위화>랑이 후를 안고 진원전으로 들어가 현빈양(玄牝羊)에게 절을 하고

선녀와 동자와 함께 모두 노래하니

후가 <위화>랑에게 향()을 올리고 선도와 신하 남녀에게 음식을 내렸다.

 

后以立宗殿君生 於白羊之南至 以爲羊精 以其日 行白羊祭 于仙院 洗殿君名曰洗羊

후는 백양의 동짓날에 양정(羊精)으로 <입종立宗>전군이 태어나니

그 날 선원에서 백양제를 지내며 <입종>전군을 씻으며 세양(洗羊)이라고 이름 하였다.

 

지도로(연제) - 입종(491-539)

491년은 백양의 해이다.

<입종立宗>은 지도로와 연제 사이에서 491년 동짓날 태어났다.

 

山宗殿君生於黃龍之重五 以爲龍精 以其日 行黃龍祭于水宮 洗殿君名曰洗龍

<산종山宗>전군은 황룡의 단오일에 용정(龍精)으로 태어나니

그 날 수궁에서 황룡제를 지내며 <산종>전군을 씻으며 세룡(洗龍)이라 이름 하였다.

 

비처(연제) - 산종(488- )

488년은 황룡의 해이다.

산종은 비처와 연제 사이에서 488년 단오일에 태어났다.

 

二君皆與郎年相若 而敬之如太子 逢必拜之 二君之臣不悅曰

吾君乃皇子 豈可先拜于花郞乎

두 군()은 모두 <위화>랑과 함께 나이가 서로 비슷하고 태자를 존경하는 것도 같아서

만나면 반드시 절을 하니 두 군의 신하가 기뻐하지 않으며 말하기를

우리 군은 황자(皇子)인데 어찌 먼저 <위화>랑에게 절을 합니까?”

 

<산종><위화>보다 1살 어리고 <입종>4살 어리다

 

后聞之 召二君責之曰 仙父與朕洗汝等 乃主命之父也 焉敢以骨品輕之乎

自今宜呼郎以父尊可也

후가 이를 듣고 두 군()을 불러 꾸짖기를

선부(仙父)와 짐이 너희들을 씻었으니 임금의 명령으로 아버지인데

감히 골품의 가벼움을 말하는가?

지금부터 마땅히 <위화>랑을 아버지로 존경하여 불러야 할 것이다.“

 

山宗出謂其臣曰 古有 有子七人 而嫁

七人曰 吾等不能孝于母 母之後夫年雖少 於吾等能悅吾母 可以奉之爲父

乃迎其後夫 而養之 天子美之 賜爵其子

今吾父 尊 長我一年 而母后雌伏 而事之 我若自驕 而不敬反 有愧 于七人

汝等 妄自輕論 以傷母 后之志罪莫大焉

<산종>이 나가며 그 신하에게 일러 말하기를

옛날에 어떤 사람이 아들 일곱 명이 있었는데 장가를 들어 일곱 명이 말하기를

우리는 어머니의 후남편의 나이가 너무 어려 어머니에게 효를 할 수 없었으나

아버지로 받들어 우리 어머니를 기쁘게 하고자 그 후남편을 맞이하여 부양하니

천자가 이를 아름답게 여겨 그 자식들에게 작위를 내렸다.‘고 하였다.

지금 우리 아버지는 나보다 한 살 많은데

모후께서 존경하여 자복(雌伏)하여 받들어 모신다.

만약 내가 스스로 교만하여 존경하지 않고 반하면

일곱 명에게 부끄러움이 있을 것이다.

너희들은 스스로 가볍게 말하여 어머니의 마음을 상하게 하니

후의 뜻에 막대한 죄를 짓게 됨을 망각하고 있다.

 

二君之臣不敢復言

두 군의 신하들은 감히 다시는 말하지 않았다.

 

立宗殿君 心慕 郎美 願爲仙臣 郎亦愛君 以爲前方花郞

<입종>전군은 마음으로 위화랑의 미모를 사모하여 <위화>랑의 신하가 되기를 원하니

<위화>랑 역시 군을 사랑하여 전방화랑으로 하였다.

 

君 鳳目 龍顔 豊偉 慈悲 郎徒皆慕之

如天君好 與郎 共寢 后至 則避之 后曰 慕郞之情 朕與汝一也

<입종>전군은 봉황의 눈에 용의 얼굴로 몸집이 크고 자비로워서

낭도들 모두가 그를 사모하여 천군(天君)과 같이 좋아하고

<위화>랑과 함께 같이 잠을 자고 후가 이른 즉 피하니 후가 말하기를

“ <위화>랑을 사모하는 정은 짐과 네가 하나이다.”

 

乃命聯枕 而臥 后與郎戱 而君晏然不動

이에 베개를 나란히 하여 눕도록 명하고

후와 <위화>랑이 놀며 장난을 쳤으나 <입종>전군은 평온하게 누워 움직이지 않았다.

 

后美之曰 此子眞龍種也

후가 이를 아름답게 여겨 말하기를

이 아들은 진실로 용()의 씨이다.”

 

郎乃使君侍后 而持重不肯曰 父尊在臣何爲乎

이에 <위화>랑이 <입종>전군으로 하여금 후를 모시게 하니

자중하여 응낙하지 않으며 말하기를

아버지를 존경하는 신하가 가당하겠습니까?”

 

后乃自引曰 汝父許之 又何自持

이에 후가 스스로 끌어당기며 말하기를

너의 아버지가 허락하는데 또 어찌 자제하는가?“

 

君遂得幸 而重厚 不媚 不能快后心

마침내 <입종>전군이 특별한 사랑()을 받았으나 중후하여 아첨함이 없어

후의 마음을 기쁘게 하지 못하였다.

 

后笑謂郎曰 慕珍吾之子 立宗帝之子也 牛羊純 而無味

후가 웃으며 <위화>랑에게 말하기를

“ <모진>은 나의 아들이고 <입종>은 제의 아들이다.

소와 양은 순수하여 맛이 없다.“

 

郎曰 有味之味在乎 無味 有動之動在乎 無動

故眞人不動 而味不味 而孕不孕 而生不生 而存汝 則動 而不知味味 而不知孕孕

而不知生生 而不知 存只 吾妻 而已

<위화>랑이 말하기를

맛이 있음의 맛이 존재합니까맛은 본래 없습니다.

움직임이 있음의 움직임은 존재합니까음직임은 본래 없습니다.

그러므로 진인(眞人)은 움직이지 않으니

맛은 맛이 아니고 잉태는 잉태가 아니고 태어남은 태어남이 아니며

당신이 존재한 즉 움직이는 것이니

맛으로는 맛을 알지 못하고 잉태로는 잉태를 알지 못하고

태어남으로는 태어남을 알지 못하니

오로지 이미 제 처가 존재함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后笑曰 朕爲汝妻足矣他 不願也

후가 웃으며 말하기를

짐은 당신의 처로 만족할 뿐 더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立宗殿君乃謂諸君諸主曰 父尊之 於母后 有不思識之神力 吾輩 雖欲奪其寵 不可得此

所謂 有子七人 不能孝其母也 吾等 可不敬 父尊乎

이에 <입종>전군이 여러 군()과 여러 낭주(娘主)에게 일러 말하기를

아버지를 존경하는 것은 모후에게 달렸으니 신력(神力)으로도 어쩔 수 없다.

우리가 비록 그 총애를 뺏으려고 하나 얻지 못하니

소위 일곱 명의 아들이 있으나 그 어머니에게 효도를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우리가 어찌 아버지에게 불경하겠는가?“

 

普賢曰 汝言是也 天地之間 色道最重 吾母之色 卽吾父也

<보현>이 말하기를

너의 말이 옳다.

천지간에 색도(色道)가 제일 중한데 우리 어머니의 색()은 바로 우리 아버지이다.“

 

於是諸君主 皆奉郎象 而配后福之

이로써 여러 군과 낭주 모두가 <위화>랑의 상()을 받들어 후의 배필로 하고

복을 빌었다.

 

后命 瓜翁之女 羊皮奾子 使 其夫 造之 世稱 羊皮象 骨門買之 以爲色象 奾子 致財萬計

후가 오이 밭 할아버지의 딸 양피선자(羊皮奾子)에게 명하여

그 남편으로 하여금 상()을 조각하게 하니 세칭 양피상(羊皮象)인데

골문에서 이를 사서 상()에 색을 칠하니

선자(奾子)는 여러 가지 계책으로 재물을 모았다.

 

양피상(羊皮象)은 위화랑의 얼굴을 양피(羊皮)에 그린 가면이다.

 

是年冬 后與郎從帝 於海宮

이 해 겨울 후와 함께 <위화>랑이 제를 따라 해궁에 들어갔다.

 

山宗殿君妃 沙龍公主 亦有寵於帝 從之

<산종>전군 비() <사룡沙龍>공주 역시 제에게 총애가 있어 따라갔다.

 

지도로(사세) - 사룡(486- )

 

后乃與郎入 日月池 帝命 山宗 召之

이에 후가 <위화>랑과 함께 일월지(日月池)에 들어가니

제가 <산종>에게 명하여 그들을 불렀다.

 

時 沙龍生山宗子汕宗 甚美 后愛之

때에 <사룡沙龍><산종山宗>의 아들 <산종汕宗>을 낳았는데

매우 아름다워 후가 사랑하였다.

 

산종(사룡) - 산종汕宗(508- )

 

山宗知 后無歸意 佯言 山(?)宗病 呼母后

<산종山宗>이 후가 돌아올 마음이 없는 것을 알고

거짓말로 <산종汕宗>이 병이 나서 모후(母后)를 부른다고 하였다.

 

后謂郎曰 汕宗之兆何如

후가 <위화>랑에게 일러 말하기를

“ <산종>의 병 조짐이 어떠한가?”

 

郎曰 后歸 則快

<위화>랑이 말하기를

후께서 가시면 즉시 나을 것입니다.”

 

后乃歸之乳汕宗曰 朕爲汝 而來 非爲汝祖 而來

이에 후가 가서 <산종汕宗>에게 젖을 먹이며 말하기를

짐이 너를 위하여 온 것이지 너의 할머니가 되기 위하여 온 것이 아니다.”

 

帝乃名汕宗宮曰 后來宮

이에 제가 산종궁(汕宗宮)을 후래궁(后來宮)이라고 이름 하였다.

 

黃牛之元旦 仙徒朝于海宮 者千人

509년 설날, 선도들이 해궁에서 조회를 하였는데 천 명이 모였다.

 

后命徒頭分宿漁家 漁人皆歡喜爭 以妻女獻 仙徒

후가 대두에게 명하여 나누어 어부들의 집에 자도록 하니

어부들 모두가 좋아하여 다투어 처와 딸을 선도들에게 바쳤다.

 

是年 漁女 得仙徒子 者七十人 皆自仙院 賞之

이 해 어부의 딸이 선도의 아들을 얻은 자가 칠십 명인데

모두 스스로 선원(仙院)으로 들어오니 상을 주었다.

 

遂置海宮 村 腥魚之鄕 一時化爲神仙窟 村人皆 奉羊皮象 以報郎德

마침내 해궁에 비린내 나는 고기 마을이 생기니 잠시 신선(神仙) 동굴처럼 되었고

마을 사람들 모두가 양피상(羊皮象)을 받들어 <위화>랑의 덕에 보답하였다.

 

是年 后年郎年合 而分之 爲三十五

이 해 후의 나이와 <위화>랑의 나이를 합하여 나누니 35가 되었다.

 

연제 47, 위화랑 23살이다.

 

后謂郎曰 我夫二十三 而爲此四十七 女爲三五 朕甚不安

후가 <위화>랑에게 일러 말하기를

나의 남편은 23인데 이와 같이 47이 되고 여자가 35명이 되니 짐은 심이 불안하다.”

 

어부의 딸 35명이 선원에 들어오니

연제가 위화의 나이 23에 자기 나이 47을 나눈 수가 35이니 불안하다는 것이다.

 

郎曰 汝陰尙艾 吾陽已壯 何言年乎

위화랑이 말하기를

당신은 음()으로 아직도 예쁘고

나는 양()으로 이미 장성한데 나이가 무슨 말입니까?

 

后曰 此言足 以爲吾夫

후가 말하기를

나의 남편으로 여기기엔 이 말이면 족하다.”

 

乃行五七祭 又以黃牛 爲坤母

이에 오칠제(五七祭)를 지내고 또 황우(黃牛)를 곤모(坤母)로 하였다.

 

乃以三月丑日 行黃牛祭

이에 3월 축일에 황우제(黃牛祭)를 지냈다.

 

后以四十九彩 班襴翟衣 加翠花 晥朝 于樹王 而誦經 求匹郎

후가 마흔 아홉 채색의 반란적의(班襴翟衣)를 입고 비취 비녀를 꼽고

밝은 아침에 수왕 앞에서 경을 외우며 <위화>랑을 배필로 빌었다.

 

以雪花一品神衣 岸(?)着 折風朱蒙 足 穿珠 履魚襪 蹁蹮 而出 后就 而拜之

<위화>랑이  설화(雪花) 무늬의 일품(一品) 신의(神衣)를 입고

머리에는 붉고 두터운 고깔모를 쓰고

발에는 구슬을 꿴 고기 무늬가 있는 버선을 신고

비틀거리며 춤추면서 나오니 후가 나아가 절을 하였다.

 

郎翾飛旋避后逐 而拜之

<위화>랑이 재빠르게 돌아서 피하며 후를 밀치며 절을 하였다.

 

遂相對舞 環樹 漸相逼近

마침내 수왕을 돌며 서로 마주보며 춤을 추니 점점 서로가 가까워졌다.

 

后乃抱郎 以帶繫之 郎不得 上天

이에 후가 <위화>랑을 안고 허리띠를 연결하니 위화랑은 부득이 하늘로 올라갔다.

 

遂爲后 虜藏 以金屋醉 以金醬逼 以身香

마침내 후는 금옥(金屋)에 취하고 금장(金醬)에 다그치고

몸의 향기에 사로잡혀 감추어졌다.

 

郎遂忘玉淸 而染 於色天 弄后

마침내 <위화>랑이 옥청(玉淸)을 망각하여 색계를 더럽혀 후를 희롱하였다.

 

옥청(玉淸) : 도교에서 신선의 하나

 

百端遂入眞元殿 與后合歡 名曰薦黃

마침내 만감이 교차하여 진원전(眞元殿)에 들어와 후와 더불어 합환하니

이름 하여 천황(薦黃)이라 하였다.

 

後來 帝文郞 作詩 解其詞曰

훗날 <제문>랑이 시를 지어 풀어 노래하기를

 

妙黃牛之龍月兮

신묘한 509년 음력 3월이여!

 

乃三五之吉緣 聖坤母之豊美兮

서른다섯 명과의 길한 인연에 성스러운 곤모(坤母)의 풍만한 아름다움이여!

 

浴香湯 而漱菳 加翟衣 以七七兮

향기로운 욕탕에서 양치질하고 입은 대례복 마흔아홉 빛깔이여!

 

翠花旒 而瓊鈿 愛婚凰之 緩步兮

옥과 금으로 장식한 비취비녀 면류관을 쓰고 사랑을 구혼하는 봉황의 느린 걸음이여!

 

點一點 而生蓮 依玉樹 而盤桓兮

한 점 또 한 점 연꽃이 피니 옥수(玉樹)에 의존하는 서성거림이여!

 

옥수(玉樹) : 아름다운 나무라는 뜻으로,

재주가 뛰어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懷大雌之雄仙誦眞經 而子求兮

큰 암컷이 수컷 신선을 품고 진경을 외우며 자식을 빔이여!

 

乃薦芳 而奠鱻 神風動 而鼓鳴兮

향기로운 생선을 제물로 올리니 신풍(神風)이 일어나 북을 울림이여!

 

大仙衆之 鶱騫美 吾母之芙蓉兮

신선이 많이 모임은 이지러진 아름다움이니 우리 어머니의 부용(芙蓉)이여!

 

矢桃花之 好鬈 踐玉祚 而奉璋兮

복숭아꽃을 화살로 쏘아 머리카락을 땋아 옥좌를 밟으니 홀()을 받들어 모심이여!

 

香籟 襲 而洗湔上金臺 而搖鈴兮

향기로운 퉁소 소리가 엄습하여 금대(金臺)에 오르니 방울의 흔들림이여!

 

好琅琅之 碧瑄 蛾眉 濃於春情兮

좋은 옥 푸른 옥과 같은 고운 눈썹은 춘정(春情)에 농후함이여!

 

蕙心躍 於色淵 依闌干 而㽔頽兮

색연(色淵)에 고운 마음이 뛰어 난간에 기대어 눈물이 흘러내리니 무너져 내림이여!

 

愛玉膚之 豊姸 天虹照 于檀庭兮

사랑스런 옥체는 풍만하고 아름다워 박달나무 정원에 무지개를 비춤이여!

 

阿郞降 而蹁蹮 曵羽衣之雪白兮

낭군이 내려와 비틀거려 춤추며 눈같이 흰 깃털 옷을 끌어당김이여!

 

戴絳冠 而綠鬋 神后驚 而走抱兮

녹색 귀밑머리에 진홍 관을 머리에 쓰고 내려오니 신후가 놀라 달려가 포옹함이여!

 

輕脫身 而翯翾 母矢心 而獻身兮

가볍게 몸을 해탈하여 빠르게 날아 어미의 마음에 화살을 쏘아 몸을 바침이여!

 

拜深深 而敬虔 美 吾郎之天華兮

경건한 마음으로 머리 숙여 절하니 내 낭군의 아름다움은 하늘의 꽃과 같음이여!

 

仰月態之 幽姢白魚襪 而珠履兮

그윽이 빛나는 흰 고기와 구슬이 달린 버선을 신고 달을 바라보는 자태여!

 

胡婉舞 而佪儃 拜一拜 而交舞兮

박달나무 정원을 돌며 호완무(胡婉舞)를 추며 서로 절하고 또 절하며 추는 춤이여!

 

乃相親 而接連 雌心動 而蓬蓬兮

이윽고 서로 친하여 접하고 이어서 암컷의 마음이 움직여 헝클어짐이여!

 

若走水 而難塡 乃豹變 而抱郎兮

만약 물이 흘러 메우기 어려우면 표변(豹變)하니 낭군을 포옹함이여!

 

표변(豹變) : 표범의 무늬가 가을이 되면 아름다워진다는 뜻으로,

허물을 고쳐 말과 행동이 뚜렷이 달라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在右抃 而環旋 授乳房 而親膚兮

오른쪽에 있어 손뼉을 치며 둥글게 돌며 유방을 만지게 하여 살갗을 맞댐이여!

 

披御衣 而高褰 何雄儀之神神兮

어의를 찢어 높이 드니 웅의지신(雄儀之神)의 신묘함이여!

 

欽牝德之 如天奉金屋 而相藏兮

암컷의 덕을 공경함이 하늘과 같아 금옥(金屋)을 받들어 모시고 서로 감춤이여!

 

具八彩 以爲船 七奾舞 而散花兮

여덟 빛깔로 채색한 배를 구비하니 일곱 선자가 춤을 추며 꽃을 날림이여!

 

五佯(?)歌 而龍牽琅玕 鳴 而珊珊兮

다섯 양()이 노래하고 용()이 낭간(琅玕)을 끄니 쟁그랑거림이여!

 

낭간(琅玕) : 옥과 비슷한 아름다운 돌

 

大鼓震 而鼘鼘 鴛鴦吻 而着湦兮

큰 북이 둥둥 울리고 원앙이 입 맞추니 달라붙음이여!

 

兩情洽 而狎憐 群臣呼 而籃輿兮

두 정이 흡족하여 어여삐 여김이 갈마드니 여러 신하가 부르는 남녀(籃輿)!

 

入眞元之 宝氈 獻茶禮 于雙皇兮

진원전(眞元殿)에 들어가 보전(宝氈)에 앉으니 두 황제에게 다례(茶禮)를 바침이여!

 

封嵩雉 而肥豣 鳳垂翼 而哺凰兮

높은 꿩을 살찐 돼지에 봉()하니 수컷 봉황이 수직으로 날아 암컷 봉황을 먹임이여!

 

深目笑 而口傳 玉帳下 而鹿鳴兮

깊숙이 눈웃음을 지으며 휘장아래에서 입으로 전하니 사슴의 울음이여!

 

乃薦黃 而授玄百子舞 而繞庭兮

이윽고 천황(薦黃)으로 그윽한 백자무(百子舞)를 전수하여 정원을 휘감음이여!

 

娛吾坤之 配乾 投鴻胖 於高茵兮

우리 곤모(坤母)가 하늘을 배필로 즐기니 높은 돗자리에 살찐 기러기를 던짐이여!

 

好雋美之 皐攬 花君之香腰兮

못에서 잡은 살찌고 맛있는 고기를 좋아하는 화군(花君)의 향기 나는 허리여!

 

喜龍頭之 蜿蜒 天門圻 而濺芳兮

구불구불한 용의 머리를 좋아함은 천문(天門) 가에 향기를 흩뿌림이여!

 

飛龍穿而 蠕蠕 雲雨深 於巫山兮

용이 날아 구멍을 뚫고 꿈틀거리는 무산(巫山)에 쏟아지는 운우(雲雨)!

 

水火交於楠楩 乍遠近 而貪婪兮

녹나무에서 음양이 상교하여 잠시 멀었다 가까워지니 지나치게 탐함이여!

 

肥容滑 而脗窴 摩耶脹 而䐏腬兮

통통한 얼굴이 미끄럽게 꼭 맞아 마야(摩耶)를 배부르게 하니 살찐 맛있는 고기여!

 

玉門腴 而脧脧 消人間之邪念兮

옥문(玉門)이 살쪄 흘겨보니 사라지는 인간의 그릇된 생각이여!

 

乃鉾祓 而孔蠲 日月合於天皐兮

이에 칼끝으로 구멍을 밝게 하여 부정(不淨)을 없애니 하늘 못에서 일월이 합덕함이여!

 

豊葦之蒸纒 龍虎鬪於瓊宮()

풍성한 갈대의 찌고 얽히는 경궁(瓊宮)에서의 용호(龍虎)의 다툼이여!

 

妙玉螭之 蟠跧 尋猉獜之 舊盟兮

신묘한 교룡(蛟龍)이 엎드려 싸서 기린(猉獜)을 찾는 예전에 맺은 굳은 맹세여!

 

見鹿王之 精麉 耘膏䐃 而薰兮

녹왕(鹿王)의 힘센 정()은 살찐 근육으로 김을 매는 향 풀의 향과 같음이여!

 

若葦勹甫醉荒 而風癲 奠雁 首而緊茝兮

갈대가 크게 취하여 잡초를 싸고 바람이 전안(奠雁)에 미치니

머리가 굳게 얽힌 구리때 향초여!

 

전안(奠雁) : 옛날 결혼식에서 친영(親迎)할 때 기러기로 폐백 삼는 것.

 

吐白龍于天 胭雌魚呑 而脉脉兮

백룡을 하늘에 토하고 암컷 고기를 목구멍으로 삼키는 은근한 정()이여!

 

乃閤目 而柔眠 洗玉瑱 而金聘()

이에 잠시 눈을 감고 귀를 막아 입을 다물어 마중함이여!

 

奉聖躬于蒼輧 好童艾之舞蹈兮

푸른 수레에서 옥체를 받들어 모심은 좋은 동자의 춤을 춤이여!

 

雙雙出 而移躔 仰新媾之龍顔兮

쌍쌍이 나가서 물러나 신부의 용안을 바라봄이여!

 

抱連理 而益 㛚衆山呼 而羅拜兮

연리(連理)의 정을 더하여 포옹하니 모두 만세를 부르고 돌아가며 절을 올림이여!

 

聖齒啓而 璨嫣 宴仙徒于厦屋兮

성스러운 치아를 드러내며 생긋이 웃으며 큰집에서 선도에게 잔치를 베품이여!

 

㗖火? 而羊 饘舖 錦繡 賞賜舖兮

죽을 쑤어 양에게 먹이며 비단 옷을 상으로 내림이여!

 

酌玉髓 而金涎 喜聖腿之白賦兮

골수와 침을 따르고 넓적다리를 나누어 줌을 기뻐함이여!

 

衆攀舞 而迱邅?何坤牛之溫柔兮

모두들 비스듬히 머뭇거리며 춤추니 곤우(坤牛)의 부드러운 온정이여!

 

愛乾馬之 聖賢 讚雙德 而吐詞兮

건마(乾馬)를 사랑하는 성현(聖賢)이 한 쌍의 덕을 찬하여 노래 부름이여!

 

願骨筆 而肝菚 獻仙籌 而祝壽兮

온 몸으로 바라니 신선의 산대에 바쳐 장수를 축원함이여!

 

 

希碧海 而桑田 后受詞 與郎 郎歌之 如例

벽해(碧海)가 상전(桑田)이 되기를 바라

후가 <위화>랑과 함께 노래를 받아 <위화>랑이 예와 같이 노래하였다.

 

時城中人煙稠密 皆陋樑 而盖尾衣帛食肉

때에 성 안에 사람이 빽빽하여 모든 대들보가 비좁고

비단 옷을 입고 고기를 먹는 자들이 꼬리를 이었다.

 

四山樹木?密 虎豹無數

네 산에 수목이 울창하여 호랑이와 표범이 무수히 많았다.

 

仙徒有欖人 善捕虎 納其皮于仙院

故后命革人作大裘 與郎共衣之

선도 중에 람인(欖人)이 있어 호랑이를 잘 잡아 그 가죽을 선원(仙院)에 보내니

후가 혁인(革人)에게 명하여 큰 가죽 옷을 만들도록 하여

<위화>랑과 함께 같이 입었다.

 

是年 后欲居 岵岺 柿林 命欖人 設穽殄獸 得五十頭虎 皆遠遁山 民安之

이 해 후가 호령(岵岺)의 감나무 숲에 거주하고자 하여

람인<欖人>에게 명하여 짐승을 잡는 함정을 설치하여 호랑이 50마리를 잡아

모두 산에서 멀리 달아나게 하니 백성이 편안해졌다.

 

仙臣賀之曰 古無如此捕虎 今剿之 皆我仙母仙父之德也

선도와 신하들이 이를 축하하며 말하기를

옛적에는 이와 같이 호랑이를 잡은 바가 없습니다.

지금 호랑이를 쫓아 없애니 모두가 선모(仙母)와 선부(仙父)의 덕입니다.“

 

后謂郎曰 抑吾父之所致乎

후가 <위화>랑에게 일러 말하기를

아마도 내 아버지 탓인가?”

 

郎曰 物皆成壞有時 吾與汝 雖有神力 不可施 于不施 况虎者山業也 豈可無故 而驅之乎

惟其不用命者 解其形 而已

<위화>랑이 말하기를

만물은 이루고 무너지는 때가 있습니다.

나와 당신에게 비록 신력(神力)이 있어도 베풀지 않는 것에는 베풀 수 없습니다.

하물며 호랑이라는 것은 산의 업()인데 어찌 무고하게 쫓아내었겠습니까?

오로지 명을 따르지 않는 자는 이미 그 형체가 풀어지는 것입니다.“

 

后曰 吾夫此言足 以治虎 故所以致此也

후가 말하기를

내 남편의 이 말은 호랑이를 다스리는 데 족하니

다스림이라는 것은 이와 같은 것이다.”

 

乃命欖人禱之曰 仙母仙父 理化物時 宜爾山業 壞者解之 成者育之 順者安之

이에 람인(欖人)에게 명하여 빌도록 하고 말하기를

선모(仙母)와 선부(仙父)는 만물과 때를 다스리고 교화하니

마땅히 너는 산()의 업()으로 무너진 자는 흩어지게 하고

이룬 자는 키우고 순한 자는 편안하게 하라

 

時源花淺璜有娠 太子問於郎曰 誰可繼花

때에 원화 <천황淺璜>이 임신하여 태자가 <위화>랑에게 묻기를

누가 원화를 계승함이 옳은가?”

 

郎曰 臣與后合歡 他女皆 有感染 獨苔玉 不然 一依仙法 可以繼之

위화랑이 말하기를

신과 더불어 후가 합환하여 다른 여인들 모두는 감염되었는데

홀로 <태옥苔玉>은 감염되지 않고 선법 하나에 의존하고 있으니 계승할 만 합니다.“

 

太子許之 苔玉者 阿珍宗之女也 母曰百濟王女 宝玉公主也

태자가 이를 허락하였다.

<태옥苔玉>은 아진종의 딸이다.

어머니는 백제 왕녀 <보옥宝玉> 공주이다.

 

습보(보량) - 아진종(451-511)

경사慶司(진씨) - 보옥(452?-521)

아진종(보옥) - 태옥

 

<경사慶司(429-475)>는 백제 개로왕(재위 455-474)이다.

 

性精敏淸高 與淺璜之溫暖腆美 各一其趣白是

성품은 총명하고 민첩하였으며 맑고 고귀하여

천황의 따뜻하고 두터운 아름다움과 함께 각각 하나의 백미를 이루었다.

 

源花皆 自淨林出 淨林者 仙院女衆也

원화(源花)는 모두 정림(淨林) 출신이고 정림(淨林)은 선원(仙院) 여인들 모임이다.

 

凡仙門女子生五月 而受淨于仙院

무릇 선문(仙門)의 여자는 5월에 선원에서 정()을 받아 태어난다.

 

三歲五歲七歲九歲十二歲十五歲 皆入元淨 故曰淨林

3, 5, 7, 9, 12, 15세 모두는 원정(元淨)으로 들어오니 정림(淨林)이라 한다.

 

淨林之法 五六歲入童子番至十三歲 入仙院奉供者曰婢子 在家出入者曰姹子

정림(淨林)의 법은 5,6세에 동자(童子)로 들어와

13세에 이르러 선원으로 들어가 봉공(奉供)하는 자를 비자(婢子)라 하고

집에서 선원에 출입하는 자를 택자(姹子)라 한다.

 

婢子得郎及太子之寵幸 入爲瓊林 乃爲天子之嬪妾婢姹

비자(婢子)<위화>랑과 태자의 총행(寵幸)을 받으면 경림(瓊林)이 되고

천자의 빈첩(嬪妾)과 비택(婢姹)이 된다.

 

年過二十 皆奉仙院之命 有夫役于院內者曰奾子 院外者曰壽子

通道 則爲巫師 能文章書畵琴碁歌舞 則爲仙史

20세가 넘어 선원의 명을 받들어 선원 내에서 부역하는 자를 선자(奾子)라 하고

선원 밖에서 부역하는 자를 수자(壽子)라 하고 도()를 통하면 무사(巫師)가 되고

문장, 글, 그림, 가야금, 바둑, 가무에 능하면 선사(仙史)가 된다.

 

雖生子女 皆以淨籍 爲榮 故不肯脫籍 媚於仙臣 而保其籍

만약 자녀를 낳아 모두 정적(淨籍)에 올리면 영화롭게 되니

선신(仙臣)에게 아첨하여도 정적에서 지우지 않고 그 정적을 보존하였다.

 

宰相之妻 往往與徒頭 相通者 欲典其淨也

재상의 처로 왕왕 도두(徒頭)와 상통한 자도 그 정적(淨籍)에 올리고자 하였다.

 

一時 骨門士大夫女子 風氣 重 仙院 而輕 稟母軍母

한때 골문 사대부 여인들의 풍기(風氣)

선원을 중하게 하고 품모(稟母), 군모(軍母)를 가볍게 하였다.

 

골문 사대부 여인들이 품모 군모가 되는 것 보다

선원에 들어가는 것을 더 귀중하게 여겼다는 것이다.

 

若奉枕於仙院一夜 則淨其身 而去其汚 福祿自生云爾

만약 선원에서 하루 밤을 잔 즉

그 몸을 깨끗이 하여 더러움을 없애면 복록이 스스로 생긴다고 하였다.

 

五月上仙布萇卒 年六十九 萇以好淵之子 布兒之外孫

5월 상선(上仙) <포장布萇>이 죽었다.

나이 69세로 <포장><호연好淵>의 아들로 <포아布兒>의 외손자이다.

 

호연(포희) - 포장(441-509)

 

無仙術道學 只以酒色一世

선술(仙術)과 도학(道學)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주색(酒色)으로 한평생을 지냈다.

 

其妻蟾京 剡臣公胞妹也

그 처 <섬경蟾京><염신剡臣>공의 포매(胞妹)이다.

 

백흔(조리) - 염신(447-503)

물로(조리) - 섬경(452-516)

 

善碁時稱碁聖 與仙臣羊秀別處

바둑을 잘 두어 이때 기성(碁聖)으로 불리었으며

선신(仙臣) <양수羊秀>와 더불어 별처(別處)에 있었다.

 

萇卒 而未及其終聞喪 而至 與秀 對碁 不言喪事

<포장>이 죽자 문상(聞喪)이 끝나기 전에 이르러

<양수>와 더불어 바둑을 두며 초상에 관한 일은 말하지 않았다.

 

后以郎之姑 厚待之 京常言於后曰 臣之有秀 如陛下之有郎

후가 <위화>랑의 고모로서 후하게 대우하니 <섬경>이 항상 후에게 말하기를

신에게 <양수>가 있는 것은 폐하에게 <위화>랑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때 <섬경> 58, <양수> 25세이다.

 

后笑而許之 以秀爲徒頭 年才二十五也

후가 웃으며 <양수>를 도두로 삼을 것을 허락하니 나이 겨우 25세이다.

 

能歌舞 善碁 常服白衣 自稱白鴗

가무에 능하고 바둑을 잘 두고 항상 흰 옷을 입고는

스스로 백립(白鴗 : 흰 물총새)이라고 하였다.

 

身齒若編珠 脣若赤脂 皓膚明眸 無一點 烟霞氣盖 亦謫仙也

치아는 구슬을 꿴 것 같고 입술을 붉은 연지를 바른 것 같고

흰 피부와 맑은 눈동자는 점하나 없으니

안개와 노을이 기()를 덮어 인간 세상에 내려온 적선(謫仙) 같았다.

 

以萇弟仁陽爲上仙

<포장>의 동생 <인양仁陽>을 상선(上仙)으로 하였다.

 

호연(새황) - 인양(450-512)

 

六月皐王宮成 乃行皐儀七日

6월 고왕궁(皐王宮)이 완공되어 7일 동안 고왕궁의 의식을 행하였다.

 

帝聞蟾京娠羊秀子 奇 其老年之胎 命行吉于皐王宮

加秀爵二級 命參朝賀 夫妻 同行 皆用蟾京 骨品 紫秩

제가 <섬경><양수>의 자식을 임신하였다는 말을 듣고

그 늙은 나이의 수태를 기특하게 여겨 고왕궁에서 혼례를 치르도록 명하고

<양수>에게 두 계급의 작위를 더하고 부부가 함께

<섬경>이 부리는 모든 골품(骨品)과 자의(紫衣)의 품계를 받은 자들을 동행하여

조하에 참석토록 명하였다.

 

時人榮之 仙臣等 爭媚于公卿 寡婦以爲登龍之門

때에 사람들이 이를 영화롭게 여겨 선신(仙臣) 등은 다투어 공경(公卿)에게 아첨하니

과부(寡婦)는 출세의 문이 되었다.

 

伐智妻羅德 毗羅妻眉闌 亦與蟾京 往來 誘引仙院 美徒 以爲長夜之樂曰

人生如草露 不樂 何爲

<벌지伐智>의 처 <나덕羅德>, <비라毗羅>의 처 <미란眉闌>

역시 <섬경>과 더불어 왕래하여

아름다운 선도(仙徒)들을 선원으로 유인하여 밤을 세며 즐기며 말하기를

인생은 풀잎에 맺힌 이슬과 같으니 어찌 즐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호원(황아) - 벌지(437-504)

자비(파호) - 비라(451-505)

 

眉闌多財 而豊美 仙臣等 呼作膏凰

<미란>은 재물이 많고 풍만하고 아름다워

선신(仙臣) 등이 고봉(膏凰 : 기름진 봉황)이라고 이름 지어 불렀다.

 

仙母眉闌者 慈悲之女

선모 <미란眉闌>은 자비의 딸이다.

 

자비(미량) - 미란(457- )

이때 미란 53세이다.

 

母曰美梁 亦登欣公女 故於后 實爲從子女也 眉闌長后六年

어머니는 <미량美梁>인데 <등흔登欣>공의 딸이므로

후에게는 실제로 언니의 딸인데 <미란>은 후보다 6살 많았다.

 

등흔(보미) - 미량(436- )(자비) - 미란(457- )

등흔(모량) - 연제(463-525)

 

豊偉恰如后 亦媚於后曰 姑皇 宇宙之精華 魏郎乾坤之眞粹也

풍만하고 장대함은 후와 같은데 후에게 아첨하여 말하기를

고모 황제는 우주(宇宙)의 정화(精華)이고

<위화>랑은 건곤(乾坤)의 진수(眞粹)입니다.”

 

后亦累幸其宅 賜宴闌座上

후 역시 그 집에 누차 행차하여 잔치를 열고 마루 난간 상석에 앉았다.

 

常有六七美童子 年皆十七八

항상 6,7명의 아름다운 동자(童子)가 있었는데 나이는 모두 17,8세였다.

 

敎以歌舞 美酒爛肉 而娛之醉 則枕童子 而臥

가무를 가르치고 맛이 좋은 술과 삶은 고기를 즐기며 취한 즉 동자를 베고 누웠다.

 

諸童 以香湯潔其身 輿于肩 而入寢

동자들은 향기로운 탕에서 몸을 깨끗이 하여 수레를 어깨에 메고 침실로 들어왔다.

 

得旨者 侍於左右 餘皆待于帳外

명을 받은 자는 좌우에서 대기하고 나머지는 모두 휘장 밖에서 대기하였다.

 

有角治本 非仙徒以寵得入仙院 仙臣皆媚于眉闌 而累加其秩

근본을 치료하는데 재주가 뛰어나 선도가 아닌 사람이 총애를 받아 선원에 들어오니

선신 모두가 <미란>에게 아첨하여 그 녹봉을 받는 사람이 누차 증가하였다.

 

毗己妻悅凰者 比太公女也 與智登同母 卽心凰宮也 與其子大悅 悅之

<비기毗己>의 처 <열황悅凰><비태比太>공의 딸이다.

<지등智登>과 더불어 동모(同母)인 즉 어머니는 <심황心凰>궁이다.

그 아들 <대열大悅>과 더불어 기쁨을 나누었다.

 

미해(산황) - 심황(423-480)

순실(청아) - 등흔(416-483)(심황) - 지등(445-507)

실성(아로) - 비태(416-481)(심황) - 열황(447- )

자비(파호) - 비처(436-500 21대 소지왕 재위 479-499)

눌지(파호) - 비기(445-504)(열황) - 대열(463- )

                                                지열(468- )

 

毗己薨大悅娶其繼母園兒 薄於悅凰 悅乃捨身于仙院 爲徒頭執網妻

<비기>가 죽자 <대열>은 그 계모 <원아園兒>에게 장가들어 <열황>에게 야박하게 하니

<열황>은 이에 선원에 몸을 던져 도두 <집망執網>의 처가 되었다.

 

비처(원군) - 원아(468- )

 

時悅 年已六十三 網才三十

때에 <열황>은 나이가 이미 63세이고 <집망>은 겨우 30세였다.

 

悅女知悅 乃厚都殿君之妃 而亦與網通 而娠

<열황>의 딸 <지열知悅><후도厚都>전군의 비()

역시 <집망>과 통정하여 임신하였다.

 

지도로(라황) - 후도(468-533)

 

德智公 寡妻牟凌 乃后之胞妹也 與知悅 園兒 厚都 同年

<덕지德智>공의 처로 과부가 된 <모릉牟凌>은 후의 포매(胞妹)이다.

<지열>, <원아>, <후도>와 더불어 같은 나이이다.

 

총덕(황아) - 덕지(440-503)

등흔(모량) - 연제(463-525)

?(모량) - 모릉(468- )

 

厚都善畵 故皆從 而學之 網母初爲厚都婢 網美 而有畵才

<후도>는 그림을 잘 그려서 모두가 그를 따르고 배웠다.

<집망>의 어머니가 처음으로 <후도>의 노비가 되었는데

<집망>은 아름답고 그림에 재주가 있었다.

 

厚都愛之 盡以其妙授之 有出藍之譽 仙圖多出其手

<후도><집망>을 사랑하여 마음을 다하여 그 신묘한 그림 그리는 재주를 전수하니

선원의 그림은 <집망>의 손에서 많이 그려졌다.

 

牟凌園兒幷皆慕其才 而學之 遂作雌雄 網曰

遊於藝者 先 以光明 爲要無相 陰妬衆諾之呼 作藝友

<모릉><원아>가 나란히 그 재주를 사모하여 배워서

마침내 자웅(雌雄)을 겨루니 <집망>이 말하기를

예술에 노니는 것은 먼저 빛의 밝음으로

형상에 구애되지 않는 초연한 경지에 이르는 것인데

()이 여러 사람을 질투하는 것을 허락하겠는가?

우정으로 예술을 겨루는 것이다.“

 

悅凰 以其年 穀百石 盡委 於網 以毗己宝玩 許之

<열황>이 그 해 곡식 백 석과 <비기>의 보물과 골동품을 <집망>에게 맡기고자 하니

허락하였다.

 

網乃以其財 結豪傑 而出入 王公之門 太子亦以其才愛之

이에 <집망>은 그 재물로 호걸과 사귀어 왕공(王公)의 문을 출입하니

태자 역시 그 재주를 사랑하였다.

 

至是 皆言 執網 亦用羊秀例 角治 亦欲爲眉闌夫累請仙后

이에 이르러 여러 사람의 말이 <집망> 역시 <양수羊秀>의 예에 따르도록 하고

<각치角治> 역시 <미란>의 남편으로 하고자 한다고 누차 선후에게 청하였다.

 

后謂郎曰 公卿之妻老 則皆爲仙臣之妻 而役于仙院 不亦好乎

후가 <위화>랑에게 일러 말하기를

공경의 처가 늙은 즉 모두 선신(仙臣)의 처로 하여

선원에서 부역토록 하면 역시 좋지 않겠는가?”

 

郎曰 臣以微賤得配陛 下骨議不平 若以公卿之妻 盡爲仙臣之妻

則又恐有議執網角治等 內實爲夫 而專其宅母 何必行吉于仙院 而重其責乎

<위화>랑이 말하기를

신이 미천하여 폐하를 배우자로 얻어 골이 낮다하여 불평을 논하는데

만약 공경의 처를 모두 선신의 처로 한 즉

<집망><각치> 등은 안으로는 실제 남편으로

그 택모를 마음대로 할까 염려되는데

하필이면 선원에서 혼례를 치르면 그 책임이 막중하지 않겠습니까?

 

后乃然之謂眉闌曰 汝以五十三 春欲吉二十之兒 恐不得長也

不如以臣嬖之勿激骨議也

朕與郎亦未嘗行吉于外者此也

이에 후가 그런가 하며 <미란>에게 일러 말하기를

“ 너는 나이가 53살인데 회춘할 욕심으로 20살의 아이가 길하다 하니

장수하지 못할까 염려된다.

차라리 폐신을 두어 뼈를 부딪치게 하지 못하게 하는 것 보다 못하다.

짐과 낭군 역시 아직까지 이와 같이 밖에서 혼례를 치룬 적이 없다.“

 

於是 仙議不一 彌月不決 太子問於宣登曰

主仙院者 欲吉 主骨議者非之 骨仙 異名 而一體如之何 則可乎

이로써 선원의 논의가 일치하지 않아 한 달 동안 해결되지 않으니

태자가 <선등宣登>에게 물어 말하기를

선원주(仙院主)는 길()을 욕망하고 골주(骨主)는 아니라고 하는데

()과 선()이 다르니 어찌하면 한 몸이 되겠습니까?“

 

지도로(찬황) - 선등(469-526)

 

宣登曰 上古之世 淳厚 不爭 兄弟姊妹一室 而居世守宝玩

後世澆薄貪財 子妻其母 弟妻其嫂 夷風也 不可法

今仙臣等 欲依骨女 而進其爵 則可也 奪其宝玩不可也

夫男女之際 人不可 强宜令從其所好 但其世守宝玩 爵祿不可與之如是

則骨議可平 而仙慾止矣

<선등>이 말하기를

옛날에는 순박하고 인정이 두터워 다투지 않고

형제자매가 한 집에 살며 대대로 보물과 골동품을 지켰습니다.

후대에 세상이 야박하여 재물을 탐하여 아들이 그 어미를 처로 하고

동생이 형수를 처로 하는 것은 이족(夷族)의 풍속이니 법으로는 불가합니다.

지금 선신(仙臣) 등이 골녀(骨女)에 의존하여 그 작위에 나아가는 것은 옳은 일이니

그 보물과 골동품을 빼앗는 것은 불가합니다.

무릇 남녀의 사귐은 사람이 강제로 법령으로 그 좋아하는 바를 따르게 할 수 없습니다.

다만 그 세대에 보물과 골동품을 지켜 작위와 녹봉을 이와 같이 주는 것은 불가한 즉

()의 논의를 고르게 하는 것이 옳으니 선()의 욕망을 금하여야 합니다.“

 

<선등>은 유목민인 이족(夷族)의 풍속으로 집안의 재산을 보전하기 위하여

형사취수와 아들이 어미를 증()하는 풍속이 있었음을 말하고 있다.

 

太子善之乃詔曰 公卿之妻 降嫁 仙徒 古未有也

年齒倍高容皃頹落 則雖子侄 不肯相慰 况外人乎

仙徒媚于一時者 欲得其爵祿宝玩也

宜爾大小骨女 勿迷於邪色自淨 而事神捀 其弟侄之可者 而嫁之

若不自己者 其以爵祿宝玩歸于其子女 而自適可也

仙臣之妻 骨女 已非其分 况其祿宝乎

태자가 이를 맞는 말이라고 여겨 이에 조칙을 내리기를

공경의 처가 신분을 낮추어 선도에게 출가하는 것은 옛적에는 없었다.

나이가 갑절이 되고 용모가 쇠퇴하여 허물어져 비록 아들과 조카도

서로 위로하지 않으려 하는데 하물며 외인(外人)이 그리 하겠는가?

선도(仙徒)가 한때 아첨하는 것은

그 작위와 녹봉과 보물과 골동품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마땅히 너희 대소 골녀(骨女)는 사악한 색()에 미혹되지 말고

스스로 몸을 깨끗이 하여 오로지 신을 받들어 섬겨야 하고

그 형제와 조카가 옳다고 하는 자는 출가할 수 있다.

만약 그리하지 않는 자는 그 작위와 녹봉과 보물과 골동품을

그 자녀에게 돌아가게 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선신의 처가 된 골녀는 이미 그 본분이 아닌데

하물며 그 녹봉과 보물이 가당하겠는가?

 

命剡(?)京私夫 羊秀 悅凰私夫 執網 眉闌私夫 角治 尹已(?)私夫 牛衣 牟淵私夫 比食

羅德私夫 唐奴 洪水私夫 翟芝 園君私夫 薛布 納其所得宝玩 及不階之秩

<섬경蟾京>의 사부(私夫) <양수羊秀>, <열황悅凰>의 사부(私夫) <집망執網>

<미란眉闌>의 사부(私夫) <각치角治>, <윤기尹己>의 사부(私夫) <우의牛衣>,

<모연牟淵>의 사부(私夫) <비식比食>, <라덕羅德>의 사부(私夫) <당노唐奴>,

<홍수洪水>의 사부(私夫) <적지翟芝>, <원군園君>의 사부(私夫) <설포薛布>

에게 명하여 그들이 가진 보물과 골동품을 납부토록 하고 품계를 주지 않았다.

 

땅 이름 섬()과 두꺼비 섬()은 같이 사용한 글자이다.

 

물로(조리) - 섬경(452-516)

비태(심황) - 열황(447- )

자비(미량) - 미란(457- )

눌지(파호) - 윤기(442- )

?(모량) - 모연(473- )

비대(오수) - 홍수(465- )

습보(조생) - 원군(439-511)

 

於是 仙臣相戒曰 不得爵祿宝玩 誰肯爲老大女枕臣哉

이로써 선신(仙臣)들은 서로 경계하며 말하기를

작위와 녹봉과 보물과 골동품을 얻지 못하면

누가 늙은 여인의 침신枕臣이 되려고 하겠는가?”

 

乃指羊秀等 罵 以花奴之名

이에 <양수秀等> 등을 가리키며 화노(花奴)라고 부르며 욕하였다.

 

蟾京 乃謂羊秀曰 妾以老醜 迎郎君 爲夫者 欲 以榮君也

今反爲辱 何不棄妾 而改娶 以新人心乎

이에 <섬경><양수>에게 일러 말하기를

첩이 늙고 추하여 낭군을 지아비로 맞이하여

영화로운 낭군으로 삼고자 욕심을 내었는데 지금 반대로 욕을 먹으니

어찌 첩을 버리고 다시 장가들어 새 사람의 마음을 얻지 않는가?“

 

羊秀笑曰 夫婦天定也 汝以骨女 爲我妻 我已榮矣

汝生我子 則當有骨品 於我足矣

至於 爵祿宝玩 非吾素願也

人之榮辱 不在爵祿宝玩 唯在修眞養精 汝爲我妻 亦一寒微也

惟以吾心 無 有旧時驕 無逐炎凉徒 而自悲也

<양수>가 웃으며 말하기를

부부는 하늘이 정한 것인데 당신은 골녀(骨女)로 나의 처가 되었으니

나는 이미 영화롭습니다.

당신이 나의 자식을 낳은 즉 마땅히 골품이 있으니 나는 족합니다.

작위와 녹봉과 보물과 골동품은 내가 본래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영욕(榮辱)은 작위와 녹봉과 보물과 골동품에 있는 것이 아니고

오로지 진()을 닦아 정()을 기르는데 있는데 당신이 나의 처가 되었으니

이 역시 하나의 구차하고 변변치 못한 것이 되었습니다.

오로지 나의 마음을 비웠는데 지난 날 교만함이 생겨

사리를 쫓지 못하는 선도(仙徒)가 되어 스스로 비통할 뿐입니다.

 

京以其言奏於后() 妾夫羊秀 實愛妾 而非貪富貴也

妾已娠其子 願削妾品如夫同 秩以布衣自娛

<섬경>이 그 말을 후에게 아뢰기를

첩의 지아비 <양수>는 실제로 첩을 사랑하고 부귀를 탐하지 않습니다.

첩이 이미 그 자식을 임신하였으니 바라건대 첩의 품계를 지아비와 같이하여

포의(布衣)로 품계를 하여 스스로 즐기고자 합니다.“

 

품계에 따라 입는 옷의 색깔과 종류가 달랐다.

 

后感其言 而慰之曰 汝夫眞神仙也 待汝生子 當復其爵祿如初矣 勿自悲也

후가 그 말에 감격하여 위로하며 말하기를

당신의 지아비는 진실로 신선입니다.

당신이 아들을 낳기를 기다려 마땅히 그 작위와 녹봉을 처음과 같이 할 것이니

스스로 슬퍼하지 마시오

 

後果生子復爵

훗날 과연 자식을 낳아 작위가 회복되었다.

 

執網乃訴於后曰 羊秀一碁子 而已臣之才能 畵 三淸 十二京 技 未嘗劣也

臣等 以骨女爲妻 情 實夫婦義 則君臣也

其於配合毫無邪意 豈獨一 羊秀忠 而復其爵乎

이에 <집망>이 후에게 하소연하며 말하기를

“ <양수>는 하나의 바둑돌이고

신의 재능인 그림 삼청 십이경(三淸 十二京)의 기예는 아직도 모자랍니다.

신 등이 골녀(骨女)를 처로 삼은 정()은 실로 부부의 의()인 즉 군신(君臣)입니다.

터럭 같은 정을 서로 합하였으나 사악한 뜻이 없는데

어찌 홀로 <양수> 한 사람만이 충()으로 작위를 다시 얻을 수 있겠습니까?“

 

삼청 십이경(三淸 十二京)

도교에서 이 거주하는 옥청(玉淸) · 상청(上淸) · 태청(太淸)을 말한다.

 

后慰以早晩當復

후가 위로하며 빠른 시일 안에 작위를 다시 내리고자 하였다.

 

牛衣曰 碁畵 雖工 而人間之才也

不足爲貴 神仙 以不才之才 爲才

陛下 以不天 大雌 將興大道 豈以小技 取人乎 竊爲不取

<우의>가 말하기를

바둑과 그림이 비록 장인(匠人)의 기예라 하나 사람의 재능입니다.

부족한 재능으로는 신선(神仙)으로 삼아 귀하게 되기에는 부족하며

재능이 될 뿐입니다.

폐하께서는 장차 하늘에도 없는 큰 암컷으로 대도(大道)를 흥하게 하고자 하였는데

어찌 조그만 기예로 사람을 취하려 하십니까? 몰래 취해서는 안 됩니다.“

 

后善其言 命皆復爵如故 自是 仙徒益復挾媚 一時 風靡

후가 그 말이 옳다고 여겨 모두에게 작위를 예전과 같이 내리도록 하니

이로부터 선도들이 다시 더욱 골녀를 끼고 아첨하는 것이 한때 유행하였다.

 

七月 京都隕霜

7월 경도에 서리가 내렸다.

 

后自責與郎 齋于別洞 中外仙巫會者千數

후가 <위화>랑과 더불어 자책하며 별동선원에서 재()를 올리니

나라 안팎 선무(仙巫)들이 모인 자가 천명에 달했다.

 

皆言兆在 阿羅

모두들 말이 아라(阿羅)에 징조가 있다고 하였다.

 

時 阿羅女君 八海 荒淫 亂政 朝廷欲用兵

때에 아라(阿羅)의 여군(女君) <팔해八海>가 황음하여 정치를 어지럽게 하니

조정에서 군사를 일으키고자 하였다.

 

?(팔의) - 팔해(472- )

 

郎曰 臣請往 曉大義 可以歸順

<위화>랑이 말하기를

신이 대의(大義)로 타일러 귀순토록 할 것이니 가기를 청합니다.”

 

后乃許之 乃與 仁陽 阿兮 立宗等 入其國 八海 素 聞 郞名 出迎 境上 大享

후가 이를 허락하여

<인양仁陽>, <아혜阿兮>, <입종立宗> 등과 함께 그 나라에 들어가니

<팔해><위화>랑이라는 이름을 듣고 몸소 국경으로 마중 나와 큰 잔치를 열었다.

 

호연(새황) - 인양(450-512)

도광(섬신) - 효국(435- )(아리) - 아혜(456-518)

삼광(섬신) - 아리(431-491)

지도로(연제) - 입종(491-539)

 

仙徒遂奉郎 名爲其國仙

마침내 선도들이 <위화>랑을 그 나라의 국선(國仙)으로 받들었다.

 

郎乃命 阿崙爲八海之夫 八海從之

이에 <위화>랑이 <아륜阿崙><팔해>의 지아비로 삼으니 <팔해>가 이를 따랐다.

 

소뇨의(아혜) - 아륜(478- )

 

朝廷嘉其功 進爵一級 后迎郎于境上 巡行國中 而歸 命行大嘉俳 于別洞

조정(朝廷)에서 그 공을 치하하여 작위를 일급 올리고

후가 국경에서 <위화>랑을 맞이하여 나라 안을 순행하고 돌아와서

별동선원에서 대가배(大嘉俳)를 행하도록 명하였다.

 

時普仁公主生芬宗女芬兒 玉蘭公主生郎女皐蘭

때에 <보인>공주가 <분종>의 딸 <분아芬兒>를 낳고

<옥란>공주가 <위화>랑의 딸 <고란皐蘭>을 낳았다.

 

분종(보인) - 분아(509- )

위화(옥란) - 고란(509- )

 

郎皆爲之授淨 禱福

<위화>랑이 이들을 위하여 정()을 주고 장수와 복을 빌었다.

 

太子 以郎 爲國元氣 寵愛 郎母碧我 委 以祖主

태자는 위화랑을 국가의 원기(元氣)로 삼고

<위화>랑의 모친 <벽아>를 총애하여 조주(祖主)를 맡겼다.

 

翌年 又以山帝公主妻 郎弟剡梁 后與郎 主其吉

다음 해(510) <산제山帝>공주를 <위화>랑의 동생 <염량剡梁>의 처로 하여

후와 <위화>랑이 그 혼례를 주관하였다.

 

비처(연제) - 산제(494- )

염신(옥량) - 염량(494- )

 

兄山人 獻赤兎 長耳能跪

형산(兄山) 사람이 귀가 크고 무릎을 잘 꿇는 붉은 토끼를 바쳤다.

 

后命置仙院 衣紫錦 而佩銀刀 以守 郎寢

후가 명하여 선원에 두고 자주색 비단을 입히고 은도(銀刀)를 차고

<위화>랑의 침실을 지키도록 하였다.

 

兎能豫知 后至 必先頓首 侍婢等 乃備香湯

토기는 후가 이르면 반드시 먼저 머리를 숙이는 예지(豫知)가 있어

대기하는 노비 등이 미리 향기로운 목욕물을 준비하였다.

 

后好沐浴 至必行湯 入凉殿 就睡 兎入侍床下

후는 목욕을 좋아하고 목욕을 마친 후 반드시 양전(凉殿)에 들어가 수면을 취하니

토끼는 들어와 침상 아래에서 후를 시중들었다.

 

仙臣不見兎 則知后至 而不敢入后如厠 兎 又隨立厠門

선신(仙臣)들이 토기가 보이지 않으면 후가 온 것을 알고

감히 후와 같이 측간에 들어가지 못하고 또 토끼는 측간에 따라가 서 있었다.

 

后曰 兎尙如此 人臣可不忠乎

후가 말하기를

토기가 오히려 이와 같은데 어찌 사람인 신하가 불충을 하겠는가?”

 

諸婢皆 頓首兎 亦頓首后 呼 以頓首郎 出入 必携之

여러 노비들 모두가 토기에게 머리를 숙이고 후에게 머리를 숙이고

<위화>랑에게 머리를 숙이며 출입하고 토기를 불러 반드시 끌고 다녔다.

 

后自昨冬不入天宮 與郎巡?仙院 至是 已娠郎女

후는 작년 겨울부터 천궁에 들어가지 않고 <위화>랑과 더불어 선원을 순행하다

지금에 이르러 <위화>랑의 딸을 임신하였다.

 

乃請帝于皐王宮 受淨 洗 大享仙徒

이에 고왕궁에서 제()에게 정()을 받아 씻기를 청하고

선도(仙徒)에게 큰 잔치를 열었다.

 

時 帝愛碧花 許后于郎

때에 제()<벽화>를 사랑하여 후를 <위화>랑에게 허락하였다.

 

后乃自稱仙妻 常以素衣 在郎側 寫 郎 眞言 七百簡分 賜州郡 仙院

이에 후는 자칭 선처(仙妻)라 하며 항상 수수한 옷차림으로 <위화>랑의 곁에서

<위화>랑의 진언(眞言) 칠백 죽간을 베껴서 주군(州郡) 선원에 내려 보냈다.

 

州郡 以簡爲主 以豹皮 爲積 名曰 豹皮簡 奉之者 爲豹主

주군(州郡)에서는 죽간을 위주로 표피에 베껴 적으니 표피간(豹皮簡)이라 하고

이를 받는 자를 표주(豹主)라 하였다.

 

屈公嘗言 赤皂兎主黃()黃虎

일찍이 <굴공屈公>의 말에

붉은 토끼 하인이 황호(黃虎)의 주인이 된다고 하였다.

 

<굴공屈公(66-141)>이 일찍이 말한 것은

<위화>랑이 487년 적토(赤兎)의 해에 태어났음으로 적토(赤兎)<위화>랑을 말하며

황호(黃虎)510년이 경인년으로 황호(黃虎)의 해이다.

위화랑의 진언(眞言)510년에 크게 떨칠 것을 말한 것이다.

 

 

至是果驗 簡用 靑竹 寫()金漆裏 以緋帛藏于豹皮 柏櫝載 以銅柱

지금에 이르러 과연 효험이 있어

죽간은 푸른 대나무를 사용하였는데 속에 금으로 칠하여 베끼도록 하니

표피에 붉은 비단을 입히고 측백나무에 동()을 씌워 편철하였다.

 

鳳輿擇 貞男女 各七人 輿以五色 大組 䌬文武

후가 탄 봉황을 장식한 수레는 정숙한 남녀 각 일곱 명을 택하였고

오색으로 꾸미고 문무(文武)를 겸하여 크게 편성하였다.

 

郎徒等 擁衛 而去 所過郡邑 支供其備 沿路 拜簡者 皆淨其身 而俯伏

낭도 등이 옹위하여 군읍(郡邑)을 지나가니 준비한 표피간 한 가지를 바치고

도로변에서 표피간을 숭배하는 자는 모두 그 몸을 깨끗이 하여 부복하였다.

 

新苦歌舞 以娛之 以爲太平盛事

새로운 괴로움 속에서도 가무로 이를 즐기니 태평하게 일이 성사되었다.

 

時皐王宮婢子 乃生 生子 后査其 爲立宗殿君之子 乃許

때에 고왕궁 비자(婢子) <내생乃生>이 아들을 낳으니

후가 그를 조사하여 <입종立宗>전군의 아들로 허락하였다.

 

내호(거생) - 내생

 

乃生 爲殿君枕婢 賜米衣 命其子乃宗

<내생>을 전군의 침비(枕婢)로 하고 쌀과 옷을 내리며

그 아들을 <내종乃宗>이라고 명하였다.

 

입종(내생) - 내종(510- )

 

乃生 自言 夢見 神花發於郎頭 而娠 乃許授淨 持林 乃生之

家有古傳 樹王經刻 於靑玉雙龍簪 其字細 如粟粒塡 以紅金歷歷可見

而不識字義相傳 以爲大長神君秘授之寶 後世能傳此經者 必昌吾家國

<내생>의 말에 꿈에 <위화>랑의 머리에 신화(神花)가 피는 것을 보고 임신하여

숲을 가지고 정()을 주기를 허락하여 낳았고

집안에 옛부터 전해오는

푸른 옥으로 쌍룡(雙龍) 비녀를 조각한 수왕경(樹王經)이 있는데

그 글자는 조()의 낱알을 채운 것처럼 세밀하고 붉은 금()이 역력히 보이고

글의 의미를 알지 못한 체 <대장大長>신군이 비밀히 전수한 보물인데

후세에 이 수왕경을 전하는 자는

반드시 우리 가정과 나라를 창성하게 할 것이라고 하였다.

 

<대장大長>신군은 파사왕 3(128)에 일직 태수를 지냈다.

 

是時獻于后曰 聖人在天 不敢私寶

이 때 후에게 바치며 말하기를

성인(聖人)은 하늘에 있으니 감히 사사로운 보물이 아닙니다

 

后大喜 高䯻 而簪之 瑞光生於昏夜

후가 크게 기뻐하며 상투 꼭대기에 비녀를 꽂으니 어두운 밤에 서광이 빛났다.

 

后謂郎曰 仙夫知此宝物乎

후가 <위화>랑에게 일러 말하기를

선부(仙夫)는 이 보물을 알고 있습니까?”

 

郎笑曰 此乃大長神君 修道天林時 彫刻 半字經也

其半部 今在天林亭 柱下泉中壺石之

<위화>랑이 웃으며 말하기를

이것은 <대장大長>신군이 천림(天林)에서 수도할 때에

약자(略字)로 조각한 수왕경(樹王經)입니다.

그 반쪽은 지금 천림정(天林亭) 기둥 아래의 연못에 돌로 만든 병 안에 있습니다.

 

上可使人搜來驗之

왕이 사람을 보내어 수색하여 찾아오게 하였다.

 

后令侍臣 往探得之合 而讀之果成 字義

후가 대기하는 신하들에게 영을 내려 두 비녀를 합하여 글자의 뜻을 읽도록 하니

과연 성과가 있었다.

 

其文曰

그 글에 말하기를

 

柳園之池 有金蛙 慕 楊柳

버드나무 정원 연못에 금개구리가 있어 버드나무를 사모하네

 

神祈願 樹下 躍上柳葉 遊於樹宮

()이 나무 아래서 기원하니 버들잎 위에 뛰어올라 수궁에서 노니네

 

柳絮神 以雪衣 迎之 授其眞 乃生白兎大王 是爲 月奈國始祖

버들개지 신(神)이 눈옷을 입고 맞이하여 그 진()을 전수하여

백토대왕(白兎大王)을 낳으니 월나국(月奈國) 시조이네.

 

월나국(月奈國)은 전남 영암에 있던 포상팔국 중 하나이다.

 

治海上諸島神 乃浦上八國之始也

해상(海上)의 여러 섬 신()을 다스리니 포상팔국(浦上八國)의 시작이네.

 

後六百年 而是神復生 於鷄林 赤皂兎 當主 天下仙道

6백년 후 신()이 다시 계림에 태어나니

붉은 토끼 하인으로 마땅히 천하 선도(仙道)의 주인이 되었네.

 

大興四海 歸一 兆在后腹

사해(四海)가 크게 일어나 하나기 되니 후의 복() 에 있을 징조로다.

 

 

后大喜 乃以八海妻 院翁 息臣

후가 크게 기뻐하여 <팔해>를 원옹(院翁) <식신息臣>의 처로 하였다.

 

盛行 九衍八荒之曲 盖月奈 古調 阿羅傳之也

구연팔황곡(九衍八荒曲)이 월나(月奈)에서 크게 유행하였는데

옛 가락은 아라(阿羅)에서 전해진 것이다.

 

九衍者 舟行九曲也 八荒者 蔓行八木也

구연(九衍)은 배가 지나가는 아홉 다리의 곡이고

팔황(八荒)은 덩굴이 지나가는 여덟 나무의 곡이다.

 

今失其舞 只有 帝文郎 解詞 行世

지금은 그 춤이 사라지고 단지 <제문>랑이 노래를 풀어 세상에 전하고 있다.

 

九衍曰 靑鶴舞 金龜踊 明月蘆花

구연(九衍)은 푸른 학의 춤과 금빛 거북의 무용과 밝은 달 아래 핀 갈대꽃을 말한다.

 

第一橋 醉落橋下 玉流水 龜鶴浮沈 到二橋

첫 번째 다리,

취하여 다리 아래로 떨어지는 옥같이 흐르는 물에

거북과 학이 떴다가 가라앉으며 두 번째 다리에 도착하네.

 

(?)橋 春風楊柳下 八龜七鶴 轉 相交

두 번째 다리,

버드나무 아래 봄바람에 여덟 거북이와 일곱 학이 교대로 구르고 도네.

 

三橋 淸風香滿水 無數龜鶴娛 良宵柳葉 細雨洗 金蛙雪衣神下

세 번째 다리,

맑은 바람의 향기가 물에 가득하고 무수한 거북이와 학이 즐기고

달 밝은 밤에 가는 비에 적신 버들잎에 금개구리가 눈옷을 입고 내려앉네.

 

第四橋 金蛙飛上 碧玉宮 醉抱雪衣落

네 번째 다리,

금개구리가 뛰어 올라 푸른 왕궁에 이르러 취하여 눈옷을 안고 떨어지네.

 

五橋 龜鶴爭來 輿 蛙絮 弄月 無風到

다섯 번째 다리,

거북이와 학이 다투어 와서 수레를 타니

개구리와 버들개지는 달을 희롱하며 바람이 없는데 도착하네.

 

六橋 蛙絮 忽作 白兎神 搗 藥舞下

여섯 번째 다리,

개구리와 버들개지가 어느새 흰 토기 신()을 만들어

방아를 찧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네.

 

第七橋 恒娥潛步 偸藥臼眠兎抱娥落

일곱 번째 다리,

항아(恒娥)가 소리 없이 가만히 걸어 남모르게 약을 절구질하니

잠자던 토기가 항아를 안고 떨어지네.

 

八橋 龜鶴爭舞 擁兎神 爛熳 歌舞入

여덟 번째 다리,

거북이와 학이 다투어 춤추며 토끼 신()을 안고 산만하게 노래하고 춤추며 들어오네.

 

九橋 金殿 玉樓 亂 崢嶸 星火 照耿層宵

아홉 번째 다리,

금으로 장식한 전각과 옥으로 세운 누각이 어지러이 위풍을 자랑하는데

별빛이 어두운 밤을 밝게 비추네.

 

 

八荒曰

팔황(八荒)에서 이르기를

 

一荒 春風 動皐心態皮 奾子下檀林

일황(一荒),

춘풍에 고요한 늪이 흔들리니 선자(奾子)가 박달나무 숲에 내려오네.

 

二荒 扁䙴入山臺 白馬大王 荷杖來 兩頭 玄武弄

이황(二荒),

널리 퍼져있는 선인(仙人)이 산속 무대에 들어오니

백마대왕(白馬大王)이 지팡이를 메고 와서 머리와 꼬리를 치며 현무(玄武)를 희롱하네.

 

三荒 坎宮 春水洗瓊 王二昜翻來

삼황(三荒),

감궁(坎宮)에 봄이 와서 옥으로 만든 전각을 씻으니 왕이 두 번 몸을 뒤집어 오네.

 

四荒 天离宮 明火 雙纏綿

사황(四荒),

천리궁(天离宮)에 횃불을 밝히니 쌍쌍이 빛나네.

 

五荒 梁上 五荒神 亂入 巽宮 競元眞

오황(五荒),

대들보 위 다섯 명의 거친 신()손궁(巽宮)에 난입하여 원진(元眞)을 다투네.

 

六荒 穌穌入震宮 天上天下 桃花風

육황(六荒),

소소(穌穌)가 진궁(震宮)으로 들어오니 온 세상에 복사꽃이 바람에 날리네.

 

七荒 臺上 白羊神 降臨 坤主 舞王春

칠황(七荒),

무대 위로 백양신(白羊神)이 내려오니 곤주(坤主)가 왕춘(王春)을 춤추네.

 

八荒 乾王 乘彩虹 散花 天上 滿地紅

팔황(八荒)

건왕(乾王)이 무지개를 타고 하늘에서 꽃을 날리니 땅에는 붉은 꽃이 가득하네.

 

 

每設席 后爲坤王 郎爲乾王 牟大聞之 謂苩興曰

上國天母 好色 以艾好 爲小帝 國人悅之乎

자리를 만들 때마다 후를 곤왕(坤王)으로 <위화>랑을 건왕(乾王)으로 하니

<모대牟大>가 이를 듣고 <백흥苩興>에게 일러 말하기를

상국(上國)의 천모(天母)가 호색하여 애숭이를 좋아하여 소제(小帝)가 되었으니

나라 사람들이 기뻐하겠는가?“

 

곤지(진해) - 모대(466-501)

<모대>는 백제 동성왕(제위 479-500)으로 501년에 <백가>에 의하여 시해되었다.

 

<백흥苩興>은 백제에 사신으로 간 지증왕 <지도로>의 아들이다.

 

苩興曰 魏花天神 非人也 以陽道 輔聖陰

國人奉之曰 陽君所以順 四時也 安得不悅乎

<백흥>이 말하기를

“ <위화>는 천신(天神)이며 사람이 아닙니다.

양도(陽道)로 성음(聖陰)을 도우는 것입니다.

나라 사람들이 이를 받들어 말하기를

양군(陽君)이 언제나 순종하는데 어찌 기쁘지 아니하겠는가? 라고 말합니다.“

 

牟大曰 上國之人 可謂愛君也 安得不興乎 寡人之民 自好淫亂 而妬君之

嬪妾不如上國淳風

<모대>가 말하기를

상국(上國)의 사람들이 군()을 사랑하니 어찌 함께 하지 않겠는가?

과인의 백성은 스스로 음란함을 좋아하여 군()을 질투하고

빈첩(嬪妾)은 상국(上國)의 순박한 풍습과 같지 아니하다.“

 

乃以靑玉 作宝床 獻之

이에 푸른 옥으로 보물 침상을 만들어 바쳤다.

 

雙龍交龜 於下 鳳凰 比翼 於上

아래에는 두 마리의 용과 거북이가 교차해 있고

위에는 봉황이 날개를 나란히 하고 있었다.

 

后大悅 命厚都 作巫山屛畵 行雲圖 繞 于床頭 與郎 交歡 于其上

후가 크게 기뻐하며 <후도厚都>에게 명하여

무산(巫山)의 병풍 그림과 행운도(行雲圖)를 만들게 하여

침상머리에 두르게 하고 <위화>랑과 함께 그 위에서 서로 합환하였다.

 

常以錦衾覆之名曰 歡臺 枕婢五人 逓守之

항상 비단 이불을 덮고는 이름을 환대(歡臺)라 하고

침비(枕婢) 다섯 명이 교대로 지키게 하였다.

 

后欲入床 則 雙龍 自濕 鳳尾 自溫 故婢等 預爲之 備亦曰 自溫臺

후가 침상에 들어가려고 하면

두 마리의 용은 스스로 축축해지고 봉황의 꼬리는 스스로 따뜻해져서

침비(枕婢) 등이 이를 미리 알고 준비하니 자온대(自溫臺)라 하였다.

 

帝文郞讚之曰

<제문>랑이 이를 찬하여 말하기를

 

巫山屛裡 自溫臺 大雌天雄 雲雨開無限

春風吹 不盡甘霖霑 得萬民來

무산 병풍 속 자온대(自溫臺)에서

큰 암컷과 하늘의 수컷이 운우의 정으로 눈을 뜨지 못하네.

춘풍이 부니 달콤한 장마에 젖음은 끝이 없는데 만 백성을 얻어 오게 하네.

 

時 角干智弗路 薨

때에 각간 <지불로智弗路>가 죽었다.

 

습보(조생) - 지도로(437-514 22대 지증왕 재위 500-513)

자비(조생) - 지불로(446-510)

 

<지불로>는 지증왕 <지도로>의 어머니가 같고 아버지가 다른 동생이다.

 

后以其妃 俊宜娘主 爲息仁妻

息仁 息臣從弟也 年才十九 俊宜 時 年五十五

皆以碧我兄子 從郎責 息仁色美 而善歌

후가 그 <준의俊宜>낭주를 <식인息仁>의 처로 하였다.

<식인息仁><식신息臣>의 종제(從弟)19살이고 <준의>는 이때 55살이다.

모두 <벽아> 오빠의 아들로 <위화>랑을 따라 맡은 바를 다하였는데

<식인>은 얼굴이 아름답고 노래를 잘 하였다.

 

의아(파호) - 준의(456- )

 

后命爲天樂頭 出入 隨之 息仁 改八荒詞曰

후가 천락궁(天樂宮)의 우두머리로 명하니 이를 따라 출입하며

<식인>이 팔황(八荒)의 노래를 고쳐서 부르기를

 

三頭 玉离 雙纏綿 五荒梁上

세 우두머리가 옥리궁을 쌍쌍이 밝히니

다섯 명의 거친 신()이 대들보 위에 내려오네.

 

五荒 神深 入巽宮 爭宝眞

오황(五荒),

()들이 손궁(巽宮) 깊숙이 들어와 보배로운 진()을 다투네.

 

六荒 大王 入震宮 天上天下桃花風

육황(六荒),

대왕이 진궁(震宮)에 들어오니 온 세상에 복사꽃이 바람에 날리네.

 

七荒 大王 定乾元 七百欒子舞香園

칠황(七荒),

대왕이 건원(乾元)을 정하니 칠백 염주 알이 향기로운 정원에서 춤을 추네.

 

八荒 爛曼 天地合 母王慈兩潤八坤

팔황(八荒),

천지가 합덕하여 활짝 피니 모왕(母王)은 자비로운 비로 땅을 적시네.

 

后稱善 賞以駿馬 玉魚 許爲俊宜之夫

후가 잘한다고 하며 준마(駿馬)와 옥어(玉魚)를 상으로 주고

<준의俊宜>의 지아비로 허락하였다.

 

俊宜 欲吉于鮑祠 而尊仁之 爵 朝廷 以智弗路 未葬 不許

<준의>가 포사에서 혼례를 치르고 존경하며 어질어 작위를 받고자 하였으나

조정에서는 <지불로>의 장례가 끝나지 않아 허락하지 않았다.

 

后曰 吾弟 雖生不禁其妻 况已歸眞 豈以未葬 以拘生者之樂乎

후가 말하기를

나의 시동생은 오로지 살아서도 그 처를 금하지 않았는데

하물며 이미 진()으로 돌아갔는데 어찌 장례가 끝나지 않았다고

산 사람의 즐거움을 막으려 하는가?“

 

命吉之 仍賜 羊秀等 酒食 以獎之

혼례를 명하고 <양수羊秀> 등에게 술과 음식을 내려 이를 장려하였다.

 

時大幢棠朔 欲奏事 於后 見郎 枕后膝 而臥欲退之

때에 대당(大幢) <당삭棠朔>이 후에게 사실을 아뢰고자 <위화>랑을 찾으니

후의 무릎을 베고 누워있어 물러나고자 하였다.

 

자비(파호) - 비처(436-500)

                  준삭(454- )(습당) - 당삭(473- )

 

<당삭>의 어머니 <준삭>은 소지왕 <비처>의 여동생이다.

 

대당(大幢) ; 신라 군사조직인 6정 가운데 하나.

경도(京都) 부근에 설치되었으며, ()은 자백색이다.

 

 

后曰 此朕之陽君也 汝何不拜 而退乎

후가 말하기를

이 사람은 짐의 양군(陽君)인데 너는 어찌 절을 하지 않고 물러나는가?”

 

朔曰 臣聞 聖人 不以嬖幸 辱 其臣 魏花 雖陛下之嬖幸 位卑骨賤臣 何可拜乎

<당삭>이 말하기를

신이 듣기로 성인(聖人)은 패행(嬖幸)이 아니니 그 신하를 욕되게 하지 않습니다.

<위화>가 비록 폐하의 패행이지만

골품이 낮고 비천한 신하인데 어찌 절을 하겠습니까?“

 

羊秀等曰 陽君國之元氣 大幢 何可無禮 若是請罪之

<양수> 등이 말하기를

양군(陽君)은 나라의 원기(元氣)인데

대당(大幢) <당삭>이 어찌 이리 무례하니 죄를 물어야 합니다.”

 

后曰 陽君與朕 同德 外臣 而內夫 棠朔侮之 是侮朕也 可免爲庶人 而?于荒地

후가 말하기를

양군(陽君)과 짐은 밖으로는 신하이고 안으로는 지아비이니 덕()이 같다.

<당삭>이 양군(陽君)을 모욕함은 짐을 모욕하는 것이다.

서인(庶人)으로 면직하여 거친 곳으로 귀양을 보냄이 옳다.“

 

羊秀等乃脫其章服 而付之吏

이에 <양수> 등이 제복을 벗겨 관리(官吏)에게 부쳤다.

 

郎曰 朔之爲人 雖?內 實忠直不可罪也

<위화>랑이 말하기를

“ <당삭>은 됨됨이가 된 사람으로 비록 안으로 직간하나

실은 충직하니 죄는 불가하다.”

 

羊秀等曰 朔等 只恃骨品 侮辱仙門 此輩不剪 臣等 難保 頭領 願吾君勿遏 陛下之明斷

<양수> 등이 말하기를

“ <당삭>은 단지 골품을 가지고 선문(仙門)을 모욕하였으니

이러한 무리들을 자르지 않으면 신 등은 우두머리를 보존하기 어려우니

우리 군께서는 폐하의 명석한 판단을 물리치지 마시길 바랍니다.“

 

郞作色曰 汝等皆以賤人 妻公卿之 妻死亦榮矣 聖主不罪直臣

汝等 欲以私憤蔽 吾妻之聖明乎 可急召來賜酒

<위화>랑이 정색을 하며 말하기를

너희들 모두는 비천한 신분으로 공경의 처가 되었다.

처가 죽으면 영화가 있겠는가?

성주(聖主)는 직간하는 신하를 벌하지 않는다.

너희 등이 사사로운 분함을 감추려고 하는 것을 밝히는 것이

내 처의 성스러운 명석함이 아닌가? 급히 불러와서 술을 내림이 옳다.“

 

성주(聖主)는 후 <연제>이다.

 

羊秀等 皆 伏地 叩頭

<양수> 등 모두가 땅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렸다.

 

后曰 吾夫如是 可不奉命乎

후가 말하기를

내 지아비가 이와 같이 말하는데 명을 받들지 않겠는가?”

 

乃召朔 賜酒 獎其忠 朔母俊朔 感郎之恩 亦捨身仙院

이에 <당삭>을 불러 술을 내리고 그 충성을 장려하니

<당삭>의 어머니 <준삭俊朔> 역시 <위화>랑의 은혜에 감격하여 선원에 몸을 던졌다.

 

朔亦終身 不敢復言 郎之誹

<당삭> 역시 종신토록 다시는 감히 <위화>랑을 비방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

 

翌年三月 后生 郎女柳眞公主 於皐王宮 中外仙徒會禱者數千

다음 해 3월 후가 <위화>랑의 딸 <유진柳眞>공주를 고왕궁에서 낳으니

나라 안팎 선도들이 모여 기도하는 자가 수천 명이었다.

 

위화(연제) - 유진(511- )

 

發羽林軍護之 至期 彩雲繞宮 異香滿室

우림군의 호위를 받으며 출발하여 도착하니

아름다운 빛깔의 고운 구름이 고왕궁을 두르고 기이한 향기가 산실에 가득 찼다.

 

后抱郎身 而娩之甚安

후가 <위화>랑의 몸을 안고 분만하니 심히 안정이 되었다.

 

帝命郎洗之 而飯 仙徒 以勞之

<위화>랑에게 명하여 아기를 씻게 하고 선도들은 밥을 지었다.

 

加郎爵阿湌 賜白大馬 紫金神衣

<위화>랑에게 아찬의 작위를 더하고

백대마(白大馬)와 자금신의(紫金神衣)를 하사하였다.

 

車騎副於太子 器玩 皆 如后例 雖 角干 上仙 不敢抗禮

태자 다음의 수레를 타고 그릇과 완구는 모두 후의 것과 같이하니

비록 각간(角干)이나 상선(上仙)도 감히 예()를 거슬리지 못하였다.

 

后旣淨 帝與柳眞 謁廟 以慰后心 郎 感 其恩 請於后曰

臣 以賤軀 陪幸 陛下者 有 此公主之宿命也 今 旣成命 臣請乞歸

후가 이미 깨끗하여 <유진>과 함께 종묘를 배알하여 후의 마음을 위로하니

<위화>랑이 그 은혜에 감격하여 후에게 청하기를

신이 미천한 몸으로 폐하를 모셨으니 이 공주의 숙명입니다.

지금 명()을 이루었으니 신은 물러나고자 합니다.“

 

后曰 朕不可一日無汝 汝何孤朕 而欲去 朕欲與約三生 汝可爲朕誓也

후가 말하기를

짐은 너 없이는 하루도 살지 못하는데 너는 어찌 짐을 홀로 두고 가려고 하는가?

짐은 너와 더불어 삼생(三生)을 약속코자 하니 너는 짐에게 맹서하여야 한다.“

 

郎不敢違旨 帝許郎與后約三生 于廟樹 帝與郎偕后 于廟中 古所無也

<위화>랑이 후의 뜻을 어기지 못하니

는 종묘의 나무에서 <위화>랑과 후의 삼생(三生)의 약속을 허락하였다.

와 위화랑, 후 모두가 종묘 가운데 있는 것은 옛날에는 없는 일이었다.

 

時 執網之妹 爲阿湌 宋宿妾 與郎兄 元臣 相通 生子 宋宿 訴 于理方

때에 <집망執網>의 여동생은 아찬 <송숙宋宿>의 첩인데

<위화>랑의 형 <원신元臣>과 상통하여 아들을 낳으니

<송숙>이 이방(理方)에 고소하였다.

 

元臣 恃郎之威 不肯 出其妾

<원신><위화>랑의 위세를 믿고 그 첩을 내보내지 않았다.

 

執網 與厚都妃 知悅 如夫婦 而厚都 不能禁

<집망><후도厚都> <지열知悅>은 부부처럼 지냈으나 <후도>는 금할 수 없었다.

 

지도로(라황) - 후도(468-533)

비기(열황) - 지열(468- )(후도) - 도열(485- )

                                    (비처) - 말리(489- )

 

知悅之女 都悅 爲阿斗 阿湌 妻 知悅 常與網 會 于阿斗宅 知悅 旣娠

<지열>의 딸 <도열都悅><아두阿斗> 아찬의 처인데

<지열>이 항상 <집망>과 함께 <아두> 집에 모여 <지열>이 임신을 하였다.

 

순도(아해) - 아두(485- )

 

又使 都悅 通 于網 而生子

<도열>을 시켜 <집망>과 통정하여 아들을 낳았다.

 

阿斗 不知 以爲己子 阿斗 副妻 亦 生阿斗子

<아두>는 자기 아들로 여기고 알지 못하였고

<아두>의 부처(副妻) <말리> 역시 <아두>의 아들을 낳았다.

 

乃訴 都悅子 于理方

이에 <도열>의 아들을 이방(理方)에 고소하였다.

 

網 托 爲柳眞宮 畵事 不就 服欺 其副妻 末里公主 召 以后詔幽 於仙院 强淫

而誘 以利害 末里 不得已 收其訴

<집망>이 유진궁을 위하여 그림 그리는 일을 부탁받았으나 나가지 않고

그 부처(副妻) <말리末里>공주를 속여 후가 은밀히 부른다고 하여

선원에서 강제로 욕보이고 유혹하니

<말리>는 이해타산을 따져 부득이 그 고소를 받아들였다.

 

理方主簿 田檍 知 其寃 直諫 於后曰

陛下 以萬乘之尊 委身 於妖艶 誕生 公主 故公卿之妻 望風効之

都悅 以執網之子 爲嗣 元臣 奪 宋宿之妾 皆陛下之過也 請改之

이방(理方) 주부(主簿) <전억田檍>이 그 원통함을 알고 후에게 직간하여 아뢰기를

폐하는 만승지존으로 몸을 맡겨 요염한 공주를 낳으니

공경의 처들이 우러러 사모하여 이를 본받습니다.

<도열><집망>의 아들로 적자로 하고자 하고

<원신><송숙>의 첩을 빼앗으니 모두가 폐하의 잘못이니 고치시기를 바랍니다.“

 

后大怒 命笞之

후가 크게 노하여 태형을 가하라고 명하였다.

 

郎曰 此直臣也 豈可笞乎

<위화>랑이 말하기를

이 사람은 직간하는 신하인데 어찌 태형이 가하겠습니까?”

 

乃命 末里子 爲阿斗 嗣 還 宋宿妾 又以郎妹 菱花妻

이에 <말리>의 아들을 <아두>의 적자로 하고 <송숙>의 첩을 돌려보내고

<위화>랑의 여동생 <릉화菱花><송숙>의 첩으로 하였다.

 

田檍曰 汝可勿諱 而盡言仙門之惡

<전억>이 말하기를

너희들은 선문(仙門)의 악()을 기탄없이 말하는 것을 꺼리지 말라.”

 

檍曰 吾兄聖人也 臣何敢言乎

<전억>이 말하기를

우리 형은 성인(聖人)인데 신하가 감히 어찌 말을 하겠는가?”

 

郎又謂執網曰 好色 人之性也 吾不責汝 而理方不恕奈何

吾恐 汝若受笞 不能畵事 汝將何以報吾后乎

<위화>랑은 또 <집망>에게 말하기를

호색(好色)은 인지상정이다.

내가 너를 문책하지 않는데 이방(理方)이 어찌 용서하지 않겠는가?

나는 네가 태형을 받아 그림을 그리지 못하면

너는 장차 어찌 나의 후에게 보답하겠는가?“

 

執網乃泣遂絶 都悅

이에 <집망>은 마침내 울면서 <도열>과 절교하였다.

 

都悅 遂狂 阿斗 悶之 請於后曰

執網 敎臣妻以繪畵 臣亦願學之 請許如故

<도열>은 드디어 미치도록 <아두>를 번민하여 후에게 청하기를

“ <집망>은 신을 처로 하여 그림을 가르치고 신 또한 배우기를 원하니

옛날처럼 허락하여 주시기를 청합니다.“

 

后笑曰 汝家事也 自爲之網

후가 웃으며 말하기를

너의 집안일이니 <집망>의 일은 알아서 하라.”

 

乃復往 通之 阿斗不妬之 相與之 助歡

이에 다시 왕래하며 통정하니 <아두>는 이를 질투하지 않고 서로 도우며 기뻐하였다.

 

又使末里 通網 末里不肯之 而阿斗强之曰

執先生天仙也 其花 可以医汝

<말리>를 시켜 <집망>과 통정케 하니 <말리>가 이를 수긍하지 않아

<아두>가 강제로 말하기를

“ <집망> 선생은 천선(天仙)이니 그 화()는 가히 너를 멜만하다.”

 

末里 遂笑曰 汝言旣如此 吾何自守 亦與網 好網

마침내 <말리>가 웃으며 말하기를

당신의 말이 이와 같은데

내가 어찌 <집망>과 좋아함을 스스로 지킬 수 있겠습니까?”

 

乃以其母所生 厚都之女 納于阿斗 斗曰

本欲 獻吾妻 豈意迎高妹 眞所謂 投以木瓜惠以瓊琚也

이에 그 어미가 낳은 <후도>의 딸을 <아두>에게 들여보내니 <아두>가 말하기를

본래 욕심은 내 처를 바치는 것인데 어찌 고매(高妹)를 맞이할 뜻이 있었겠는가?

진실로 소위 말하는 모과를 주어 경거(瓊琚 : 아름다운 옥)를 얻은 것이다.

 

時人重 其言 傳誦 中外曰 王孫好道以賢 易色以爲昭 代盛事 尙忠氣

而輕妻子之俗 一時風靡

聞人之贒 則千里相訪 見人之急 則脫衣相贈

당시 사람을 중히 여긴다는 그 말이 전하여 지니 나라 안팎에서 말하기를

왕손은 도를 좋아하니 현명하고 색을 바꾸니 밝아져서

장하고 아름다운 일을 대신하고 충성스런 기운을 높여

처자(妻子)를 경시하는 풍속이 잠시 유행하였

사람의 현명함을 들으면 천리에서 서로 방문하고

사람의 위급함을 보면 옷을 벗고 서로 도왔다."라고 하였다.

 

時 甘文太守 芥明 有樂道 下士之風

당시 감문 태수 <개명芥明>은 도를 즐기고 아래 사람을 도우는 품성이 있었다.

 

?枕婢 有所私郎徒 名牛公

침비(枕婢)에게 사사로이 <우공牛公>이라는 낭도가 있었다.

 

婢謂牛曰 以君之才 爲我 作奴 非相愛也 可往 甘文 作邊帥 而責也

침비가 <우공>에게 일러 말하기를

()의 재주는 나를 노비로 만들고 서로 사랑하지 않으니

감문으로 가서 변방의 장수가 되어 책무를 다하시오.“

 

牛許之 到甘文 不數里 滯雪於路

<우공>이 이를 받아들이고 감문에 도착하니 몇 리를 못 가 도로에 눈이 쌓였다.

 

叩一家有 老翁出曰 糧絶無以接客

한 채의 집이 있어 문을 두드리니 늙은 할아버지가 나와 말하기를

양식이 떨어져 손님을 맞이할 수 없습니다.”

 

牛曰 吾有宝刀 可以換米

우공이 말하기를

나에게 보도(宝刀)가 있으니 쌀과 바꾸십시오.”

 

翁受刀 而入良久 其妻 煖室 而迎之曰

妾之子 作關吏 去此 不遠 可招來相見

할아버지가 보도를 받아 한참을 있으니

그 처가 방을 따뜻하게 하고 맞이하며 말하기를

첩의 아들이 관문의 관리가 되어 이번에 떠났으나 멀리 가지 못하였으니

불러 와서 서로 만나 보시지요.“

 

乃迎其子 而來 乃一巨大漢子也

이에 그 아들을 맞이하여 오니 체구가 큰 사나이였다.

 

聞牛 爲京都仙徒 告 于關主 黑泥

<우공>이 경도(京都)의 선도(仙徒)라는 소문을 듣고

관주(關主) <흑니黑泥>에게 고하였다.

 

泥 大驚 親來 迎之 遂宿於泥家

<흑니>가 크게 놀라 친히 와서 맞이하여 마침내 <흑니>의 집에서 자게 되었다.

 

泥使其妹 洗牛足曰 此可以奉枕乎

<흑니>가 그 여동생을 시켜 <우공>의 발을 씻도록 하며 말하기를

이 아이를 잠자리를 받들도록 할 수 있겠습니까?”

 

牛曰 汝妹 雖好 不如汝妻

<우공>이 말하기를

당신의 여동생이 비록 좋으나 당신의 처만 못합니다.”

 

泥遂以其妻奉之

마침내 <흑니>는 그 처가 잠자리를 받들도록 하였다.

 

妻曰 妹美而 妾醜 郎君 何愛妾乎

처가 말하기를

시누이는 아름답고 첩은 추악한데 낭군은 어찌 첩을 사랑하십니까?”


牛曰禮也

聞爾君 好士而尊賢 汝爲 其臣 不識 賓主之禮乎

우공이 말하기를

()입니다.

당신의 군()을 소문을 들으니 아래 사람을 좋아하여 존경받고 현명한데

당신은 손님의 예를 알지 못하는 신하가 되도록 하려고 하십니까?“

 

妻曰 妾乃主君之妓也 願薦君於主君 以治吾邦 貴 勿相棄 乃報 于芥明

처가 말하기를

첩은 주군(主君)의 노리개입니다.

()을 주군(主君)에게 천거하기를 바라니 우리 봉토를 다스려 귀하게 되어

서로 포기하지 말고 <개명芥明>에게 보답하십시오,”

 

芥待之 甚厚 以副妻 苩眞同枕 而孕 以爲得仙種 而宴之

<개명>이 그를 기다려 심히 후하게 대하니

부처(副妻) <백진苩眞>과 동침하여 잉태하니

()의 씨앗을 얻게 되어 잔치를 열었다.

 

黑泥之敵 楊久者 辱牛 以妖物 苩怒笞之

<흑니>의 적 <양구楊久>라는 자가 <우공>을 요물이라고 욕하니

<백진>이 노하여 매질을 하였다.

 

楊乃告 于按察 治之

이에 <양구>는 안찰(按察)에 고하여 이를 다스리도록 하였다.

 

牛自以爲郎臣 乃檻送 而査之

<우공><위화>랑의 신하로서 우리에 실려 보내서 조사를 받았다.

 

執網 當鞠牛呼曰 執兄 救我

<집망>을 마땅히 국우(鞠牛)라고 부르며 말하기를

“ <집망> 형이 나를 구해주시오.”

 

網少時 貧寒 多爲人助 故疑其爲舊恩 而命守仙宮適値

집망은 어린 시절에 가난하여 많은 사람의 도음을 받았으므로

의심스러웠으나 옛 은혜에 보답하여 선궁(仙宮)을 지키도록 적당히 조치하였다.

 

后與郎 浴于神池

후와 <위화>랑이 신지(神池)에서 목욕을 하였다.

 

私語何以報天

사사로이 부탁하며 말하기를 " 어찌하면 하늘에 보답합니까?"

 

郎曰 活命報天

<위화>랑이 말하기를

목숨을 연명하는 것이 하늘에 보답하는 것이다.”

 

 

乃披蛙衣 跳舞 於前 而歌曰

我母我父相抱兮

欲報天 而活我后

以爲助興拜 爲衛幢朱隻

이에 개구리 옷을 입고 <위화>랑 앞에서 뛰며 춤추며 노래하기를

나의 어머니와 나의 아버지가 서로 포옹하네.”

하늘에 보답코자 나와 후는 목숨을 연명하네.

흥을 돋우고자 절을 하며 군기()를 지키는 붉은 새 한 마리가 되었네.“

 

乃以其婢許爲妻以 苩眞所生子息 爲嗣 息後爲抑(?)眞宮 家臣 盡忠

이에 그 침비를 처로 허락하고 <백진>이 낳은 아들 <우식牛息>을 적자로 하니

<우식牛息>은 훗 날 <유진柳眞>궁의 가신(家臣)이 되어 충성을 다하였다.

 

宮曰 此吾良狗也

<유진>궁이 말하기를

이 사람은 나의 좋은 개이다.”

 

后每以夏月 納凉 于池畔 使牛夫妻 作蛙舞 雌雄和鳴相合

후는 여름마다 못 가에서 피서를 하며 <우공> 부부에게 개구리 춤을 추게 하니

암컷과 수컷이 화답하며 우는 것이 서로 잘 맞았다.

 

后笑賞之 呼 牛 以蛙牛呼

후가 웃으며 상을 줄려고 부르니 <우공>은 개구리가 되어 소를 불렀다.

 

牛妻曰 雌蛙 或與郎 共 枕 而觀 其舞 於帳外 以爲引春戱

<우공>의 처가 말하기를

암 개구리가 혹 <위화>랑과 같이 베개를 베고 바라보면

휘장 밖의 그 춤은 봄놀이가 됩니다.”

 

后問於郎曰 牛以何物化生乎

후가 <위화>랑에게 물으며 말하기를

“ <우공>은 무슨 생물이 화생(化生)한 것입니까?”

 

郎曰 長門公主 篤 於葛川宮 樹王

時 牛父 以廟奴 亦以子 夜 詣 樹王

一夜 公主 命婢 獻衣于樹王

牛父通之 而生牛 乃樹上 靑蛙 慕公主之美 而死化者也

<위화>랑이 말하기를

“ <장문長門> 공주는 갈천궁 수왕(樹王)에게 돈독하였습니다.

당시 <우공>의 아버지는 종묘의 노비인데 수왕의 아들로 밤에 수왕에게 나아갔습니다.

하루는 밤에 공주가 수왕에게 옷을 바치라고 노비에게 명하였습니다.

<우공>의 아버지가 공주와 통정하여 <우공>을 낳았습니다.

이는 나무 위의 청개구리가 공주의 아름다움을 사모하다 죽어 화생한 것입니다.

 

질지(순명) - 장문(451-513)

 

<장문長門>공주는 금관가야 8대왕 질지(428-491)의 딸이다.

 

 

后乃密問()公主 則果然也

이에 후가 은밀히 공주에게 물으니 과연 그러하였다.

 

公主 事慈悲 毗處 兩朝 生王子 王女 多孫曾 而密 與牛通 故朱隻惡 而逐之

공주는 <자비慈悲><비처毗處> 두 임금을 섬겨 왕자와 왕녀를 낳아

손자가 많았으나 은밀히 <우공>과 통정하니

붉은 새 한 마리는 악이라 하여 쫓아내었다.

 

주척(朱隻)<우공>을 말한다.

 

至是 以后 寵與 公主 偕處 如夫婦 而朱隻 不能禁 後人歌之

지금에 이르러 후가 공주로서 총애하여 함께 부부로 대우하였으나

붉은 새 한 마리는 금할 수가 없으니 후세 사람들이 이를 노래하였다.

 

蛙兮 蛙兮 靑蛙兮 長門宮中 靑蛙兮

葛川宮 樹子 夜情 六十春光 尙未衰

개구리야! 개구리야! 청개구리야! 장문궁의 청개구리야!

갈천궁 수자(樹子)의 밤의 정() 육십 봄빛이 아직도 쇠하지 않았네.

 

芬宗妹 厚惠 有先約 于郎 而后欲 改嫁 于外

분종의 여동생 <후혜厚惠><위화>랑과 먼저 한 약속이 있어

후가 외부로 개가(改嫁)토록 하였다.

 

비처(후황) - 후혜(497-532)

 

惠不肯 願爲枕婢 以盡忠

<후혜>는 수긍하지 않으며 <위화>랑의 침비가 되기를 원하여 충성을 다하였다.

 

至是 后許行吉 于伊同宮 再吉 于海宮 爲正妻 居 玉蘭 髮長之上

지금에 이르러 후가 이동궁에서 길례를 치르고 해궁에서 재차 길례를 치러

정처로 허락하여 <옥란><발장>의 상전으로 거주토록 하였다.

 

后自稱 仙妻 居三妻之上 以配 四時 五行 於是 皆得其主

후는 스스로 선처(仙妻)라 칭하며 세 처의 상전으로 거주하며

네 계절과 오행에 맞추어 배치하니 이로써 모두 그 주인을 득하였다.

 

厚惠 居 別洞 玉蘭 居 剡 髮長 居 勝光 乃舊仙院()

<후혜>는 별동에 거주하고 <옥란>은 염원에 거주하고 <발장>은 승광에 거주하니

구선원(舊仙院)이다.

 

后無主院 隨處三院 及天宮 海宮 所 御婢子 皆用仙院 淨女

故淨籍 逐 年增加

후는 주원(主院)이 없이 삼원(三院)과 천궁, 해궁에 거처하는 곳에 따르니

어비자(御婢子)들 모두가 선원을 사용하는 정녀(淨女)가 되어

마침내 정적(淨籍)이 해마다 증가하였다.

 

至是 淨瓊 兩林 總數 無慮 三千 乃設品級 部屬 以整其序

지금에 이르러 정림(淨林)과 경림(瓊林)의 총 인원이 무려 3천 명이 되니

그 서열을 정리하여 소속 부서에 품계를 두었다.

 

兩林 以帝及太子 幷郎 爲三君一體呼 郎以仙君 陛下者 漸多

양림(兩林)와 태자를 <위화>랑과 나란히 하여 삼군일체(三君一體)라고 부르며

<위화>랑을 선군(仙君)으로 하니 폐하의 사람이 점점 많아졌다.

 

上仙 仁陽 謂 后兄伊欣及畏山曰

魏花 以人臣得聖后 嬖寵 權 傾人主 此不祥也

昔 黑齒 稱 鷄帝 而敗物滿 則傾 兩林女子 呼 郎 以陛下者何也

君等 各 居 其親 不得 不戒

상선(上仙) <인양仁陽>이 후의 오빠 <이흔伊欣><외산畏山>에게 일러 말하기를

“ <위화>는 신하로서 성후(聖后)에게 패총(嬖寵)을 받아

권세가 군주와 같으니 이는 상스럽지 못하다.

옛날 <흑치>가 계제(鷄帝)라 칭하여 패물(敗物)이 가득하더니

양림(兩林)의 여자들이 어찌하여 <위화>랑을 폐하와 같다고 하는가?

() 들은 각기 그 친척으로 살며 얻지 못하고 경계하지 않고 있다.“

 

호연(새황) - 인양(450-512)

등흔(모량) - 이흔(461-526)

                 연제(463-525)

산근(외황) - 외산(459-521)

 

伊欣乃奏於后

이에 <이흔>이 후에게 아뢰었다.

 

后曰 郎乃我夫也 與我共枕 而臥 婢子 安敢不呼 以陛下乎 兄勿過慮

후가 말하기를

“ <위화>랑은 나의 지아비로 나와 함께 같이 베개를 베고 누워도

비자(婢子)도 감히 폐하로 부르지 못하니 오빠는 너무 심려하지 마십시오.“

 

伊欣曰 陛下爲臣之妹 而不失 君臣之義 况 陛下之嬖妾乎

<이흔>이 말하기를

폐하는 신의 여동생입니다.

잃지 않고자 하는 것이 군신(君臣)의 의()인데

하물며 어찌 폐하의 패첩(嬖妾)입니까?“

 

后不悅曰 兄 雖 尊而外人 郎 雖 卑而 朕體 何足 同論乎

自郎潤我體 鴻神休 血氣向 少大有恩 於朕躬 朕不可一日 無郎

帝不可一日 無朕 朕之恩人 郎帝之恩人也

帝許朕以郎爲夫者此也

帝與郎與朕一體 如天之日月 地之山川 兄何敢指爲嬖妾乎

上仙 仁陽 不識 眞元妙理 而妄生 邪念 離間 三聖 豈可謂 柱石之臣乎

兄 可面責 其非 罷 其執迷

후가 기뻐하지 않으며 말하기를

오빠가 비록 존귀하나 외인(外人)이고 <위화>랑이 비록 비천하나 짐의 몸인데

어찌 발()이 같다고 말하십니까?“

<위화>랑이 내 몸을 적시고부터 짐의 몸에 홍신(鴻神)이 쉬고 혈기가 나아가니

작고 큰 은혜가 있어 짐은 하루도 <위화>랑 없이 살 수 없고

는 하루도 짐 없이 살 수 없으니 <위화>랑은 의 은인입니다.

가 짐이 <위화>랑을 지아비로 허락한 것이 이와 같습니다.

<위화>랑과 짐은 하늘의 해와 달, 땅의 산천과 같이 한 몸인데

오빠는 어찌 감히 패첩(嬖妾)으로 지적하십니까?

상선 <인양>은 진원(眞元)의 신묘한 이치를 알지 못하여

삶을 망각하여 사념(邪念)으로 삼성(三聖)을 이간질하니

어찌 가히 기둥이 되는 신하라 하겠습니까?

오빠는 그 잘못을 마주 대하여 꾸짖고 그 잘못을 고집하는 것을 그만 두게 하십시오.“

 

伊欣 知不可 諫 退 謂畏山曰

吾 無諫后之智 君有戒郞之力乎

<이흔>이 간()하는 것이 불가함을 알고 물러나 <외산>에게 말하기를

나는 후의 지혜에 직간이 안 되니

군이 <위화>랑의 힘을 경계하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畏山笑曰 上仙之憂 只 一杞國之憂也

吾以郎貴君 以后貴 帝與太子 皆天縱之聖 而愛郎

至此 郎 固聖矣 我等 復何言乎

吾妻 君妻 視吾輩 如小兒 而事郎 如天子 皆願獻身

吾聞 君妻 洗郎 于神池 郎撫 君妻曰 汝陰 如桃生文

君妻 感恩 伏地曰 陛下 愛妾 如此 雖 死難忘

后知 郎心 使抱 君妻 而濡之

自是 君妻 奉郎 如天君 若責郎 君妻 必唾君矣

夫婦 尙 如此 况 兄妹乎

<외산>이 웃으며 말하기를

상선의 근심은 단지 하나의 쓸데없는 나라의 근심입니다.

우리가 <위화>랑을 군으로 귀하게 여기면 후가 귀하게 되고

와 태자 모두가 하늘을 따르는 성인(聖人)으로 <위화>랑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지금에 이르러 <위화>랑은 확고한 성인이니 우리들이 어찌 다시 말을 하겠습니까?

내 처와 군()의 처는 우리 무리들을 소아(小兒)로 보며

<위화>랑을 천자(天子)로 섬겨 모두 몸을 바치기를 원합니다.

내가 듣기로 군()의 처가 신지(神池)에서 <위화>랑을 씻으니

<위화>랑이 군()의 처를 어루만지며 말하기를

당신의 음()은 복사꽃이 핀 문양이다.’라고 하니

군의 처가 은혜에 감격하여 땅에 엎드려 말하기를

폐하의 애첩이 이와 같으니 비록 죽어도 잊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하니

후가 <위화>랑의 마음을 알고 군의 처를 안고 적시게 하였다고 합니다.

이로부터 군의 처는 <위화>랑을 천군(天君)과 같이 받드니

만약 <위화>랑을 책망하면 군의 처는 반드시 군에게 침을 뱉을 것입니다.

부부가 이와 같이 숭상하는데 하물며 어찌 당신의 여동생을 말합니까?

 

伊欣乃歸詰其妻 俊明曰 仙帝之寵 比帝寵 尤貴 汝小兒 何知 而論我乎

이에 <이흔>이 돌아가 그 처를 힐문하니 <준명俊明>이 말하기를

선제(仙帝)의 총애이고 비제(比帝)의 총애로 더욱 유달리 뛰어난 귀인이다.

당신은 소아(小兒)인데 어찌 나를 말하는가?

 

선제(仙帝)<지도로> 지증왕을 비제(比帝)는 후 <연제>를 말한다.

 

자비(파호) - 비처(436-500) 21대 소지왕 (재위 479-499)

                 준명(462?-522)

 

批欣之頰 而笑

뺨을 때리니 기쁘게 받아들이며 웃었다.

 

伊欣 啞然自失 良久曰 天乎 人乎 吾不知 其可也

<이흔>은  넋이 나가 한참 있다가 말하기를

하늘인가? 사람인가? 나는 그 옳음을 모르겠구나.”

 

自是 遂 緘口 不言 郎事后 乃自以 坤道事

드디어 이로부터 지금까지 <위화>랑이 후를 섬기는 것을

곤도(坤道)의 일이라 하여 입을 다물고 말을 하지 않았다.

 

郎曰 我天陛下 起臥 必扶之 飮食必嘗之

<위화>랑이 말하기를

나의 하늘인 폐하가 일어나고 누우면 반드시 부축하고

음식은 반드시 이를 먼저 맛보아야 한다.”

 

大營玉帳 仙宮 於別洞 飾 以金玉七寶 極盡其美

금과 옥과 칠보로 장식하여 그 아름다움이 지극한 별동선원 선궁(仙宮)

크게 옥으로 장식한 휘장을 설치하였다.

 

后與郎居之 歌舞 不撤 仙臣皆 以珠履 上殿 食 以膏梁

故皆肥腴華麗 而骨門 舊家 有 不能 自食者

후와 <위화>랑이 그 곳에 거주하며 밤낮으로 가무를 즐기고

선원의 신하들 모두가 구슬달린 신을 신고 전각을 걷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니

모두가 살이 찌고 화려하여 골문의 옛 집안에는 스스로 살아가지 못하는 자가 없었다.

 

時人嘲之曰

仙臣之狗 不食 公卿之食

仙門之左右 有牛馬 庄畜 神牛神馬

仙臣本 不畜妻爲貴

至是 皆有妻子 散居

당시 사람들이 이를 조롱하여 말하기를

선원의 신하 집의 개는 고관 집의 음식을 먹지 않네.

선원 문의 좌우에 있는 소와 말은 장원에서 기른 신우(神牛)와 신마(神馬)이네.

선원의 신하는 본래 처()를 기르지 않으니 귀하게 되었는데

지금에 이르러 모두 처자가 있으나 흩어져 살았네.“ 라고 하였다.

 

牛馬 庄 民間之有逃避者 一入其庄 則理方不能追之 故兩庄漸殖

소와 말을 기르는 장원에 민간인 중에서 도피한 자 한 명이 그 장원에 들어온 즉

이방(理方)에서는 이를 쫓지 않으니 두 선원의 장원이 점점 늘어났다.

 

如閭示 三院庄屬 以千計

마을에 세운 안내문에 보이듯이 세 선원에 속하는 장원이 천 곳이 되었다.

 

息臣 乃置羊庄 于城東 而自居之 八海之屬 多從之命

이에 <식신息臣>이 성동(城東)에 양장(羊庄: 양을 키우는 장원)을 설치하여

스스로 거주하니 <팔해八海>에 소속되어 많은 사람이 <팔해>의 명을 따랐다.

 

猪牛羊三氏 養庄卒 以需院用

(), (), () 세 성씨는

장원을 키우고 나와서 장원의 이름을 사용한 성씨이다.

 

黑泥 牛公等 皆以庄卒 拔身 致家

<흑니黑泥> <우공牛公> 등도 모두 장원 출신으로 도망쳐 나와 가정을 이루었다.

 

天下之右 仙徒者日

熾尊賢 尙義 輕財 好色之風 大行

온 세상이 이를 숭상하여 선도(仙徒)를 말하기를

존귀하고 현명함이 불타오르고 의()를 숭상하여 재물을 가벼이 여기고

호색하는 풍속을 크게 유행시킨 자다.“ 라고 하였다.

 

仙徒 乃上 太上老帝之號 于帝 曰

肇始以來 未有 如今日之盛

이에 선도들이 에게 태상노제(太上老帝)라는 호칭을 올리며 말하기를

나라를 건국한 이래 오늘같이 선도(仙道)가 번성한 날이 없습니다.”

 

進金玉壽器 于帝及后郎 是爲三聖宝也

금과 옥으로 만든 수기(壽器)를 제와 후와 <위화>랑에게 진상하니

이를 삼성보(三聖宝)라 한다.

 

수기(壽器) : 살아 있을 때 미리 만들어 두는 관

 

仙臣亥牟造之 刻以龍獜(?)鳳紋 精巧逼眞

선원의 신하 <해모亥牟>가 용과 기린과 봉황의 문양을

정교하게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새겨 만들었다.

 

은 같이 사용한 글자인가?

 

后又命亥牟 率其徒 入金官 習磁 貝之術 而歸 分置各院 而傳授之

후는 또 <해모>에게 명하여 선도들을 인솔하여 금관가야에 들어가

사기그릇을 만드는 기술을 보고 배워 돌아오게 하여

각 원에 나누어 설치하여 이를 전수케 하였다.

 

(사기 그릇 ’)俗字

 

時車宿公 嗣子 尹生 居 芼兮 奉 白楡 樹王 致財 鉅萬 四方 來拜者 不絶

당시 <거숙車宿>공의 적자 <윤생尹生>이 모혜(芼兮)에 거주하며

흰 느릅나무 수왕을 받들어 많은 재산을 모으니

사방에서 절을 하러 오는 자가 끊이질 않았다.

 

거숙(윤기) - 윤생(464-540)

                  거생

 

尹生 摩只 得寵 於太子 爲太子 置花林精舍

<윤생><마지摩只>는 태자의 총애를 득하여

태자를 위하여 화림정사(花林精舍)를 세웠다.

 

<마지摩只>는 백제 동성왕 <모대>의 딸로서  <윤생>의 처이다.

 

時迎 而享之 歲獻五穀 于仙院

당시 태자를 맞이하여 향()을 올리며 세비로 선원에 오곡을 바쳤다.

 

尹生之妹 車生 居 一善 亦以畜牸 致財 歲獻 牛馬 于仙院

<윤생>의 여동생 <거생車生>은 일선(一善)에 거주하였는데

암소를 길러 재산을 모아 세비로 선원에 소와 말을 바쳤다.

 

后與郎 亦出遊 其精舍 或留數日

후와 <위화>랑 역시 그 화림정사에서 유람하고 혹은 수일간 머물렀다.

 

尹生乃請立楡院 于花林 后許之

<윤생>이 화림정사에 유원(楡院)을 세우고자 하니 후가 이를 허락하였다.

 

以摩只爲院主 摩只 遂 與郎合 生女 宝花 世爲 楡院之主人

<마지>를 유원주(楡院主)로 삼으니 마침내 <위화>랑과 하나가 되어

딸 <보화宝花>를 낳아 대를 이어 유원(楡院)의 주인이 되었다.

 

皆以楡院 爲財 天供之 連絡 于路院 財甚富

모두가 유원(楡院)에 재물을 하늘에 바쳐 로원(路院)과 연락하니

재물이 매우 풍족하였다.

 

仙臣 爲其翁 苩眞 請 以牛公 爲其翁 入 其財 于柳眞宮 后許之

선원의 신하들이 <우공牛公>을 선옹으로 삼기를 <백진苩眞>에게 청하여

그 재물을 <유진柳眞>궁에 들이도록 하니 후가 이를 허락하였다.

 

摩只 欲 媚于后及郎 付 私田 穀歲增 其入

<마지>는 후와 <위화>랑에게 아첨코자 하여

사전(私田)을 넘기어 주니 해마다 곡식이 늘어났다.

 

后嘉 其忠 以摩只 爲柳眞宮 假母 以宝花 爲柳眞宮 膢妹 賞賜 甚重

후가 그 충성에 기뻐하며 <마지><유진>궁 가모(假母)

<보화><유진>궁 루매(膢妹)로 하고 상을 거듭하여 내렸다.

 

時后生女杵眞宮 與宝花同年

때에 후가 딸 <저진杵眞>궁을 낳았는데 <보화宝花>와 나이가 같았다.

 

위화(연제) - 유진(511- )

모진(연제) - 저진(514-531)

위화(마지) - 보화(514- )

 

<저진>은 태자 <모진>과 어머니 <연제>하여 낳은 딸이다.

 

摩只 勸車生 立杵院 于一善 入 其財 于杵眞宮

<마지><거생>에게 권하여 일선(一善)에 저원(杵院)을 세우니

그 재물이 <저진>궁에 들어 왔다.

 

后 於柳杵 鍾 其愛 各置宮宅 奴婢 備 其所用無 不具盡

후는 <유진>궁과 <저진>궁을 사랑하여 각 궁 집에 쇠 종()을 설치하니

노비들이 준비하는 것은 소용이 없었고 다 갖추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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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띨빡